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필객 1] 배럴 타구? 좋은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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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06

낭만필객Ⅰ

글 이승운 부장판사(안동지원)

배럴 타구?
좋은 재판?

우연하게 법원사람들에 글을 쓸 기회를 얻었습니다만, 막상 별다른 지식이나 재주가 없다 보니 어떤 주제로 글을 써야할지 막막하여 한참 걱정을 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올해 2월 처음 부장판사가 되어 안동으로 거처를 옮기면서도 설레는 마음이 드는 한편 막막함과 걱정을 함께 가졌던 것 같습니다.
제가 너무 소심하여 그런 것일까 걱정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홈즈-라헤 스트레스 지수’1)에 따른 스트레스 양 척도를 보면, ‘직책 변화(29)’가 ‘친족 간 다툼(29)’과 같은 정도 스트레스 원인이고, ‘이사(20)’가 ‘상사와 불화(23)’에 버금가는 스트레스 원인이며, 직책 변화와 이사를 동시에 할 경우(29+20) ‘해고(47)’를 넘어서는 스트레스 원인에 해당한다니, 누구나 직책이 바뀌고 사는 곳을 옮길 때는 힘든가 싶어 조금 안심이 됩니다.

취미생활로서 야구, 더 즐기는 수단으로서 통계수치
많은 사람들처럼 저도 취미 생활을 통해 걱정과 불안을 떨쳐내려 노력하고, 그중 한 방법이 좋아하는 스포츠를 보는 것입니다.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평소 갈고닦은 실력을 - 항상 그렇지는 못하지만 - 규칙에 따라 공정하게 겨루는 모습을 보면, 이 세상이 불공정하고 불합리하게 느껴져 한층 날이 섰던 마음도 누그러지곤 합니다. 저는 스포츠 중에서 특히 야구를 좋아하여 ‘Atlanta Braves’2)라는 메이저리그 팀과 소속 선수들의 기록을 찾아보고는 합니다. 야구가 팀 스포츠이지만, 투구와 타격이라는 구분 지점이 명확하여 선수들 플레이를 떼어놓고 평가하기 용이하고, 측정 기술 발전에 힘입어 여러 통계수치가 발전하여 왔습니다(다른 종목에 존재하는 다양한 기록에 대한 제 무지를 너그러이 양해 부탁드립니다).
야구 기록에서 오랜 시간 동안 타자에게는 타율·타점·홈런이, 투수에게는 승리·평균자책점·삼진이 중요하게 생각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타자는 빗맞은 타구가 운 좋게 안타가 되거나 야구장이 작아 외야플라이가 홈런으로 둔갑하였을 수 있고, 어떤 투수는 최고 수비수들로부터 도움을 받거나 점수를 많이 주고도 같은 팀 타자들이 점수를 많이 얻어주어 승리투수가 됐을 수도 있습니다.
이에 따라 선수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평가하고픈 욕구는 항상 존재하였고, 빌 제임스가 1970년대 새로운 통계수치 개발을 시도한 이래 2000년대 들어 메이저리그에는 소위 데이터 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3)여러 통계수치들은 야구를 조금 더 즐길 수 있는 수단이 되는데, 저도 가벼운 야구팬으로서 수많은 통계수치들 중 극히 일부밖에는 모르지만4), 통계적 가치를 떠나 이 자리를 빌려 그중 몇 가지 통계수치를 법원 업무에 비유하여 소개할까 합니다.

