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대담] 일과 벗으로 윤기 나는 시간 대법원 총무담당관실 퇴직자 이영재 사무관, 정철호 행정관

人사이드인터뷰

2024.01.08

글 이재영 사진 조인기

법원 공무원으로 맡겨진 일을 충실히 했고, 그 안에서 마음 맞는 벗을 만났다. 대법원 총무담당관실의 이영재 사무관과 정철호 행정관은 서로 존경하는 동료이자 절친한 친구로 나란히 같은 날 퇴임식을 가졌다. 삼십 년이 넘는 시간을 모아놓고 보니 제법 윤기가 흐른다. 반질반질하다. 매일 성실하게 쓸고 닦고 매만진 덕이다. 돌아보면 빛나는 시간이었다. 시간의 광택은 한 번에 드러나지 않는다. 동료와의 아름다운 순간, 일을 사랑하는 마음, 일터를 향한 자부심으로 매일의 먼지를 털어내야 비로소 심오하고 깊은 빛이 올라오는 것이다. 순간의 코팅으로 완성된 반짝임과 비교할 수 없는 긴 세월이 있어야만 가능한 빛이다.

법원 사람이라는 자부심
정철호 : 우리가 만난 게 2015년이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돼서 퇴직을 앞뒀네요. 저는 서울남부지방법원 종합민원과에서 약식업무를 보다가 왔는데, 사무관님은 어디서 오셨죠?
이영재 : 법원공무원교육원에서 3년 6개월 근무하고 법원행정처로 발령을 받아 왔어요. 사실 저는 34년의 근무 기간 중 약 30년을 법원행정처에서 주로 근무했었죠.
정철호 : 대법원 청사의 역사를 다 알고 있겠네요.
이영재 : 다 알고 있진 못하고 어느 정도는 알죠. 하하.
제가 1990년에 입사했는데, 대법원 청사가 서소문에 있을 때였어요. 서초동 발령은 신청사를 막 짓기 시작할 때였죠. 정철호 계장님은 저보다 1년 먼저 입사하셨던가요?
정철호 : 네, 저는 1989년 8월 15일에 입사했어요. 당시에 법원종합청사를 개청하면서 공채로 남자 6명 여자 6명 위험물탐지원을 뽑았어요. 고등법원 총무과 소속으로 들어와서 12년간 위험물탐지원으로 일하다가 행정부서로 전환이 됐죠.
이영재 : 원래 법원공무원을 준비했던 건가요?
정철호 : 아니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일반 회사에 다녔는데, 교수님께 연락이 왔어요. 서울고등법원에서 사람을 뽑는데 해볼 생각이 있냐면서요. 사무관님은 어떻게 시작하신 건가요? 워낙 재주도 많고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깊으셔서 공무원보다는 다른 일을 꿈꾸셨을 것 같은데요.
이영재 : 하하, 정 계장님이 제 과거를 좀 아시죠. 한때 음악에도 관심이 있었고, 학창시절 미대 입시 준비를 해서 그림도 좀 그리고, 잡다한 관심사가 많습니다. 저는 군대에 다녀와서 국가기술 자격증 취득에 전념했던 것 같아요. 미술의 꿈을 접고 이과로 진로를 바꾸면서 수학이나 이공계열 과목을 열심히 공부했거든요. 적성에 맞고 먹고살려면 자격증이라도 따놓자 했죠.
정철호 : 지금도 계속 자격증 따고 계시죠? 수집하시는 거 같아요. 엄청 많던데요.
이영재 : 현재 20여개 정도 됩니다. 수집은 아니고 일에 필요한 기술적인 것들 하나씩 도전하다 보니 많아졌어요.
정철호 : 그 시절에 그 자격증으로 법원 말고도 갈 곳이 있었을 텐데요.
이영재 : 법원에 오기 전에 보안회사 기술파트에서 근무했어요. 일 잘한다고 윗분에게 칭찬도 받으면서 나름 잘 다니고 있었는데, 법원에서 통신직을 뽑는다는 소식을 들었죠. 통신기사자격증이 있어야 지원할 수 있었는데, 마침 그 자격증을 따둔 상태였어요. 생각보다 어려운 시험이라 자격증 취득자가 다른 분야에 비해 많지 않을 때였죠. 그 덕분에 운 좋게 법원에 들어올 수 있게 됐죠.
정철호 : 대기업에 있다가 오려면 아쉽지 않았어요?
이영재 : 그 당시의 상위 관리자께서 부르시더니, 법원은 법률전문가들의 공간이다. 엔지니어는 가능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공간에 있어야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니 여기서 계속 근무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하시더군요. 그런데 저는 법원이 더 좋았어요. 선망했죠.
정철호 : 막상 와보니까 어떠셨어요? 생각한 대로였나요?
이영재 : 법원이 법률전문가들의 공간이기는 하지만 업무에 필요한 각종 시설이 운영되고 원활하게 제공되어야만 쾌적한 환경 속에 그 분들이 근무할 수 있기때문에 존재감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관리자가 하신 말씀의 뜻은 충분히 알겠더라고요. 기본적인 기술 인력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아니고 조금 단조로웠죠. 그래도 법원이라는 소속감이 좋았어요.
정철호 : 사모님이 좋았던 건 아니고요? 법원 내에 손꼽는 미인과 데이트하고 결혼하셨잖아요.
이영재 : 하하하, 뭐 그랬죠. 아내 얘기하니까 쑥스럽네요. 지금도 같은 대법원 청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30년 동안 매일 같이 출퇴근하고 있습니다.
정철호 : 사랑에 눈이 먼 덕에 지금 저도 좋은 동료와 일할 수 있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하하.

