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일상 X 마음대담] 새로운 시작, 희망의 여정 그 길을 함께 하는 든든한 지원군

人사이드인터뷰

2024.05.08

서울회생법원 김규환·진찬희·이복길·주현우·김현민 상임 관리위원

서울회생법원 앞 긴 계단에서 상임 관리위원 전원이 단체 사진을 찍었다. 계단에 멋지게 선 그들 너머로 ‘새출발의 디딤돌’이라는 문구가 걸렸다. 그들이 서 있는 그 계단을 무수히 많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마지막 희망을 안고 오른다. 절박한 상황으로 계단 앞에 서서 ‘새출발의 디딤돌’이라는 문구를 보며 사람들은 다시 한번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그렇게 마지막 힘을 내 계단을 오르면 전직 금융전문가로 구성된 회생법원의 상임 관리위원을 만난다. 회생법원의 상임 관리위원, 실패를 절망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만들어주는 사람들이다.

글 이재영 사진 조인기

김규환 : 관리위원끼리는 자주 보지만 이렇게 자리를 만들어 일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한다니 특별한 경험이네요. 다들 바쁘게 일하는 중이라 다 모일 수 없는 게 아쉽네요. 저희가 대표로 잘해 보죠.
진찬희 : 법원에 계신 분들 대부분 그렇듯 민원인들이 불편 없게 해야 하니 여유 있게 대화 나눌 시간이 없죠. 오늘 이런 기회가 생겨 저도 기쁩니다.
주현우 : 일단 자기소개를 먼저 할까요?
이복길 : 네, 제가 먼저 인사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하나은행에서 지점장과 경영컨설팅팀의 수석컨설턴트로 근무를 했습니다. 정년퇴직 후 예금보험공사에서 저축은행의 경영관리 업무와 파산재단 관리업무를 담당했으며 수원지방법원에서 회생업체 감사로 4년 동안 근무를 했습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서울회생법원 관리위원으로 근무한 지 8년 차입니다.
김현민 : 안녕하세요. 김현민입니다. 연수원 38기 변호사이고요. 변호사 2년 차 때 근무하던 법무법인에서 은행의 구조조정실 자문을 하는 파트에서 일했어요. 워크아웃, 기촉법에 의한 워크아웃 등 채권은행이 주도하는 구조조정 업무를 하는 곳에서 법률 자문을 했습니다. 이후에 하나은행에 들어가 기업개선부 및 여신관리부 소관 부서에 변호사로 근무했습니다. 자녀 양육 문제로 잠시 쉬다가 관리위원으로 재취업했어요. 근무한 지 1년 반 좀 넘었습니다.
김규환 : 안녕하세요. 관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규환입니다. SC제일은행에서 37년간 근무하면서 IMF 시기를 거치고 워크아웃 업무, 기업 구조조정 업무를 맡아 했습니다. 퇴직 후 경기도청 금융자문관으로 2년 간 근무했는데, 그때 추천을 받아서 관리위원에 지원했습니다. 현재 9년 차에 접어들었고 오는 6월에 임기를 마치게 됩니다. 그동안 500여 개의 기업과 여러 개인의 회생을 관리했는데 근무 기간 내내 굉장히 만족스러웠습니다. 떠나려니 아쉽네요.
진찬희 : 위원장님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진찬희입니다. 서울회생법원에 오기 전에 신한은행에서 근무했습니다. 은행에서 근무할 때는 주로 대기업 등 경영 상태가 좋은 기업을 많이 상대했는데 지금은 정반대의 기업을 돕고 있죠. 퇴직하고 생산성 본부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어려운 회사들을 많이 봤습니다. 그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할 무렵 관리위원 추천을 받고 일하게 돼 벌써 8년 차네요.
