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필객 3] 두 바퀴로 가는 부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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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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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필객Ⅲ
글 한영진 서기관(서울북부지방법원)

두 바퀴로 가는 부산행

삶이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면서 현실을 잠시 벗어나려 할 때,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은 아마도 여행이지 않을까? 누군가는 근교의 강변으로, 펜션으로, 해외로, 또 누군가는 호캉스를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날씨의 영향을 받는 여행은 아무래도 기상 조건이 좋아야 더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으리라. 6월 3일부터 6일까지 절호의 찬스를 잡았다. 일기예보도 좋고, 평일인 5일만 연가를 내면 업무 부담도 덜 수 있으니 올해 최고의 기회라 생각하며 제주도, 동해안 종주에 이어 두 바퀴로 가는 부산행을 계획했다.
처음엔 5월 27일부터 29일까지로 예정했지만, 비 소식이 있어서 한 주를 연기한 것이 오히려 더 좋은 기회를 맞았다. 물론 여러 가지 사정으로 충분한 준비를 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도 내친김에 떠나기로 하였다.

첫째 날(6월 3일)
강변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나무와 꽃 그리고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들 서울 강동구 상일동에서 페달 밟고 출발
6월 3일 오전 8시, 지난밤에 썬크림, 맨소래담, 여벌 옷, 타이어리페어 키트 등을 챙긴 배낭을 메고 강동구 상일동에서 힘차게 페달을 밟고 고덕천을 따라 한강
으로 향한다.
평소에도 양평까지는 자주 다녔기에 한강 주변의 야구장, 팔당대교, 팔당댐 등 익숙한 풍경을 지나쳐 간다. 신원역, 국수역, 양평역 등 남한강을 따라 부지런히 페달을 밟으니 양평역 주변으로 이어지는 아름드리 벚나무가 만들어 주는 그늘이 등줄기로 흘러내리는 땀을 식혀주는데,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기분까지 좋아진다.
이포보에서 잠시 쉬면서 간식을 먹고 있는데 어디선가 일본어가 들린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네니 중년 여성 3명이 ‘수안보까지 가는 일정으로 가고 있다’고 하면서 ‘자전거길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고 한다.
아마도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울 것이라는 칭찬과 함께 엄지척까지 하면서…. 여주보, 강천보를 지나 비내섬까지 달리면서 자전거길 주변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노란 물결의 금개국의 아름다움에 페달링이 한결 가벼워진다.
중간에 있는 휴게소에 들러 음료수와 단백질 바를 먹으면서 체력을 보충하고 탄금대와 수안보온천을 지나 충북 괴산군 연풍면에 도착하니 저녁 8시 가까이 된다. 근처 식당에서 간단하게 김치찌개를 먹고 바로 옆에 있는 허름한 숙소로 향하는데, 식사하는 동안 땀도 식고, 해도 저무니 갑자기 한기를 느낀다. 오늘 하루 달린 거리는 190km,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다리와 어깨에 멘소래담을 듬뿍 바른 후에 침대에 들어갔다가 눈을 뜨니 새벽 5시! 많이 피곤했나보다.