003

역사의 한 장면에 함께한 잊지 못할 순간들
이영재 : 정 계장님은 처음 들어와서 어땠어요?
정철호 : 저희는 처음 생긴 보직이라, 인천공항 보안팀에 가서 연수를 받았어요. 위험물취급자격증, 열관리자격증을 다 가지고 있었어도 실전은 또 다르니까 직접 배우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인원도 남녀 12명으로 단출하고 저희끼리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돈독했죠. 그런 끈끈한 동료들이 생기니까 조직 적응이 어렵지 않더라고요.
이영재 : 중요 재판 때 문형탐지기를 세워서 일일이 체크하고 하셨죠?
정철호 : 네, 휴대용탐지기로 검색도 하고, 문형탐지기를 쓰기도 하고요. 제일 기억에 남는 재판은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력 공판이에요. 그때 방청객이 전국에서 수천 명씩 밀려왔어요. 방청하려고 고등법원 정문 앞에 돗자리를 깔아놓고 밤을 새운 시민들이 많았어요. 그때 그분들 한 사람 한 사람 검색을 하면서 아, 내가 엄청난 역사의 현장에 있구나 싶었죠.
이영재 : 위험물이 많았나요?
정철호 : 없지 않았어요. 흉기도 흉기지만 인분, 구토물 같은 오물들이 여럿 나왔어요.
이영재 : 그런 것들도 압수품에 들어가나요? 압수하면 일정 기간 보관해야 하잖아요.
정철호 : 하하하, 바로 폐기했죠. 그때 저희끼리 생각보다 험한 직업이라고 했어요.
이영재 : 그랬겠네요. 저도 대통령과 인연이 있어요. 대법원 신청사 1주년 때인데, 기념식에 김영삼 대통령이 참석하기로 했어요. 사법부를 워낙 사랑하셔서 당신이 오시겠다고 한 건데 그때부터 어마어마한 경호가 시작된 거죠. 행사 한 달 전부터 각 분야의 경호팀이 배치됐어요. 행사에 필요한 음향시설 등, 거의 모든 시설을 경호실에서 직접 배치했고 그 외에 청사시설 안내와 지원 등을 위하여 법원직원 중 저 혼자만 경호팀에 임시 배치되었어요.
정철호 : 행사할 때, 시설지원 업무가 중요하니까요. 항상 법원의 큰 행사 때마다 시설지원 업무를 총괄하였잖아요. 그래서 그 행사는 원활하게 잘 진행되었나요?
이영재 : 지금도 그 당시를 기억하면 아찔한 생각이 드는데, 행사 당일 본행사 시작 전에 예행연습을 하는데 갑자기 건물 전체 전기가 나간 거예요. 난리가 났죠. 대강당에 불이 꺼지면 완전히 칠흑이 되는데 다들 우왕좌왕하고 우당탕했어요. 그러다 불이 켜졌는데 청와대 경호원들의 거친 움직임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긴장감이 최악의 상황으로 연출된 재난영화의 한 장면이었다고 생각했어요.
정철호 : 그쪽 입장에서 시나리오에 없던 일이 벌어진 거니까 방어 태세를 갖춘 거겠네요.
이영재 : 그렇다고 해도 그 현장에서 법원직원은 저 한사람이어서 엄청 당황했죠. 그 당시 법원의 입장에서는 대통령 방문에 따른 청사의 모든 시설들을 보여 드리기 위해 가동 가능한 모든 시설을 모두 일시에 투입하여 가동하다 보니 전기 차단기가 작동하여 발생한 사고였다고 예측했는데 하여간 시설설계를 담당했던 부서에서 신속하게 원인을 찾아내고 있었죠.
정철호 : 저도 차출되어서 행사에 참석했었는데 시작 직전에도 전기가 다운되었던 걸로 기억해요.
이영재 : 행사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또 있었죠. 첫 다운 이후로 두 번 더 다운됐어요. 이거 행사 취소해야겠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시설설계 담당부서에서 행사장 및 그 동선에만 전기를 투입하는 조건으로 예행연습을 진행했고 무사히 행사도 마치게 되었습니다.
정철호 : 고생하셨습니다. 하하. 행사하다 보면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죠. 그때는 식은땀이 났어도 30년 근무 중 잊지 못할 추억이 됐겠어요.
이영재 : 정 계장님은 전 대통령 공판 말고 또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가요?
정철호 : 사무관님처럼 오싹한 경우는 없었고요. 하하. 저희 위험물탐지원들은 법원의 안전을 책임지는 중요한 업무를 맡고 있는 거라고 교육 받았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일에 대한 자부심이 컸죠. 방청객들 소지품 검사하면 어쩌다 망치도 나오고 칼도 나오고, 모의 권총도 나왔어요. 화가 나서 위협할만한 물건을 들고 법정에 들어온 거죠. 만약 저희가 없었다면 흉기가 노출될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이 펼쳐졌을 거라 생각하니 끔찍하더라고요. 처음엔 자부심이었는데 나중에는 안전을 위해 더 긴장하고 꼼꼼하게 체크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일했어요.
이영재 : 엄청나게 큰 위험으로 번질 수도 있는 상황이죠. 검색하고 발견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고생 많으셨습니다. 행정업무로 바뀐 뒤에는 주특기를 발휘하셨잖아요.

