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보석상자] 잘 가꾸어진 무성한 나의 뜰을 떠나며 최완주 전 서울고등법원장, 고양지원 원로법관

人사이드인터뷰

2023.03.07

최완주 원로법관님

내일을 나누는 만남

잘 가꾸어진 무성한 나의 뜰을 떠나며

최완주 전 서울고등법원장, 고양지원 원로법관

글과 진행 이재영 사진 조인기

스물아홉의 청년 판사 최완주가 예순다섯의 원로판사로 퇴임하기까지 법원이라는 너른 뜰에는 좋은 것이 가득했다. 함께 일한 동료들, 총명한 후배들, 각 자리마다 자신을 성장시켰던 업무와 어렵지만 보람되었던 사건들 사이를 누비며 내내 행복했다. 배석판사, 단독판사, 지방법원장, 행정법원장, 고등법원장, 원로판사를 거치며 성실하게 잘 가꾼 비옥한 뜰의 출입증을 반납하고 이제 그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지난 1월 31일 법원에서의 오랜 법조 생활을 정리하셨죠?
정확하게는 1월 30일에 퇴임을 했습니다. 30일 자정, 31일로 넘어가는 새벽 0시에 오랜 판사 업무가 끝난 것이죠.

정확하시네요. 마지막을 알리는 시간, 자정이 되었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가장 먼저 든 건 안도감이었어요. 나에게 주어진 소임을 큰 문제 없이 마쳤다는 안도감이 들었죠. 다음으로 아쉬운 마음이 밀려왔어요. 아직은 좀 더 할 수 있는데 벌써 끝이라니 싶었죠. 한편으로 더 오래 하면 이렇게 탈 없이 마무리 못 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퇴임식 다음 날부터는 완전히 다른 생활이 시작되셨죠?
아침에 눈 떴는데 출근을 안 해도 된다는 게 좋기도 하면서 기분이 묘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바로 일이 생겨서 느긋하게 여유 부리진 못했어요.

바로 일을 시작하신 건가요?
네, 베이비시터 보조 일을 시작했어요. 하하. 손주가 태어난 지 몇 개월 안 됐는데 딸아이 출산휴가가 끝나는 시점이 마침 제 퇴임이랑 겹쳤어요. 아내가 메인 베이비시터로 일하고 있고 제가 보조를 맡게 됐죠.

시기가 딱 맞아떨어졌네요. 새로운 일은 할 만하신가요?
(웃음) 힘들어요. 애가 셋이라 아이들 어릴 때 목욕은 제가 전담하면서 돕는다고 도왔는데 그건 정말 잠깐 거드는 정도였더군요. 갓난아이 보는 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나이가 있어서인지 더 쉽지 않지만 그래도 즐겁게 하고 있어요.

법원 생각이 더 간절해지시기도 하겠어요. 퇴임 전 4년 동안 원로법관으로 일하셨습니다. 원로법관을 지원하신 이유가 있으셨나요?
재판하는 일을 좋아하고 또 적성에 맞았습니다.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고요. 오래전부터 정년까지 재판하고 싶다는 생각을 쭉 했습니다. 예전부터 고등법원장이 되면 후배들을 생각해서 자리에 오래 있기보다 적당한 시기에 퇴직하는 분들이 많으셨어요. 정년까지 가는 일이 드물었죠. 그런데 제가 고등법원장 퇴직할 무렵에 원로법관 제도가 생겼습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죠.

원로법관이 된다는 건 다시 1심 재판을 맡는 일인데, 업무량에 대한 걱정은 없으셨어요?
대부분의 재판이 사실관계를 확정하기 위해 방대한 기록을 봐야 하는 일이지만 소액재판은 사실관계가 단순한 경우가 많아서 조금 낫습니다. 원로법관들한테는 주로 소액재판이 배당되기 때문에 큰 부담은 없어요.
소액재판은 말로 이루어진 게 많고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잘 경청해서 설득력있는 판결을 하거나 쌍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서 조정, 화해로 해결하기도 하죠. 아무래도 육체적으로 조금 덜 힘든 재판이라 소액재판을 원로법관들이 맡고 있어요.

원로법관 해보시니까 어떠셨어요?
나이가 많다고 전부 경륜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경력 있는 판사들이 당사자들에게 신뢰를 주는 면도 있고 여러 가지로 장점이 많습니다. 저는 원로법관 하면서 참 좋았습니다.

마지막까지 판사 일이 좋았다고 하시는데, 판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셨어요?
아닙니다. 그런 이유는 없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우리 시절에는 어른들께서 공부 잘하면 법대 가라고 하셨잖아요. 거창한 철학이나 포부가 있어서는 아니었고 문과 성향인데 제법 공부를 하니 자연스럽게 법대에 들어갔고, 사법시험을 통과해서 판사가 됐죠.

