[Theme시대] 우리 일상에 상상이 닿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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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9

우리일상에상상이

우리 일상에 상상이 닿기까지

사실이 바탕이 되는 자연과학과 달리 인문학은 사유에서 시작된다. 우리 내면을 들여다보며 관찰하고 생각을 넓혀가는 것이 기본 구조다. 인간의 문명과 사회,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 없이는 발전도,미래로 나아가는 것도 어렵다. 상상이라는 개념이 우리 일상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글. 최태섭(문화평론가)

상상의 대가에 대하여
21세기에 들어 상상(想像)이란 단어처럼 진부해진 것도 드물다. 이 단어는 그야말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수식어처럼 붙어서 참신함, 기발함 등을 어필하기 위해쓰였다. 하지만 유행의 초창기를 제외하곤 이 단어가 붙은것 중에 정말로 그런 것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만약 어딘가에 ‘열정’이나 ‘상상’과 같은 수식어가 대문짝만하게 쓰여있다면 ‘믿고 거를 수 있는’ 표지가 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 개념이 단지 후지기 때문에 외면당한 것은 아니다. 이 외면의 더 핵심적인 원인은 냉소였다. 한국 사회는사람들의 상상에 대가를 지불하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신의 상상을 펼치라며 치러진 수많은 공모전, 대회,구인공고들은 거기에 뛰어든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았다.아이디어는 헐값에 팔리거나 그마저도 아까워하는 자들에게 도용당했고, 참가자들은 들러리가 되거나 모욕당했다. 그러니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아니 더 딱딱하고 모나게받아들이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의 방법이 되었다. 현실의숨 쉴 틈 없는 지배 속에서 상상은 질식해버렸다.
하지만 상상은 유약하기는커녕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떠올리는 것, 그것들로 체계를 만드는 것, 나아가 그것을 현실에 구현하는 것은 아직까지는인간만이 유일하게 성공한 일이다. 인간의 문명이란 결국자연에서라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들을 통해서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상상하는 힘이 없었다면 문명은 성립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기능
상상은 우리를 고양시킨다. 가령 상상할 수 없었다면 우리는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현실 앞에 꼼짝없이 얽매여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죽지 않는 법을 알아내진 못했지만, 상상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죽음을 극복했다. 그중 가장대표적인 방법은 내세를 창조한 것이다. 많은 이들이 죽음이 존재의 끝이 아니며 그 이후의 영원한 시간과 공간이존재한다고 믿는다. 그곳은 현세에서의 행실에 따라 영원한 행복과 고통이 결정되고, 현세에서 잘못된 것이 있더라도 바로잡아줄 정의로운 절대자가 있는 곳이다. 우리는 내세라는 상상의 산물을 통해 소중한 이들을 떠나보내는 슬픔을 달래고, 다른 이들을 도우며 선하게 살아야할 이유를 찾았다.
그러나 상상은 우리를 악하게 만들기도 한다. 권력자와 성직자들이 내세관을 통해 사람들을 기만하고, 더 큰 고통속으로 몰아넣은 역사는 종교의 역사와 거의 궤를 같이한다. 어떤 이들은 거대한 거짓과 작은 진실을 교묘하게 뒤섞어 사람들의 공포에 불을 당기고, 공포는 상상을 통해 무럭무럭 자라나 본적 없는 이들에 대한 거대한 증오를 키워낸다. 게다가 인간의 너무나도 뛰어난 상상력은 자연을 지나치게 거스른 나머지 스스로를 위기 속에 몰아넣을 지경이 되었다. 상상은 이렇게 우리를 인간으로 존재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그로부터 멀어지도록 만들기도 한다.
법도 상상을 할까? 법과 상상의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도없(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법은 엄정해야하고, 철저히 사실에 기반해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일이 법이 정한대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법이란 결국 입법자들의 상상이 모인 것이고, 거기에는 미처 생각해내지 못한 수많은 문제와 상황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법이 만들어지는 것에도, 또 그것을 적용하는 것에도 상상의 힘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법의 중요성은 그보다도 커지는 중이다. 사회의 갈등조정능력이 점차 힘을 잃고 정치와 사회와 경제가 모두 법 앞에서 판결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에 끼어 헐떡이는 사람들의 삶을 지켜야하는 법의 책무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막중하다.
나는 법이 더 많은 상상을 발휘하길 바란다. 사회적 약자들의 사정을 헤아리고, 더 적극적으로 인권을 보호하고, 사회를 회복하는 정의를 이끌어내는 상상들을. 오늘 우리에게필요한 것은 세상을 법에 끼워 맞추는 기계가 아니라 다양한 삶을 이해하고 상상할 수 있는 동료 시민의 영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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