내가 할 수 있는 일
정철호 : 네, 그 생각을 하면 인생이 참 재미있습니다. 제가 대학 때 서예 동아리를 했어요. 전공이 기계설비라 좀 상반된 취미를 가지고 싶었거든요. 점잖고 고상한 취미로 뭘할까 하다가 큰 고민 없이 서예 동아리에 들어간 거예요. 그런데 그 서예를 대법원에 와서 다시 하게 됐죠.
이영재 : 원래 틈틈이 하셨던 거죠?
정철호 : 대학 때 동아리에서 배우고 꾸준히 붓을 들었죠. 2015년에 대법원으로 왔더니 서예원 김봉수 계장님 임기가 2년 남았다고 해요. 임명장이나 행사 등에 글씨를 쓰셨는데 이제 그걸 쓸 사람이 사라지게 된 거죠. 인원 충원을 할 계획도 없었고요. 주변에서 이번에 대법원에 들어온 정철호가 붓글씨를 쓴다니까 연락이 온 거죠.
이영재 : 바로 투입돼서 한 거예요?
정철호 : 서예라고 다 같은 게 아니고 용도에 따라 쓰는 법이 다 달라요. 한동안 일과를 마치고 박경식 담당관님께 배웠죠. 숙제를 내주신 것을 하면서 새롭게 익혔어요.
이영재 : 그 이후로 혼자 다 하셨잖아요. 봉사죠. 업무 외의 일이니까요.
정철호 : 좋아하는 일이라 즐겁고, 법원에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했어요. 행정직으로 전환이 되고 일을 한창 배울 때 영등포등기소에서 함께 지내던 후배가 큰 도움을 줬습니다. 그 후배가 대법원에 있었는데 어느 날 전화가 왔어요. 다른 곳으로 가고 싶은데 형이 대법원에 와주면 안되냐고 하면서요. 후배의 부탁을 외면할 수 없었어요. 한번은 꼭 부탁을 들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싶었고요.
이영재 : 고마운 후배네요. 그 덕에 서예도 하게 되고 저도 만나고요. 하하.
정철호 : 그렇죠. 이곳에 왔더니 재주 많은 동갑 동료가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사무관님이 근무하는 동안 대법원 청사 시설 관련해서 많은 걸 바꿔놓으셨잖아요.
이영재 : 대법원 청사의 어떤 작은 대상이라도 직원 혼자서 변경시키는 것은 불가능하잖아요. 특별한 원인에 의해 불가피하게 변경시키거나 상위 결재권자의 지시, 또는 개인적인 아이디어가 허락되어 바뀌기도 하죠. 그런데 대법원 청사의 시설을 합리적으로 변경시키기 위해 열정을 바치셨던 분을 모시고 일을 하게 된 시간이 있었죠. 이미 오래전에 퇴직하신 분이신데 2004년 무렵 처음 함께 일을 했었어요. 그때는 대법원 청사의 시설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부서의 과장님이셨는데, 저한테 법원시설에 발전적인 변화를 줄 수 있는 획기적인 일을 해보자고 하셨어요.
그 제안으로 아이디어를 내서 만든 게 사법부 통합통신망 구축이에요. 그 후 많은 변화가 있었죠
정철호 : 그 때 대기업이나 관공서에서도 우리처럼 하려고 문의했다면서요.