주현우 : 안녕하세요. 6년 차 관리위원 주현우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 제 이력이 제일 독특한 것 같네요. 저는 벽산건설에서 기획실장 임원으로 퇴직을 했는데요. 퇴직 무렵 회사가 재정적으로 어려워서 회생 절차를 밟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담당 임원으로 회생과 관련된 업무를 주로 맡아 했죠. 이후에 STX 조선해양의 회생 절차를 채무자의 지위로 총괄 지휘한 이력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지식을 나누는 일을 하길 바랐는데 마침 기회가 있어서 관리위원에 지원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전문가의 공력을 발휘하다
김규환 : 주현우 위원님은 회사의 회생절차를 밟은 걸 계기로 관리위원을 하게 됐으니 완전히 반대에 입장에 있어 봤군요.
주현우 : 네, 그렇죠. 그 경험이 지금 관리위원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제가 반대 입장에서 느꼈던 부분, 아쉬웠던 부분을 생각하면서 현재 어려움에 처해 있는 채무자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런 것들을 잘 살피려고 합니다. 제가 좀 드문 사례라 관리위원이 되고 초반에 법관 분들 대상으로 주제 발표를 했어요. 그때 말씀 드렸던 게 채무자의 눈을 맞추고 마음을 살필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거든요. 다들 불안한 상태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아주 크게 다가옵니다.
김현민 : 역지사지가 저절로 되시겠어요. 어떤 경험이든 버릴 경험은 없다는 게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김규환 : 그렇지요. 저희도 어떻게 보면 전혀 다른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죠. 은행에서 근무할 때 복잡한 일을 처리하고 격무에 시달리면 공무원할 걸, 하는 소리를 자주 했어요. 공무원에 대해 모르고 한 말이었죠. 경험해 보니 밖에서 보는 것처럼 편안하기만 한 직업은 아니더라고요. 일도 정말 많고 민원인을 상대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고요. 봉사한다는 생각이 없으면 안 되는 일이더군요.
진찬희 : 맞습니다. 저도 은행 근무만 했고 공무원 조직은 생각도 못 했는데 우연히 이렇게 근무하게 된 것이죠. 실제 근무해보니까 절대로 편안하게 일하는 조직이 아니에요. 우리 회생법원만 해도 모든 분들이 채무자들을 위해 엄청나게 노력하시잖아요.
이복길 : 성심성의껏 열정적으로 일하고 계시죠. 그 과정에서 저희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김규환 : 우리 관리위원님들 모두 수용력이 뛰어난 분들이고, 또 반 발짝 정도 민원인들과 더 가까이서 채무자들이 쉽고 빠르게 회생할 수 있도록 애쓰고 계시죠.
진찬희 : 아무래도 6개월에서 2년에 한 번 순환 근무를 하는 다른 분들과 다르게 전문 임기제 공무원이라 조금 차별화된 것도 있고요. 업무의 연속성이 필요한 분야인데 그런 것들을 저희가 보완해 주고 있는 거죠.
주현우 : 채무자들은 마음을 다친 상태에서 오기 때문에 아주 섬세하게 대해야 할 필요가 있잖아요. 오랜시간 같은 업무를 보는 사람들이 그분들에게 안정감을 주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현민 : 은행에 있을 때는 항상 은행 입장에서만 사건을 바라봤습니다. 채권자 입장만 생각했으니 약간 편향
되었다고 할 수 있죠. 우리 채권이 어떻게 변제될 것인가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봤는데 관리위원으로 근무하면서 회생 사건이 전반적으로 어떻게 진행이 되고 각 절차에서 쟁점이 되는 법률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그걸 구체적으로 두루 살필 수 있어서 이 일을 시작한 것이 잘했구나 싶어요. 또 조직 안에서의 경험이 많지 않은데 조직에서 오랫동안 다양한 경험을 쌓은 관리위원님들과 일하면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관리위원님들 모두 돌발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이 훌륭하시잖아요. 볼 때마다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복길 : 김현민 위원이 겸손하게 이야기하시네요. 업무능력이 뛰어나신 분인데 말이죠.
