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필객 3] 엄마와 함께 미얀마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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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7

낭만필객Ⅲ
글 최정명 행정관(수원고등법원)

엄마와 함께 미얀마 여행기

엄마와 함께 미얀마 여행기
“삶의 온도가 빙점 이하로 내려갔을 때, 그렇게 동양으로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후지와라 신야-

미얀마 관련 원고를 청탁받고서 도입부에 쓰기 위해 여행과 관련된 몇 편의 아포리즘(aphorism)을 살펴봤다. 그중 뭔가 제일 있어 보이는 『동양방랑』의 저자 후지와라 신야의 잠언을 머리말로 골랐는데, “삶의 온도, 빙점, 동양...”등 오리엔탈리즘의 아취가 돋는 멋진 단어들을 늘어놓다 보니 마치 내가 미얀마에 다녀오자마자 철학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현실에 지독히 매인 내게 여적 그런 달달한 말이 남아있을 리가 있나.

코로나19 이후 첫 여행지, 미얀마!
뜬금없이 저 멀리 미얀마까지 가게 된 실상은 다음과 같다. 마흔이 넘도록 노모에게 얹혀살고 있는 신세인데, 자식 된 도리이자 밀린 방세를 대신하여 종종 엄마와 같이 해외로 자유여행을 다녀오곤 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기회가 닿는 대로 세계 곳곳을 자주 모시고 나갔는데 몇 해 동안 여행길이 막히다 보니 엄마가 무척이나 심심해했다. 그러다 최근 하늘길이 다시 열리자 엄마 눈치가 살살 보이기 시작했다. “나갈 수 있나”에서 “나가야 하나?”로 바뀌었을 때, 드디어 나는 삶의 온도가 빙점 이하로 내려가 버렸음을 알게 되었다. 그럼 뭐 별수 있나. 멀고 먼 동양으로라도 떠나야지.
“그래서 너로 정했다 미얀마!”
미얀마는 우리가 흔히 선호하는 여행지는 아니다. 그간 “군사쿠데타”, “로힝야족학살”, “아웅산폭발테러” 등 부정적인 뉴스로 도배되어 심리적으로 멀게 느껴지는 곳이다. 그러나 우리 엄마는 또래와 다르게 험난한 여행지를 좋아하고 당신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여력이 닿는 대로 그런 곳을 많이 경험하길 바라셔서 ‘인도’ 같은 고난도 자유여행을 즐겨하는 편이다. 이번에 미얀마는 개발이 덜 되어 관광지와 일상이 구별되지 않고 문화유적이 풍성하다는 이유로 엄마가 직접 선택하였다.
결국 12박13일 계획으로 양곤, 인레호수, 바간, 만달레이 순으로 미얀마를 일주하는 여행을 계획했다. 다만 이건 우리 엄마가 너무 씩씩하게 다녀온 것일 뿐 현재 미얀마는 외교부 출국 권고가 내려진 곳이므로 여행 중 안전에 특별히 유의해야 한다.

엄마와 함께 미얀마 여행기

미얀마 제1의 도시, 양곤 근처 숙소로 정해
코로나19로 인해 한국에서 미얀마로 가는 직항이 끊겨 우리는 태국을 거쳐 미얀마 양곤을 통해 입국했다.
처음 양곤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1970년대 버스대합실과 같은 상태였고 은행은커녕 ATM기가 전부 고장나서 무척 난감했다. 다행히 국영통신사 한 곳이 영업 중이어서 유심도 사고 환전도 일부 할 수 있어 동남아 카카오택시 그랩(Grap)을 사용하여 양곤 식민지 유적지 산책로(Yangon Colonial Heritage walk) 인근 숙소로 이동할 수 있었다. 공항이 이 정도이니 앞으로 여행 내내 제대로 된 인프라를 거의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양곤은 영국령 식민지 수도로 120년간 미얀마의 수도였는데 현재에도 경제 수도의 기능을 하는 곳이며 쉐다곤파야(Shwedagon Paya)라는 황금사원이 성지 역할까지 하고 있는 미얀마 제1의 도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얀마 내 제일 번화한 곳이 이 정도이면 다른 도시는 어떤 상태일지 뻔했다.
엄마도 이 정도로 낙후된 곳인지 예상치 못하였고 여행의 기쁨보다 실망과 걱정만 가득했다. 굳이 인도와 미얀마를 비교하자면 인도는 인프라가 갖춰져 있긴 한데 관리가 제대로 안 되어서 매우 더러운 거라면, 미얀마는 사회 인프라 그 자체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원래 계획대로 도시 간 여행하는 것이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간신히 도착한 숙소 상태도 예약사이트와는 달리 불결해서 화가 잔뜩 난 엄마는 ‘코로나19가 끝나고 처음 온 곳이 겨우 이러냐’며 나를 쥐 잡듯이 잡았다. 오랜만에 해외로 나오니 엄마가 조금만 불편해도 못 참는 것이었다. 그리고 날씨가 더워 새벽과 밤이 아니면 도보 이동이 힘들어 여행 초반부터 여러 난관에 부딪혔다.

