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페라 테너 임형주의 목소리에는 남다른 힘이 있다. 누군가는 ‘아베마리아’를 들으며 속죄하는 심정으로 무릎을 꿇었고, 어떤 이는 ‘천 개의 바람이 되어’를 통해 지친 마음에 위로를 얻었다. 첫 방송 무대에 올라 재능을 뽐내던 어린 소년은 이제 세계 무대를 누비는 당대 최고의 팝페라 테너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그 목소리의 아름다움이 가슴을 두드린다.
열두 살 소년이 대중 앞에서 처음 노래를 불렀을 때, 사람들은 새로운 스타 탄생을 직감했다. 임형주는 1998년 당시 인기 음악 프로그램인 <이소라의 프로포즈>에서 ‘Don’t cry for me Argentina’를 불러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노래 잘하는 소년에 머무르지 않았다. 쏟아지는 시선 속에서도 차근차근 자기 길을 걸으며 숱한 ‘최초’와 ‘최연소’ 기록을 세웠다.
Q. 내년이면 데뷔 20주년이 됩니다. 일찍 데뷔한 덕에 실제 나이보다 활동 기간의 무게감이 남다른데요. 느낌이 어떤가요?
아직은 실감이 잘 나지 않아요. 처음 데뷔했을 때만 해도 제가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꾸준히 활동할 줄은 상상도 못 했으니까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데뷔 20주년 기념앨범과 투어 등 그에 걸맞은 활동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Q. 1998년 당시 인기 음악 프로그램이던 <이소라의 프로포즈>에 출연한 게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해에만 그 프로그램에 세 차례나 출연했어요. 당시 최고의 음악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요즘은 유튜브가 발달해서 그때 영상을 지금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요. 서른두 살이 된 지금, 어른들 앞에서도 떨지 않고 당당하게 노래한 열두 살의 임형주가 대견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Q. 세계 4대 메이저 음반사 모두와 독집음반 유통계약을 체결한 첫 한국인 음악가, 뉴욕 카네기홀의 3개 홀을 모두 정복한 최초의 한국인 음악가 등 임형주라는 이름에는 유달리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습니다. 사실 ‘최초’는 의미가 크지만 당사자에게는 어려움도 컸을 텐데, 고충은 없었나요?
세계 무대는 바람 잘 날 없는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수시로 경향이 달라지니 명성을 유지하기도 어렵고 자신의 중심을 지키기도 쉽지 않습니다. 미주, 유럽, 아시아 등 해외 무대에서 전방위로 활동하게 되었다는 것이 저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지만 그에 따르는 고통도 있습니다. 항상 라이브로 노래해야 하는데, 저도 사람인지라 몸 상태가 안 좋은 날도 있으니까요. 그렇더라도 청중과의 약속을 지켜야 하니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도 크죠.
Q. 그런데도 지금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활동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음악을 향한 원천적인 사랑입니다. 저에게는 노래가 밥 먹고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한 번은 목감기에 걸려서 의사로부터 휴식을 하라고 권유를 받고 ‘오늘은 쉬어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는데, 어느 순간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했어요. 저는 싫증을 잘 내는 편인데도, 음악만큼은 다른 데 눈 돌리지 않고 한 우물을 파왔어요. 어떤 점에서는 저도 신기합니다.
Q. 한 손에 꼽기 어려울 만큼 여러 가지 성취를 이루었는데,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이력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하나하나 소중한 경력들이지만, 굳이 꼽자면 2015년 아시아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미국 CNN iReport가 발표한 세계 3대 팝페라 테너로 선정된 것과 영국 BBC 뮤직 매거진에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팝페라 가수 TOP 5’에 안드레아 보첼리, 사라 브라이트만 등과 함께 이름을 올린 것이 기억에 남아요.
Q. 지난 11월에는 정규 6집 앨범 <마지막 고해>를 발표했습니다. 이번 음반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메시지는 무엇인가요?
몇 해 전 ‘천 개의 바람이 되어’라는 곡으로 많은 분을 위로한 경험이 있기에, 그저 제 노래를 듣는 분들에게 위안을 전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그동안 팬들에게서 ‘임형주가 부르는 성가곡을 듣고 싶다’는 요청도 있었기에, 성가곡집 느낌으로 접근했죠. 성가곡집이라고 하면 너무 딱딱한 느낌이라, 동명의 단편 영화와 함께 CD와 DVD 패키지로 출시했어요. 저의 대표곡인 ‘천 개의 바람이 되어’와 ‘아베마리아’가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들어가 있기도 합니다.
Q. 이번에 단편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연기에 도전했어요. 첫 연기 경험은 어땠나요?
처음이라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촬영 현장에 적응이 안 되는 점도 있었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 없으니까요. 다행히 다른 분들이 첫 연기치고는 자연스럽다고 해주셨어요. 오페라 연기 역시 무대에서 감정 표현을 하는 거잖아요. 그때 배운 것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Q. TV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얼굴이어서인지 2015년에 <복면가왕>에 출연한 것이 아직도 화제에 오릅니다. 앞으로 대중과 호흡하는 활동을 할 계획은 없나요?
다른 출연자를 두고 판정단이 저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어요. ‘내 목소리를 저렇게 모를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특히 <복면가왕>은 노래를 매개로 한 프로그램이어서 출연을 결심했어요. 지금까지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섭외를 받았지만, <복면가왕>처럼 저에게도 추억이 되고 시청자들에게도 좋은 기억을 선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어려울 거 같아요. 대신 팬들과의 소통은 SNS로 수시로 해요. 제가 올린 글과 사진을 통해 바로 반응이 오니까 저도 즐겁게 하고 있어요.
Q. 인생의 중요한 두 축이 ‘음악’과 ‘나눔’이라고 들었습니다. 지속적으로 나눔을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람들은 나눔이 일방적인 거라고 생각하지만, 저도 감정적으로 받는 것이 정말 많아요. 그래서 저는 나눔을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는 진실한 만남’으로 정의하고 있어요. 대한적십자사 홍보대사로 13년째 활동하고 있고 월드비전 홍보대사를 한 지도 6년이 다 되어가네요. 그 밖에도 여러 기구에서 홍보대사를 하면서 어떻게 해야 다른 분들에게 나눔과 기부에 대해 널리 알릴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Q. 봉사처럼 타인을 돕는 도덕적인 규범과 함께 법적인 규범도 안정적인 사회를 지켜가는 중요한 요소인데요. 법에 대한 임형주 씨의 생각은 어떠한가요?
제가 생각하는 법은 ‘부모님 같은 존재’예요. 누군가가 탈선하거나 죄를 짓는 순간에 ‘그건 아니다’라고 가이드라인을 주니까요.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이 있는데, 저는 오히려 법이 있어서 사회가 올바르게 돌아간다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이야기해주세요.
음악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진실한 음악가였다고 기억해주신다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물론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글_정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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