김현민 : 아닙니다. 서로의 이해가 충돌할 때 저는 굉장히 당황해요. 저희가 6명, 3명 이렇게 근무하잖아요. 그 안에서 다른 사건을 진행하는 걸 볼 수 있는데, 저에게는 배우는 시간이에요. 굉장히 좋은 경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복길 : 저희 모두가 서로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사실 저는 김현민 의원과는 좀 다른 의미로 일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흔히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산다고 하잖아요. 통상 퇴직 후 재취업을 하게 되면 과거 업무와 연관성이 없는 일을 할 가능성이 높은데요. 다행히 저는 이전 업무와 관련하여 더욱 전문적인 일을 하니 행복합니다. 그동안의 경력이나 공부들이 관리위원 업무에 도움이 되어서 갖고 있는 능력을 잘 쓸 수 있는 시간이에요. 저희 업무가 전문지식뿐 아니라 일반적인 상식과 경험도 필요하고 사람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중요하죠.
주현우 : 네, 친절과 다정함이 배어 있어야 하는 그런 일이에요.

국가경쟁력을 위해 꼭 필요한 회생제도
김규환 : 저희 일이 만족도가 높죠. 다만 채권자들과 이해관계가 맞지 않아 회생을 못 하게 될 때 참 아쉽습니다. 제가 볼 때 아주 좋은 기업이라 꼭 인가를 시켰으면 하는 마음에 많은 도움을 줬는데, 결국 채권자들이 부동의해 폐지되는 기업들이 있어요. 많지는 않지만, 간혹 그런 기업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워요.
이복길 : 회생에 있어 저희도 역할을 하지만 채권자들도 정말 중요하죠.
김규환 : 맞습니다. 어떤 사건은 안 될 것 같았는데 채권자들이 채무자의 내용을 잘 이해해서 마지막에 동의해 줘서 회생하기도 하잖아요. 그럴 때 정말 좋죠. 일의 만족감이 확 높아져요. 물론 이 일이 생각보다 업무량이 많은데, 그동안의 경험이 일을 소화할 능력이 돼서 할 만합니다. 다른 분들도 그렇지 않나요?
일동 : (수긍)
김규환 : 전문가들이 와서 회생 기업에 도움을 주고 법원의 업무량도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조정한다는 관리위원 제도가 취지에 맞게 잘 시행되고 있습니다. 위원들의 개인적 만족감도 높고요.
주현우 : 효율과 효과에 대해 말씀하셨는데요. 저는 전문성 있는 로펌이 빠르게 형성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과거에 도산 절차를 밟으면서 생각했던 건데요. 합리적이고 신속하게 이끌어줄 수 있는 법률적 조력자가 많지 않다는 게 정말 아쉬웠어요. 이 생각을 한 지 10년이 훨씬 넘었는데 시장은 여전히 활성화되지 않고 있어서 좀 안타깝습니다.
이복길 : 회생 업무 쪽에 관심을 두고 있는 법무법인은 많아졌는데, 경험이 적고 회생업무에 익숙하지 않은 사무원들이 업무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아지다 보니 관리위원이나 법원 실무자들이 항상 새롭게 지도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죠.
주현우 : 전문 시장이 활성화되면 해결이 가능한 문제이지 않을까 싶어요.
이복길 : 시간이 지나면서 나아지길 바라는 부분이죠. 사실 관리위원 초기에는 전산화가 좀 덜 되었어요. 그때는 야근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런데 전산화가 되고 업무 효율이 많이 개선됐죠. 그런 식으로 점차 나아지지 않을까 싶네요.
진찬희 : 어려운 점을 말씀하시니 생각납니다만 연차가 쌓이면서 절차에 익숙해져서 업무 자체는 문제 되진 않죠. 다만 채무자들이 좀 더 회생제도를 잘 이용해서 회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실제로 회생 신청 후 인가 등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지 않아 중간에 파산하는 사례가 많은데 그런 점이 안타까워요. 근래 특히 그런 경우들이 많거든요. 파산이나 회생이 전반적인 경기 등 사회 환경과 관련이 있지만 한편으로 제도에 대한 이해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경영하시는 분들이 관련해서 미리 알고 이런 제도를 이용하면 회생하는 경우가 더 늘어날 테니까요. 회생이라는 게 길게 보면 국가 경제적으로 더 득이 되는 일이잖아요. 채무자뿐 아니라 채권자들에게도 회생제도가 잘 홍보되었으면 좋겠어요. 국민들이 회생 제도에 대해 좀 더 폭넓은 이해를 가질 시점이 왔다고 생각합니다.
