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떠나는 여름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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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떠나는 여름휴가_화가의 바다

2018.07.04

화가의 바다

바다는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휴가지 중 한 곳. 그런데 바다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일생을 바다를 그린 화가가 있다. 바다를 유난히도 아꼈던 화가와 이를 바탕으로 일대 전환기를 맞이한 세계 미술사 이야기로 그림여행을 떠나본다.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예술적 영감의 원천, 바다

지구는 물이 존재하는 유일한 행성이다. 태초에 물이 어떻게 지구에 존재하게 됐는지는 아직 과학적으로 규명되지 않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지구의 70.8%가 물이고 인체 역시 70%의 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 여기에서 자연과 생명의 오묘하고도 경이로운 연관성을 깨닫게 된다. 또한 지구상 물의 97.5%는 바다로, 바다가 품고 있는 정화의 기능이 지구의 생명을 지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간에게 가장 긴밀한 삶의 터전이자 미지의 세계인 바다, 프랑스 인상파 미술에 선구적인 영향을 가져다준 화가 외젠 부댕(Eugene Louis Boudin, 1824~1898)은 이러한 바다를 평생을 두고 그린 화가다. 그 배경에는 그의 출생에서부터 소년기의 성장 과정이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그는 부르고뉴 디종(Dijon)에서 발원하여 파리를 지나 780㎞를 흘러온 센강이 영국해협으로 흐르는 항구도시 옹플뢰르(Honfleur)에서 태어났다. 그는 옹플뢰르에서 북쪽의 작은 항구 르아브르(Le havre)를 오가는 증기선 항해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늘 배를 타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1835년 아버지가 항해사를 그만두고 르아브르로 이사하여 미술 재료상점을 열었을 때 외젠 부댕은 수도회가 운영하던 공동체 학교 에콜드 플레르(Ecole des Freres)에 입학하였다. 그는 그림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아이로 공동체 학교의 틀에 박힌 분위기를 박차고 나와 아버지의 미술재료 상점에서 일하면서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다, 이후 1844년 미술재료 상점을 겸한 화랑을 열어 독립하였다. 이곳에서 ‘만종’의 작가로 잘 알려진, 바르비종파 창시자인 밀레(Jean Francois Millet, 1814~1875)의 작품을 전시하였는데 이 때 밀레가 그의 작품을 보고 감탄하며 화가의 길을 가라고 독려하였다. 이후 그는 1847년 22살 나이에 화랑을 정리하고 파리와 플랑드르를 여행하며 주요한 작가들의 작품을 살핀다. 이후 르아브르로 돌아온 그는 새벽부터 해가 저물 때까지 해를 따라 노르망디 해안을 걸으면서 바다를 관찰하며 바다를 그렸다. 그는 바다와 해안의 빛과 그에 따른 변화를 주목했다.

이러한 ‘외젠 부댕’의 탁월한 재능을 지켜본 작가들의 추천으로 ‘르아브르 의회’ 장학금을 받아 1851년 예술의 도시 파리에 진출하였다. 그는 파리에서 루브르박물관 작품 복제 인가를 받아 촉망되는 화가의 정규 코스를 밟았지만 정작 화실에서 관념적으로 그리는 생동감이 없는 작품에 대한 고민에 빠져든다. 결국 그는 여름이면 노르망디 해안에서 그림을 그리고 겨울이면 파리에서 캔버스에 스케치를 담는 작업을 택하여 3년간의 장학금 기간을 보낸다. 그후 그는 ‘자연은 나의 표현보다 더욱 풍성하다’라는 말을 남기고 마치 족쇄에서 풀려난 동물처럼 본능적으로 바다로 달려간다. 노르망디 해안을 벗어나 남쪽의 비스케이만에서부터 북쪽의 영국 해협에 이르는 브리타니(Brittany) 해안의 바다를 섭렵하고 반도의 항구도시 ‘두아르느네’(Douarnenez)에서 많은 작품을 그린 후 파리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바다를 그리는 일을 계속해 나갔다.

바다의 넘치는 생명력과 새로운 미술사의 탄생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이 인상파 미술을 탄생시킨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이다. 모네는 파리에서 태어나 그가 다섯 살이던 1845년 르아브르 항구로 이사하여 르아브르 미술학교를 졸업하였다. 당시 어린 소년 모네의 뛰어난 그림 솜씨가 13살 위의 외젠 부댕의 눈에 띄면서 둘은 함께 노르망디 해안에서 많은 그림을 그리며 외젠 부댕의 가르침을 받았다. 이와 같은 신성한 바다의 숨결을 호흡하며 그려낸 그의 작품이 처음 선을 보인 것은 1859년 파리살롱이었다. 당시 그의 선구적인 작품을 관람한 사실주의 선구자인 구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는 상징주의 시인이며 최초의 비평가인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1821~1867)에게 그를 소개한다. 보들레르는 외젠 부댕의 화실을 방문하여 작품을 살핀 이후 당시 가장 혁신적인 작업의 화가로 외젠 부댕과 요한 바르톨트 용킨트(Johan Barthold Jongkind. 1819~1891)를 언급하였다. 이어 보들레르는 스케치와 현장의 그림에 대한 차이를 설명하면서 이후 전개될 인상파의 등장을 예언하였다.

네덜란드 풍경화가 요한 바르톨트 용킨트는 1846년 파리로 건너와 활동하면서 노르망디 해안에서 외광파(外光派)의 동료로 외젠 부댕과 만났다. 그는 자연의 변화를 화면에 담아내는 빠른 붓질의 감성과 기교가 당대 가장 뛰어난 화가였다. 햇빛이 작열하는 바닷가에서 외젠 부댕과 그를 따르는 소년 클로드 모네에게 그의 천재적인 감각의 빠른 붓질의 기교가 전수되었다.

요한 바르톨트 용킨트의 감성은 1874년 4월 열린 제1회 인상파 전시회에서 역사적인 빛을 얻게 된다. 당시 본인은 출품을 거절하였지만 외젠 부댕은 작품을 출품하였으며, 모네의 출품작 ‘인상-해돋이’(Impression-Sunrise)에서 오늘날 세계의 가장 주요한 미술로 평가받는 인상파가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요한 바르톨트 용킨트는 극심한 알콜 중독자로 천재적인 재능을 펴지 못하고 정신병원에서 삶을 마감하였으며, 외젠 부댕은 자기 죽음을 감지하고 노르망디 해안의 도빌(Deauville) 자택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숨을 거두었다.

훗날 모네는 인상파에 대하여 ‘나는 눈에 보이는 것을 그렸다’고 말한 바 있다. 세계 예술사에 있어 가장 전환적인 인상파 예술의 탄생, 이는 평생 바다의 숨결을 그려낸 외젠 부댕의 정신적인 조언과 파도처럼 변화무쌍했던 요한 바르톨트 용킨트의 기교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여름 많은 이들이 바다로 떠날 것이다. 바다는 사람들에게 또 어떤 영감을 선물하며 세상의 거대한 변화를 이끌어 낼까, 자못 기대된다.

글 이일영(시인, 한국미술센터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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