최완주 원로법관님

사법시험 통과하고 모두 법관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독립적으로 일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타인의 간섭 없이 자기 소신대로 일할 수 있는 법관에 끌렸어요. 막상 들어와서 보니 일이 많더라고요. 일하는 게 지겹고 싫으면 못 했겠지만 그렇지 않았고요. 지금도 판사는 도장만 찍는 줄 아는 분들도 있는데 사실 판사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야 하는 일이죠. 스물아홉이던 1986년 임관 후 지금까지 일이 지루하지 않은 걸 보면 잘 선택한 것 같습니다.

첫 사건 기억나세요?
기억납니다. 지금은 서울동부지법이지만 당시에는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 민사합의부 배석판사로 발령받았는데, 다음 날 바로 재판이 잡혔어요. 법복도 없어서 빌려 입고 법대에 앉았죠. 교통사고 손해배상 사건이었어요.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교통사고 사건 특유의 자잘한 쟁점들을 챙기면서 판결문을 썼던 기억이 나요.

이 일이 내 천직이라고 생각하시게 된 순간이 있으셨어요?
글쎄요. 그런 드라마틱한 순간이 있진 않습니다만 할 때마다 힘든 게 아니라 재미있었어요. 다툼을 정리하고 그에 맞는 법리를 찾아내서 결론을 내리는 일이 좋더라고요. 판사생활하는 동안 한가할 틈 없이 격무였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안 했으니 천직 아닐까 싶네요.

그렇다면 판사 하기를 정말 잘했다 싶은 순간은 있으셨나요?
그건 자주 있었습니다. 당사자들이 제가 내린 결론에 승복해서 항소를 안 하면 보람을 느꼈죠. 다시 항소를 하는지 안 하는지 일부러 챙겨보지 않기 때문에 다 알 순 없었지만 어쩌다 소식을 듣게 되면 참 흐뭇했습니다. 또 여러 사건이 연결돼서 해결까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사건을 한꺼번에 조정으로 해결한 게 기억에 남아요. 그때 판사 하길 잘했다 싶었죠. 얽히고 설킨 실타래 같은 문제가 제 선에서 해결되니 뿌듯하더라고요. 단독 판사 때였는데 발령이 나서 다른 곳으로 가느라 짐 싸기 전날까지 당사자들을 설득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조정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죠.

판결을 할 때보다 조정을 성립시켰을 때 더 큰 보람을 느끼셨군요.
대부분의 판사들이 그럴 겁니다. 저는 원로법관으로 일할 때도 지역의 신망 있는 분들을 조정위원으로 위촉해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파주시 법원 청사를 옮길 때 조정실을 두 개 마련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소액재판은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줘야 해요. 서류가 제대로 없는 사건도 많고, 또 당사자들은 일생에 한 번 법정에 오니까 하고 싶은 말이 많죠. 인생사를 씁니다. 그걸 한없이 들어줄 순 없는 노릇인데 그래도 충분히 경청해야 하거든요.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 사건을 대하는 태도가 좀 달라집니다.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는 판단이 들면 간단한 심리 뒤에 바로 조정위원에게 보냈어요. 거기서는 최소 30분에서 1시간까지 얘기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고 나면 더 큰 분쟁 없이 조정이 되는 경우가 많았죠.

당사자들은 자신들만의 억울함이나 답답함이 있을 텐데 말하는 것만으로 좀 후련해지겠네요.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면 조정이 되지 않더라도 판결절차 들어갈 때 당사자들이 충분히 납득하게 됩니다.
조정이 되면 좋고 안되더라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어서 조정위원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자주 점심식사를 함께 했는데 저희끼리 판사나 조정위원들이 감정노동자에 속한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죠. 판사들에게 재판하고 판결문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정말 필요하거든요.

잘 들어주는 것, 판사님만의 노하우인 것 같네요. 혹시 후배들에게 알려줄 만한 판사님만의 재판 노하우가 있으신지요?
후배들은 저보다 훨씬 잘하고 있어서 제가 알려줄 게 없어요. 저는 옛날 방식이고 요즘 법관들은 각종 첨단 기술을 활용해서 판결에 참고하기도 하고요. 우리 때는 생각도 못했던 것들을 잘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제가 배워야죠. 그래도 하나 얘기해야 한다면 재판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감정을 적절하게 컨트롤해야 한다는 겁니다. 당사자는 물론이고 가끔은 변호사들끼리도 대립하면서 거친 말이 오가곤 하는데 그럴 때 저는 휴정을 합니다. 법정 대기실이나 빈 공간으로 불러서 잠시 흐름을 끊죠. 별다른 얘기할 필요도 없어요. 잠시 상황에서 벗어나서 물 한 잔 마시면 분위기가 많이 정리됩니다.