김규환 : 비용 문제에 대한 것도 고민해야 할 지점이죠. 일반 개인 회생은 소송 구조제도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기업 회생, 파산 파트는 소송 구조제도가 없어요. 기업 쪽도 국가에서 예산을 배정해서 인가를 받거나 파산 선고가 난 업체에 절차 비용을 지원해주는 제도가 있다면 어떨까 싶어요. 그렇게 되면 회생, 도산 업무를 이용하는 사람도 많아지고 굉장히 발전하겠죠. 진 위원님 말씀처럼 회생은 긴 안목으로 봐야 해요. 기업이나 개인이나 완전한 절망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것보다 다시 용기 내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전체적으로는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김현민 : 변호사 수임이나 조사위원 조사비용이 일반 중소기업이 봤을 때는 좀 부담스러운 금액일 수 있죠.
김규환 : 그런 부담 때문에 회생의 기회를 놓치는 기업을 위한 지원 제도가 정착되면 참 좋을 것 같아요. 물론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에서 일부 지원하는 제도가 있지만 모두 혜택을 받을 수 없으니까요.
주현우 : 현실적인 제도도 필요하고 또 교육도 활발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진 위원님이 말씀하셨던 홍보의 일환인데 미리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큰 차이니까요. 개인적으로 분기에 한 번 정도 외부기관 강의 일정이 있는데, 주로 금융기관이나 보증기관 종사자로 구성됐던 수강자들이 요즘 점점 다양해지고 있어요.
이복길 : 강의에서 주로 어떤 질문을 많이 받으세요?
주현우 : 가장 많이 받는 건 채무자에게만 우호적인 제도가 아니냐는 거예요.
진찬희 : 그런 오해가 많죠.
주현우 : 채권자에게 가혹하다는 거죠. 회생제도가 채무자법 아니냐고 강하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진 위원님 말씀대로 사회 경제적인 비용으로 넓게 보지 못하시는 거죠. 그럴 때 이렇게 설명합니다.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인적자원 대부분이 잘 돌아가야 국가 경쟁력이 생긴다고요. 때문에 실패했다고 자원을 놀리는 것과, 일부라도 면책해서 다시 경제에 기여하는 것과 어떤 것이 더 낫느냐는 거죠. 이런 취지로 채무자 회생법이 존재하는 것이니 그런 관점에서 좀 봐주십사 설득하곤 합니다. 그리고 항상 하는 이야기는 내가 어느 위치에 있을지 모른다는 걸 생각하시라고 해요. 지금은 채권자이지만 채무자가 될 수도 있고 또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고요. 그러면 많이 수긍하세요.

개인과 기업 모두에게 힘이 되는 회생 제도
김규환 : 이 일이 좋은 게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는 거잖아요. 다들 인가받은 업체 채무자들에게 전화를 좀 받으시죠?
일동 : 네, 받죠. 하하.
김규환 : 저는 7년 전에 인가된 일인데 주기적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분이 계세요.
김현민 : 한두 번도 아니고 주기적으로요? 엄청 감사하신 가봐요. 어떤 사연인지 궁금합니다.
김규환 : 채무자인 남편이 회생절차를 신청했어요. 부인의 언니가 사업을 하는데 공무원인 남편이 보증을 섰어요. 언니가 사업에 실패하고 남편에게까지 피해가 온 거죠. 그 부인이 변호사도 없이 자기가 신청을 해놓고 찾아와서 울면서 하소연을 했어요. 언니를 도와주다가 남편이 공무원 생활을 못하게 됐다면서 꼭 회생해달라고 사정을 하더라고요. 변호사도 없이 혼자서 하시니까 양식을 알려주면서 물었죠. 자세히 설명해 줄 테니 필요할 때마다 와서 묻고 잘못된 거 수정하면서 혼자 할 수 있겠느냐고 하니, 알겠다고 해요. 그 분 모든 절차를 도와드렸어요. 회생 계획안 만들고 채권자 동의 받아와서 결국 인가했어요. 남편도 공무원 지위가 유지됐고요. 10년 동안 급여에서 전체 채무 약 5%를 변제하면 나머지는 면제되는 회생계획으로 통과됐는데 아직 3년 정도 남았거든요. 이 분이 분기에 한 번씩 전화를 해요. 고맙다, 잘 갚고 있다면서요. 그런 분들 보면 저도 행복하고 일에 대한 만족감도 커지죠. 회생제도의 존재 이유를 알게 하는 그런 사례에요.
