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Story II 생각의 탄생
글 최광현 한세대 심리상담대학원 교수
가족 간의 갈등, 최고 처방은 ‘역지사지’
나에게 상담 받던 한 여성이 “교수님, 정말 외로운 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그것은 혼자 있을 때가 아니에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데, 도대체 전혀 말이 안 통할 때에요”라고 하였다.
이 여성의 말에 나는 깊이 공감을 하였다.
가족 안에서 느끼는 절망감과 무기력감
우리가 진짜로 외로울 때는 혼자 있을 때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소중한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 역설적으로 가장 큰 고통을 느낄 수 있다. 가족끼리 서로 대화가 안 되고, 서로 이해하려 하지 않고 상대방을 날카롭게 공격할 때 우리는 가장 큰 고통을 느낀다. 가족 밖인 사회생활 속에서 이런 일을 당하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무엇보다 가족 안에서 경험하게 될 때 더욱 큰 절망감과 무기력감을 느끼게 된다.
어느 부부 이야기
부부 갈등을 가졌던 어느 부부의 이야기다. 남편은 어떤 문제가 생기면 혼자 있기를 원했다. 반면 아내는 외롭고 힘든 날이면 남편이 가까이 다가와 주길 원했지만, 남편은 자신이 그렇듯 아내도 혼자 있는 것을 원할 줄 알고 자리를 피해주었다. 아내는 그런 남편이 야속하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괴로워했다. 하지만 정작 알고 보니 남편 행동이 배려 차원이었다는 것을 알고 그동안 남편을 원망한 것에 대해서 허탈해했다.
가족이라도 서로 다름을 인정
가족끼리는 서로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잘 모를 때가 더 많다. 가족이라도 우리가 상대방에 대해 모른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보통, 부부가 되면서 두 남녀는 상대방이 나와 똑같이 느끼고, 생각하고, 원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상대방도 원할 것이라는 착각은 부부와 가족 갈등에 중요한 원인이 된다. 따라서 서로의 차이를 ‘다름’으로 보기보다는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왜 이렇게 나랑 달라?” 하지 않고 “상대와 내가 어떤 차이가 있을까?”라는 호기심을 갖는 것을 전제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통의 부재가 갈등의 발단
부부관계에는 풀리지 않는 문제들, 항상 부딪히는 관계가 어려운 부분, 도저히 소통이 안 되는 지점이 존재한다. 이러한 차이와 갈등적인 부분에 대해 ‘도대체 왜 저러지?’ 하고 계속 의문을 던져봐야 거리만 아득하게 멀어진다. 그러나 상대방이 살아온 삶의 배경과 환경을 깊이 바라보고, “우리가 유독 이 지점에서 부딪히는 이유가 무엇일까?”라며 서로 이야기 나누다 보면 상대가 왜 끊임없이 일정한 행동 패턴을 유지하는지를 모두 알지 못해도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길 것이다.
부정적 감정, 현자의 돌은 상대방에 대한 공감
박찬일 세프의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에서 음식의 맛은 짠맛, 단맛, 쓴맛, 신맛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중에서 맛을 좌우하는 핵심은 짠맛이라고 말한다. 요리의 맛을 바꾸는 유일한 재료가 소금인 셈이다. 맛있는 질 좋은 와인은 포도나무의 토양에 미네랄과 함께 소금이 소량 녹아 있는 땅에서 성장한 포도에서 나온다. 최하급의 맛이 떨어지는 와인에 소량의 소금을 첨가하면 놀랍게도 맛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 세프는 오직 소금만으로 풍부한 맛을 낼 수 없다고 한다. 맛있는 아이스크림은 단맛과 함께 짠맛을 가미할 때 맛이 깊어지게 되는 것처럼 맛에는 다른 맛과의 조합이 필요하다. 쓰디쓴 카카오에 설탕과 약간의 소금으로 기막힌 맛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속상함, 짜증, 외로움, 슬픔이라는 감정이 공감 또는 감정이입이라는 것을 만나면 기쁨의 감정이 만들어진다. 가족 간의 긴장과 갈등으로 만들어진 부정적 감정을 연금술적인 변형을 가져다주는 ‘현자의 돌’은 상대방에 대한 공감이다. 마음을 긴장시키고 한 없이 우울하게 만들 부정적 감정들은 공감을 만나게 되면서 전혀 생각지 못했던 감정인 기쁨과 감사가 만들어질 수 있다.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갈등 해결
공감은 ‘입장 바꿔 놓고 생각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배우자의 맘에 안 드는 행동을 보고 화를 내기 전에 한 번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본다면 많은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아이와의 관계에서 아이가 이해가 안 되면 아이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다. 사실 최악의 나쁜 부모는 방임, 학대하는 부모만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전혀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려 하지 않는 부모이다. 이런 부모는 오직 자기의 입장만을 생각하고 아이를 전혀 공감하지도 배려하지도 않는 부모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는 풀리지 않는 갈등과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더 나아가서 가족 안에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다. 자녀와 갈등 속에서 도저히 이해 안 되는 자녀의 모습을 보고 비난하기 전, 잊고 있었지만, 자신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면서 자녀의 심정을 헤아려 보기를 추천한다. 부부관계의 어려움에서 상대방을 원망하는 자세를 취하기 전에 한번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예를 들어, “그에게 그런 사정이 있었구나.” “그도 나처럼 외로웠구나.”라고 공감하게 된다면 매일 매일의 가족의 행복은 유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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