최완주 원로법관님

30대부터 60대까지 법원 안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으셨잖아요. 돌아보니 어떠세요? 어느 시절이 가장 기억에 남으십니까?
모든 시간들이 다 기억납니다. 배석판사 시절에는 판결문 건수를 정해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써내야 하니까 다른 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죠. 단독판사가 되니까 자기가 재판을 지휘하고 ‘드디어 내가 제대로 된 판사역할을 해보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그때는 뭐랄까 의욕이 넘치던 때니까 가끔 너무 지나치기도 했습니다. 대법원의 판결이나 판례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해서 과감하게 다른 결론을 내기도 하고요.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의욕이 넘치는 시절이었어요.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있을 때는 동료 판사들과 치열하게 토론하는 일이 즐거웠습니다. 가끔 제 의견을 그대로 수용하면 일부러 반대의견을 내곤 했죠. 자꾸 의심하면서 살펴야 올바른 결론에 가깝게 갈 수 있으니까요. 고등재판장을 할 때 열띠게 토론하고 길을 찾아 가면서 제일 재미있게 일했습니다.

판사 이외의 업무를 맡은 적도 있으신가요?
두 차례 다른 업무를 맡았습니다. 법원 행정처 심의관으로도 일했고 사법연수원 교수도 했죠. 사실 제일 힘들었던 건 행정처 심의관이었어요. 판사들은 모범답안을 찾는 습성이 있는데 그 일은 답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법정책연구실이 생기면서 처음 마련된 부서라, 정책 입안하고 세미나 기획하고, 의전을 챙기는 일이었는데 안 하던 일을 하니까 힘들더라고요.

처음으로 일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판사님도 힘든 일이 있으셨군요.
네, 아무래도 처음 하는 일이라 심적으로 지치는 시간이긴 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까요, 그게 굉장히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됐다고 할까요? 판결을 내릴 때 경우에 따라 하나의 결과가 아니라 사회 전체를 봐야 할 때가 있는데, 그런 새로운 경험이 결과적으로 판사 생활에 도움이 됐습니다. 어떤 경험이든 버릴 경험은 없더군요.

사법연수원 교수 업무는 어땠나요?
3년간 있었어요. 첫 2년은 기획 교수로 있었고 마지막 1년 지도 조원들을 가르치면서 후배들과 연을 맺었는데 그 또한 인생에 아주 행복한 경험이었어요. 공자님 말씀 중에 천하의 즐거움 중 하나가 영재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때 사법연수원에서 조원들을 가르치면서 그 즐거움을 경험했어요. 다들 얼마나 똑똑한지 서툰 제 가르침을 찰떡같이 알아들었죠. 아직도 스승의 날이면 연락이 오고, 꽃을 보내주기도 합니다. 내내 공부만 하느라 캠퍼스의 낭만도 못 누리던 학생들이 연수원에 들어오면 약간의 해방감도 느끼면서 지도 교수와 모임도 갖고 상당히 가까워지거든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이 많이 쌓였어요.

법관 생활하시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언제였을까요?
퇴임사에서도 말했는데 제일 편안하고 행복했던 건 파주시법원에 원로법관으로 있을 때였어요.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큰 조직에 있으면 크고 작은 사건·사고로 늘 신경 쓰이고 해결책을 찾느라 분주합니다. 그런데 원로법관 4년 하면서 10여 명 정도의 인원과 가깝게 소통하고 일하면서 마음이 편안했어요. 구성원들이 화목해도 당사자가 어렵게 하면 편치 않은데 제가 복이 많은지 파주시법원에는 사람을 힘들게하는 이른바 특수 당사자가 없었습니다. 마음 편한 게 최고라고 하지 않습니까? 가장 최근이기도 하지만 그러다 보니 그 시절이 제일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큰 조직 작은 조직 두루 거치면서 법원의 많은 분들과 연을 맺으셨는데, 법원 생활하면서 잊지 못할 사람이 있다면 이 자리를 빌어 소개해주세요.
일반 행정직이나 기업체는 지위가 올라갈수록 일이 적어진다고 하죠. 판사는 일이 제일 많은 사람들이 대법관입니다. 올라갈수록 기록 분량도 많아지고 검토해야 할 것들이 많아지죠. 만약 함께 일하는 동료 법관, 참여관, 실무관들이 역할을 충실히 해주지 않으면 아주 곤란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재판 기록을 빼먹거나 하면 준비했던 재판을 못 하게 되니까요. 때문에 직원들 각각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해요. 그래서…

