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인류 그대의 이름은] 더 나은 삶을 이끄는 더 좋은 신발을 향한 집념

人사이드인터뷰

[新인류 그대의 이름은] 더 나은 삶을 이끄는 더 좋은 신발을 향한 집념 - 수제화명장 유홍식

2020.07.02

유홍식명장

더 나은 삶을 이끄는 더 좋은 신발을 향한 집념

대한민국 1호 수제화 명장 유홍식

“좋은 신발은 사람을 좋은 곳으로 데려 간다”는 말이 있다. 겨우 한 켤레의 신발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발에 잘 맞는 신발을 신어 본 사람은 안다. 발이 편하면 평소보다 더 많은 걸음을 걸을 수 있고 그 덕분에 더 많은 곳, 더 나은 삶을 탐험해 볼 가능성도 늘어난다는 것을. 그런 의미에서 보면 좋은 신발이란 좋은 삶을 위한 탐험도구와도 같은 것일 테다. ‘수제화의 메카’라 불리는 서울특별시 성수동, “편하고 좋은” 탐험도구 제작에 평생을 쏟아 부은 유홍식 명장을 만났다.

글. 이지선 + 사진. 김정호

무작정 구두가 좋아서 뛰어든 삶
올해로 72세. 고령화 시대임을 고려해도 적지 않은 나이. 평생 남의 발만 보며 살아왔다는 유홍식 명장은 2018년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열린 제1회 수제화 명장 선발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2013년 성동구에서 선정한 수제화 명장 자리에 오른 후 또 다시 이뤄낸 성과였다.
당연히 하루아침에 이루어낸 성과는 아니다. 성수동에서 구두장인으로 살아온 세월은 19년이지만 그저 만드는 것이 좋아 구두를 만지기 시작한 게 초등학교도 졸업하기 전의 일이니 근 60년 가까운 시간을 구두와 함께 보낸 결과였다.
“구두 만드는 게 좋았어요. 집안이 갑부는 아니었지만 공부한다고만 하면 유학도 보내 주겠다 할 정도였는데, 6학년 2학기 때 무작정 집을 나와 기술을 배운다고 서울로 와 버렸어요.”
그렇게 1년간 명동의 제화장인 밑에서 서울살이를 하고 명절을 맞아 광주 집으로 돌아갔다. ‘공부를 다시 하라’는 아버지와 일주일 가까이 줄다리기를 해야 했지만 허락을 받고 싶었다. 공부를 다시 할 마음은 없었다. 구두 만드는 것이 재미있었던 만큼 그는 아버지를 붙들고 통사정을 했다. 마침내 읍소 끝에 허락이 떨어졌고, 그의 아버지는 다시 서울로 향하는 그에게 당부했다. “네가 조금 피곤하면 남이 좋다고 할 테니 그것만 명심해라.”
그는 다시 서울로 향했다. 장인들 밑에서 구두를 배우고 전주로 가서 취직을 했다. 아직은 구두 만드는 이들이 명장도 무엇도 아닌 그저 기술자로 불리던 시절. 그는 구두를 만드는 것이 재미있고, 재미있는 일로 돈도 벌 수 있어 좋았다고 회상했다. 한겨울에 가죽을 안고 찬 바닥에서 잠을 청해도, 자신이 만든 신발과 그걸 신을 이들을 생각하면 괜찮았다.
“어렸을 때야 아버지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몰랐죠. 살면서 돌이켜 보니 맞는 말씀이더라고요. 그래서 그렇게 살았어요.”

유홍식명장

재능과 노력에 더해진 자부심, 명성을 이끌다
유홍식 명장의 재능과 노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1973년 즈음부터다. 전라북도 대표로 예정돼 있던 후보가 다치면서 대타로 출전한 전국기능대회에서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급히 섭외된 대타였던 터라 연습도 부족했고 입상 생각도 딱히 없었다. 그런데 3등 입상이라니. 그간 갈고닦은 기술에 자신감이 붙은 순간이었다.
“기분 좋았죠. 어깨에 힘도 들어가고. 워낙 예상에 없던 일이라 상장 찾을 생각도 못하고 살다가 6년 전에야 딸이 인터넷으로 찾아줬어요.”
한동안은 순탄했다. ‘국가의 인정을 받은 기술자’라는 명예에 힘입어 광주에 연 구두공장도 잘 돌아갔다. 그러나 이 나라의 대다수 자영업자가 그랬듯이, IMF와 함께 모든 것이 달라졌다. 운영하던 공장이 부도사태를 맞으면서 그는 전 재산 18억 원을 공중에 날렸다. 딸의 대학 문제로 아내와 딸이 서울살이를 하는 사이 그는 광주에서 후배의 구두공장에서 임금을 받으며 기술자로 일했다. 그렇게 생활을 이어 갔다. 그리고 2002년, 대한민국이 월드컵으로 일찌감치 후끈해졌을 때 그도 서울에 입성했다.
“그때 친구가 성수동에서 공장을 열려고 준비 중이었거든요. 나더러 ‘네 기술이면 여기서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세 가지 샘플을 준비해서 개업식을 하는데 ‘어떤 자식이 구두를 이렇게 골치 아프게 만들었냐’ 하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웃음)
개업식 이후 그의 이름은 삽시간에 성수동에 알려졌다. 차곡차곡 디자인 특허를 따고 남다른 구두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거듭 노력을 기울이면서 생활도 조금씩 윤택해졌다. 어느 날부터인가 방송, 신문 할 것 없이 수많은 미디어들이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고, 그때마다 구두에 품은 그의 남다른 자부심이 세상에 알려졌다. 모난 돌 같은 성격 때문에 이런저런 고생도 해야 했지만, 그는 명성을 따라오는 수많은 일들을 꿋꿋이 견뎠다. 자신의 신발을 찾는 고객이 있는 한, 다 괜찮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고객과의 만남이 모두 인연이라 말했다.
“사정이 있어 기성화는 못 신는 손님이 한 분 계세요. 일 년에 두 켤레씩 구두 주문을 전화로 하거든요. 내 머릿속에 그분 치수가 다 들어 있어요. 다른 신발이 아니라 꼭 내 신발이어야 한다는데 어떻게 기쁘지 않겠어요? 이런 게 인연이 아니면 뭐겠어요.”