이영재 : 그랬죠. 그런데 너무 복잡하니까 엄두를 못 내더라고요. 사법부 통합통신망 구축으로 보안성이 거의 완벽하다는 평가도 받았고 또 합리적인 설계로 시설구축 이후, 현재까지도 구축 전의 요금과 비교하여 연간 대략
6 ∼ 8억이라는 통신요금 절약효과를 가져왔고 법원대표전화안내센터 등 다양한 통신관련 기능적용을 설계할 수 있었죠.
다만 퇴직에 즈음하여 한가지 아쉬운 점은 법원대표전화안내센터를 원콜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 시켰다면 민원인, 직원, 콜센터직원 등 모두에게 편리함을 주었을 것 이라 생각되네요.
정철호 : 책도 쓰셨잖아요. 법원에 필요한 큰일을 많이 하셨어요.
이영재 : 대법원 청사 내에서 변전실 고압반에 대형사고가 발생하여 법원 업무가 마비될 수 있는 위기가 있었죠. 신속히 발전기를 가동하여 중요 부분에 전기를 투입하면서 사고를 수습한 과정을 지켜보시던 행정관리실장님께서 현장 기술자들의 체계적이고 일사불란 업무처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어 전기업무 매뉴얼 작성을 지시하셨죠.
정철호 : 매뉴얼 작성 작업이 보통 일은 아닐 텐데 황당하셨겠네요. 하하
이영재 : 하하 그랬습니다. 제가 대법원 청사에만 근무하다 유일하게 한번 법원공무원교육원에 발령이 나서 다소 여유롭게 업무에 임하고 있었죠. 그런데 사법부통합통신망 구축 당시에 계셨던 과장님께서 행정관리실장님으로 부임하시고 나서 이제 행정처로 와서 남은 시간을 열심히 근무하라고 지시하셨어요. 2015년에 그래서 다시 왔죠. 어쨌든 그때 전기매뉴얼을 완성하였고, 후속으로 기타 다른 시설들의 매뉴얼을 만들게 되었어요.
정철호 : 사무관님은 큰 상도 받으셨잖아요. 통합통신망 만들고 전국 법원 직원 몇 사람 받지 못하는 창안아이디어 동상을 받으셨죠. 근무하시면서 공을 많이 세우셨어요.
이영재 : 쑥스럽네요. 하하. 뭐 그 다음에도 법원청사 내 소방안전매뉴얼, 지진 발생시 법원 청사 내 행동매뉴얼, 적 공격시 행동매뉴얼 등을 계속 만들어서 전국 법원에 참고용으로 송부하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직원 누구라도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조치해야 하는지 잘 설명되어 있어서 매뉴얼을 보면 대부분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직원 중 한 분이 어떤 사고의 현장에서 이 사무관님 옆에만 붙어 있으면 위험한 상황에서 쉽게 벋어날 수 있을 것 같다는 농담을 해서 뿌듯함을 느끼기도 하였어요.
정철호 : 그 덕분에 나가는 마음도 편안하겠어요.
이영재 : 전기업무매뉴얼의 경우 약 800페이지 이상의 분량에 현실감과 쉬운 이해를 위해 현장사진 및 도면 위주의 내용으로 만들기 위해 어려움이 있었는데 보람만 남았네요.