길게 말씀하시는 것 보니 왠지 모범답안이 나올 것 같습니다.
하하, 네 그래서 어느 누구 한 사람일 것 없이 같이 일했던 모든 분들이 기억에 남고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역시 모범답안을 내셨네요. 혹시 앞으로 법원을 지킬 후배들에게 조언해주실 게 있으신지요?
훌륭한 후배들에게 딱히 조언할 건 없지만 수석 부장일 때 자주 했던 말이 있습니다. 최소한 10년 뒤에 스스로 돌아봤을 때, 혹은 자식들이 알게 됐을 때 부끄럽지 않을 결론이라면 소신을 지켜라. 그럴 정도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연구하면 적어도 나중에 후회할 일은 없을 거라는 이야기를 해주곤 했습니다.

판사님도 그런 생각으로 판사 생활을 하셨겠네요.
노력은 했습니다. 처음 임관할때부터 그런 생각을 하진 못했지만 아이들이 생긴 후에는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판결이길 바랐습니다. 평생 아니 죽어서도 이름이 남을 텐데 부끄러운 판결을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 아마 법관이라면 누구나 이런 생각으로 일할 겁니다. 판결문에 자기 이름을 쓴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거든요.

후배들이 가장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건강 관리, 체력 관리입니다. 어떻게 관리하셔요?
초임 1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땐데, 오른손바닥을 베였어요. 그때는 전부다 펜으로 써야 했는데, 펜을 쥘 수 없었죠. 주말에 아내에게 불러주고 아내가 받아 적으면서 일을 마쳤었습니다. 그후로는 아주 조심합니다. 판사들은 손도 눈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체력이 좋아야 합니다. 에너지가 있어야 생각도 여유 있게 할 수 있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거든요. 저는 어느 법원이든 가까운 산책로를 개발해서 걸었어요. 마지막 파주시법원에 있을 때는 점심식사 후에 인근 호수공원을 걸었죠. 그리고 틈틈이 집 앞 헬스장에 다니는데, 걸어다닐만큼 가까워서 자주 다닐 수 있습니다. 건강관리는 꼭 하시길 바랍니다.
저도 30, 40대에는 술도 자주 마셨지만 이제는 관리하고 있습니다. 몸과 마음의 건강이 유지돼야 편안하고 여유있는 마음으로 당사자들을 만나고, 그래야 신뢰를 받으니까요. 3분 진료하는 의사처럼 되지 않도록 몸과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3분 진료하는 의사라는 건 무엇인가요?
제가 가끔 하는 비유입니다. 우리가 병원에 가면 오래 기다리잖습니까? 기다리는 건 괜찮은데 막상 의사를 만났는데 자기 할 말만 하고 3분 만에 진료를 끝내요. 그러면 불만이 생깁니다. 전문가의 소견이니 틀리진 않겠지만 그래도 환자가 궁금한 게 있잖아요. 몸의 질병을 치료하는 것도 목적이지만 환자의 불안을 달래주는 것도 의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그걸 들어주는 것도 의사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판사도 마찬가지죠. 사건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사실만 물어보고, 딴 얘기는 못하게 잘라버리면 굉장히 기분이 나쁠 겁니다. 법정에서 기다리는 건 얼마든지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으면 당사자들의 불만은 해소되지 않을 겁니다. 법원에 대한 신뢰가 몇 건 들어와서 몇 건 처리했다는 통계수치로 형성되는 건 아니거든요. 법정에 온 당사자들이 판사가 자신의 사건을 중요하게 여기고 올바른 결론을 내리기 위하여 집중하고 있다고 느끼게 하여야 신뢰를 받을 수 있고 그러한 경험을 한 당사자들이 많아져야 법원에 대한 신뢰가 높아진다고 생각해요.

좋은 말씀이시네요. 체력을 길러야 하는 것 이외에 법원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균형감각입니다. 어느 한쪽만 보지 않고 여러 면을 볼 수 있는 자세를 유지해야 하죠.

긴 시간 지혜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새로운 인생 계획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베이비시터 보조를 계속 할 수는 없을 것 같고요. 하하. 정년퇴임했지만 아직 일할 체력이 되니 변호사로 일을 해야겠죠. 제 나이가 왕성하게 활동할 나이는 아니지만 열심히 해볼 생각입니다. 욕심 내지 않고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제 경험을 필요로 하는 분들께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최완주 판사는 이제 판사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불릴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옷을 입고 잠시 어색하겠지만 그는 분명 또 다른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어낼 것이다. 법원에서 보낸 시간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달라는 말에 한참을 고민하던 최완주 판사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사랑해서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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