김현민 : 국가경쟁력이라는 큰 틀을 놓고 보면 기업들의 회생도 중요하지만 개개인의 회생도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이 더 어려운 입장일 경우가 많은데, 해결해 드리면 보람되죠. 그 분도 회생 덕에 더 나은 새로운 출발을 하신 거네요. 듣기만 해도 뿌듯합니다.
이복길 : 맞습니다. 그래서 회생제도가 우리 사회에 더 널리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려운 사람들이 이용하기 쉽게, 적은 비용으로 회생해서 새 출발할 수 있는 제도로 점점 발전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김규환 : 그렇게 되도록 우리 위원들이 매일매일 노력하고 있죠. 하하.
주현우 : 그렇다면 저는 반대로 큰 기업 회생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2년 좀 넘은 것 같은데 모 항공사 회생절차를 맡았었어요. 2년 동안 운항이 중단됐던 회사인데, 당시 미지급 급여만 550억 원 이었어요. 이후 발생한 게 200억 원으로 총 750억 원 상당의 미지급 급여가 있었죠. 절차 초창기에 주요 직원 10명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습니다. 임금을 못 받는 어려움과 답답함은 알지만 일단 회사가 돈이 없으니 당장 돈을 내놓으라고 할 게 아니라 회사가 돈을 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회생 절차를 통해서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권고하였죠. 많이 수긍했고 결론적으로 인수 절차가 잘 진행돼서 인가 결정이 났어요. 대부분 직원들이 법정에서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저도 뭉클한 순간이었어요. 과거에 임금을 받지 못했던 저의 경험도 떠오르더라고요.
진찬희 : 감동스러운 순간을 경험하셨네요. 그분들 임금은 다 정리된 거죠?
주현우 : 몇 달 후에 확인하니 일시에 다 받았더라고요. 250명 직원들도 대부분 복직했고요. 정말 좋은 일이었죠. 나중에 전화를 받았는데 ‘저희 항공사를 이용하시면 VIP로 해드리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꼭 이용해달라고 신신당부하셨는데 개인 일정도 안 되고 아직 이용하지 못했습니다. 하하.
김현민 : 저도 회생 업무하면서 가장 보람될 때가 미지급 급여와 퇴직금이 순차적으로 지급될 때예요. 회생 신청하면 직원들이 상당히 동요하고 법률상 관리인으로 간주된 대표자가 임금 지급을 미루는 경우가 있잖아요. 자금 지출 상황에 대해서 관리위원이 점검하고 감독하는 시스템이라 저도 회생 절차 기간 중에 미지급 급여도 분할해서 나가고 급여 지급이 잘되도록 지도를 많이 합니다. 가끔 급여를 나중에 지급하려는 대표들이 있어요. 당장 나가야 할 원재료 매입 대금이나 채무 변제가 급하다고 생각해서요. 그런데 급여가 안 들어오면 정말 큰일이잖아요. 생활이 무너지니까요. 급여가 잘 들어와야 직원들이 안정적으로 근무하고 그래야 영업 활동도 빠르게 정상화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급여 지급이 잘 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보람 있습니다.
진찬희 : 저희는 특히 급여가 잘 지급되는지 관심 있게 보죠. 급여가 안 나가고 4대 보험 납부가 안 되면 근로자들이 금융기관 대출 연장도 안 되고 어려운 점이 많아요. 저희한테 하소연하기도 하고 탄원서를 보내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땐 정말 안타깝습니다.
