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나누는 만남] 사랑의 마음 위에 세워진 깃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

人사이드인터뷰

2023.04.05

노조 법원본부

(사진: 황건하 교육선전국장, 이성민 조직국장, 이경천 법원본부장, 이상원 법원본부 사무처장, 우정기 정책국장(왼쪽부터)

내일을 나누는 만남

글과 진행 이재영 사진 조인기

사랑의 마음 위에 세워진 깃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

내가 힘들 때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나를 믿어주고 대신 싸워주는 사람, 나에게 더 좋은 걸 주려고 노력하는 사람, 쓰러지면 일으켜주고 작은 상처라도 얼른 치료해주는 사람. 법원본부를 의인화 해 역할을 나열해보니 꼭 우리 엄마 같아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투쟁이란 말 조금 거칠고, 단결이란 말 다소 부담스럽다면 사랑으로 기억해보자.
법원본부는 함께 행복하게 오래 일하고 싶은 사랑의 마음 위에 세워진 깃발이다. 동료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면 걸을 수 없는 길을 가는 다섯 명의 법원본부 간부들을 만났다.

이경천 • ‌아주 오래 전에 법원사람들 인터뷰를 했었어요. 해남지원에 있을 땐데, 그땐 간단한 인터뷰였는데 대담을 한다니 조금 긴장되네요. 안녕하세요, 저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장 이경천입니다.
이상원 • 인사하고 시작하는 건가요? 안녕하세요, 저는 법원본부 사무처장 이상원입니다.
우정기 • 정책국장 우정기입니다.
황건하 • 교육선전국장 황건하입니다. 오늘 무슨 얘기를 나눠야 해서 지난 대담을 살펴봤는데, 서로 모르는 분들끼리의 만남이 많더라고요. 우리는 매일 보는 사이라 대담이 재미있게 진행될지 조금 걱정이네요.
이성민 • 잘 해봐야죠. 하하. 조직국장 이성민입니다. 노동조합 시작하기 전 얘기부터 먼저 해볼까요? 본부장님은 법원공무원 할 생각을 언제 하셨어요?
이경천 • ‌체육학과를 나왔는데 교통사고로 부상을 당했어요. 그때 사법시험에 합격한 친구가 병문안을 왔어요. 침상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고 부상으로 전공을 살리지 못할 것 같아 걱정됐는지 법원직 공무원이 있다고 얘기해주더라고요. 이후 우여곡절 끝에 합격해서 들어왔어요.
이성민 • 시험이 쉽지 않죠. 저는 법학과를 졸업해서 금방 붙을 줄 알았는데, 자꾸 국어, 영어, 국사에서 걸렸어요.
우정기 • 복학하면서 뭘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거든요. 후배가 법원직 공무원 공부하던 게 생각나서 시험을 봤는데 운이 좋았죠. 황건하 교육선전국장님은 좀 특이한 케이스죠?
황건하 •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대생활을 법원에서 했죠. 지금 선배님들이 적극적으로 권해서 들어왔어요.
이상원 • 저는 원래 사법시험을 공부했는데 학교 선배가 너무 오래 걸릴 테니 법원직 공무원 시험을 먼저 해봐라, 해서 대학교 때 붙어서 시작했어요.
황건하 • 엄청 일찍 붙으셨네요. 요즘 보면 우수한 인력들이 많이 들어와요.

