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STORY I 생각의 탄생
목민심서에서 말하는 청렴에 대한 세 가지 오해
글 하종삼 목민심서연구소장
목민심서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고전 중 하나라는 평가를 듣는 다산 정약용의 저서입니다. 특히 공직자라면 목민심서에 있는 교훈적인 말 한두 마디는 들어 봤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교훈적인 말은 대부분 공직자의 청렴과 관련된 내용일 것입니다. 이렇듯 목민심서는 흔히 ‘청렴의 바이블’처럼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큰 오해가 세 가지 있습니다. 먼저, 다산이 말한 청렴을 너무 고차원적인 고고한 행위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청렴이 마치 청빈한 삶을 살아야 하고 정당한 부도 부끄러워해야 하는 일처럼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 결과 청렴이 뭔가 지키기 어려운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다산이 말한 청렴의 의미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다산은 목민심서에서 청렴을 3등급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최상은 봉급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먹고 남는 것이 있더라도 가지고 돌아가지 않으며,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는 날에는 한 필의 말로 아무것도 지닌 것 없이 떠나는 것,그 다음은 봉급 외에 명분이 바른 것은 먹고 바르지 않는 것은 먹지 않으며, 먹고 남는 것이 있으면 집으로 보내는 것,
최하로는 무릇 이미 규례(規例)가 된 것은 명분이 바르지 않더라도 먹되 아직 규례가 되지 않은 것은 자신이 먼저 시작하지 않는 것.
이 글을 읽어보면 마치 다산이 청렴의 최상 등급을 권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다산이 권하는 바도 아닙니다.
최상의 경지를 정리하자면 급여는 받지만 돌아가는 날 아무것도 지닌 것 없이 떠나는 것이니 급여는 받되 개인적 축척을 하지 않고 베푼다는 것입니다. 이는 다산의 시대나 현대의 공직사회 일반에는 적용 불가능한 내용입니다. 반면,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서는 가능한 일입니다. 경제적 기반이 있는 극히 일부의 양반 계층에만 적용 가능한 일입니다.
그다음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언뜻 보면 ‘명분이 바른 것은 먹고 바르지 않는 것은 먹지 않으며’라는 것이 맞는 듯 보이지만 이 역시 일반 공직자가 실천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 말을 바꿔 표현하면 일선 현장의 공직자가 잘못된 규례 ‘이미 법제화된 것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반 공직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수령들입니다. 조선의 수령은 입법, 사법, 행정의 권한이 있었습니다. 명분이 바르지 않은 것은 본인이 고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방안 역시 현대사회의 공직자나 다산 시대 일선현장의 모든 실무자들이 지킬 수 있는 방안이 아닙니다.
세 번째 경우를 보면 ‘최하’라는 표현과 ‘명분이 바르지 않더라도 먹되’라는 표현에서 부정적이고 법을 위반한 것 같은 뉘앙스를 풍깁니다. 행정을 집행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이미 규례가 된 것은 명분이 바르지 않더라도’ 라는 것은 이미 제도화 혹은 법제화되었다는 것이고 또 ‘먼저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은 법을 어기지 않는다는 것의 다른 표현입니다. 명확하게 일선 현장에서 행정을 집행하는 실무자들이 해야 하는 기본입니다.
이어서 다산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최상이 되는 것은 본디 좋지만,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그다음이라도 좋다. 이른바 최하의 것은 옛날에는 반드시 팽형을 당하였을 것이니, 무릇 선을 즐기고 악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은 결코 이를 하지 않을 것이다.”
이 표현을 보면 다산이 권하는 청렴의 등급이 마치 두 번째 등급인 듯 보입니다. 그러나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표현입니다. 다산이 목민심서를 쓴 대상은 현대의 자치단체장인 수령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권하는 청렴의 등급은 수령들에게 해당하는 것입니다.
최하 등급 기준으로 목민심서 서술
그리고 실제 다산은 당시 일선 행정을 담당하고 있는 최하의 등급 실무자인 향리를 기준으로 목민심서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다산이 최하의 등급으로 목민심서를 서술한 결정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고을 행정을 책임지던 향리들의 급여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급여가 없는 향리들이 세금을 거둬들이고 형벌을 집행합니다. 이들에게 법대로 모든 것을 하지 못하게 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까요? 지방행정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아니 나라가 멈춰서 버립니다. 그래서 다산은 목민심서에서 잘못된 모든 것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급여 없는 향리들이 먹고 살 정도의 것은 용인한 수준에서 백성을 구제하는 방안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목민심서에서 다산이 향리를 대하는 원칙은 ‘무릇 규례가 된 것은 명분이 바르지 않더라도 먹게’ 하고 있습니다. 다만, 백성들에게 큰 해악을 끼치는 것은 고쳐나간다는 원칙 하에서입니다.
