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초 감동의 순간은 수 시간의 기다림으로 만들어진다

人사이드인터뷰

0.1초 감동의 순간은 수 시간의 기다림으로 만들어진다_사진작가 신미식

2018.06.04

사진작가 신미식

나무 한 그루가 통째로 바닥에 거꾸로 박힌 듯한 희귀한 모습의 바오밥나무와 보석같이 빛나는 눈빛을 지닌 아이들. 사진으로 마다가스카르를 우리나라에 소개하여 척박한 땅 아프리카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던 사진작가, 2005년 이후 47번이나 아프리카를 방문했고 어느덧 ‘아프리카 전문’이라는 수식어를 갖게 된 사진작가 신미식을 만났다.

마다가스카르 바오밥나무가 있는 풍경.(사진: 신미식 작가 제공)

신미식 작가의 사진집 <마다가스카르 이야기> 표지 속 아이. (사진: 신미식 작가 제공)

소소한 일상, 그 속에서 발견한 감동의 프레임

경기도 평택이 고향인 그는 1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넉넉한 형편에서 자라나지는 못했지만 남의집살이 중에도 공간만 있으면 벽돌로 작은 화단을 만들어 꽃씨를 심고 꽃이 피어나기를 기다리던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정서적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었다. 워낙 형제들이 많았던 탓에 구속 없이 자유롭게 살 수 있었고 학창시절 친구들과 여행을 즐기며 그 속에서 세상과의 교감을 배웠다. 대학에서는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하고 13년간 잡지사, 신문사, 대기업 연수원, 방송국 등에 다니며 그래픽디자이너로 일했었다.

“월간 <빛과소금>에서 디자이너로 일할 때 <뿌리 깊은 나무>에 계셨던 이남수 선생님이 사진부장으로 계셨어요. 8년간 함께 일하며 매월 주제에 따라 전해 받는 그 분의 사진에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그 분의 사진은 대게 소박한 것들이었어요. 바다, 구름, 그 아래 밭을 가는 농부 등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이담겨 있었지만 감동이 있었습니다. 제 정서와 서로 통한 거죠. 지금도 그 분이 나한테는 스승이에요.”

기술적으로 단 한 장의 사진도 배운 것은 없지만 피카소에게 영감을 얻고 베토벤을 통해 음악가의 길을 선택하게 되듯 그 또한 그 사진부장님을 통해 영향을 받고 사진을 알게 됐다. 서른 살이 되었을 때 카메라를 매고 여행을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아트디렉터로서 인정받으며 꽤 높은 연봉도 받았지만 휴가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할 만큼 팍팍한 업무에 시달리고 일에 매여 옴짝달싹 하지 못하는 삶 속에서 그는 숨이 막혔다. 그래서 1998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전향하여 여행사진 작가와 그래픽디자인을 겸하는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2002년 <머문자리>라는 제목으로 당시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첫 포토에세이집을 내며 ‘여행사진 작가’라는 새로운 길을 만들었다.

“그 전에는 사진을 찍고 글을 써서 잡지에 싣는 사람들을 자유기고가로 불렀는데 제가 포토에세이집을 낸 후 여행사진 작가라는 호칭이 생겼어요. 이제는 많은 분들이 그 길을 따라 오고 계시지만 제가 여행사진 작가 1세대가 된 셈이라 행복하더라고요. 남이 가지 않은 새로운 곳을 가고 그곳에 길을 낸다는 일은 가슴 뛰는 일인 것 같아요.”

기다림으로 만들어지는 감동, 사진은 피사체와의 교감

사진에 빠진 이후 그의 주머니 사정은 나빠졌다. 그래픽디자이너로 회사에 다닐 때는 꽤 높은 연봉도 받았고 10여 년간 유럽, 남미, 아시아 등지를 배낭여행하며 비교적 여유가 있었지만 사진을 위해 회사를 그만두자 경제적 궁핍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신용불량자, 흔히 말하는 ‘신불자’가 되었고 이를 해결하고자 잠깐 프리랜서로 그래픽디자인 일을 했지만 양쪽을 오가는 자신이 치사하다는 생각에 2002년, 이마저도 그만두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2005년, 한 항공사의 팸투어를 통해 마다가스카르를 처음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들과 그들의 맑은 눈동자에 매료되어 이주 만에 다시 그곳을 찾으면서 아프리카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한국에서의 내 처지는 누구에게 말도 못 할 최악의 상황이었는데 그곳의 해맑은 아이들을 보니 이 아이들에게 무슨 걱정이 있을까 싶도록 부러웠습니다. 한국에서 신용불량자였지만 제가 가지고 있던 50불을 선뜻 그들에게 건넸고 그 50불은 그들에게 한 달의 생활비가 될 만큼 풍족한 나눔이 되었습니다.”