둘째 날(6월 4일)
백두대산 이화령 최대의 난코스, 경북 문경 ‘이화령고개’
그나저나 어제 무리한 탓인지 안장에 닿았던 사타구니와 허벅지의 통증 때문에 다시 페달링을 하는데, 으윽~~~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거기에 더해 오늘 출발점은 최대의 난코스인 이화령고개! 역시나 소문으로만 듣던 이화령고개의 업힐은 혀를 내두른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S자 모양의 오르막에 숨은 턱밑까지 차오른다. 후~하~후~하~ 거친 숨을 내쉬며 오르고 있는데
가끔 엄청난 속도로 내려가는 라이더들이 ‘화이팅’을 외치면서 쏜살같이 지나쳐 간다. 그들에 비하면 오르막을 오르는 난 정말이지 이제 막 첫걸음을 뗀 아이 같다. 이화령은 정상까지 약 6km에 불과하지만 계속되는 오르막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오르막에서는 절대로 먼 곳을 봐서는 안 되는데, 그러면 이상하게 쉽게 지치고, 쉬었다 갈까 하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저 앞바퀴만 보면서 페달을 굴려야 포기하지 않고 정상까지 다다를 수 있다.
약 1시간 정도를 걷는 속도로 달리면(?) 드디어 백두대간 이화령의 표지석이 눈앞에 나타난다. 호흡을 진정시키고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니 가슴이 뻥~하고 뚫리면서 스스로 대견하다고 생각한다. 생면부지인 라이더들과 서로 수고했다는 격려와 함께 기념사진도 찍어주면서 잠깐의 휴식을 취한 후 이제부터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자연은 늘 인생을 돌이켜 보게 한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음을…. 오르막이 끝없이 이어질 것 같지만, 언젠가는 끝이 있음을…. 지금의 현실이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하더라고 그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이화령을 내려가는 길은 그야말로 고속도로다. 오르막에서의 가쁜 숨이 아닌 속이 뻥 뚫리는 시원함에 탄성을 자아낸다. 그러나 반대편에서 힘겹게 페달링하면서 올라오는 라이더들에게 ‘화이팅’하면서 응원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새재자전거길을 따라 문경불정역을 지나면서 문득 얼마 전에 읽었던 명리학책의 내용이 생각난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망을 예견하고 문경(聞慶:경사스런 소식을 듣다)을 찾아와 해방을 맞이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낙동강 제1경이라 불리는 ‘경천대’
문경을 지나 三白(쌀, 누에, 곶감)의 고장 상주 경천대에 도착했다. 경천대는 ‘낙동강 제1경’이라 불릴 정도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데, 원래 이름은 ‘자천대(自天臺)’였으나, 병자호란 때 척화를 주장하면서 상주에 은거한 우담 채득기(1604년~1645년)선생이 하늘을 떠받친다는 뜻으로 ‘경천대(擎天臺)’라 지었다고 한다.
또한 근처에 있는 ‘용소’에서 나온 야생마를 길들여 임진왜란 당시 60전 60승의 신화를 쓴 정기룡 장군의 전설도 전해지는 곳이다.
낙동강은 강원도 태백 황지에서 발원해 상주시 사벌국면 퇴강리에 이르러 영강과 만나면서 비로소 강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데 이곳에서부터 부산까지의 거리가 칠백리로 상주시에서 표지석을 세운 것인데, 낙동강의 유래가 기록되어 있다. 상주의 옛이름은 ‘상락(上洛)’이었
는데, 그 동쪽에 흐르는 강이라는 뜻으로 낙동강(洛東江)
이 되었다고 한다. 무엇이든 그저 생긴 이름이 없고, 어떤 이름이든 유래가 있으며, 유래를 알면 그 의미 또한 새롭게 다가온다.

마음의 여유가 느껴지는 ‘강정고령보’
상주보, 낙단보, 구미보, 칠곡보를 거쳐 드디어 대구 강정고령보에 도착하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지만, 관광용 바이크를 타는 연인들과 강변을 여유롭게 산책하는 대구 시민들을 보면서 몸은 고되지만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너무 늦기 전에 숙소를 잡아야 했지만, 주변에서는 찾을 수가 없어서 계명대학교 근처까지 갔다. 온종일 땀범벅이 되었던 몸을 개운하게 씻고 잠을 청하니 ‘몸이 힘들면 잡생각이 사라진다.’라는 말처럼 불면증과는 멀어진다.
셋째 날(6월 5일)
대구지방법원 사람들과 짧은 만남
대구에 오니 행정처에서 모셨고, 지금은 대구지방법원에 계신 김태창 사무국장님을 뵐 생각에 아침부터 기분이 들뜬다. 달구벌대로 서쪽부터 법원이 있는 동쪽을 향해 2시간 넘게 달리면서 낯선 대구의 풍경을 즐긴다. 법원에 도착해서 국장님과 안주효 과장님을 오랜만에 뵈니 더더욱 반갑다. 바쁘신 중에도 시간을 내셔서 먼길
가는데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면서 맛있는 식사까지 대접받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담을 나누다가 시계를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고 있어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음을 기약하면서 경주를 향해 출발한다.