사람이 좋아 시작한 일
우정기 • 사무처장님은 노조도 일찍 시작하셨죠?
이상원 • 네, 저는 법원본부 전신인 직장협의회부터 시작했어요. 정말 옛날 얘기인데 그때는 탄압이 심했어요. 징계도 받고, 해고도 당하고. 요즘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사실 별 관심이 없었는데 함께 근무하던 선배가 직원을 위한 단체니까 좀 도와달라고 해서 시작했어요. 학생운동 경험도 없고 아무것도 몰라서 고사했는데 간곡히 부탁해서 함께 하게 됐죠. 본부장님도 직장협의회부터 시작했잖아요?
이경천 • ‌그렇죠. 그때 조직부장을 했었는데, 그냥 흉내만 낸 거죠. 잊고 살다가 2010년 노동조합에 위기가 오면서 당시 지부장과 사무국장의 권유로 다시 들어왔어요.
우정기 • 다들 주변의 권유가 있었네요. 저도 입사 후에 광우병 집회 때 개인적으로 현장에 나갔는데 그때 노동조합 분들이 우연히 저를 봤나 봐요. 일면식도 없는 분이 수원지부장으로 출마하는데 함께 해보지 않겠냐고 찾아왔어요. 보니까 그분과 활동하는 분들이 제가 진짜 좋아하는 선배들이더라고요. 그 사람들과 하는 일이면 뭐든 해도 좋겠다하는 마음에 들어왔죠. 이 일이 사람을 보고 하는 일이라서, 대부분 이런 경험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황건하 • 저도 그랬어요. 2009년에 신청과에 있었는데 내부 게시판에 글이 올라오면 댓글을 잘 달았어요. 어느 날 과장님이 이렇게 글 쓰면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앞으로 30년은 일 할 텐데, 자꾸 이러면 안 된다고요. 쓰라고 기능을 만들고 쓰지 말라니까 이게 뭔가 싶었죠. 그런데 얼마 후 지부장님께서 노조활동 함께 하자고 찾아오셨어요. 한쪽에서는 쓰지 말라고 했는데 한쪽에서는 좋게 본 거죠. 무엇보다 그때 간부님들이 정말 존경할 만한 분이셨어요. 그런 분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 그게 컸던 거 같아요.
이성민 • 사람이 첫 번째입니다. 저는 어머니가 농사만 짓던 촌부시라 애들 중 하나는 법원에 들어갔으면 하는 게 꿈이셨어요. 내가 법원에 들어왔더니 엄청 좋아하셨죠. 서기보 시험에 붙은 건데, 우리 어머니께서는 아직도 법원에서 오래 근무하면 나중에 판사가 되는 줄로 아세요.
일동 • 저런, 하하.
이성민 • 어쨌든 오래도록 탈 없이 다녀야 한다는 어머니의 기대도 있고, 또 홑벌이에 애가 넷이라 노동조합은 절대 관여하지 않을 거라고 스스로 다짐했었어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살자고 마음먹었죠. 울산에 있었는데 마침 울산 지부가 제일 마지막에 생기면서 사람이 부족했어요. 나한테 술 많이 사줬던 좋은 선배가 사무국장 자리에 이름만 빌리자는데 얻어먹은 게 있어서 거절을 못하겠더라고.
이상원 • 대부분 이렇게 관계로 시작하지만 자발적으로 필요하다고 느껴서 오시는 분들도 계시잖아요.
황건하 • 집회 현장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끼고, 우리가 요구하는 걸 많은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외치는 걸 보면서 깨닫게 되기도 한다고 해요. 집회 참여하고 지부장으로 출마하신 분들도 종종 계세요.
이경천 • ‌사실 우리가 노동자인데 공무원들은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노동조합에 대해 거리감이 있었어요. 그런데 하나 둘 제도가 개선되면서 생각이 바뀐 것 같아요. 불합리한 일이 생겨도 개인으로는 절대 싸움이 되지 않거든요. 그런데 노조가 대변해주니까 움직인단 말이죠. 그걸 경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노조 법원본부 좋은 방향을 향해 가는 변화의 시간
이상원 • 다들 말씀하신 것처럼 처음엔 사람이 좋아서 시작해요. 활동을 계속하는 것도 사람이 좋아서 이고요. 그런데 사람만 좋아서는 오래 활동을 못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쉽지 않은 조직이다 보니까 오래 가진 못해요. 관계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신념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죠.