마다가스카르를 다녀온 후 그는 2006년 <마다가스카르 이야기>라는 사진집을 냈는데 국내 사진작가로는 처음 바오밥나무로 유명한 마다가스카르와 그곳 아이들의 보석 같은 눈빛을 사진에 담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사진 속 정면을 향해 (실제로는 렌즈를 향하고 있었을) 활짝 웃고 있는 아이들은 그 어떤 꾸밈도, 어색함도 없는 얼굴이었다.

“<마다가스카르 이야기> 표지 속 아이와는 사진 찍기 전 거의 1시간 동안을 같이 앉아 있었어요. 시간이 지나자 아이는 내게 먼저 다가와 장난을 걸었죠. 사진은 피사체와의 교감이에요. 카메라부터 들이대면 안 되죠.”

신용불량자로 10년, 주민등록말소 5년 등의 암울한 경제상황을 겪으며 전시회를 할 때마다 카메라를 팔아 경비로 보태고 돈이 들어오면 다시 카메라를 사는 일을 반복해야 했지만 아프리카를 향한 인연의 끈은 계속 이어갔다.

사진작가

47번이나 아프리카 방문하며 그곳 자연, 사람과 특별한 인연을 만들어가고 있는 사진작가 신미식.

(사진: 신미식 작가 제공)

사진전

<에티오피아>를 열어 아프리카에서 경험한 그 간의 추억을 함께 나누고 있다.

마음을 움직이는 사진, 세상을 움직이는 사진가

한국에 돌아와 마다가스카르 사진집을 내고 그 책을 들고 다시 그곳을 찾아갔다. 아이들은 자신의 사진을 받아들고 너무나 행복해했고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 자신도 행복해졌다. 한 번도 사진을 찍어 본 적 없는 이 아이들한테 자신의 얼굴이 담긴 사진은 의미 있는 선물이 될 수 있겠다 싶어 아프리카를 여행할 때마다 휴대용 포토프린터기로 아이들의 사진을 출력해 나눠주었다. 이와 함께 2006년부터는 아프리카 공정여행을 시작하여 신발, 의류, 책 등의 물품을 전달하고 아프리카, 네팔 등지에서 2,000여 가족의 가족사진을 찍어 액자로 전하는 등 의미 있는 선물을 이어가고 있다.

“저는 ‘기부’나 ‘후원’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 단어에는 주는 사람의 우월적 위치가 내재된 거 같아서요. 만약 조카의 양말이 다 떨어진 걸 보고 조카에게 양말을 사주면서 ‘기부’나 ‘후원’해주는 거라고 말하진 않잖아요. 선물한다고 하지. 같은 의미예요. 그들이 필요하다고 뭔가 달라고 한 적은 없어요. 그저 그들이 필요해 보이는 부분을 주는 거예요. 그냥 선물인 거죠.”

<머문자리> <떠나지 않으면 만남도 없다> <여행과 사진에 미치다> <감동이 오기 전에 셔터를 누르지 마라> <고맙습니다> <마다가스카르 이야기> <카메라를 던져라> 등에 이어 어느덧 34번째 책 <에티오피아>가 나왔고 20여 회 전시회를 연 (작가 자신의 표현에 의하자면) 원로급 사진작가가 됐다.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던 사진은 이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사진작가로서 자신의 사진에 감동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더 없이 보람 있고 행복하다는 신미식 작가. 그래서 자신의 사진전시회가 끝나고 나면 도서관에 기증해왔고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에도 기증해 감사패를 받은 일도 있다.

“앞으로도 전시회가 끝나고 나면 경찰서나 법원 등에 사진을 기부하려고 생각도 가지고 있어요. 내가 느낀 감동이 사진을 통해 전달되고 그것을 통해 한 사람의 마음이 위로를 받고 다시 따뜻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면 사진작가로서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평생 아프리카에 5개의 도서관을 짓겠다고 다짐했기에 ‘꿈꾸는 도서관 프로젝트’를 통해 현재 3개의 도서관을 건립했고 앞으로 남은 두 개를 더 세우는 것이 장기적인 목표일 뿐 나머지는 정해진 것이 없다는 신미식 작가, 세상을 향한 그의 감동은 부메랑이 되어 감동으로 가득한 세상이 되어간다.

취재 한경희 | 사진 김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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