신라 천 년의 고도 경주에 입성 그리고 황리단길
신라 천년의 숨결이 느껴지는 ‘경주’
대구에서 경주는 금호강변을 따라가다가 4번, 35번 일반국도로 달려야 하는데, 자전거 전용도로와 달리 일반국도에서는 무섭게 달리는 자동차 때문에 저절로 긴장하게 된다. 영천을 지나 경주로 접어드는 약 500m의 북안터널을 지나는데 자동차들의 질주 소리를 온몸으로 받으니 정말이지 귀가 떨어져 나갈 듯하다. 그저 빨리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다. 터널을 지난 후 잠시 자전거를 세우고 뒤를 돌아보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너무도 평화롭게 차들이 교행하고 있다.
경주로 들어서니 대도시인 대구와는 너무도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높은 건물은 전혀 없고, 드넓게 펼쳐진 들녘에서 천년의 숨결이 느껴진다. 곳곳에 있는 왕릉 때문에 개발이 어렵다는 경주는 그나마 황리단길 덕분에 외국인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번화하다. 경주에서 사법보좌관 동기인 주연중 보좌관님을 만나 함께 울산으로 이동해서 양제륜 사법보좌관님과 이종만 사법보좌관님을 1년 만에 만났다. 두 분께서 해후의 기쁨을 싱싱한 회와 장어구이로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려주신 덕분에 몸보신까지 하였다. 오랜만에 만나니 나눌 이야기가 어찌나 많은지 오늘 숙소인 양제륜 보좌관님 관사에 가서도 지난 이야기, 운동 이야기, 내일 일정 등, 남자들끼리 만나도 이야기는 끝이 없다.

마지막 날(6월 6일)
라이딩 종착지 해운대로 향하며
아침에 눈을 뜨니 양제륜 보좌관님이 따뜻한 아침 식사에, 가면서 먹으라고 고구마까지 쪄서 챙겨주신다. 글을 통해서나마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린다. 배낭을 메고 울산지방법원을 출발하여 종착지인 해운대를 향한다. 국도로 달리는 해운대 노선은 다행히 자동차가 생각보다 많지 않아 자전거 주행에는 큰 불편이 없지만, 만만치 않은 업힐 구간으로 인해 조금씩 체력의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다. 숨을 고르면서 중간에 있는 쉼터에서 사이다와 함께 고구마를 먹는데 정말이지 꿀맛이다.
체력을 보충한 후 부산광역시 기장대로로 접어들면서 자동차가 많아져 갓길로 달리기에는 위험이 있다. 다행히 인도 옆으로 자전거도로가 마련되어 있어 달맞이길 시작점까지 안전하게 달릴 수 있었다. 해운대 달맞이길 데크길에 세월의 흔적이 배어 있는 벚나무들은 무질서한 듯하면서도 나무들끼리 잘 어우러져 조화롭게 느껴진다. 부산행 마지막 업힐 구간이라 배낭을 멘 등줄기에서는 계속해서 땀이 흐른다. 2005년 APEC 기념을 조성한 ‘해마루(해를 가장 먼저 맞이한다는 의미)’를 지나니 드디어 해운대의 멋진 풍경이 펼쳐지는데, 눈과 함께 가슴까지 시원해진다. 육지에 사는 사람에게 바다는 늘 동경의 대상이다.
날씨도 좋고, 기온도 높아서인지 해운대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특히 2030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해 모래사장을 따라 모래로 만든 예술작품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하다. 부산까지 왔으니, 무엇을 먹고 올라갈까 하고 생각하다가 ‘밀면’으로 정했다. 6·25 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메밀로 만든 냉면을 먹지 못해 미국에서 원조한
밀을 이용해서 냉면처럼 먹게 되었다는 밀면은 요즘에는 고구마를 섞어 고메밀면을 먹는데, 끊어 먹으라고 가위도 주는 것이 특이하다. 시원한 밀면을 맛있게 먹고, 노포역에 있는 종합터미널로 향한다.

다음 라이딩 남해안 종주를 기약하며
서울에서 출발하면서 3박4일 동안 부산까지 내려가는 길은 모든 풍경이 가슴에 남는데, 노포역에서 서울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더니 남는 것은 휴게소에 들른 한 장면뿐이다. 시간이 빠르다고 해서 마냥 좋은 것은 아닌 듯하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음을 새삼 느낀다.
1년에 한 번씩 떠나는 자전거 여행. 느리지만 건강을 잘 유지하면서 아름다운 우리 국토를 종주하고 싶다. 자전거로 달리면서 강변을 따라 펼쳐지는 꽃들의 향연은 끝나지 않은 영화 같은 장면들이다. 어딜 가든 연락할 사람이 있고, 만나서 술 한 잔 기울일 사람이 있음에 감사한다. 무엇보다도 3박4일 내내 멋진 풍경을 선사해 준 하늘의 도움 덕분에 이번 일정이 가능했음에 감사하고, 좋은 여행은 ‘집으로 잘 돌아오는 것’이라는 말처럼, 무사하게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음에 또한 감사하며, 다음 라이딩(남해안 종주)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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