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STORY I 생각의 탄생
언어 능력과 다른 소통 능력, 무엇이 필요한가?
소통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막히지 않고 통함, 서로 통하는 것은 오해가 없음이라고 나온다.
그렇다면 ‘통한다’라는 말은 과연 무엇이 통해야 하는 것일까? 바로 마음이다.
글 김수인 김창옥아카데미 원장, 심리상담사
삶의 행복을 위한 필수 영양소 ‘관계’
당신은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라고 누군가 물어온다면 어떻게 대답을 할 지 잠시 생각해 보자. 다양한 대답들이 있겠지만 ‘건강하고 행복하게’라는 것으로 크게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혹은 대단히 바라는 것 없이 그냥 ‘무탈하고 편하게’ 라고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어떤 방향이든 우리가 살고 싶은 모습에는 ‘관계’라는 것이 연결되어 있다. 문화 보편적으로도 삶의 만족과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바로 ‘인간관계’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이 ‘관계’를 위해 방법을 알고 그것을 노력하고 있을까? 우리는 건강하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한다.
때로는 하기 싫은 운동을 셀 수 없는 내적 갈등을 겪으며 해내고, 먹고 싶은 음식을 참아내며, 먹기 싫지만, 건강을 위해 신경을 써서 챙겨 먹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건강에도 관계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얼마나 인지하고 있을까? 인간이 겪는 정서적 고통 중 외로움이라는 것은 하루에 담배를 15개비나 피우는 것과도 같다는 연구 결과가 있고 그 밖에도 혼밥 하는 사람이 누군가와 함께 식사하는 것보다 노쇠현상이 더 빨리 진행되며(국제학술지 실험 노인학 Experimental gerontology 최신호), 혼자 있으면 에너지는 감소하고 피로감이 높아진다.
이것은 배고픔처럼 사회적 연결을 갈망하는 것과도 흡사하다(Homeostatic Regulation of Energetic Arousal During Acute Social Isolation: Evidence From the Lab and the Field) 등과 같은 연구 결과는 계속되고 있다. 또한 행복을 위한 우리의 많은 인내와 노력들을 생각해 보면 ‘사람’을 절대 빼놓을 수 없다.
실제로 직장인의 80%가 인간관계로 퇴사나 이직을 경험한다는 조사처럼 고통 속 여러 원인들 역시 ‘사람’이다. 이렇듯 관계는 인간의 본질적 욕구이고 이를 충족
하기 위한 아주 중요한 수단이 바로 의사소통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정작 이렇게도 중요한 의사소통을 우리는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사실 나도 그랬다. 왜냐하면 우리는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미 할 수 있는 것을 또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언어능력과 소통능력은 다르다.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언어능력을 갖추었다고 소통능력이 자동적으로 발휘되지는 않는다. 소통능력은 언어를 표현하고 전달해서 상대와 관계를 맺는 능력이다.
가장 이상적인 상태는 소통능력과 함께 훌륭한 언어능력까지 갖춘 것이지만 불통이 되는 흔한 경우는 소통능력은 없으면서 언어능력만 가지고 있을 때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말에 피로감은 더 높아진다. 사람들은 소통이 어려워 나를 찾아오면서도 소통능력이 아닌 언어능력을 배우고자 한다. 어떻게 하면 더 말을 조리 있게 할지, 어떻게 하면 더 정확하게 말할지, 심지어는 자신이 한 말을 아무리 곱씹어 보아도 틀린 말이 없어서 너무 답답하다며 상대에게 탓을 돌리는 경우도 많다.
나 역시 소통을 못 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던 시절이 있다. 세 딸 중 막내로 태어나 4~5살 터울의 언니들에게 피해(?)를 받지 않으려면(언니들이 막내인 내가 귀여워 한 행동이지만)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정신을 더욱 차리고 정확하게 말하는 것뿐이었기에 어려서부터 말을 똑 부러지게 잘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렇게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이 곧 소통이라 생각하며 지내오던 나에게 삶이 아주 귀한 메시지를 선물(당시에는 억울하다고 생각했지만)해 주었다. 나는 서울에서 사회생활을 하며 이방인으로 남들에게 싫은 소리 듣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 정말 열심히 살았다. 때로는 남들이 하지 않겠다는 것을 맡아 하기도 하고 이유도 모르는 체 하라는 대로 하면 잘 되겠지 하며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참고 열심히 했던 내게 돌아온 삶의 메시지는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암 선고를 받아야 했고 그 무렵 사람들은 나에게 ‘넌 일은 잘하는데 재미없고, 건조하고, 차갑고 독하다’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되고 싶고 가장 잘 하고 싶었던 것은 그저 힘을 주듯 도움이 되고 따뜻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기에 정말 고통스러웠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답하기만 하던 즈음 깨달음을 얻듯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아! 나는 마음을 다루는 데 안팎으로 문제가 있구나’ 안으로는 내 마음을 몰라주니 몸이 신호를 보내다 끝내 파업을 하고 밖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몰라주니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쓰고도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런 말들을 듣게 된 것이구나…. 전혀 생각지도 못한 ‘소통’ 그것이 문제였다.
소통의 시작은 말 이전에 마음
소통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막히지 않고 통함,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이라고 나온다. 그렇다면 이 ‘통한다’라는 의미는 과연 무엇이 통해야 할까?
