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길에서 망리단길까지 골목길들의 전성시대

트렌드에 주목하라

2017.05.02

최근 도시의 골목길들이 되살아나고 있다. 강남의 가로수길이 그 첫발을 디뎠다면 그 후로 연남동길, 경리단길, 최근에는 망리단길 등등. 동네 곳곳에 골목길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모이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골목길들의 전성시대를 이끌었을까.

대중의 욕망을 품고 있는 골목길들
최근 도심을 중심으로 골목길들이 곳곳에 생겨나 증식하고 있다. 거기에는 <응답하라 1988>이 상기시킨 잃어버린 골목길에 대한 향수와 추억, 나아가 어떤 보상 심리 같은 것들이 어른거린다. 1970년대의 종로와 명동, 무교동 거리가 상업화의 물결을 탄 도시의 활기였다면, 1980년대의 야타족과 오렌지족으로 대변되는 압구정동 로데오거리는 과시경제의 상징이었고, IMF의 그늘 속에서 19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커져 온 홍대거리는 젊은이들의 문화적 갈등과 고민의 흔적이었다. 그리고 지금 생겨나고 있는 가로수길부터 망리단길에 이르는 골목길들의 전성시대는 압축 성장과 개발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길들에 대한 회한이자 그리움이다.
압축 성장과 개발 시대에 길이란 속도를 의미하는 차들이 장악한 공간이었다. 본래 마을이란 삶의 공간과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생겨난 상점들로 구성되어야 하는데, 그저 빨리 지나치게 하는 차들의 길이 차지하면서 공간은 사람이 머무는 곳이 될 수 없었다. 최근 들어서 골목길들이 차들을 밀어내고 대신 ‘걷는 사람들’을 채워 넣고 있다는 점은 그래서 중요하다.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걷기 시작하자 신사동 가로수길은 그 골목골목 도시에서 걷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거리가 되었고, 부암동길은 도시적인 풍경 속에서 자연을 느끼며 걸을 수 있는 길이 됐으며, 삼청동길은 역사가 보이는 길, 이태원 경리단길은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 걸을 수 있는 길이 되었다.

<한끼줍쇼>, 골목길의 사람 냄새, 밥 냄새
“어릴 적 함께 뛰놀던 골목길에서 만나자 하네-” <응답하라 1988>에서 흘러나온 동물원의 ‘혜화동’이라는 노래의 가사가 내포한 감성은 우리를 골목길의 추억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면 아이를 부르던 엄마들의 목소리와 함께 골목길을 가득 채우던 ‘밥 냄새’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이러한 추억과 갈증들이 골목길이라는 소재로 집약되어 탄생한 프로그램이 바로 JTBC의 <한끼줍쇼>다.
이경규와 강호동을 메인으로 그날의 게스트와 함께 어느 동네 골목길을 정해 돌아다니며 저녁 한 끼를 같이할 집을 찾는 이 프로그램은 낮의 풍경과 밤의 풍경을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낮부터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그 풍경을 잡아내는 것은 일상이지만 특별한 느낌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천천히 걷는 속도로 동네를 들여다보면 바쁜 출퇴근길에는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그리고 저녁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가까스로 찾아낸, 문을 열어준 고마운 집 안으로 들어가면 밥 냄새, 사람 냄새가 가득한 풍경이 펼쳐진다. 골목길에서 시작해서 골목길로 끝나는 프로그램이지만 이 프로그램이 잡아내는 것은 결국 사람의 온기다.

골목 상권은 살아났지만 남는 문제들
골목 상권이 살아나면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환영할 것만 같지만 그렇지 않은 일들도 일어난다. 최근 망리단길에서 벌어지고 있는 원주민들의 반대운동이 대표적이다. 망리단길이라는 이름은 알다시피 이태원 경리단길에서 따온 것이다. 즉 경리단길이 이목을 끌면서 월세가 치솟자 새로 가게를 준비하던 이들이 대신 망원동으로 들어와 가게를 열었고, 이렇게 새로운 상권이 만들어지면서 망리단길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 <나 혼자 산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육중완이 자주 다닌 망원시장으로 한껏 모아진 망원동에 대한 관심은 망리단길이 생겨나는 촉발점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동네가 활기를 띠게 되었지만, 본래 그곳을 터전 삼아 살던 원주민들이 치솟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동네를 떠나는 부작용이 생겨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영국의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고 부른 바 있다.
골목길이 생겨나는 것은 도시에 인간적인 온기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자본의 욕망에 의해 만들어지는 길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만들어지는 자생적인 골목길로 유도해나가는 것, 이것이 길들의 전성시대에 우리의 새로운 숙제가 되고 있다.

글_정덕현(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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