이경천 • ‌신념이 없던 사람도 들어와서 공부하면 알게 되죠. 저는 어려서 운동을 해서 중학교 때부터 책을 잘 안 봤어요. 그러다가 노동조합 일을 시작하고 나서 세상이 궁금해졌어요. 그래서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는데, 세상을 보는 눈이 밝아지더라고요.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꼭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스스로 왜 이 일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도 확신이 서더라고요.
이상원 • 노동조합 활동이라는 게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더 쉽지 않죠. 우리는 특히 법원을 상대로 하니까요. 개인이 싸워서 해결할 수 있는 건 없잖아요. 그래도 모두에게 필요한 것을 조합원과 함께 요구하면 결국에는 방법도 찾고 의견도 관철되더라고요.
힘든 상황에서 우리 노조가 계속해서 성과를 만들고 있는 것은 조합원 덕분입니다.
이경천 •점심보안당직 폐지 같은 건 모두 바라던 일이었고, 좋은 성과였죠. 사실 점심시간에 보안당직을 설 이유가 없는 것이 모든 민원이 담당자가 와야 해결할 수 있잖아요. 어차피 담당자가 밥 먹고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민원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점심시간에 보안당직을 시켰던 거잖아요.
이성민 • 단체교섭에서 합의한 이후 이행과정이 1, 2년 걸리긴 했는데 지금은 잘 이뤄지고 있죠.
황건하 • 공무원 노동조합 중에서 점심휴무제를 실시한 건 법원이 최초라고 알고 있어요.
이경천 • ‌반대가 심했는데 여러모로 노조원들이 애썼죠. 각 지부 별로 6개월간 배너를 설치해서 청사내외에 문제점을 알리기도 했죠.
우정기 • 직원 민원이 많았던 사안이었는데 잘 해결됐죠. 점심시간은 보장된 휴식시간인데 보장받지 못하고 있으니까. 게다가 민원인에게 점심시간이라 담당자가 없다고 얘기하면 화를 내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렇게 되면 안 들어도 되는 욕을 먹는 거죠. 공무원들이 일을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지속됐던 불필요한 관행이었는데 잘 개선됐어요. 제가 수원지방법원에 있을 때 전국 지방법원 단위에서 최초로 공식적으로 점심시간 휴무제를 실시했어요.
이상원 • 수원지방법원에서 먼저 시행했던 건가요?
우정기 • 네, 수원이 제일 먼저 했어요. 당시에 제가 수원만이라도 해보자고 강하게 요구했어요. 다른 법원이 안 한다고 우리도 하지 않는 건 말이 안 된다. 수원이 무리 없이 되면 다른 법원도 따라올 거라고 설득했죠. 좋은 시범케이스가 될 거라고 했고, 실제로 그렇게 됐어요.
황건하 • 공무원도 법이나 규정에 따라 일하게 되어 있는데 점심시간에 일하는 건 규정에 없거든요. 그런데 국민들은 공무원은 다르다고 생각을 하는 거죠. 우리도 휴식권 보장을 받고 친절을 강요하지 말아라, 우리도 감정 노동자다라고 노동조합에서 엄청나게 말을 많이 했었잖아요. 점심보안당직 폐지는 그렇게 얻어진 성과라고 생각해요.
이성민 • 당직제도도 많이 개선됐죠. 특히 영장당직전담제가 시행된 건 업무 강도를 줄이는 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개선 초기 단계에 울산 법원에 있었는데 직원들 의견을 모아서 국장과 면담을 했어요. 2년 간 연대 서명을 받고 국장을 설득시켰죠. 저는 실무관이라 힘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직원들이 힘을 모아주니까 안 될 것 같은 일도 되더라고요. 영장당직전담제가 되면서 삶의 질이 많이 좋아졌어요. 지금 들어온 신규 직원들은 당연하겠지만 그게 선배들이 힘 모아 투쟁해서 만들어 놓은 제도죠.
이상원 • 영장당직전담제가 처음 시행된 게 2002년도죠. 저절로 된 게 아니고 노조를 통해서 얻은 제도 개선이라 뜻깊죠. 사실 당시에는 직급이 높은 분들 얼굴 쳐다보는 것도 어려운 그런 때였거든요. 근데 우리가 얼굴 맞대고 요구해서 바꿔놓은 거죠.
황건하 • 아니, 무슨 라떼 얘기만 하고 그러세요. 하하. 가끔 선배님들 보면 나 때는 송달을 이렇게 했고 기록도 다 종이였고, 너희는 일 편하게 하는 거라고 하는데, 그 친구들이 어떻게 알겠어요.
이상원 • 라떼가 아니라, 이렇게 고된 과정 속에 수많은 선배들의 피와 땀, 눈물이 있었다는 걸 말해주고 싶은 거니까 후배님들 오해 없길 바랍니다. 하하.

