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카피, 세상도 바꿀 수 있는 힘!

人사이드인터뷰

한 줄 카피, 세상도 바꿀 수 있는 힘!_카피라이터 정 철

2018.12.05

장황한 내용의 인터뷰 요청 메일에 단 한 줄의 답신 메일이 왔다. "해봅시다! 까짓 거!", 역시 '카피라이터 정철'다운 수락 메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캠페인 카피였던 '사람이 먼저다', '나라를 나라답게',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서울시장 후보 시절 카피였던 '사람특별시', 그가 낸 '카피책'(허밍버드) 표지에 쓰였던 '당신이 쓰는 모든 글이 카피다' 등 얼굴은 몰라도 그의 카피 하나쯤은 대한민국에서 안 들어본 사람 없는 국가대표 카피라이터, 정철. 그에게 글쓰기의 힘, 힘있는 글쓰기에 대해 물었다.

글 쓰는 일, 그중에서도 광고 카피는 '글쓰기의 꽃'이라고 할 정도로 상당한 내공이 필요한 작업이라고 들었는데 이 일을 30여 년을 해오셨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자면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는지요.

글을 쓴다는 행위를 저는 이렇게 정의합니다.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그대로 30㎝ 밖으로 이동시켜서 종이 위에 내려놓는 것, 이것이 글을 쓰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동하는 동안 뒤틀리고, 분실되고 상처가 납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것과 종이 위에 쓰인 글 사이에는 차이가 발생합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걸까요? 글을 너무 잘 쓰려고 힘이 들어갔을 때 이런 현상이 발생합니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오히려 이 '잘'이라는 한 글자를 걷어 차버리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는 잘 써야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잘'이라는 글자를 던져버리고 그냥 내 머릿속 생각들을 내려놓는다고 생각하다 보면 오히려 글이 풀립니다. 그 내려놓는 양이 많아지면 그게 글로 바뀌는 것이고요. 하루아침에 글을 잘 쓰는 방법이 현실에는 없습니다. 머릿속 생각을 내려놓는 '양'을 늘리다보면 그게 '질'로 바뀝니다. 너무 잘 쓰려고 하지 말고 최대한 고스란히 내려놓는 연습, 그게 바탕이 돼야합니다.

글을 나 혼자만 읽을 것이 아니라면 남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명확하고 직관적인 글을 써야 할 텐데 이를 위한 방법이 있나요?

따라해 보기 쉬운 두 가지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첫째, 글을 쓸 때 연필을 내려놓고 부엌칼을 들었다고 생각하세요. 김밥 썰 듯, 글을 잘게 썰어냅니다. 이 방법 하나만으로도 글이 굉장히 많이 늡니다. 때로 잘 안 읽히는 글들이 있습니다. 안 읽히는 글의 공통점은 한 문장의 길이가 굉장히 길고 마침표가 상당히 늦게 나옵니다. 주어는 저 위에 있고 세 줄, 네 줄 만에 마침표가 보입니다. 생각이 긴 거리를 달려오다가 꼬이고 엉켜버려 비문이 됩니다. 그것을 여러 개의 문장으로 쪼개는 것만으로도 비문이 사라지고 명쾌한 글이 됩니다. 이건 글 쓰는 사람이 의지만 있다면 할 수 있는 일이죠.
두 번째는 조금 더 기술적인 것입니다만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준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라는 것입니다.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사진 한 장을 찰칵 찍어서 독자의 머릿속에 입력해 주는 거죠. 그렇게 하면 그 메시지는 훨씬 더 생생하고 오래 기억에 남는 장점이 있습니다. 글이 구체적이냐, 추상적이냐는 독자의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줄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남자화장실 변기 위에 '화장실을 깨끗이 사용합시다'라고 적혀 있다면 너무 추상적이고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아요.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요? '반 발짝만 앞으로 오세요'. 둘 다 같은 얘기를 하는 건데 차이가 느껴지죠? 오래 쓰는 연필이 있다고 칩시다. '오래 쓰는 연필'이라고 아무리 얘기해봤자 추상적입니다. 그런데 '연필 한 자루로 팔만대장경을 쓰다'라고 하면 상당히 구체적으로 그림이 그려지죠? 이 차이가 카피라이터로 말하면 실력 있는 카피라이터냐 아니냐의 차이가 되는 거죠.

읽는 이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도 글쓰기에서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습니다.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글쓰기 방법도 알고 싶습니다.