김현민 : 가끔 직원들에게 문의가 오는데, 대표가 ‘법원에서 급여를 지급하지 말라고 했다’면서 급여를 안 준다는 거예요. 법원 핑계를 대고 거짓말하는 거죠.
김규환 : 최우선이라는 말이 어디에도 쓰여 있지 않지만 급여 변제가 최우선이죠. 직원들이 급여를 받아야 회사가 돌아가니까요. 그렇게 법원 핑계를 대는 분들이 간혹 계신데 그러면 잘 설명하고 관리 지도를 다시 하죠. 다양한 분들이 계시니까 해석도 다양하게 하시고요. 하하.
이복길 : 좀 다른 이야기인데, 기억에 남는 사건에 대해 말하자면 제가 만난 어떤 분은 처음 신청서에 장문의 편지를 첨부하여 제출했어요.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도회지로 나와 공장에 다니다 기술자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고, 그 후 남편이 작은 자동차부품 회사를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작게 시작한 회사가 매출이 증대되니까 수십억 원의 은행대출을 받아 공장을 확장했는데, 그 직후에 남편이 바로 병으로 돌아가신 거죠. 부인이 상속을 받았으나 직접적인 노하우나 기술이 없는 상태다 보니 여러가지 어려움에 처하게 되어 회생절차를 신청하게 됐다는 내용이었어요. 안타까운 사정이라 꼭 회생이 잘 되었으면 싶었죠. 다행히 절차 내에서 공장을 적정한 가격에 매각하고 다시 작은 임차공장으로 옮겨 회사를 유지하며 직원들도 근무를 계속하는 걸로 잘 마무리 됐어요. 그때 회생절차라는 게 필요한 기업이나 개인에게는 참 좋은 제도라는 걸 새삼 느꼈어요.
진찬희 : 회생 절차가 한 번 신청해서 인가, 폐지로 완전 결론이 나는 게 아니고 종결됐어도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다시 신청하는 경우가 있죠? 저도 폐지된 기업을 다시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인가될 때까지 기간이 최장 1년 반인가요? 두 번 하게 되면 3년 정도 한 회사를 계속 담당하게 되는 거죠. 이복길 위원님이 제일 길게 하신 것 같은데 몇 번까지 하셨죠?
이복길 : 한 골프장을 네 번 했어요.
진찬희 : 한 사건을 네 번 하신 거죠. 결국은 인가되고 종결했죠?
이복길 : 네, 회생절차가 마무리되면 시장에 정상적으로 복귀한 걸로 보는데, 가끔 회사직원과 통화를 하게 되면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어요. 제가 보기엔 인가 후에 운영자금조달, 경영권 지분확보, 회계처리, 조세 등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어서인데 이런 문제들에 대하여 컨설팅을 받을 수 있으면 좋을텐데, 그게 또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제도적으로 도움을 주었으면 하는 안타까운 부분이죠. 종결 후 대처하는 노하우 등을 잘 지도할 수 없는 게 아쉽다는 얘기를 저희끼리는 자주 하죠. 법무법인이나 회계법인에서 조력을 받으면 좋지 않을까 해요.
진찬희 : 관련해서 저희 회생법원이 한국자산관리공사와 협약 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어요. 앞으로 더 활성화 되면 좋겠습니다.

회생,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일
김현민 : 현장 검증하셨던 얘기도 좀 해주세요. 많이 하시죠?
주현우 : 종종합니다. 현장 검증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조선소인데요. 주심 법관님과 참여관님과 함께 KTX 타고 울산까지 가서 봤죠. 굉장히 큰 규모의 조선소여서 가는 길에 마음이 엄청 무거웠어요. 그런데 배 위에 올라갔는데 규모에 입이 벌어지더라고요. 날이 좋은 날, 골프장 현장 검증을 가면 걱정 가득한 마음으로 갔다가 잠깐 또 자연에 감탄하고요.
