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인류 그대의 이름은] 가장 나다운, 취향에 따라 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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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인류 그대의 이름은] 가장 나다운, 취향에 따라 책 읽기 - 니은서점 노명우 사회학자

2020.11.04

노명우

가장 나다운,
취향에 따라 책 읽기

니은서점 노명우 사회학자

자주 듣는 음악으로 누군가의 취향을 알 수 있듯, 책장에 꽂힌 책의 목록도 그의 취향을 나타낸다. 니은서점에 가면 마치 누군가의 방을 들여다보듯 잘 선별된 취향이 담겨 있다. 꼭 읽어봐야 한다며 어디에나 진열돼 있는 베스트셀러 대신, 사회학자가 오랜 시간 습득한 안목으로 고른 책들을 만나볼 수 있다. 여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이자 어느덧 3년째 꿋꿋하게 동네 서점을 이어가는 노명우 사회학자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글. 노초롱 + 사진. 홍승진

시각적 자극을 주는 동네 서점
온라인 서점에서 책의 제목이나 목차를 쓱 훑어내는 것 말고, 책장을 넘기면서 작가가 고심했을 그 문장들을 읽어본 게 언제인가. 먼지 쌓인 채 방치된 책장에 새 책을 꽂아본 건 또 언제인가. 지하철 역사에 있던 대형 서점이 공사에 들어간 뒤로는 언제 서점에 가봤나 싶은데, 이는 비단 나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그만큼 우리 주변에서 서점을 찾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하나둘 자리를 잃어간 서점들, 독립 서점들도 순수하게 책만 팔아서는 운영을 이어갈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노명우 사회학자(이하 교수)는 동네 서점을 운영한지 어느덧 3년 차에 접어들었다.
“사람들이 책으로부터 멀어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오프라인 서점이 많이 없어진 걸 꼽을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동네에 빵집이 있으면 한 번쯤은 사 먹어보고, 또 동네에 커피숍이 생기면 언제가 가보게 되잖아요. 존재 자체로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는 겁니다. 오고 가는 길거리의 상점들이 시각적 자극을 주는 셈이죠. 그런데 최근 20여 년 동안 우리 사회의 여러 변화를 살펴봤을 때, 그런 시각적 자극을 주는 서점이 없어졌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남아있는 대형 체인서점이나 온라인 서점, 그리고 학교 앞에서 참고서를 파는 서점 외에는 일반 주택가에 오며 가며 마주할 수 있는 서점이 많지 않거든요. 대형 체인서점 같은 경우, 빌딩 안이나 지하철 내에 있어서 일부러 찾아 들어가지 않는 이상 시각적 자극을 주기 어려운 곳이죠. 그래서 저는 서점의 가장 큰 역할 중 하나가 ‘골목길에 서점이 있구나, 내가 책을 언제 읽었지?’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만드는 시각적 자극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읍시다’ 혹은 ‘가을은 독서의 계절’과 같은 흔한 캠페인보다 동네에 서점 하나 있는 게 훨씬 큰 자극을 줄뿐만 아니라 책을 접하는 직접적인 효과로도 이어진다는 것. 책에 별 관심 없던 동네 사람들도 서점에서 북토크가 열리는 날이면, 지나가다가도 호기심을 갖고 걸음을 멈추곤 한단다. 서점 안에 있는 사람 외에도, 길을 가다가 우연히 서점에서 진행하는 행사를 보고 궁금증을 갖는 사람들까지 모두에게 새로운 자극이 되는 것이다.
“서점이 이와 같은 ‘시각적 자극’이 됐음을 확인했을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동네를 오가면서 서점을 보고, 한 번쯤 들러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하는 거죠. 또 서점이라는 공간을 통해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연결되는 지점이 돼주기도 하고요. 서점을 매개로 문화적인 커뮤니티가 형성되는 것을 볼 때 정말 뿌듯합니다.”