이전에 말씀드린 두 가지가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라면 이번에는 '무엇으로 이야기할까'에 대한 것이 되겠네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는 '사람' 이야기입니다. 세상에서 울림이 가장 큰 이야기도 늘 '사람'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사람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쉽게 마음이 열리고 관심을 가집니다. 술안주로 사람 뒷담화가 가장 재미다고 하잖아요. 하하. 그러니 가능한 한 사람 이야기로 풀어보세요. 제품, 기술, 제도 이야기도 사람 이야기로 풀었을 때 전혀 다른 느낌이 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예전에 제가 살던 아파트 앞에 모 대기업이 스포츠센터를 크게 세운다고 하여 비상이 걸렸고 아파트 주민들이 대책회의를 열었습니다. 저는 세입자였지만 카피라이터라 회의에 소집되었다가 아파트에 붙일 현수막 카피를 덜컥 맞게 됐습니다. 그래서 무슨 얘기를 어떻게 쓸까 고민했는데 보통 그런 현수막에는 붉은 고딕 글씨로 이렇게 쓰이죠. '아파트 코앞에 초고층 빌딩이 웬 말이냐', '시민의 삶 짓밟는 누구누구는 각성하라' 이런 글귀들은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집단이기주의로 보이기에 더 쉬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 이야기를 해보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쓴 카피가 '아이들이 햇볕을 받고 자랄 수 있게 한 뼘만 비켜 지어 주세요'였죠. 이 카피가 현수막으로 올라가 그 일대에 화제가 됐고 MBC 뉴스데스크에도 소개가 됐어요. 그 대기업으로선 당연히 부담됐겠죠. 결과요? 우리 아파트 바로 앞은 2층, 뒤쪽으로는 20여 층인 'L'자형 건물이 지어졌습니다. 그 카피가 왜 사람들에게 울림을 줬을까요? 공감할 수 있는 주제,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 '사람'을 얘기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용인의 새 아파트가 '서울보다 저렴한 파격분양가'라면 그 아파트에서 살 사람 쪽으로 시선을 옮겨 다시 얘기해보겠습니다. '용인에 집 사고 남는 돈으로 아내 새 차 뽑았다!'. 제도, 법률 등 딱딱한 얘기도 여기에 살짝 녹여낸다면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흡수될 수 있습니다.

광고 카피는 아이디어가 생명일 텐데 작가님은 어떻게 새로운 생각을 떠올리고 아이디어를 만들어내시나요?

올해 제가 쓴 책 중 「틈만 나면 딴 생각」(인플루엔셜)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을 쓰면서 제가 깨달은 것은 '생각은 떠오르는 게 아니라 찾는 것이다'라는 거죠. 여태껏 저도 생각이라는 것은 떠오르고 그 떠오른 생각으로 광고를 만들고, 글을 쓰고, 책을 펴낸 줄 알았는데,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생각이 저절로 떠오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그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죠. 대부분 제가 손전등을 켜고, 현미경을 끼고 머릿속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다 찾은 거예요.
광고 카피를 의뢰받으면 그 회사에 가서 오리엔테이션을 하잖아요. 그 프로젝트나 제품에 대해 소개를 받는 자리에서 설명을 들을 때 연상되는 것들을 막 적어놔요. 사물, 속담, 또 때로는 색깔이 될 수도 있고요. 모 카드사에서 새로 나온 빨간색 카드가 있다, 빨간색? 빨간 날? 빨간 날에는 ○○카드. 연상된 것들을 가지고 이렇게 아이디어로 발전시키는데 거기서 카피 A안이 나올 확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오리엔테이션 자리에서 적어 놓은 것들은 완성된 아이디어도 아니고 생각의 형태라고도 할 수도 없죠. 이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에요. 단지 습관과 치열함이 필요할 뿐이죠.

참신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고정관념을 깨는 작업이 상당히 필요할 것 같아요.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요?

먼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아니오'를 붙여 보세요. 적당히 아닐 것 같은 것에 붙이는 게 아니라 그냥 막 가져다 붙이세요. 기존의 생각들에 제동을 걸어보고 의심해보고, 부정해보는 훈련을 하는 겁니다. 그 다음 '아니오' 뒤에 어떤 문장이 올 수 있을까 찾아보세요. 그걸 찾으면 그게 발상의 전환이고, 그것을 글로 표현했을 때 아주 신선한 카피가 되는 겁니다. 발상전환을 위해 '아니오' 놀이는 굉장히 중요하죠. 일부러 비틀어보는 거예요. 억지를 부려보는 겁니다. 억지를 부려 보다보면 자기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을 찾을 때가 있거든요.
그 다음 또 중요한 것은 맷집을 키우는 겁니다. 새로운 시각을 말로, 글로 토해낼 때 비난을 들을 감수를 해야 합니다. 새로운 무언가를 하는 이들에게 창의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맷집인 것 같아요. 맷집이 없으면 못 버티죠. 내 나름대로 찾은 새로운 시각을 일단 던지고 맷집으로 버티다보면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지고 그것이 누적되면서 처음에는 '쯧쯔쯔' 하던 반응이, 저 사람은 뭔가 '다르다'로 바뀝니다.

작가님의 카피는 단순하면서도 기발하고, 그러면서도 따스한 여운이 남습니다. 연말을 맞은 <법원사람들> 독자들을 위해 따스한 카피 한 줄 부탁드려요.

저는 사람 이야기를 가지고 글을 쓰는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가슴 한켠에 '사람'이라는 두 글자가 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글을 쓰기에 따뜻한 여운을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사람을 구성하는 성분이 사랑, 긍정, 용기, 희망, 감사, 배려, 믿음? 이런 것들이라고 생각해요. 그 중 하나가 행복이고요. 연말이니 '행복'에 관한 카피 한 줄 드릴게요. 강연에서도 많이 전한 말,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니라 불만이다'. 우리가 어느 날 갑자기 불행해지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불만을 계속 내뱉다 보면 어느새 불행해져 있죠. 행복이라는 말이 어떻게 보면 굉장히 추상적이고 사람마다 그 기준에 큰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불만이라는 단어는 조금 더 명확하고 구체적이죠. 그러니 이 카피 한 줄로 여러분 모두 조금 더 쉽게 행복을 만들어가며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취재 한경희 | 사진 김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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