다양한 야구 통계와 법원 업무
먼저, 파크 팩터(park factor)입니다. 야구장이 작고 고도가 높은 곳에 있다면 홈런이 나오기 쉽고, 외야 너머 바다에서 바람이 세게 불어온다면 홈런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다양한 특성에 따라 타자와 투수에게 어느 정도 유리 또는 불리한 야구장인지 수치화한 것입니다. 미제가 적고 처리율이 높은 것은 판사가 근무하는 법원 환경이 좋기 때문일 수 있으니 각 법원별 근무 환경을 수치화 한 것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법원별 근무환경뿐만 아니라 올해 유독 사건이 적게 접수되거나 어려운 사건이 적었을 수도 있습니다. 야구에서도 약물을 복용한 많은 타자들이 40홈런을 칠 때 60홈런을 친 것과 다른 타자들이 10홈런도 치지 못 할 때 60홈런을 친 것은 서로 가치가 다를 것입니다. 따라서 파크 팩터에 더하여 시대 보정 즉, 같은 시대 평균적인 다른 선수들과 비교하여 어느 정도 잘 했는지 보여주는 ‘조정’ OPS5)(OPS+), ‘조정’ 평균자책점(ERA+)과 같은 다양한 ‘조정’ 수치들도 있습니다.
수비 무관 투구(FIP, Fielding Independent Pitching)라는 수치도 있습니다. 투수가 수비 도움을 많이 받거나 운이 좋아 실점이 적을 수 있으니 홈런과 삼진같이 투수가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요소만을 기준으로 평가하자는 것입니다. 빼어난 조정위원들로부터 도움을 받았을 수 있으니 판사는 판결로 종국처리된 사건만으로 평가하자는 것과 비슷할까요. 지금 미제가 적은 것은 전임자가 사건 처리를 잘하여 넘겨받은 사건이 적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야구에서도 구원투수가 실점이 적은 것은 넘겨받은 주자가 적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승계주자 실점률이란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미제도 미제 나름이고, 승계주자도 승계주자 나름입니다. 쟁점이 복잡하고 기록은 방대하며 장기 미제 즉, 무사만루 상황을 넘겨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에 따라 아웃카운트별, 주자별 총 24가지 상황(Runs Expectancy 24)에 가중치를 두어 수치를 보완하려 시도하기도 합니다. 같은 무사만루 상황을 넘겨받더라도 점수 차이가 1점일 때와 5점일 때 서로 의미가 꽤 다르기에, 선수 행위가 기대 승리 확률에 얼마나 변동을 줬는지를 평가하는 WPA(Win Probability Added)와 같은 수치도 참고할 수 있겠습니다.
타자가 공을 쳤을 때 타구 속도가 빠르고 적당한 각도로 날아가면 아무래도 안타나 홈런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와 같이 기대 타율·장타율이 높은 타구속도·발사각도를 갖춘 타구 집합을 배럴 타구(barrels)라 합니다. 물론 운이 없어 안타나 홈런이 되지 못하였을 수 있지만, 배럴 타구를 꾸준히 만들어 내는 타자는 장기적으로 좋은 기록을 향해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가 지금 딴짓을 하면서 기록 검토나 판결문 작성을 게을리하더라도, (희망 사항이지만) 앞으로 당사자가 만족하도록 충실히 심리하고 간결·명료하게 판결문을 작성한다면, 장기적으로 낮은 항소율 등을 기대할 수 있을 것처럼 말입니다.