바로 마음이다. 소통은 말 이전에 마음이 먼저다. 지금 한 사람을 떠올려 보자. 생각만 해도 편안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떤 말을 한다면 나는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을까? 일단 눈 맞춤부터 달라지고 의식하지 않아도 하게 되는 끄덕임과 유연한 말투, 심지어 아닌 듯한 말을 하는 것에도 우리는 배우지도 않은 ‘해석 능력’을 발휘해 ‘이 사람이 이렇게 말할 때는 이유가 있어’라며 어떻게든 받아들이려고 노력할 것이다. 내 마음이 이미 그를 향해 있어서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생각만 해도 피곤하고 불편하며 어떠한 목적이 있지 않다면 최대한 멀리하고 싶은 사람을 떠 올려보자.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떤 말을 한다면 나는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을까? 눈맞춤의 느낌도 나의 태도도 심지어는 맞는 말 같지만, 선뜻 받아들이기에는 시간과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사람을 먼저 받아들여야 그 사람이 제시하는 정보도 비전도 방향도 받아들인다. 그런데 불통이 되는 많은 경우에 우리는 정보와 비전과 방향을 더 앞세웠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그것만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옳다고 다 유익하지 않다. 우리가 하고 있는 생각과 말들은 우리의 기준에서는 당연히 옳은 것들이다. 누구도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하며 말을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왜 불통이 될까? 가까운 사람들과 불통을 겪은 경험을 떠올려 보면 옳다고 생각할수록 내 말은 강하게 때로는 일방적으로 전달이 되었을 것이고 상대는 그것이 자신에게 유익하지 않으니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그것으로 상처를 받았다고 호소했을 것이다.
나는 옳기에 나름 애를 써서 한 말이고 상대는 유익하지 않기에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에 서로가 억울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내 마음을 그리고 상대의 마음을 잘 알아차리고 소통할 수 있을까? 마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 분명히 있다. 특히, 그냥 일을 하면 되고 말을 하면 된다고 생각해 오던 경우는 더욱 불편하고 비효율적인 것 같이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삶은 심리전이다. 심리를 잘 아는 사람들이 어떠한 영역에서든 성과를 낸다. 교육도, 영업도, 리더십도, 양육도, 연애도 말이다. 즉, 소통을 잘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도 잘 알아차리고 상대의 마음도 잘 읽어준다. 그렇기에 자신을 표현하는 데 수월하고 정확하다. 무엇보다 불필요하게 상대를 비난하지 않는다. 우리는 누구도 예외 없이 자신을 비난하고 공격해 오는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다. 심지어 그 말이 옳은 말이라고 해도, 내가 잘못한 것이라 해도 그렇다. 비난과 공격에 우리의 자세는 또 다른 공격과 회피를 가져오니 어떤 식으로든 소통은 어렵다.
소통하는 사람들의 말하기
상대에 대한 지지가 먼저 있어야 그 사람의 지도를 따라온다고 하듯 인간은 누구나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심지어 자신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지지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받고 싶어하고 그러지 못할 때 분노하고 우울해한다. 소통하는 사람들의 말은 분명 다르다. 즉, 상대의 마음을 여는 ‘인정으로 시작하는 말하기’를 한다. 나는 이것을 <소통수업>에서 샌드위치 화법이라고 소개한다.
핵심재료 이전에 빵을 덮어 핵심재료를 지켜주고 더 맛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같은 말이라도 핵심재료만 덩그러니 말하는 사람과는 다르다. 특히, 인정의 말은 나를 알아주는 것이기에 우리는 누군가가 나를 알아줄 때 심리적 안전을 느끼며 인지능력이 향상된다.
최근 우리가 한 말을 잠시 생각해 보자. 이유가 어찌 되었든 그저 할 말만 했다면 의도와는 다르게 나의 말은 그저 전달하는 것에만 그쳤을 확률이 높을 것이고, 그럼에도 상대를 인정하는 말로 시작했다면 내가 해야 할 말이 조금 멋들어지지 못했다 하더라도 상대와 충분히 소통이 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인정으로 시작하지만 다음에 할 핵심적인 말을 하기 전 사용하는 접속사가 ‘그리고’의 순접이 아닌 ‘그런데’의 역접으로 앞선 인정하는 말하기의 효과를 떨어뜨리는 경우다.
왜냐하면 역접 접속사인 ‘그런데’는 앞의 말과 뒤의 말이 반대가 됨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가령 ‘당신이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그런데 나는’이라고 하는 것과 ‘당신이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나는’ 이라고 하는 것의 차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수도 없이 많은 경우 ‘그런데’를 사용한다. ‘알지. 네 마음. 그런데’ ‘네 말도 맞아. 그런데’ 이렇게 말을 했을 때 상대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물론 기본적인 관계의 형성이 튼튼히 잘 되었다면 그럼에도 상대가 해석능력을 발휘했을 테지만 여전히 심적으로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추천하자면 내가 하고 싶은 말 혹은 해야 하는 말에는 I-message를 사용하자는 것이다. 즉,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다’라는 식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 우리는 대게 ‘너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라는 식으로 자칫 내 생각이 더해진 상대의 판단으로 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Being good by doing good
개인과 조직의 영원한 화두인 소통, 여전히 쉽지 않다. 선수들의 심리코칭을 맡고 있는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루틴’인데 소통에도 루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알면서도 하지 못하는 많은 이유 중 하나가 습관이 되지 않아서이다. 스스로의 소통 패턴을 한 번 점검해 보자.
그리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더라도 말, 행동부터 시작해 보자. 소통이 안 되는 많은 경우 우리가 마음을 먼저 바꾸려고 노력하지만 그것이 틀렸다가 아니라 행동이 주는 힘을 먼저 적용하자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음을 바꾸고 말을 바꾸기에는 너무도 많은 도전 과제와 상황이 우리에게 있고 또 말을 먼저 그렇게 하다 보면 그런 말을 하는 내 자신이 괜찮아 보이는 마음의 힘으로 그러한 행동을 이끌게 되는 선순환 방향이 이루이 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해 준다면 결국 소통은 너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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