청렴의 의미, 법으로 규정된 내용 준수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다산이 목민심서에서 권하는 청렴의 내용은 결코 고고한 도덕적 가치가 아니라 일선 행정의 실무자들이 충분히 지킬 수 있는 현재 법으로 규정된 내용을 준수하라는 것입니다. 최하의 등급이라고 계속 표현해서 그렇지, 이는 명확하게 현대사회에서 우리 공직자들에게 권하는 청렴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개인적 수신이 아니라 강제조항
두 번째 오해는 목민심서의 청렴을 개인의 도덕적 수신차원으로 얘기하는 것입니다.
다산이 목민심서를 저술한 목적은 백성을 구제하기 위함입니다. 백성을 구제하는 방안을 제도적 방법이 아닌 개인의 인자한 성품, 청렴에 기대할 정도로 다산이 세상 물정 모르는 학자가 아닙니다.
목민심서는 모두 12편 72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중 54 개조는 수령의 고과평가 항목입니다. 즉, 목민심서라는 책은 그 자체가 수령의 고과평가항목이라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다산은 목민심서에서,
“국가의 안위는 인심의 향배에 달렸고, 인심의 향배는 백성의 잘 살고 못 사는 데에 달렸으며, 백성의 잘 살고 못 사는 것은 수령이 잘하고 잘못하는 데에 달렸고, 수령의 잘하고 잘못하는 것은 감사의 포폄(褒貶, 고과평가)에 달려 있으니, 감사가 고과하는 법은 바로 천명(天命)과 인심(人心)이 향배하는 기틀이요, 나라의 안위를 판가름하는 바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다산은, “요순(堯舜)이 요순의 치세를 이룩한 것은 고적 이 한 가지 일에 있었다. 나는 감히 망언을 하지 않는다.”라고 강조합니다.
청렴은 이 수령의 고과평가 항목 54개조의 하나입니다. 현대에 있어 각종의 고과평가에 있어 청렴이 한 조항으로 들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즉, 청렴하지 않은 수령은 승진길이 막힐 뿐만 아니라 법적 처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청렴은 개인적 수신이 아니라 강제조항 즉, 현대의 공무원 행동강령이고 청탁금지법입니다.
청렴은 당시 귀족인 관료들의 의무
세 번째 오해는 현대사회의 법이 다산이 살던 시대의 법보다 더 뛰어나다는 착각입니다.
대표적인 조선시대의 법
두 조항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❶ 관리나 일반인이 법을 어겨 청탁하면 처벌한다. 청탁하기만 해도 바로 처벌한다.
❷ 관리가 대가성이 없더라도 금품을 받으면 처벌한다.
500년 전 조선 관리들에게 적용되던 법입니다. 법에만 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어긴 관리에 대한 처벌기록이 조선왕조실록 등에 무수하게 기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두 조항의 핵심은 관리가 업무와 무관하고 대가성이 없더라도 청탁을 하거나 금품을 받으면 처벌한다는 것입니다. 명확하게 지금 시행하고 있는 청탁금지법의 핵심 내용입니다. 500년 전 우리 조상들이 시행하던 이 법을 21세기의 우리 사회는 과도한 입법이라는 미명하에 반대 아닌 반대를 했던 것이 청탁금지법의 제정과정입니다.
더구나 이와 같은 조선의 법과 시행은 당시대 다른 문명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흔히 서양 문명권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부러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충분히 부러워할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귀족(관료)에게 주어진 의무가 아닌 책임감입니다.
하지만 강제할 수는 없는 일의 범위입니다. 반면 우리의 청렴은 당시 귀족인 관료들의 의무입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전 관료들에게 확대 적용한 것이 우리의 청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다산이 말한 청렴의 최상의 등급을 실천한 무수히 많은 청백리들이 우리 역사에 기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청탁이 행해지지 않고 뇌물이 들어오지 않는 일’
이렇듯 현대 대한민국의 공직사회에 적용하고 있는 반부패 청렴의 내용은 우리 조상들이 500년 전 시행했던 것을 겨우 회복한 수준에 불과합니다.
이상이 다산이 목민심서에서 말한 청렴에 대해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오해의 일부분입니다.
결론적으로 다산이 목민심서에서 말한 청렴은 성품과 행실이 높고 맑은 경지(국민권익위 발간 자료에서 정의하고 있는 청렴의 의미)처럼 뭔가 고상한 것이 아니라 다산이 말한 대로 ‘청탁이 행해지지 않고 뇌물이 들어오지 않는 일’입니다. 결코 지키기 어려운 일도 아니고 500년 전 우리 조상들이 이미 실천했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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