002

친구와 함께한 8년
정철호 : 2015년에 대법원에 올 때 걱정이 많았어요. 젊은 분들이 많은 곳이라 나이 많은 제가 적응을 잘 할지 걱정도 됐고요. 그런데 와보니 동갑 동료가 있어서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릅니다. 사실 처음에 동갑이라고 하길래 어린 사람이 장난치는 줄 알았어요.
이영재 : 하하,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정철호 : 어려 보이잖아요. 하하.
이영재 : 원래 인사 발령의 대상이 되면 관심을 받게 되잖아요. 이렇다 저렇다 얘기들도 많고요. 그런데 정 계장님에 대한 특별한 말들이 없었어요. 좋은 사람인가 보다 했죠. 저랑 직렬이 다르다 보니 무난하게 지낼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동갑이라는 소리에 확 친근해지더라고요. 직장 내에서 동갑내기 친구가 생긴다니 얼마나 좋아요. 우리 둘이 나이가 들었지만 동갑이 함께 일하면 서로 다른 분야라도 훌륭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본보기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정철호 : 사무관님과 제가 서로 참 다른데 또 참 잘 맞아요. 신기한 일입니다.
이영재 : 다르죠. 정 계장님은 조용하고 묵묵하게 일하는 분야인 반면, 저는 청사 내외의 많은 분들과 직접 대면하며 직접 보고하고 지시 받아야 하는 업무이고 때로는 어려운 자리에 호출받아 격려의 오찬이나 만찬자리에 참석하게 될 때 정 계장님이 동행해 주기도 했었죠. 워낙 유하고 부드러운 성격이라 함께 하면 엄청 든든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철호 : 반은 협박이었잖아요. 중요한 자리에 안 오면 큰일이 난다면서요. 하하. 어쨌든 각자 가정이 있는데 아마 아내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낸 관계가 아닐까 싶네요.
이영재 : 그렇죠. 우리 퇴근 후에 함께 술 한 잔도 자주 걸쳤죠. 가끔 정년 퇴임식장에 혼자 들어가는 상상을 해 보았어요. 생각도 하기 싫더라구요. 얼마나 외로웠을까 싶은 거죠. 2015년부터 함께 했던 8년의 세월을 복기해보면 정철호라는 사람이 직장생활 최종 종점까지 손잡고 걸어줘서 큰 힘이 됐구나 싶어요.
정철호 : 저는 이영재 사무관 옆에서 주로 얼씨구, 좋다, 추임새 넣어주는 고수 역이었는데 그게 정말 즐거웠어요. 재주도 많고 그걸 업무에 연결해서 새로운 걸 만들고 더 나은 법원 설비 시설을 위해 뛰어다니는 걸 보면서 저절로 응원하게 되더라고요.
이영재 : 정말 큰 힘이 됐습니다. 울적할 때 위로도 됐고 기쁜 일 있을 때 마음 놓고 기쁨도 나누고요. 깊은 얘기 오간 시간도 다 좋았습니다. 늘 곁에서 묵묵히 들어줘서 고마웠어요.
정철호 : 원래 제가 듣는 걸 잘합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가만히 들어주는 걸로 유명해요. 우리가 서로 궁합이 잘 맞는 거죠. 후배들도 우리처럼 법원에서 일도 일이지만 좋은 친구 한 명씩 만들었으면 좋겠네요.
이영재 : 좋죠. 말이 나온 길에 우리 기술 직렬 후배들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게 있어요. 기술직은 특별한 분야여서 자부심으로 일을 하는 것은 좋지만 기본적으로 서비스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조금 더 창의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움직이면 법원직원들에게 쾌적한 업무환경과 편리함을 주는 거잖아요. 또 우리의 기술제공을 통해 업무지원을 했을 때 굉장히 고마워하고 신기해하더라고요. 그때마다 기술에 대한 보람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자신만의 고유 기술제공 업무를 봉사하는 마음으로 했으면 해요.
