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필객 2] 아무튼 출근! 중고신입 49기의 브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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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06

일러스트

낭만필객Ⅱ
글 임서연 실무관(수원회생법원)

아무튼 출근!

중고신입 49기의 브이로그

# 손 떨리는 법원 전화
“동부지법 실무관인데요, 변호사님 연결 좀 해 주시겠어요?”
내가 법률사무소 비서일 때 가장 긴장했던 법원 전화다.
현재 시간은 11시 40분. 변호사님은 지금 해외로 출장 가야 해서 대한항공 탑승 중일 것이다. 앞으로 14시간 동안 비행기모드로 통화 불가능. 분명히 소송 방향에 대한 중요한 전화일 텐데….나는 이륙 전 이길 간절히 기도하면서 변호사님께 전화 연결을 했다.
“뚜뚜뚜…. 여보세요?”
다행히 변호사님이 비행기에서 받았다. 활주로 위라고 한다. 법원과 짧은 통화 후 변호사님이 팀에 전체 메일을 썼다. ‘변론 재개될 것 같으니 오늘 중으로 서면 다시 준비하세요.’ 이후 변호사님은 14시간을 벌게 해주어 고맙다고 나에게 소고기를 사주셨다.
법원 전화는 우리에게 늘 가장 중요한 전화였다.

# 흑역사 제조기
나는 이렇게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법원이 오랫동안 선망의 대상이었다. 특히 법조문을 알려주면서 제출서류들을 꼼꼼하게 일러주는 법원 직원들의 전문성에 반해 법원직을 준비했고 운 좋게 붙었다. 법원에서의 결정은 늘 옳고 실수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런 전문성은 법원에 들어간다고 자동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신입답게 수많은 흑역사를 제조하였다. 안 나가던 성당에 나가서 나의 실수로 누군가가 화나지 않기를 기도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실수를 만회할 수 없을 때마다 주님을 부르듯이 외쳤다. “선배님~!”
또 한편으로는 중고신입답게 전직의 경험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법률사무소의 리걸테크(Legal Tech) 기술로 내 업무능력을 메꾸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의 부주의함을 자책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사기업에서 사용했던 테크기술이 법원에 도입된다면 정말 괜찮은 법률 행정이 완성될 것 같다는 기대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렇다. 나는 건방진 중고신입답게 전직에서 누렸던 장점과 현직의 장점을 감히 한자리에 모으려고 하고 있다.

# ‌중국인 피고인과 한판 뜨다
나는 외국인 전담 형사항소 재판부로 첫 발령을 받았다. 전담 특성상 외국인 피고인 사건이 많았다. 특히 보이스피싱 등의 사건이 많이 배당됐고 피고인의 상당수가 중국인이었다. 피고인과 소통할 때마다 언어의 장벽에 부딪혔다.
한번은 중국인 피고인 사건이 급하게 기일변경 되었다. 기일변경명령 등본을 피고인에 송달은 하였으나 아뿔싸, 나는 실수로 한국어로만 보냈다. 기일이 변경되었다는 한국어를 이해하지 못한 피고인은 진주에서 아침부터 버스를 타고 5시간이 걸려 법원까지 왔다.
기일이 변경되어 오늘 재판이 없다는 보안관리대의 설명을 들은 피고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 과사무실까지 쳐들어왔다. 친절한 나의 동기가 피고인에게 나의 위치를 정확하게 약도까지 그려주면서 알려주어 가능한 일이었다. 형사에서 사용하는 기록 카트를 사이에 두고 시라소니와 구마적이 대치하는 것 마냥 피고인과 대치 상태로 꽤나 있었고 결국 나는 고개를 조아리면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나는 이 일을 겪으면서 피고인이 외국인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기계적으로 업무를 처리한 나 자신을 많이 탓했다. 동시에 풋풋하지 않은 중고신입답게 딴 생각을 했다. 형사에서 한 달에 통상 90건씩 선고되는데 매번 송달할 때마다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러한 사고를 줄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을 했다. 그 와중에 생각난 것은 법률사무소에서 사용하던 자동번역 프로그램이었다.
법률사무소에서는 모든 계약서가 자동 번역되어 클라이언트에게 제공되고 있다. 일차적으로 비서가 문서를 AI를 통해 자동 번역하고 세부적으로 번역팀에서 2차 검토 후 납품이 되는 구조다. 물론 법원의 모든 문서는 한글로 나가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다양한 외국계 기업이 한국에 진출하고, 피고인 역시 점차 외국인이 증가하고 있는 법원에서 한 번쯤 고려해 볼 만한 서비스가 아닐까 싶다.