가족의 마음으로
황건하 • 대담을 준비하면서 지난 20년 동안 어떤 것이 제일 기억에 남고 좋았나를 생각해봤어요. 저는 ‘법원가족상호부조회’가 제일 좋은 것 같아요. 법원가족상호부조회 가입 직원 중에 돌아가시면 돈을 모아 드리는 건데. 유가족에게 1억 9천 만원 정도를 드리잖아요. 그게 얼마나 든든하겠어요.
이성민 • 한때 정말 많이들 돌아가셨죠. 업무량이 너무 많고 스트레스가 심하니까 한 달에 한 명꼴로, 자살과 과로사가 번갈아 가면서 일어났어요.
황건하 • 안타까운 일이죠. 그렇게 많이 돌아가셨는데 모두 넉넉하지도 않고, 남은 유가족의 생계가 막막한 분들도 많아 모금운동도 참 많이 했었어요. 제 기억으로 제일 많이 걷혔던 게 8천 만원이었죠. 잘 안 모이면 4천 만원 정도였어요. 그런데 이게 너무 잦으니까 모금만으로는 안되겠더라고요. 도와줄 방법을 노조가 찾다가 생각한 게 법원가족상호부조회였는데 좋은 안전장치라고 생각해요.
이경천 •시행되기까지 몇 년 걸렸죠. 관리는 어떻게 할 건지, 등록만 하고 돈을 내지 않는 사람은 어쩔 건지, 금액은 어떻게 책정할 건지, 질병이 있는데 일부러 가입하면 어쩔 건지 등등 조율할 게 수도 없이 많았었죠.
황건하 • 관리 문제 등 실무적인 게 가장 문제였어요. 당시 담당자가 저였는데 하나하나 그냥 넘어가는 게 없었던 걸로 기억해요.
이상원 • 죽음의 행렬을 멈춰야 한다고 투쟁하면서 제도 개선을 했던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안전장치를 만드는 것도 우리의 일이죠. 물론 죽지 않도록 하는 게 제일 중요하고요. 여전히 힘든 부서들이 있지만 오랜 시간 인원충원을 요구한 결과 지금은 대체적으로 적정한 업무량인 것 같아요. 돌아가시는 분들도 많이 줄었죠.
이경천 • ‌조금씩 바뀐 것 같아도 또 뒤돌아보면 성큼 나아져 있잖아요. 사실 일반직과 법관의 벽도 정말 높았었는데 지금은 좋아졌잖아요. 예전엔 함께 점심 먹으면 먹는 듯 마는 듯 했었죠.
황건하 • 본부장님 또 라떼 얘기 하시네. 하하. 저는 판사님들이랑 식사할 때 잘 먹었어요.
이경천 •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달라졌다는 얘기죠. 판사의 갑질 형태를 고발하기도 했잖아요. 그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이성민 • 정말 오래된 얘깁니다. 그런 판사님들 만나면 법원에 뭐 하려고 들어와서 이런 수모를 겪나 자괴감이 들기도 했죠.
이경천 • ‌자꾸 옛날 얘기를 하게 되네요. 어쨌든 시대가 많이 바뀌었는데 그 변화의 길에 노동조합이 있었다는 걸 강조하고 싶어요.
우정기 • 옛날 얘기만도 아니죠. 재작년에도 있었잖아요.
이성민 • 결국 그럴 땐 노동조합이 나설 수밖에 없어요. 개인은 힘이 없으니까요.
이경천 • ‌정말 많이 사라졌고 없다시피 하지만 아직도 그런 몇몇 사람이 존재하죠.
황건하 • 대부분 좋은 분들이시고 가끔 그런 분이 등장하시는데 그 얘기를 할 수 있는 건 노조밖에 없잖아요. 아주 높은 지위인 1, 2급 공무원 분들도 못하시는 걸 노조는 할 수 있죠.
이상원 • 문서가 전자화되면서 예전 법원과 지금 법원이 기술적인 면에서도 발전했지만 직장 내 권익을 높인 것도 아주 큰 성과라고 생각해요. 갑질이 있어도 예전엔 아무 말 못했지만 2005년부터 시행된 관리자 다면평가로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가 됐잖아요. 이런 견제장치를 통해서 관리자도 조심하고 하위직들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조로 바뀌었어요. 사실 갑질 같은 건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개인 성향의 문제도 있어 완벽하게 사라지지 않지만요.

