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세대 리포트] 세대를 아우르는 뉴트로

트렌드에 주목하라

2020.02.06

뉴트로

세대를 아우르는 뉴트로

복고(Retro)를 새롭게 즐기는 뉴트로(Newtro)가 연일 화두다. 뉴트로와 레트로는 과거를 회상한다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뉴트로는 과거를 가져와 현대에 접목한다는 것이 다르다. 중장년층은 이미 경험한 과거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을 떠올리고, 젊은 세대는 미처 겪지 못한 새로운 감성에 신선함을 느낀다. 이로써 여러 세대가 뉴트로 안에서 하나의 응축된 세계를 공유하는 것이다.

글. 신혜림(라디오 작가)

기억 속에 잊힌 ‘리베카’를 소환하다
지난 2019년 12월 31일, ABC 방송의 ‘New Year’s Rocking Eve 2020’이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열렸다. 새해맞이 라이브로 유명한 이 무대에는 우리나라 그룹 BTS가 올라 두 곡의 라이브를 선보였다. BTS는 2012년 ‘강남 스타일’로 돌풍을 일으킨 싸이에 이어, 이 방송에 두 번째로 출연한 한국 가수다. 다시 말하면, 2019년과 2020년을 잇는 팝 음악계의 아이콘이 BTS라는 것을 증명한 셈이었다.
뉴욕보다 14시간을 앞선 우리나라 서울에서는, 역시 12월 31일에 가수 양준일이 첫 팬 미팅을 열었다. 1991년에 데뷔해 오랜 기간 활동을 중단했던 그는 최근 ‘탑골 GD’라는 별명으로 재조명된 뮤지션이다. 90년대 음악 방송을 주로 틀어 주는 유튜브 채널에서 네티즌에게 ‘발굴’되어,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더니 급기야 21세기 감성에 맞는 90년대 가수로 ‘소환’됐다.
BTS와 양준일. 이 둘이 동시대를 대표하는 키워드로 공존한다는 것은 꽤 재미있는 현상이다. BTS는 2010년 이후 과포화 상태로 진입한 아이돌 시장에서 국내외적으로 가장 두각을 드러낸 그룹이다. 즉 K-Pop의 현주소를 확인하고 싶다면 BTS부터 시작하면 된다는 뜻이다. 그에 반해 양준일은 이런 트렌드와는 여러 모로 동떨어져 있다. 그의 음악에는 칼군무도 없고, 꽉 찬 사운드도 없으며 가사가 밀레니얼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양준일이 주목받는 이유는 그를 몰랐던 세대들에게 그의 무대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안무가 짜여 있지 않아도 느낌은 충만하고, 자유분방한 패션도 촌스럽지 않다. 여기에 펑크(Funk) 리듬에 영향을 받은 그의 힙합 댄스 음악은 2013년 다프트 펑크(Daft Punk)의 ‘Get Lucky’, 2014년 마크 론슨(Mark Ronson)의 ‘Uptown Funk’로 촉발된 레트로 스타일 덕에 사람들에게 낯설지 않게 다가갈 수 있었다.
이 ‘양준일 현상’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현재 문화의 주요 작동 방식이, 언급한 ‘발굴’과 ‘소환’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재창조’가 진행된다. 패션 업계에서는 90년대에 유행한 데님 팬츠나 어깨가 봉긋한 원피스, 오버핏 재킷을 요즘 트렌드에 맞게 변형하고, 음료·주류·식품 업체에서는 20~30년 전에 사용한 패키지 디자인을 신제품에 활용한다. 이는 중장년층의 향수를 자극함과 동시에, 젊은 세대에게는 독특한 경험을 제공한다. 그야말로 ‘레트로’에 새로움을 더한 ‘뉴트로’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 사이의 ‘틈’을 즐기다
더욱이 ‘뉴트로’는 하나의 상품에만 그치지 않는다. 기존 서울 상권의 중심지였던 강남, 신사, 이태원, 홍대가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앓으며 비슷한 모습으로 통일된 데에 비해, ‘힙지로’라 불리는 을지로의 경우 원래 있던 오랜 매장들 사이사이에 카페와 식당이 들어섰다. 또 신규 입점한 가게들도 옛 건물을 보존한 복고풍 인테리어를 추구, 주변과 어울리면서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뉴트로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덕분에 사람들은 이곳에서 소비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 전체의 분위기를 흡수하는 경험을 누린다.
사실 어떤 문화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를 명확하게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에는 정치, 경제, 심리, 환경적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또 사후 해석의 오류에 빠질 우려도 있다. 다만, 오늘날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뉴트로의 유행 속에는 확실한 ‘틈’이 보인다. 눈만 감았다 떠도 최첨단 기술과 콘텐츠가 쏟아지는 요즘, 굳이 과거에 사라진 무언가를 끄집어내는 노력을 하면서 우리 스스로 정신적 ‘틈’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빳빳한 새 책보다 손때 묻은 헌 책의 감촉. 윤기 나는 티타늄 냄비보다 까맣게 그을린 양은 냄비. 3D 입체 그래픽보다 선 굵은 2D 일러스트. 깔끔한 스트리밍 음원보다 잡음이 들리는 LP 소리. 더 손쉬운 것이 있음에도 불편함을 감수하며 과거를 경험한다는 것은 ?그때를 겪었든, 그렇지 않든- 그 시간에 내재된 정서까지 향유한다는 의미다. 낡고 촌스러운 것이 가져다 주는 푸근함. 그리고 그것을 재해석하면서 얻는 즐거움. 우리는 지금 뉴트로라는 ‘틈’을 통해 시대를 관통하는 정서적 안정감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 신혜림 작가는 MBC FM4U <김현철의 골든디스크> 음악 작가를 거쳐 현재 MBC FM4U에서 매일 새벽 2시부터 3시까지 방송되는 라디오 프로그램 <신혜림의 Just Pop>에서 구성과 진행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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