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STORY II 생각의 탄생
지구를 집어삼키는
기후위기의 비상벨
글 장성익 환경과생명연구소 소장, 작가
재앙은 왜 일어났는가?
코로나19 사태가 왜 일어났는지는 이제 어지간히 알려졌다.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인간의 지나친 환경파괴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야생동물의 서식지 훼손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퍼뜨린 전염병은 인수 공통 감염병이다. 본래 동물 몸속에 있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겨 옴으로써 발생한 것이다. 동물과 인간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접촉 기회가 늘어날수록 전염병 발생과 확산에 유리한 조건이 갖춰진다. 문제는 이런 조건을 만들어낸 주체가 다름 아닌 인간이라는 점이다.
경제성장, 산업화, 개발 등의 폭주는 자연의 안정과 균형을 깨뜨렸다. 그 바람에 생태계 질서가 무너졌다. 짧은 기간에 어마어마한 규모와 속도로 이루어진 이런 생태적 격변 속에서 수많은 생물의 서식지가 파괴되고 오염됐다. 동물들은 죽고 다치고 병들고 쫓겨 다니게 됐다. 특히 집약 농업, 단일경작, 숲 벌채, 광산 개발, 도로와 댐 건설, 기후위기, 공장식 축산, 항생제 남용 등은 동물들의 생존 조건과 서식 환경에 치명타를 가했다. 이처럼 동물들이 살던 세계를 망가뜨린 주범은 인간이다. 인간이 동물을 먼저 공격한 것이지 동물이 먼저 인간을 공격한 게 아니다. 세계화라는 변수도 빠뜨릴 수 없다. 급속히 이루어진 세계화로 세상이 하나로 연결되고 통합됐다. 바이러스가 손쉽고 빠르게 전파될 수 있는 ‘전염병의 고속도로’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모두 인간이 일으킨 일들이다.
바이러스도 일종의 생명체다. 동물이 수난을 당할수록 그 속에서 살아가던 바이러스는 새로운 숙주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 의인화해서 표현하자면, 죽고 다치고 병들고 쫓겨 다니는 동물 몸속에 가만히 있다간 자기도 결딴나게 생겼으니 살길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80억 명에 이르는 인간 집단은 광활하게 펼쳐진 새로운 ‘서식지’가 아닐 수 없다. 바이러스가 자신들의 세계를 공격해온 인간 몸속으로 냉큼 뛰어드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요컨대 코로나19 사태는 필연이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아니었다면 언제든 다른 바이러스가 인간을 덮쳤을 것이다.
실제로 최근 인간을 괴롭혀온 전염병의 75% 이상이 인수 공통 감염병이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조류인플루엔자 등이 대표적이다. 바이러스가 인간을 침범한 것은 인간이 자연을 침범한 결과다. 잇따르는 동물 전염병 사태들을 ‘자연의 반격’이나 ‘동물의 역습’ 등으로 일컫는 까닭이다.
기후위기에 담긴 메시지도 다르지 않다. 알다시피 기후위기는 인간이 석유, 석탄, 천연가스 같은 화석연료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한 탓에 발생했다. 그 바람에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가 자연 생태계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 너무 많이 배출됐고, 그 결과 지구 기온이 급속도로 높아져 지구의 기후 시스템 전체가 무너져내린 것이 기후위기의 실체다. 기후위기와 코로나19 사태는 둘 다 무분별한 인간의 생태계 파괴와 자연 질서 교란으로 말미암았고 거대한 재앙을 낳는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닮았다.
기후위기는 나의 문제다
중요한 것은 이 두 사태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생생히 보여준다는 점이다. 자연이 아프면 사람도 아프고, 자연이 병들면 사람도 병든다. 자연이 건강하고 평화로워야 인간도 그럴 수 있다. 인간 아닌 동물이 살기 힘든 곳에선 인간이라는 동물도 제대로 살기 힘들다. 아무리 잘난 체해도, 아무리 몸부림쳐봤자 우리는 자연을 벗어날 수 없다. 이것이 우리 삶과 문명의 근원적 조건이다. 한마디로 인간은 자연의 일부인 것이다.
그래서다.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고 공격하는 것은 실은 자기 자신을 공격하고 파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의 오늘이 위기와 재난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우리의 내일이 짙은 위험과 불확실성의 먹구름에 휩싸이게 된 것은 이 자명한 이치가 무너진 탓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일 뿐만 아니라 미래세대로부터 빌려온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지구의 현재를 마치 우리만의 소유물인 양 마구 탕진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미래세대의 몫을 함부로 빼앗으면서 미래마저 갉아먹고 있다. 기후위기와 코로나19 사태라는 ‘쌍둥이 재난’은 그 당연한 귀결이다.
한데, 아직도 기후위기의 재앙을 깊이 실감하지 못하거나 기후위기를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가 적지 않은 듯하다. 그래도 될까? 기후위기는 오늘날 인류의 지속가능한 생존 자체를 뿌리에서부터 위협하고 있다. 수많은 예를 들 수 있지만, 단적으로 생존에 가장 중요한 식량 문제를 살펴보자. 두말할 나위도 없이 농사는 기후를 비롯한 자연조건에 크게 의존한다. 비가 와야 할 때 비가 오지 않거나 반대로 비가 오면 안 될 때 폭우가 쏟아지거나 하면 농사를 망친다. 가뭄, 홍수, 태풍 등이 더 자주 발생하고 그 규모와 강도 또한 갈수록 커지고 세진다면 농업 전반이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구 곳곳에서 해수면 상승과 사막화가 진행되고 산불 등이 빈발하면 농경지가 줄어들거나 황폐해진다. 이 모두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면서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그 와중에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가축 사료를 포함할 경우 21%에 지나지 않는다. 먹거리의 약 80%를 수입하지 않으면 먹고살 방도가 없다.