노조 법원본부

가장 많이 달라진 건 바로 나 자신
이성민 • 제도를 개선하고 직원들을 위한 안전장치를 만든 것도 보람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제일 좋은 건 내 자신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했다는 거예요. 저는 경남 하동 사람인데 정말 보수적이었어요. 집에서도 가부장적인 편이었죠. 생일날 아침에 미역국에 밥이면 끝나는 건데, 생일케이크에 촛불 켜고 노래하면 질색했거든요.
황건하 • 그건 보수적인 게 아니라 매정한 건데요?
이성민 • 그런가? 어쨌든 나는 그런 걸 형식적이고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했어요. 전부 그런 식이었죠. 애들, 집사람, 지인 모든 관계가 보수적이었어요. 그런데 노동조합 생활을 하면서 합리적이고 부드럽게 바뀌었어요.
이경천 • ‌내가 책 읽고 시야가 넓어진 것과 같은 이치네요.
이성민 • 스스로 변하니까 대한민국에 나만 사는 게 아니라 내 자식들도 살아 갈 건데 작은 것부터 더 낫게 바꿔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죠. 너무 승진에 목매고 일만 할 게 아니라 좀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작은 노력이라도 하는 게 좋은 삶인 것 같아요. 저의 아이 넷이 사는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정말 간곡히 바라고 있어요. 그걸 우리 조합원들이 함께 해주니까 감사한 마음이고요.
황건하 • 저도 180도 달라졌어요. 저는 노동조합에 들어오기 전에 축구 총무를 했는데 그때 가장 힘들었던 게 연말 회식 때 사회 보는 거였어요. 회비 관리하고 장소 대여하고 이런 건 하나도 안 힘든데 연말에 사람들 앞에 서서 몇 마디 하는 게 너무 힘든 거예요. 어려서부터 그랬어요. 그런데 노동조합 일을 하면서 수백명 앞에서 연설도 하고 또 교육선전국장이니 여기저기 교육도 다니고 하니까 사람이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이성민 • 자기 일이라 안 할 수 없으니까. 하다 보면 익숙해지는 거고요.
황건하 • 맞아요. 사실 와이프는 노동조합 활동하는 거 좋아하지 않아요. 아시죠?
이성민 • 다들 안 좋아하죠. 나는 집이 울산인데 지금 서울에 있으니까요.
황건하 • 와이프한테 내가 행복하다고 말을 많이 했어요. 내 자신이 좋은 쪽으로 바뀌었다는 게 행복한 일이잖아요. 자신감이 없어서 스스로를 별로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다가 바뀌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힘들긴 하지만 내 인생에서 노조가 엄청 커요.
이성민 • 본부장님은 어떠세요? 내가 본부장님과 지방출장을 많이 다니는데 정말 힘들어 보여서, 괜찮은지 궁금해요. 한 달 넘게 전국 22개 법원을 순회하는데 가는 길이 쉽지 않잖아요. 잠자리도 매일 다르고, 밥도 매일 다르고, 몸 컨디션이 잘 따라주는지 궁금해요.