노명우

즐거운 독서를 위해 필요한 챕터
영상을 보다가 원하는 것이 나오지 않으면 스킵하면 그만이다. 아니면 중간부터 보다가 말아도 별 탈은 없다. 하지만 책은 한 장 한 장 이해하고 습득해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가 있다. 우리가 아무리 영상 시대에 살고 있다 한들, 책만이 줄 수 있는 영향력은 분명 다르다.
“문자를 발명한 이후로 인간이 축적한 지식은 문자로 기록돼 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인류가 축적한 지식을가장 많이 포함한 매체는 여전히 책이라고 봅니다. 혹자들은 유튜브나 인터넷에 정보가 다 있다고 하지만 책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정보지, 그 자체가 정보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거든요. 인터넷에는 왜곡되거나 잘못된 정보가 많은 반면, 책은 만들어지는 편집 과정 속에서 수없이 검증되고 걸러지거든요.”
수준 높은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인터넷을 여러 번 찾아보는 것보다 책 한 권을 읽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될 텐데, 우리가 책을 가깝게 두고 읽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책 읽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왜냐면 우리에게 책 읽기의 경험이 그다지 즐겁지 않기 때문이죠. 입시 공부를 하기 위한 독서, 시험과 점수를 위한 독서에 익숙해진 까닭입니다. 사실 어떤 목적 없이 책을 탐닉하는 게 우리가 권장하는 독서인데, 대부분의 독서 경험을 따져보면 시험 공부로 책을 읽다가 성인이 되고 정작 내가 책을 선택할 수 있을 때는 책을 찾지 않아요. 책을 정말 즐기는 사람이 극소수에 불과한 이유입니다.”
막상 책을 읽겠다고 하면 또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를 때가 많다. 이런 경우 보통 베스트셀러에서 찾거나 주변에서 추천해주는 대로 고르고 만다. 그러나 그렇게 선택한 책 읽기는 얼마 못 가는 경우가 대다수다. 노명우 교수는 책을 잘 읽기 위해서도 충분한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옷을 잘 읽는 사람과 비교해보면 돼요. 처음부터 옷을 잘 입는 사람은 없거든요. 자기에게 어떤 옷이 잘 어울릴지 몰랐다가 여러 시도 끝에 알아내는 것처럼 책도 그런 과정이 필요합니다. 일종의 초기 비용, 투자 비용이 있어야 하죠. 탁월한 안목을 가진 사람은 없다고 봐요. 어떤 분야의 안목을 기르려면 굉장한 시행착오와 훈련, 경험이 필요합니다. 새로 생긴 음식점에도 가봐야 그 집의 맛을 알 수 있잖아요. 사람 입맛이 제각각인 것처럼 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유독 사람들이 책에는 그런 기회비용을 쓰는 것에 인색하지 않나 싶어요. 책을 좀 더 편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노명우

오롯이 자기 관점에서 선택하는 독서
세상에 책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새삼 알게 됐다는 노명우 교수는 서점을 하면서 취향이 더욱 분명해졌다고 말한다. 책을 읽는 속도가 책이 출판되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는 세상 속에서 내 중심을 잡지 않으면 방향을 잃기 쉽다고.
“일관성 있는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누가 좋다고 하는 책을 따라 읽다보면 독서가 맥락을 상실하고, 읽고 나서도 쉽게 흩어지고 말아요. 오로지 자기 관점에서 책을 보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니은서점에는 노명우 교수와 90년대생인 북텐더들의 취향이 오롯이 반영돼 있다. 그래서 흔하디 흔한 베스트셀러가 이곳에는 없다.
“현실적으로 많은 책을 전시하거나 판매할 수 없어요. 그렇기에 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고, 어떤 기준으로 책을 선별하느냐가 중요한데, 그 기준은 오직 제 관심과 취향입니다. 그리고 그게 이 서점의 가장 큰 특징이자 개성이 되는 것입니다.”
마진율이 낮아서 이윤이 많이 남지 않는 데다 자리를 잡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서점을 운영해 오기까지 노명우 교수도 고민의 시간을 거쳤다. 하지만 서점은 책을 사는 독자뿐만 아니라 노명우 교수에게도 더없이 특별한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몸은 피곤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더 편안해졌어요. 번민이 많이 사라졌는데, 그 이유는 사회학자로서 느끼는 생생함인 것 같아요. 학교 안에만 있을 때는 고립됐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이제는 사회에 진출해 있다는 현장감을 느낄 수 있거든요. 사회학자로서 제가 연구하는 현장의 한복판에서 굉장히 많은 에너지를 얻지요.”
10년 이상 버텨서 독립 서점의 레전드가 되겠다는 목표를 밝힌 노명우 교수는 책만 팔아서도 생존할 수 있는 서점의 좋은 본보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가 전한 이야기는 우리가 책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생각할 수 있는 질문을 던져주었다.
“일부로 책을 좋아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일종의 위선을 걷어내야 합니다. 좋아하던 음악이나 영화가 지겨워지는 순간이 올 때 잠시 내려놓듯 자기 마음에 충실하면 되거든요. 그러다 어느 날 활자에 대한 그리움이 생기면 그때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면 됩니다.”

노명우 교수
서점 안에서 책을 매개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는 사회학자. 『인생극장』, 『세상물정의 사회학』,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사회학의 쓸모』 등의 책을 펴냈고, 최근에는 2년 동안 서점을 운영한 경험을 담은 책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으로 책과 관련된 질문과 나름의 답을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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