전문가들은 지구 평균 기온이 1℃ 오를 때마다 세계 식량 생산은 10%씩 줄어들 것으로 예측한다. 1.5℃ 오르면 세계적으로 3,500만 명, 2℃ 오르면 3억 6,000만 명, 3℃ 오르면 18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굶주림에 시달리게 된다. 기후위기가 지금 이대로 진행된다면 대규모 식량 부족 사태는 거의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돼 있다. 그리되면 세계적으로 먹거리 가격이 치솟을 것이다. 식량이 무기화되면서 국가 간 식량 확보 쟁탈전이 한층 격화될 것이다. 여기에 기후위기의 또 다른 산물인 물과 에너지 부족, 기후난민 폭증 등과 같은 사태까지 겹친다면? 기후위기는 국제적 차원에서 안보 위기로까지 치달으며 지구촌 곳곳에서 격렬한 분쟁이나 혼돈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강대국들 틈바구니에 낀 우리나라가 무사할 리 있겠는가? 그렇다면 나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사하듯이 앞으로 더 본격적인 ‘에너지 전쟁’이나 ‘기후 전쟁’이 터지지 말란 법도 없다. 지구 기온이 2~3℃ 상승하면 이번 세기 안에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종의 54%가 멸종할 거라는 생물학자들의 아찔한 경고는 또 어떤가. 파국이나 종말은 어느 날 갑자기 도둑처럼 들이닥치지 않는다. 지구가 한순간에 멸망하거나 인류 문명이 삽시간에 붕괴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기후 재앙은 아마도 이런 식으로 나타날 것이다. 먼저 세계 곳곳에서 크든 작든 재난이 일상사가 될 것이다. 그렇게 재난의 충격파가 누적되면서 지금껏 우리 삶과 문명을 떠받쳐온 기둥들이 하나씩 둘씩 흔들리게 될 것이다. 그러다 결국 때로는 서서히, 때로는 급격히 세상을 지탱해온 기존 시스템들이 여기저기서 오작동을 일으키거나 멈추게 될 것이다. 게다가 모든 재난은 약자부터 덮치기 마련이다. 기후위기가 일으키는 불평등 심화는 사회 공동체의 안녕과 평화를 더욱 거세게 뒤흔들 것이다. 앞서 강조했듯 자연이 무너지면 인간의 삶과 그 인간들이 모인 사회도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에너지 전환’을 이루려면
우리는 기후위기의 격랑을 온전히 헤쳐갈 수 있을까? 전망은 밝지 않다. 국제사회의 합의이자 목표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어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 이내로 막아야만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탄소중립이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이미 배출된 이산화탄소는 산림 등을 통해 흡수하거나 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기술 등을 활용해 제거함으로써, 다시 말하면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과 흡수·제거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같아지도록 만듦으로써 이산화탄소의 순(純) 배출량을 제로(0)가 되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한데 이것을 달성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게 문제다. 온 세상이 기후위기 난리판인데도 아직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에너지의 80%가 화석연료에서 나오는 것이 현실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이미 지금과 같은 온실가스 배출 추세가 계속된다면 2030년대 중후반에 온도 상승 폭이 1.5℃를 넘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 바 있다. 최근엔 온실가스 감축 노력과는 상관없이 이보다 더 빠른 2033~2035년쯤이면 1.5℃ 상승이 현실화할 거라는 연구 결과가 나올 정도다. 이 예측이 틀리지 않는다면 지구를 지키는 ‘최후의 방어선’이라 불리는 1.5℃ 상승까지 불과 10여 년밖에 남지 않은 셈이다. 기후위기의 비상벨은 갈수록 긴박하게 울리고 있다.
하지만 세상이 곧 멸망할 것처럼 지레 체념하거나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다. 하기 나름에 따라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다. 최대한 대처할 시간을 벌면서 새로운 회복과 재건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전심전력할 것은 ‘에너지 전환’이다. 핵심은 네 가지다.
첫째는 에너지를 절약하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 둘째는 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리는 것. 셋째는 안락과 편리를 추구하는 삶과 소비주의 문화에 길든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바꾸는 것. 넷째는 더 근원적인 차원에서 화석연료를 많이 사용하도록 구조화된 기존의 사회경제 시스템과 경제활동 방식을 바꾸는 것. 서로 맞물린 이 네 가지를 실천함으로써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에너지 질서와 체제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모든 노력을 ‘에너지 전환’이라 일컫는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현대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가장 고질적인 병폐라 할 수 있는 ‘경제성장의 신화’에서 해방돼야 한다. 대량생산-대량소비-대량폐기 시스템의 끝없는 악순환 고리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다. 오늘날과 같은 엄중한 생태위기 시대에 맹목적인 무한 성장은 더는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 개인의 일상생활에서는 ‘소비와 낭비 줄이기’와 ‘조금 더 불편하게 살기’를 실천하는 것이 긴요하다. 다행히도 우리는 기후위기의 원인을 알고 있고 그 해법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다. 남은 건 구체적인 실천이다. 개인 차원에서든 구조 차원에서든 한 걸음이라도 내딛는 게 그래서 중요하다. 시간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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