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화(火)를 잘 다스리는 방법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심리학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길이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강의를 듣던 한 분이 제게 다가와 어렵게 고민을 털어놓으셨습니다. 많은 민원인을 상대하다 보니 요즘 들어 불쑥 화가 나서 고민이라고 했습니다. 화를 안 낼 수는 없겠지만, 화를 잘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글. 선안남(선안남심리상담연구소 소장, 심리학 박사)
Q. 부쩍 쉽게 화가 납니다. 민원 처리 업무를 하다 보면 지나친 요구를 하시거나 업무와는 상관없는 불평불만을 들어야 할 때도 많습니다. 처음에는 민원인들에게 상냥하게 대하며 이야기도 잘 들어드리고 혹여 업무 시간이 늦어져도 괜찮았는데, 언제부턴가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습니다. 민원인에게 친절하게 대하다가도 마음속에 화가 쌓일 때 어떻게 풀면 좋을까요?
자기 공감, 감정노동이 사실 가장 어렵습니다
어딘가 불편해 하는 사람과 마주하고 대화하는 일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불편한 마음을 해결해주어야 하는 민원 처리의 과정에는 그래서 고도의 감정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타인의 감정을 알아주고 살펴주고 해결해주기까지 해야 하니 쉽지 않은 것이 당연하지요.
이 과정을 계속 하다 보면 자연스레 내 감정보다는 타인의 감정에 더 마음을 기울이게 됩니다. 아마도 그렇게 타인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면서 감정노동을 하는 동안, 잘 살펴주지 못하고 돌봐주지 못하는 내 안의 힘겨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아니라면 지금 느끼는 화는, 어쩌면 오랫동안 감정노동을 해오면서 내면에 쌓인 마음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았지요. 지금 필요한 것은 타인 공감이 아닌 자기 공감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많이 힘들었구나’를 알아주는 것이지요.
경계 침범, 화를 참기보다는 적절히 낼 방법을 고민해봅니다
보통 우리는 화를 부정적으로 봅니다. 그래서 화를 표현하기를 꺼려하지요. 하지만 화의 진정한 의미는 ‘내 경계가 침범 당했음’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의 불편과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직업이라고 하더라도 이 직업을 수행하는 데에도 어떤 경계와 규칙, 질서와 권리가 있습니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 존중받아 마땅한 경계가 침범당했을 때 화가 난다면 그 화를 무작정 참기보다는, 그 화의 신호를 적절히 활용할 필요도 있습니다. 즉 화가 난다는 것은, ‘일처리의 규칙과 원칙을 다시 설명해주고 존중해줄 것을 요구해도 괜찮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핵심 감정, 화가 자주 난다면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돌아보세요
계속 화가 난다면,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는 상황 속에서조차 ‘화’라는 감정으로 미끄러지게 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도 지름길이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같은 감정의 골에 넘어집니다. 또 같은 상황이라도 사람마다 해석 방식이 다르고, 더 쉽게 우리 마음을 점령하는 감정이 있습니다. 이것을 ‘핵심 감정’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만약 나의 핵심 감정이 화라면, 화가 났을 때 그 상황을 정지시켜두고 화를 배제한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따져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필요합니다. 창문을 열어 탁해진 안의 공기를 ‘환기’하듯 내 마음을 열어 환기시키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밀려오는 자극에 그대로 반응하기보다는 자극과 반응 사이에 쉼표를 주는 시간을 찾아 실행해보세요.
우리는 화를 잘 낼 수 있습니다
화는 사실 뜨거운 감자와 같은 감정입니다.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조차 화를 어려워하며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누구나 화를 낼 수는 있다. 그것은 어렵지 않은 일. 내야 할 바로 그 대상에게 딱 맞는 정도로, 적절한 시기에, 맞는 목표를 가지고, 올바른 방식으로 화를 내는 것. 그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어렵다고 피하기보다는 어렵기에 더 세심히 살필 때, 우리는 마음속 화를 우리 자신을 위해 잘 활용해 나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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