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인류 그대의 이름은] 실패의 경험에서 오는 또 다른 '시작'

人사이드인터뷰

[新인류 그대의 이름은] 실패의 경험에서 오는 또 다른 '시작' - 서울시립과학관 관장 이정모

2020.01.09

이정모

실패의 경험에서 오는
또 다른 ‘시작’

서울시립과학관에 가면 온통 ‘해볼 거리’가 넘친다. 직접 만지고 실험해 보고 체험하며 과학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서울시립과학관 이정모 관장은 과학은 ‘보는’ 것보다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한다. 수많은 업적을 쌓은 과학자들도 의문이 생겼을 때 생각에만 머물지 않고 직접 많은 시도를 해 봄으로써 새로운 사실을 발견해 왔다. 물론, 성공하기까지 무수한 도전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말이다. 이정모 관장은 우리네 삶 또한 과학과 다르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그가 말하는 ‘실패’와 ‘시작’에 대해 들어 보았다.

글. 노초롱 + 사진. 이정도

우연한 시작이 가져온 과학자의 길
“과학자들은 매일 실패합니다. 가설을 세우는 데 실패하고 관측, 관찰, 실험에 실패하며, 데이터를 분석하고 논문을 쓰는 데도 실패합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다가 그야말로 어쩌다 한 번 성공하죠. 그 결과로 아주 작은 표를 하나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작은 데이터들이 쌓여서 거대한 과학의 탑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서울시립과학관의 인사말에서 이정모 관장이 이야기하는 실패의 의미는 남다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의 모든 것이 매일의 실패로 쌓은 산물이라고 설명한다. 몰랐던 사실도 아니지만 이렇게 ‘콕’ 짚어 말해주니 왠지 과학이 이전보다 가깝게 느껴지는 것만 같다.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라고 소개하는 이정모 관장의 이야기가 통하는 지점이 아닐까.
대학 교수에서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을 거쳐 현재 서울시립과학관장을 재임하고 있는 이정모 관장이 과학의 길로 들어선 시작에 대해 들어 보니 뜻밖에도 처음부터 계획적인 것만은 아니었다고 한다. 재수까지 해서 입학했지만 정확히 어떤 학과인지 모르고 있다가 한 달쯤 지나서야 생화학에 대해 알게 됐다고. 당시 대학 생활이 그저 재미있어서 여러 학과 수업을 두루 섭렵해 나가다 보니 자연스레 진로를 정하게 됐단다.
“고등학교 때 배웠던 것과는 다른 차원의 생각할 틈이 있어서 좋았어요. 특히 2학년 올라갈 때쯤 어머니의 권유로 야학에서 활동할 기회가 있었는데, 학교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 가르치다 보니까 내가 이 분야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더불어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자체에 보람을 느껴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학년이 올라가면서 경제학이나 철학, 신학과 강의도 들었는데, 다양하게 접하면서 결국은 제게 맞는 과학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죠.”

과학과 대중을 잇는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
그렇게 시작된 과학의 길에서 이정모 관장은 학자에만 머물지 않고 강연가, 작가, 방송 활동 등 종횡무진으로 활약하며 대중들에게 과학을 보다 쉽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노벨상이 발표되면 방송이나 강연을 앞두고 이런 요청을 많이 받아요. 초등학생들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달라고 하거나 수식이 없는 과학 책을 써 달라고도 해요. 그런데 불가능하거든요. 과학은 이미 어렵기 때문에 인정하고 시작하는 거예요. 사실은 예술이나 경제, 철학도 어렵긴 마찬가진데, 문제는 언어의 낯섦에 있는 것이죠. 다른 학문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로 설명을 하지만, 과학은 수학이나 그래프가 바탕이 되니까요. 특히 화학은 수식이 빠질 수 없기에 과학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더 어렵게 받아들이는 거죠.”
과학에 다가서기 어려워하는 학생들에게 혹은 대중들에게 그는 눈높이에 맞춰 알려 주고자 한다.
“과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비단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만은 아니거든요. 우리가 좀 더 안전하게, 안심하며 살기 위해서 과학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지요. 예를 들어 살충제 달걀 파동 사건으로 서민들은 비싼 달걀을 사 먹어야 했고 전국의 많은 양계장이 파산하는 결과를 가져왔어요. 정부는 양계장을 살리기 위해 다시 세금을 쏟아야 했는데, 과학적으로 접근했더라면 그렇게까지 패닉에 빠질 일은 아니었던 거죠. 살충제 수치를 계산해 보면 성인 한 사람이 매일 5개의 달걀을 먹는다고 해도 건강에 이상이 없는 정도라는 걸 알 수 있거든요. 물론, 기준치를 넘기면 안 되지만 적어도 온 나라가 혼란에 빠지는 문제는 피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이처럼 일상 속 사례나 『해리포터』, 『삼국지』처럼 사람들이 잘 아는 이야기로 시작해 과학에 대한 관심을 끌어낸다고 덧붙였다. 그의 이야기로 말미암아 한 사람이라도 호기심을 갖고 과학에 접근한다면 그 또한 새로운 시작점이 될 터.