이경천 • ‌갈 때는 힘든데 올 때는 힘을 받고 오죠. 먼 지원은 자주 못 가니까 몇 년에 한 번 가는 꼴인데 정말 반가워해 주고, 그간 하고 싶었던 말들 듣고 나면 다시 힘이 나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새삼 깨닫고, 이 사람들을 위해 좀 더 힘을 내야겠다 싶죠. 나야 조수석에서 편히 가지만 조직국장님이 걱정이죠. 운전하는 게 제일 힘든 일인데요.
이성민 • 물리적으로는 힘들지만 조직국장은 본부장을 일정에 맞춰 움직이게만 해주면 되잖아요. 그런데 본부장은 무한반복으로 연설을 해야 하니까요. 가끔 다시 말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체력이 떨어져 있는데 또 막상 가면 멀쩡하게 말을 잘 해요. 참 신기해요.
이상원 • 사무처장으로 정말 고마운 게 이성민 조직국장이 애들 넷 두고 서울에 와서 객지생활을 하잖아요. 매주 내려갔다가 월요일 9시까지 출근하려고 새벽 4시에 일어나서 5시 30분 첫 차를 타고 올라오는데 얼마나 고되겠어요. 그런 생활하면서도 맡은 일을 열심히 해주는 게 정말 고마워요. 우정기 정책국장도 멀리 출·퇴근 하느라 고생하고요. 노조 활동하기 어려운 상황인데도 해주는 게 너무 고마워요.
황건하 • 저에 대한 언급은 왜 없는 건가요?
이상원 • 우리는 별로 특별하게 힘든 게 없잖아요. 하하. 저도 노동조합을 하면서 좀 더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사고로 바뀌었어요. 고등학교 때까지 운동만 해서 사회 문제 관심 없이 살았는데, 이제는 두루 살필 수 있는 사람이 됐죠. 그게 큰 성과라고 봐요.
우정기 • 저는 개인적인 것보다 노동조합이 기관 측과 마주 보고 설 수 있는 파트너로 인정받은 게 제일 좋아요. 2018년도에 설립 신고하고 합법 노조가 된 후 단체교섭을 잘 치렀잖아요. 테이블 꾸려서 기관 측과 마주하고 아까 말했던 영장당직전담제 확대, 임산부 보호, 성희롱 방지 등등 125 안건으로 협의했는데 많은 성과를 이룰 수 있었어요. 법원본부가 인권 최후의 보루라는 법원이 조금 더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받침이 됐다고 생각해요.
황건하 • 저는 우정기 정책국장님이 수원지부장 할 때 신청사로 옮기면서 설계 변경했던 거요. 그게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우정기 • 아, 그 사건이요. 열악한 환경에서 신청사로 옮기는데 설계도를 보니까 호수 뷰와 근사한 남향에는 판사실만 배치되어 있더라고요. 일반직 사무실은 북향 쪽이고요. 게시판에 문제제기 하고 성명서를 올렸는데 응원을 많이 받았어요. 사무국장님께 설계 변경 촉구하고 법원장님을 찾아갔죠. 좋은 건물에서 일하겠다고 직원들 고무시켜놓고 이건 아니라고요. 적극적으로 행동하겠다고 했더니 설계를 바꿨어요. 다행히 법관과 일반직이 신청사 남북 반반 나눠서 잘 사용하고 있어요.