# 제 돈 어디 갔어요?
“돈을 받은 적이 없는데요? 실무관님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채권자의 볼멘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어온다. 그때부터 등에 땀이 나기 시작한다. 개인회생과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전화다. 채권자는 개인회생인가결정 후 변제계획표 상에 기재된 금액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채권자가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비상이다!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담당자가 채권자계좌신고서 상 계좌번호를 전산에 잘못 입력하는 경우가 있다. 결국 1번 채권자에게 들어가야 하는 금액이 2번 채권자에게 들어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러면 실무관이 2번 채권자에게 연락하여 금액을 돌려받고 1번 채권자에게 다시 투입하는 수고로움을 겪어야 한다.
채권자도 짜증나기는 매한가지이다. 개인회생이라는 절차 자체가 채무자의 경제적 회생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채권자가 수인해야 하는 부분이 어느 정도 있다. 그 상황에서 돈도 제때 받지 못한다면 기분이 어떨 것인가. 신입다운 변명을 하자면, 워낙 많은 사건들이 들어오고 그 사건들마다 수많은 채권자들의 계좌신고가 다 다르기 때문에 실무관이 꼼꼼하게 검토해도 실수가 생길 수 있는 부분이다. 최대한 막아야하는 실수이지만 입력하다 보면 오차가 생길 때가 있다. 법원 직원이 극도로 꼼꼼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그 이후로 온갖 색깔 펜과 부전지를 활용하여 실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나는 머리 굵은 중고신입이다. 딴생각이 났다.
법률사무소에서도 그런 경우가 많았다.
법률사무소에서는 실수가 일어나면 클라이언트가 줄고 매출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에 실수에 굉장한 예민하였다. 그래서 계좌번호 확인과 같은 단순하지만, 양이 많아 실수가 생길 수 있는 업무에 리걸테크기술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 기술은 우리가 최근에 많이 애용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바로 주민등록증을 카메라에 인식하면 주민등록증 상의 숫자를 자동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법률사무소에 들어오는 문건이 100만 건이 넘었다. 특히 형사사건은 종이 문건이 많았다. 이 종이문건들 중 계좌번호가 필요한 경우 계좌번호 숫자만 추출하는 프로그램을 활용하였더니 업무의 속도가 크게 증가했다. 법원에서도 이런 프로그램을 도입한다면 채권자들이 누락되어 돈을 못 받는 경우가 줄고, 채무자와 채권자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법률 행정이 이뤄지지 않을까 하는 꿈을 꾸어보았다.

#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법률행정
법원직 업무는 다양한 문건이 들어오고 법률적으로 꼼꼼하게 검토하지 않으면 사건 당사자의 권리침해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실무관의 역량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법원에 들어와서 만난 많은 선배님들은 놀라울 정도로 꼼꼼하고 엄청난 업무능력을 가지고 법원을 이끌고 있었다. 내가 법원 밖에서 느꼈던 법원직에 대한 좋은 이미지와 맥을 같이 한다.
이러한 분들의 노고가 헛되이 되지 않고 더 좋은 법률행정이 제공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내가 경험했던 리걸테크 기술이 그 답이 되지 않을까 싶다. 법원에서도 활용되면 법원직 선배님들의 역량과 더불어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중고신입의 생각이다.
최근 업계를 선도하고 있는 법무법인에서는 리걸테크팀을 따로 만들어 업무를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법원의 판례들을 머신러닝으로 분석해 판사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서면을 쓰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호모 파베르라는 말이 있다.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인간은 유형, 무형의 도구를 만드는 동시에 자기 자신도 만든다. 이러한 리걸테크 기술을 도구로 더 나은 법원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내가 늘 선망했던 법원직분들의 역량이라면 리걸테크 기술을 통해 더 나은 법원을 탄생시키는 것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나 역시 흑역사를 그만 제조하고 법원의 발전에 일조하는 실무관이 되기로 오늘도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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