유홍식명장

‘구두쟁이’들의 삶이 황홀해지는 날을 꿈꾼다
“성수동에 와서 정말 많은 일이 있었어요. 방송도 많이 나가고. 서울시장 신발, 대통령 신발도 만들어 봤고. 고생도 했고. 제일 뜻깊은 건 2018년에 아내와 함께 인사동에서 개인전을 한 거예요. 아내가 동양화를 전공했거든. 아내는 그림 전시하고, 나는 구두 전시했지.”
아내와 함께한 이 전시의 이름은 ‘동행’이었다. 구두를 만들어 아내의 공부를 뒷바라지했다는 이 구두 장인은 아름다운 문인화 곁에 두어도 손색없는 구두 작품들을 자랑스럽게 선보였다. 구두 백년 역사상 구두로 개인전을 한 사람이 없었으니, 이로써 유홍식 명장은 또 한번 최초의 자리에 올랐다. 그때의 소회를 ‘황홀했다’고 축약하는 그는 이러한 경험을 더 많은 ‘구두쟁이들’이 나누게 되기를 바란다.
“이 성수동에, 애증이라고 해야 되나, 그런 게 있어요. 애정이 더 크죠. 지금이야 명장이다 해서 좀 달라졌지만, 사실 우리 구두쟁이들이 가진 기술에 비해 명예가 없어요. 학력도 짧고 먹고사는 데 급급해서 제대로 뭘 보여 줄 기회도 많지 않고. 능력이 있어도 그걸 잘 못 보여 줘. 갈수록 소상공인이 어려워지고 있으니 제도적인 지원도 정말 필요하지만, 만드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느냐도 중요하거든. 나만의 구두를 만들겠다 하고 연구하고 노력해야 공장에서 찍어낸 것과는 다른 신발이 나오는 건데.”
단순히 후학을 양성해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생활의 일부인 구두가 명품이 되고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걸 더 많은 이들이 알아야 한다고 믿는다. 기성품의 저렴한 구두가 필요한 이들만큼 손으로 만든 맞춤한 신발이 꼭 필요한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앞으로도 신어서 편하고 보기에 예쁜 신발을 만들 계획이다. 신은 사람이 고맙다, 편하다, 좋다 말하는 신발. 오늘날까지 그를 이끈 것은 그런 칭찬들이었다. 제값을 받지 못해도, 그의 구두에 쏟아지는 칭찬과 격려가 보상이라 생각하고 싸게 판 적도 많았다.
“방송에 많이 나오고 해서 엄청 부자인 줄 아는 사람도 많지만 별로 그렇지도 않아요. 이제부터 착실하게 노후자금 모아야지. 근데 내가 신발을 만들면 얼마나 더 만들겠어요. 앞으로 한 3~4년이나 더 하겠지. 은퇴하면 여기 성수동 장인들이 오며가며 쉴 수 있는 공간을 하나 만들고 싶다, 생각해요. 장인들이 성수동에서 일만 하고 경쟁만 하는 게 아니라 모여서 차도 마시고 얘기도 하면서 더 좋은 신발을 만들 수 있게 쉬어 가는 곳. 개인적으로는 작업실 겸 매장을 하나 만들어서 아내는 그림 그리고 나는 구두 만들고 그러면 좋겠어요. 더 비싸고 더 좋은, 세상에 정말 단 하나뿐인 구두를 만들어 봐야 하지 않겠어요?”
사실 잘 숙련된 기술의 결과물은 예술과 다르지 않다. 문화유산으로 보호받는 수많은 건축물과 의복, 신발 등 유물이 대표적인 사례다. 독특한 선과 색을 가진 유물들은 종종 당대에도 돋보였겠으나 시간이 흘러 더 높은 평가를 받기도 한다.
먼 미래에, 어떤 구두들은 작품으로, 문화유산으로 남을 것이다. 기능적 측면이 높은 평가를 받을 수도, 미적인 완성도에 찬사가 쏟아질 수도 있다. 어쩌면 그 역사의 복판에 유홍식 명장이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미래가 도래하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의 신발과 함께 더 나은 삶을 탐험하게 될지 자못 기대된다.

유홍식 명장
대한민국 1호 수제화 명장이다. 2013년 성동구에서 선정한 수제화 명장이 되었고, 2018년 제1회 대한민국 수제화 명장 선발대회에서 남성화 특수 부분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1호의 책임감으로 수제화와 관련된 강연, 강의 활동도 하고 있다. 2018년에는 아내 노영애 작가와 함께 ‘동행’이라는 이름의 전시를 진행해 구두 백년 역사 최초의 개인전 작가로 이름을 올렸다. 현 성수동 ‘드림제화’ 대표.

"人사이드인터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