동료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산소 같은 존재
황건하 • 노동조합이 하나하나 바꿔나가는 게 많아요. 현재 전 직원이 조합원은 아니지만 그래도 법원공무원을 대표해서 할 일을 하고 있죠.
이성민 • 자부심을 가져야죠. 노동조합의 간부들은 대부분 선출직이잖아요. 직원들이 뽑아준 자리니까 책임감 느끼고 열심히 해야죠.
이상원 • 아직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함께 해주시길 지면을 통해 말씀 드리고 싶어요. 조금 극단적인 예지만 한 가지 말씀 드리면 사망 사고 시 공무상재해신청을 하는데요. 지금까지 7분이 신청을 했는데, 비조합원 한 분 빼고 6분 모두가 승소했습니다. 6분은 조합원이었는데,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진상조사를 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지인들의 진술서를 받는 등 노조에서 절차를 밟습니다. 본부, 지부 할 것 없이 혼연일체가 되서 최선을 다합니다. 이 진상조사 자료가 승소하는데 큰 영향을 줍니다. 조합원들의 권익을 챙기는 것도 있지만 돌아가신 분들의 명예까지 지켜주는 게 저희가 할 일이니까요.
이경천 • ‌말 못할 사유가 있는데 이게 그냥 묻히는 경우가 많죠. 이럴 때 노조에서 여러 원인을 분석하고 파악하니까 재판에 유리하죠. 동료들에게 증인 출석 부탁도 저희 쪽에서 하고요. 법원 일이라는 게 압박감이 있어요. 자기 이름을 걸고 해야 하고 책임이 부여되니까요. 업무 강도 높은 어려운 일을 하면서 혼자 모든 걸 이겨내긴 쉽지 않지만 함께 부딪히면 조금 수월해지죠. 노동조합이 필요한 이유예요.
이상원 • 직원들 상대로 조직진단을 했을 때 비조합원 80%가 노동조합은 필요하다고 답했잖아요. 조합원은 말할 것도 없고 비조합원도 필요성을 알고 있다는 거죠.
황건하 • 가입하지 않은 분들은 나름의 개인적 사정이 다 있을 겁니다. 충분히 이해하고 존중해요.
이상원 • 물론입니다. 각자의 사정이 있죠. 하지만 개인으로 어떤 일을 개선시킬 순 없어요. 집단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 점 꼭 알아주셨으면 하고요.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소중한 조합비로 운영되는 조직이고, 조합의 가장 큰 힘은 조합원 수에서 나오죠. 많이 응원해주셨으면 합니다.
이경천 • ‌노동조합 하면서 조합원들에게 가장 많이들은 얘기가 노조는 ‘보험’이라고들 해요.
앞으로 나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조금씩 저축해서 필요할 때 보장받는다는 거죠.
이성민 • 얼마 전에 본부장님이 지부 순회하면서 이런 말을 했었어요. 조합비를 가장 많이 내는 사람이 3만 6천원이다. 좋다, 그럼 내가 거기에 4천원을 보태 4만원을 매달 내 놓을 테니, 그걸로 나를 위해 싸워줄 단체를 찾아줄 수 있을까요. 공을 하나 더 붙여 40만원을 줘도 못 찾는다고. 왜냐하면 이게 애정이 있어야 하거든요. 노동조합은 그게 됩니다. 가려운 곳 긁어주고 아픈 곳 치료해주는 단체가 노동조합이에요. 이렇게 따지면 경제적으로 꽤 괜찮은 투자라고 할 수 있죠.
황건하 • 어려움에 빠지면 주변을 돌아보는데 사실 평소에는 잘 몰라요. 승진도 좀 늦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돈보다는 휴식이 중요하고요. 그런데 실제로 어려움에 빠지면 찾을 곳이 노동조합밖에 없습니다. 다른 어디에서도 손 내밀어주지 않거든요. 진짜 어려울 때 옆에 있어주는 건 노조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이경천 • ‌우리 노조를 그래서 공기 같은 존재라고 하죠. 평소엔 소중함을 모르지만 없으면 안 되는 존재죠.
이상원 • 자존심을 지켜주는 든든한 배경이죠.
우정기 • 안전망 같은 거죠. 사실 이게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게 아니잖아요.
이경천 • ‌가입하지 못하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를 대신해서 용기를 내고 희생하고 행동하고 있다는 걸 기억해주었으면 합니다.
이성민 • 그렇죠, 돈 때문에 하는 것도 아니고요. 노조일은 바보 같은 사람들이 하는 건데, 직원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못해요. 너는 너고 나는 나다, 이러면 할 수 없는 일이죠. 동료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일이니 응원 많이 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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