이정모

무수한 실패 끝에 얻는 성공의 시작점
과학은 실패에서 비롯된다. 더 많은 실패가 있어야 성공의 확률도 높아지는 셈. 이 관장은 실현 가능한 목표에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터무니없는 목표에서 실패하는 건 실패도 아니거든요. 될 것 같은 데서 시도해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겠죠. 뜀틀을 넘는다고 하면 몸 전체가 걸리는 게 아니라 엉덩이만 살짝 걸려서 넘지 못하는 정도라고 할까요? 그런데 그런 목표를 정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아야 하니까요. 시뮬레이션을 많이 해 봐야 알 수 있는 거죠. 자기 분야에서 그 지점을 찾으며 계속 도전하고 실패하다 보면 어느 틈엔가 뜀틀을 넘게 될 거예요.”
서울시립과학관은 최근 해파 장치를 설치하며 실패에 부딪혔다고 한다. 큰 규모에서는 파도가 만들어지는데 작은 규모에서는 쉽지가 않아 그 이유를 찾는 중이다. 하지만 이처럼 실패를 거듭하다 성공한 사례도 있다.
“아시아에서 제일 높은 12m짜리 토네이도 장치가 전시돼 있거든요. 바람을 빨아올려서 회오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처음에는 여러 물리 공식을 대입했는데도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9m짜리 토네이도를 만든 일본에 찾아갔더니 특별한 해답은 없었어요. 많은 실험을 통해 터득한 거죠. 그들은 오랜 기간을 준비했지만 우리는 1년 안에 만들어야 했거든요. 결국 4m, 8m 등 여러 시도 끝에 답을 찾을 수 있었어요. 2년 가까이 걸렸는데, 아마 중간에 시간에 쫓겨서 포기했다면 만들 수 없었을 거예요.”
이정모 관장은 인생도 과학과 다르지 않다며,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실 법원에 판결을 받으러 온 사람들도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이죠. 그들에게 다시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셨으면 좋겠어요. 다양한 간접 경험을 통해 어려움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방법을 누구보다도 많이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에 대한 애정을 갖고 민원인들에게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 주시면 우리나라가 명랑 사회가 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과학관들이 보고 배우는 것을 넘어 직접 체험하며 느낄 수 있는 과학관이 되도록 서울시립과학관의 프로그램을 널리 퍼트리고 지원해 나가겠다는 이정모 관장. 현재 하는 다양한 활동 외에도 대중들이 과학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싶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친근하게 대중과 소통하는 그의 길을 되짚어 볼 때, 어떤 시작을 준비하든 그 끝에는 바람대로 소임을 다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정모 관장 -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을 거쳐 서울시립과학관장을 맡아 '보는' 과학관을 넘어 '하는 과학관을 만들었다. 저서로는 「과학책은 처음입니다만」,「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1,2」, 「그리스 로마 신화 사이언스」 등이 있으며 다양한 강연과 방송 활동을 통해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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