정철호 : 실제로 사무실 방문을 통하여 신분증 등록을 해 주는, 찾아가는 서비스도 만들었잖아요. 그 덕에 진짜 편해졌어요.
이영재 : 그랬었죠. 인사이동 때 많으면 150~200여 명의 신분증을 등록해야 해서 총무담당관실 앞에 줄을 길게 섰어야 했죠. 직위에 예외없이 줄을 서서 등록기에 등록을 하고 가셔야 했어요. 그게 안 되면 법원 출입이 안 되니까 바쁜 업무 중에 시간을 내서 하려니 불편이 컸죠. 뭔가 바꿔야겠더라고요. 시스템 개발을 담당하는 회사에 방문등록기 개발을 강력하게 요구했죠. 그러나 대기업의 특성상, 기성화 된 제품을 어느 한 현장에 맞게 개발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저 또한 절박한 생각으로 그 회사 최고 결재권 자실에 전화를 했어요. 물론 전화를 직접 받지는 않았지만 그 내용이 상위 결재권자에게 보고가 되었고 개발지시가 내려졌다고 하더라고요. 그 업무를 담당하는 현장 업무 담당자들에게 매우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개발로 그 회사 제품의 특징이 되었다고 들었어요. 법원도 좋고, 그 회사도 이익이 되었죠.
정철호 : 그래서 이제 출근 첫 날은 임시카드를 받았고, 이동기기가 사무실에 오면 그 자리에서 등록할 수 있게 됐잖아요. 줄 서지 않아도 되게 됐죠.
이영재 : 우리 총무담당관실 담당자들에게는 조금 번거로울 수 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런 움직임을 직원들이 다 알아 줄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떠나지만 기술직 후배들이 더 긍정적이고 창의적인 기술제공으로 법원의 업무 환경을 쾌적하고 편리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정 계장님도 붓글씨 써 줄 일이 있으면 봉사하는 마음으로 써 주시잖아요.
정철호 : 원래 업무는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기꺼이 해드리죠. 저도 행정직 후배들이 사소한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았으면 해요. 특히 감정의 찌꺼기들을 남겨두지 말고,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훌훌 잘 털어 냈으면 해요. 일하면서 그런 것들이 나중에 발목을 잡기도 하더라고요.
이영재 : 법원생활뿐 아니라 인생 자체가 구슬 롤렛 보드 게임인 것 같아요. 구슬이 튕겨져 나아가고 내려오면서 이런저런 질곡의 시간이 있었지만 다행히 구슬이 함정에 빠지지 않고 장애물들을 잘 통과해서 무사히 게임을 마치면 자신뿐 아니라 가족 모두가 행복하잖아요. 신상의 이유나 건강상, 또는 어떤 특별한 문제로 인하여 함정에 빠져 때로는 삶 자체를 망치는 경우를 빈번하게 보았어요. 인생의 화려하고 풍요로운 성공을 꿈꾸기보다는 문제없이 종착역에 도착한 것으로도 훌륭한 완성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네요. 그래서 먼저 법원을 떠나신 선배님들이 대과 없이 법원생활을 마치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던 것 같아요.
정철호 : 그럼요. 건강하고 무탈하게 퇴임하는 건 큰 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시간 속에 이렇게 좋은 친구를 만난 것도 행운이고요. 여러분들에게도 행운의 시간이 함께 하길 바라겠습니다.

이영재, 정철호 : 법원 사람으로 지낼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人사이드인터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