김규환 : 저도 골프장 사건을 약 10여개 관리했는데 일부 골프장은 현장 검증을 갔었어요.가면 관계자들이 골프 치러 오라는 이야기를 꼭 하세요. 하하. 제가 지금 관리위원 9년째인데 오히려 현장 검증 거치고 회생에 성공한 골프장으로 골프가는 것이 꺼려집니다. 지금도 꼭 한 번 오라고 전화가 오는데, 고마운 마음만 간직하고 있습니다. 저는 주 위원이 말했던 조선소처럼 규모에 압도당한 현장검증이 있었어요. 해운 회사 현장검증 차 부산신항에 갔었는데 컨테이너를 가득 실은 우리 선박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더라고요.
주현우 : 가서 보면 완전히 다른 느낌이죠. 화면으로 볼 때와는 다른 웅장함이 있어요. 제가 올랐던 배는 잠실 롯데타워를 기울여 놓은 것보다 컸어요. 엄청난 거죠.
김규환 : 네, 커다란 컨테이너선이 들어오는 데 마음이 뭉클뭉클하더라고요. 배가 아니라 산처럼 느껴질 정도로 웅장한 모습에 우리 경제가 이렇게 발전했구나 싶은 마음이 들면서 진짜 가슴이 벅차더라고요. 현장에 가서 보지 않으면 못 느끼는 거였죠. 월 매출액 수천억 원인 회사였는데 채권자들과의 이해관계가 얽혀서 결국 파산을 진행하게 되서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컨테이너가 항구로 들어오면 예인선에 끌고오는 그 큰 컨터이네선을 마주하고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꼈습니다. 수석부장님을 포함하여 현장검증 참석한 모두가 회생시키려는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했는데 채권자들과의 이해관계를 해결하지 못해 결과적으로는 파산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현우 : 그 업체가 회생 절차 기간이 얼마나 됐어요?
김규환 : 파산 선고까지 약 8개월 정도 진행했는데, 회사의 사업장과 컨테이너 등 영업자산이 전 세계에 퍼져 있어 일정 수준까지 정리가 필요했는데 약 8개월 정도 걸려 정리되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짐을 싣고 전 세계를 누볐을지 생각만 해도 벅찬데, 정리하는 과정을 함께 했죠. 9년 관리위원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순간이었어요.
주현우 : 제가 관리위원 하기 직전에 STX조선해양 총괄을 했어요. 거기는 4% 정도 변제하는 회생계획안으로 인가를 받았고 지금은 조선소를 잘 운영하고 있습니다. 당시 세계 4위 조선소였는데, 당시 세계 1위가 현대중공업이고 2위가 대우조선해양, 3위가 삼성중공업, 4위가 STX죠. 세계 4대 조선사가 우리나라에 있었어요. 자랑스러웠죠.
당시에 모든 국책은행, 시중은행이 다 모여서 고심하며 회의했습니다. 4조 원 넘는 빚을 탕감하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심각한 자리였는데 농협은행 심사위원이 벌떡 일어나서 한국산업은행은 국가의 돈을 관리하시고, 수출입은행도 마찬가지죠, 저희는 농민의 피로 만든 자금이라면서 더 주셔야 한다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아요.
이복길 : 차등 변제에 합리성이 있네요. 하하.
주현우 : 지금도 저는 농협은행이 채권자 군에 있으면 그때 생각이 납니다. 농민의 피라고 말씀하셨던… 어떤 돈이든 중요치 않은 게 없지만 더 와 닿았어요.
김현민 : 훌륭한 직원이네요. 단순히 직원의 지위가 아니라 정말 내 은행을 생각해서 발언한 거잖아요.
진찬희 : 그렇죠. 조직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거죠. 저도 규모로 압도당한 경험이 있는데요. 얼마 전에 채권자만 2만 7천 명 정도 되는 사건을 맡았습니다. 하하.
주현우 : 엄청나네요. 하하.
진찬희 : 주로 개인 채권자들이었어요. 투자회사였고 오너는 교도소에서 형을 살고 있는데요. 그 사람들을 관리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채권자 명단을 확정하고, 단계 단계마다 한 사람이라도 누락되거나 금액이 틀리면 안 되니까 하나하나 입력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죠. 법원 전산에 하루에 모두 입력하지 못하잖아요. 하루에 5천 명까지라서요. 주말까지 입력하고 부장판사님도 그것이 제대로 됐는지 확인하시느라 주말을 반납하셨죠.
