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인터뷰]취향으로 말해요_취향을 공유하고 설계하는 사람들

人사이드인터뷰

2019.06.04

자신들이 좋아하는 주제로 토론하고,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끼리 새로운 정보를 얻는 문화 공간이 늘고 있다. 현대판 ‘살롱’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얻고, 메신저앱으로 친구의 안부를 묻던 많은 이들이 다시 사람들과 직접 만나는 ‘대면 소통’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뭘까? ‘문토’ 이미리를 대표를 만나 살롱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취향은 나의 힘, 살롱문화의 부활

프랑스어로 ‘응접실’을 뜻하는 살롱(salon). 살롱은 17~18세기 프랑스를 중심으로 귀족과 예술가, 시인과 철학자 등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대화와 토론을 나누던 지성의 보고였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살롱문화가 20~40대를 중심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독서, 영화, 음악, 글쓰기 등 각각의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들끼리 평일 퇴근 후나 주말에 모여 해당 분야에 관해 토론하고 취향을 나누는 공간이 점차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은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연결고리는 ‘취향’이다.

서울 마포구에 자리한 ‘문토’ 역시 다양한 사람들이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서비스 공간이다. 이미리 대표는 온라인에 넘쳐나는 무분별한 정보들이 오히려 고급 정보의 습득을 방해한다고 생각했다. 개인 취향에 맞는 양질의 정보를 얻고 동시에 취향이 맞는 사람들끼리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낀 그녀는 ‘묻고 토론한다’라는 뜻을 가진 공간 문토를 열었다.

“취향은 스스로를 지키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이것은 왜 좋고 나쁜지, 더 나은 것은 없는지 궁금해할 때 우리는 깊어지고, 남과 다른 내가 되지요.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고유한 취향에 대한 갈증과 관심사를 깊이 있게 나눌 수 있는 좋은 친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현직 전문가에게 듣는 양질의 정보

문토는 요리, 글쓰기, 음악, 영화 등과 관련된 다양한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한 모임 당 20명 이내의 멤버가 참여하고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모임의 리더로 참석해 다양한 생각과 정보를 공유한다.

“사람은 사람을 통해 가장 많이 배웁니다. 특히 해당 분야의 전문가인 리더와 모임을 꾸민다면 멤버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최신 정보이자 양질의 정보를 얻을 수 있어요.”

그렇다고 전문가 리더가 일방적으로 모임 멤버들을 ‘가르치는’ 방식은 아니다. 전문가 리더는 모임의 판을 짜고 큰 경험을 설계할 뿐, 모임은 멤버 모두가 일정한 주제로 토론하고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미리 대표는 이에 대해 문토가 ‘서로를 통해 성장하는 모임’을 지향한다고 덧붙였다.

“문토는 익숙한 길을 벗어나 매번 함께, 새롭게 질문하고 고민하고 나누는 새로운 경험과 커뮤니티를 제공합니다. 혼자서는 어려우니까 함께, 서로를 통해 성장하는 시간을 만들어가는 것이죠.”

요리 모임에서는 현직 셰프가 리더가 되어 멤버들과 근사한 한 끼를 차려낸 후 미식의 의미, 삶과 요리의 관계 등의 주제로 토론하며 저마다의 생각을 나눈다. 클래식 모임의 경우에는 클래식 음악 전문 공연 기획자가 전문가 리더로 참여해 클래식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 클래식 악기공장을 직접 찾아가 클래식에 대한 솔직한 감상을 나누는 ‘행아웃’도 진행한다.

다양한 모임이 운영되는 과정 속에서 특별한 결과물이 탄생하기도 한다. 글쓰기 모임에서는 그동안 쓰고 나눈 글을 문집으로 묶어 내기도 하고, 그런 글들이 독립출판으로 이어졌다. 음악 모임을 통해 악기를 연주하고 음악활동을 시작한 경우도 있다. 이미리 대표는 문토를 통해 일상이 즐겁게 변화하는 멤버들을 볼 때마다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행복한 변화의 시작, 사람

현대인은 ‘온라인’에 길들여져 있다. 정보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에서 얻고 친구의 안부를 물을 때는 메신저앱을 이용한다. 그런데 이들이 다시 사람들과 직접 만나서 소통하는 살롱문화에 빠지는 이유는 뭘까?

“온라인 등을 통한 비대면 소통이 잦아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깊이 있는 소통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것 같아요. 물론 대면 소통은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하기에 어려운 점이 있지만 많은 분들이 문토를 경험하면서 일상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체험하고 있어요. 퇴근길에 나만의 아지트가 생긴다거나, 말이 잘 통하는 새로운 친구를 사귄다거나, 한 달에 한두 번 특별한 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된다거나 하는 소소한 일상의 즐거운 변화가 대표적입니다. 정말 귀한 것은 마음과 시간, 정성을 쏟아야만 얻을 수 있잖아요.”

문토 모임에 참석할 때 꼭 지켜야 하는 약속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나이와 직업을 묻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호칭을 ‘OO님’으로 하는 것이다. 취향이 통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에 온전히 집중하고 보다 자유롭고 수평적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든 약속이다. 그래서 이미리 대표 역시 문토를 찾는 주 연령층이나 직업군을 특정하기는 어렵고, ‘다만 경험상 다양한 연령층과 직업군에서 문토를 찾고 있다고 짐작할 뿐’이다.

문토의 경쟁 상대를 묻는 질문에 그녀는 ‘회사’라며 웃었다. 30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한 주 52시간제 계도기간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적용되는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업무와 야근 때문에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는 멤버들이 많다는 것이 이유다.

이미리 대표는 분명한 취향이 없더라도 살롱문화를 통해 일상의 재미를 찾을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분명한 취향이 없는 사람들도 전문가와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스스로를 관찰하고 탐색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요. 이를 통해 내가 정말로 원하고 좋아하는 ‘취향’을 발견하게 되지요. 한번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잖아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나를 발견할 ‘기회’인지도 몰라요.”

글. 최덕철 _ 사진. 김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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