완벽한 통합 수치에 대한 희망? 꿈?
저와 같이 둔한 사람은 쫓아가기 힘든 통계들이 너무 많기에 은근슬쩍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마지막으로 통합 수치인 WAR(Win Above Replacement player)을 소개하겠습니다. 투구, 타격, 수비, 주루에 관한 다양한 통계수치를 종합하여 모든 선수들을 줄 세우려 하는 수치입니다
(마치 ‘드래곤볼’이란 만화에서 전투력만으로 모든 등장인물을 줄 세운 것과 비슷합니다).
해당 선수가 언제라도 자신을 대체할 수 있는 마이너리그 선수보다 팀에 몇 승을 더 얻게 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 수치화 합니다(안타깝게도 WAR이 음수이어서 팀 승수를 깎아 먹었다고 평가되는 선수도 있습니다). 저는 막 법원에 지원할 수 있는 경력을 갖추게 된 다른 법조인보다 재판업무에 얼마나 기여하였을까 생각하면, WAR이 음수인 선수도 차마 비난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선수평가에 널리 이용되는 WAR이 다양한 통계수치를 종합하였다지만, 기초 자료가 아직 완벽하다고 볼 수 없고(특히 수비 통계수치는 논란이 많은 부분입니다) 기초 자료별 가중치에도 정답이 없기에 여전히 논란도 있습니다.6)
측정 방법 등이 고도로 발달하고 다양한 통계수치가 있음에도 이를 종합하여 선수를 평가하는 데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다이빙 캐치가 좋은 수비였는지, 사실은 위치선정이 나빠 쉬운 타구를 어렵게 잡은 것인지, 설령 공을 놓쳤더라도 다른 사람은 엄두도 못 내었을 타구를 좋은 위치선정과 빠른 발로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인지,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수비뿐만 아니라, 어떤 투수는 공이 느리고 회전수가 적어 구위가 나쁘다고 평가받으면서 계속 강한 타구를 허용하는데도 오랫동안 좋은 성적을 기록하여 팬들 사이에서 아웃라이어로 인정받는 등 통계수치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사례가 분명 존재합니다.
측정 방법이 더 발전하고 통계수치가 더 개발되면, 우리가 완벽하게 선수를 평가할 수 있는 날이 올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통계수치와 야구 시합을 보면 볼수록 사람에게 숫자로는 다 표현하기 어려운 성과와 가치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강해집니다. 제가 어쩔 수 없이 올드 스쿨 야구팬이어서 그런 낭만을 갖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딴짓은 그만 접어두고, 제가 다른 누군가에게 ‘상사와 불화(23)’, ‘업무시간/조건 변화(20)’로 스트레스 원인이 되지 않도록 그리고 배럴 타구 아니, 좋은 재판을 만들어 내기 위해 기록을 보아야겠습니다.

1 ‌미국 정신의학자 토마스 홈즈와 리차드 라헤가 1967년경 스트레스와 질병 간 관계를 규명하고자 개발한 지수로, 총점이 150점 미만이면 스트레스로 병에 걸릴 위험이 낮고, 150점 이상 300점 미만은 스트레스로 병에 걸릴 위험이 중간 정도이며, 300점 이상은 스트레스로 병에 걸릴 위험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고 합니다.
2 ‌연고지를 몇 차례 옮겼지만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구단입니다(1869년 창단). 1991년부터 2005년까지 연속으로 지구(Division) 우승을 하여 미국 프로스포츠 최장 연속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고, 2018년부터 5년 연속 우승을 하면서 2021년에는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하였습니다. 행크 애런, 워렌 스판, 필 니크로, 그렉 매덕스와 같은 전설적인 선수들이 뛰었던 팀인데, 길고 화려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월드시리즈 제패가 4회에 불과하여 크게 아쉽습니다. 올 시즌도 순항 중이기에 5회 우승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어디서든 Braves 팬을 만날 수 있다면 정말 반가울 것 같습니다.
3 ‌새로운 데이터를 먼저 잘 활용하였던 단장 빌리 빈에 관한 이야기가 영화로도 만들어진 ‘머니볼’입니다(픽션이 가미되긴 했습니다). 국내에도 번역된 키스 로의 ‘스마트 베이스볼’이란 책도 야구 통계와 관련하여 읽어볼만 합니다.
4 ‌메이저리그 관련 다양한 통계를 접하고 싶다면, 베이스볼 서번트(http://baseballsavant.mlb.com), 베이스볼 레퍼런스(http://www.baseball-reference.com), 팬그래프(http://fangraphs.com)와 같은 사이트를 추천합니다. 국내 야구도 스탯티즈(http://www.statiz.com) 등에서 다양한 통계를 시도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5 ‌출루율+장타율(On-base Plus Slugging). 출루율과 장타율은 계산방법이 달라 바로 합산할 수 없으므로, OPS 그 자체가 어떠한 가치를 나타낸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계산이 간편함에도 복잡한 계산을 거친 다른 통계수치나 대중들의 선수 평가와 상당히 일치하는 결과를 보여주어 애용됩니다. OPS가 0.9 이상이면 훌륭한 타자, 1.0 이상이면 아주 훌륭한 타자라고 쉽게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6 ‌베이스볼 레퍼런스에서 산정한 수치(일명 bWAR)와 팬그래프에서 작성한 수치(일명 fWAR)가 서로 꽤 달라 팬들 사이에서는 자주 논쟁 대상이 되고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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