이복길 : 2만 7천 명 서류만 해도 어마어마하네요.
진찬희 : 산처럼 쌓여서 기념으로 보관하고 있다가 얼마 전에 폐기했습니다. 하하.
김현민 : 채권자가 그렇게 많으면 모두 만족시키는 결과를 내기가 정말 힘들죠.
진찬희 : 절대 만족 못 시키죠. 변제율이 1~2%나 될까, 그래도 이거라도 받으라고 채권자들을 설득했어요. 모두 잘 설득해서 인가가 됐습니다.
김규환 : 모두 다양한 경험들을 하고 계시네요. 그래도 그게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저는 제2의 인생을 관리위원으로 지낼 수 있었던 건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잘하고 잘할 수 있는 업무를 해서 굉장히 만족스럽고요. 이제 곧 관리위원직을 떠나는데 그 노하우를 모아서 회생을 원하는 업체나 개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하고요. 일을 그만두더라고 도산 업무 쪽에서 역할을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찬희 :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생법원의 캐치프레이즈가 구제와 배려인데 처음에는 이해가 잘 안됐어요. 은행에서와 정반대의 일이잖습니까. 은행에서 회계를 분석해서 걸러냈던 부실 징후가 있던 분들을 여기서 만나는 거죠. 은행의 시각이 아닌 반대 입장에서 보면서 사람들을 더 이해하게 됐어요. 한 회사나 개인만 볼 게 아니라 연관된 협력업체, 근로자까지 두루 살필 수 있는 시야도 갖게 됐고요. 파산이 아닌 회생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기간 채무자들을 더 이해하는 마음으로 일에 임할 생각이고요. 제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생각입니다.

이복길 : 제가 자주 하는 비유가 있습니다. 응급실에 환자가 들어올 때 싸우다가 다쳐서 올 수도 있고, 좋은 일을 하다가 다쳐서 올 수도 있죠. 의사들은 환자를 가려 받지 않습니다. 일단 살려야 하니까요. 회생법원도 응급실이라고 생각해요. 명분을 따지기 전에 일단 살려야 하는 곳이지 않나 싶어요. 거듭 얘기하지만 치료가 되어 사회에 나아가 제 역할을 제대로 하도록 만드는 게 거시적으로 봤을 때 국가에도 또 개인에게도 훨씬 이익이니까요. 근무하면서 착한 기업도 만나게 되고 그렇지 못한 기업도 만나게 되는데 채무자의 잘잘못이나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성공적인 회생절차를 수행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주현우 : 이복길 위원님이 잘 쓰시는 응급실 비유를 제가 참 좋아합니다. 채무자 회생법은 성실하지만 불운한 그런 채무자를 회생해야 하는 게 목적이긴 한데 그렇지 않더라도 일단 영화의 대사처럼 ‘살려는 드린다’라는 마인드인거죠. 어떤 다른 마음을 갖지 않고 일관된 자세로 살펴주려고 노력하려고 해요.
김현민 : 저도 관리위원 일을 하면서 생각의 지평도 넓어지고 더 많은 걸 배우게 되었으니까요. 앞으로도 경험 많은 위원님들에게 많이 배우면서 하루하루 주어진 일을 잘 처리하려고 합니다. 계속해서 많이 도와주세요. 아마 앞으로 변호사 생활을 하더라도 회생 관련 업무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주현우 : 회생법원 앞에 ‘새출발의 디딤돌’이라는 문구가 있잖아요. 오늘 참석하지 못하신 관리위원 모두 그 디딤돌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잘하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법원이 저희 역량을 향상시켜주셨으니까 이 역량을 더 좋은데 써야겠죠.
김규환 : 바쁘신 데 모여서 오늘 고생들 많으셨어요. 이제 우리 또 얼른 일하러 가야겠네요. 기다리고 있는 민원인들 도우러 출발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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