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머의 시선] 어울려 사는 삶, 상생을 칭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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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6

어울려 사는 삶, 상생을 칭찬해

생각하는 대로 보인다고 했다.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면 좋은 것에서도 부정적인 면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되고, 긍정적인 생각이 있으면 모든 것에서 밝은 기운을 찾는다. 상생 역시 마찬가지다.

글. 고정욱(아동문학가)

장애인 예술가로 산다는 것

“한부열 작가는 어떻게 생활하나요?”

자폐성장애를 가지고 있는 화가 한부열 작가와 인터뷰를 하며 내가 물었다. 물론 그와 소통은 되지 않기에 매니저 격인 어머니가 대답했다.

“월급 받아요.”

“월급이라뇨? 어디 직장이 있나요?”

“네.”

의사소통도 되지 않는 자폐성장애인이 다니는 직장이 있다니!

“출퇴근을 하는 건 아니지만 그림을 그려서 한 달에 한 작품씩 제공하면서 보수를 받고 있어요.”

장애인이 직장을 가지고 기업의 후원을 받는다는 소식에 놀랐다. 기업은 이윤추구를 최우선으로 하는 집단이고, 게다가 지금은 누구나 불황이라고 말하는 시절이 아니던가. 청량제 같은 소식이었다.

내가 요즘 쓰고 있는 책의 모델인 한부열 작가는 30cm 자를 대고 그림을 그린다.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그려내는 그의 그림들은 특이하다. 보고 있노라면 깊은 예술적 영감을 준다. 그의 예술세계가 하도 특이해서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동화로 쓰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런데 그가 이처럼 누군가의 지원을 통해 자신의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다고 한다.

예술은 자고로 배고픈 분야다. 오죽하면 예로부터 음악이나 미술을 하겠다고 하면 부모들이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버린다고 했을까. 한류가 전 세계를 휩쓰는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나 역시도 소출이 적은 글밭을 경작하는 노동자로서 매일의 삶이 팍팍하고 항상 위기의식을 느낀다. 예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처우도 그다지 좋지 않다. 전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열정페이가 여전히 만연하고 도제식 훈련 방식이 남아 있다. 정당한 보수는 꿈도 못 꾸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장애인 예술가라면 어떻겠는가. 예술이라는 척박한 무대에 장애라는 불리함까지 겹쳤으니 그 어려움은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다.

상생의 길로 진입하라

트리나 폴러스의 우화 「꽃들에게 희망을」을 보면 주인공 애벌레는 거대한 벌레들이 쌓아올린 벌레들의 피라미드에 오르기 시작한다. 수많은 애벌레가 다른 벌레를 짓밟고 정상을 향해 올라가려 애쓴다. 다른 애벌레를 아래로 밟아 떨어뜨려야 자신이 살아남는다. 주인공 애벌레 역시 같은 상황이다. 벌레의 피라미드 위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애벌레들은 끊임없이 경쟁하며 위를 향해 올라간다.

우리네 삶이라고 다를까.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위로 올라가기 위해 누군가와 늘 경쟁하고 떨쳐내야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매일의 삶이 전쟁이고 매일의 삶이 투쟁이다. 그러다 보니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나는 고작 벌레 한 마리, 혹은 나사 하나에 불과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자. 우리가 사는 사회를 전쟁터에만 비유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그렇게 나를 제외한 모두를 제거해야 하고 이겨야만 한다면 종국엔 무엇만이 남을 것인가. 우리가 사는 사회는 누구 하나를 죽여야만 내가 살아남는 곳이 아니다. 남보다 뛰어나지 않으면 도태되고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은 편협한 망상일 수 있다. 이 사회에는 저마다의 개성과 역량, 노력으로 맡을 수 있는 각자의 역할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남과 비교하고 시기하게 되니 왕따가 생기고 따돌림이 생긴다.

삶의 관점을 바꾸면 새로운 길이 열린다. 나를 불안하게 만들고 누군가를 이겨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 우리 사회는 약육강식의 세계가 아닐 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힘을 합치는 화합의 장이다. 여럿의 능력이 더해져 거대한 목적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그 사이 나는 수많은 선한 영향력 중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은 경쟁자가 아니라 소중한 협력자다.

나 역시 동화작가들을 만나면 동지애를 느낀다. 강연도 소개해주고 원고 청탁도 연결해준다. 작가들은 상생의 대상이지, 경쟁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학의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같은 예술가인데 서로 싸우고 물어뜯을 필요가 없다. 이렇게 관점을 바꾸는 것이 상생이 시작이다.

국가 제도에서 발견한 상생

상생으로 패러다임을 바꾸면 길이 보인다. 국가의 제도에서도 상생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장애인의무고용제도가 있다. 월 평균 상시 50명 이상의 근로자를 고용하는 사업주는 그 근로자 총수의 3% 안팎의 장애인 근로자를 의무적으로 고용해야 한다. 해당 사업주가 장애인 고용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고용부담금을 자진신고하고 납부해야 한다. 이 장애인고용부담금은 사회 연대 책임의 이념을 반영하여 장애인을 고용하는 사업주와 그렇지 않은 사업주의 경제적 부담을 평등하게 조정함으로써, 장애인 고용에 따른 비용을 보전해주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거둔 부담금은 장애인의 융자 지원, 장려금 지급 등 장애인 고용 촉진을 위한 각종 사업에 지원되고 있다. 한 마디로 상생 제도인 것이다.

나 같은 장애인 예술가는 직장을 다닐 수 있는 기술자가 아니기에 장애인의무고용제도를 보완한 장애인예술인후원고용제도의 혜택을 받고 있다. 이 역시 새로운 상생이며 나눔을 실천하는 나라의 배려라 하겠다. 나라 제도에서도 이러한 상생의 증거들을 발견할 수 있는 건 개인적으로도 무척 기쁜 일이다.

내 옆에 있는 동료와 이웃이 함께 이 세상을 만들어가는 소중한 사람임을 잊지 말자. 나 혼자서는 이뤄내지 못할 일들을 우리는 다양한 이들의 도움과 역할을 통해 누리며 살고 있다.

한부열 작가의 개인전이 곧 있다고 한다. 나도 꼭 보러 가야겠다. 이런 작은 응원도 상생의 좋은 기운을 세상에 퍼뜨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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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욱 아동문학가
성균관대학교 국문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문학박사로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 1급 지체장애인이기도 하다. 문화예술 분야 진흥에 이바지한 공을 인정받아 ‘2012년 제7회 대한민국 장애인문화예술상 대상’을 수상한 그는 「가방 들어주는 아이」 , 「까칠한 재석이 시리즈」 외 290여 권의 책을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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