미얀마

미얀마 군경의 지나친 검문 내전으로 외국인 이동 제한
설상가상으로 다음 날 새벽에 Yangon Colonial Heritage walk를 산책하는데 미얀마 군경이 지나치게 검문검색하고 식민지 건축 유적의 촬영까지 못하게 막아 엄마가 빈정이 상할 대로 상해버렸다.
엄마 기분을 맞추려 나온 여행인데 온통 엄마를 자극해 버린 것이다. 더군다나 이 나라는 내전 상태라 외국인 이동이 제한되고 수시로 거리가 단전되어 온통 어두웠다. 당시 이런 상황에 단단히 삐져버린 엄마와 함께 남은 12일을 어떻게 지낼지 나는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래서 토라진 엄마를 달래러 근처 오이시(Oishii)라는 일식집을 갔다. 일식집이긴 하나 우리나라 분식집 수준에 가까웠는데 맥주를 시키니 종업원이 병뚜껑을 따다 거품을 너무 많이 내 넘치게 따라 버린 것이다. 그런데 종업원이 미안하다며 맥주를 서비스로 한 병을 더 주며 연신 사과를 하고 다시 거품 없이 따르려고 쩔쩔매며 노력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한 병이 이 나라 사람들에게는 하루 일급(7000짯 : 약 2.5달러)과 같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엄마가 그 자리에서 화가 풀려 버렸다.
팁으로 서비스보다 더 주고 나오긴 했지만 미얀마 사람들의 친절한 마음 씀씀이 덕분에 이곳을 다시 보기 시작한 것이다.

부처를 닮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곳, 미얀마
그 이후로 미얀마에 대한 엄마의 불만은 깨끗이 사라졌고 사람들의 친절로 인해 항상 힐링 받으며 돌아다녔다. 비록 미얀마에 인프라는 부족했지만 사람들이 영어를 잘하지 못 해도 식당이든 관광지 그 어디에서든 번역 어플을 통하거나 손짓 발짓까지 동원해서 우리가 요청한 것을 빠짐없이 들어주려고 애쓰고 노력하는 것이 역력했다. 다행히 그들의 도움을 얻어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할 수 있었다.
숙소인 HOOD HOSTEL 카운터에서는 중개수수료 없이 버스티켓을 수차례 예약해 주었고, 험상궂게 생긴 택시 기사들이 생긴 것과 다르게 우리가 길을 잃을까 봐 수시로 중국인(?) 통역을 전화로 연결해 주고 추가 요금도 받지 않고 버스정류장 내 회사까지 찾아주었다. 쉐다곤파야에서는 길을 잃은 우리를 위해 직원이 출구까지 수 킬로를 같이 걸어가 안내해 주었고, 인레호수로 가는 버스 안에서는 버스기사와 승무원이 온통 우리만 신경 써주었고 승객 중 한국에서 일하다 온 가족이 오는 내내 한국말로 말동무가 되어주고 내리는 곳과 이동 경로까지 친절히 알려주었다.
버스정류장의 간이식당에서는 5,000원짜리 미얀마 백반을 시켰는데 외국인들이라고 어린 소녀가 우리 옆에 자리 잡고 앉아 부채를 연신 부쳐주어 참으로 민망했다. 인레호수의 Song of Hostel에서는 보트투어와 트래킹, 툭툭, 버스티켓을 무상으로 연결해 주었고 여행 내내 친절히 보살펴 주었다. 바간에서의 숙소 A Little Bit of Bagan 호텔에서는 만달레이 인근 내전으로 인해 버스가 취소되자 택시를 연결해주었고 버스회사에서 버스표를 환불받아 주었다.
바간은 에너지 사정이 안 좋아 수시로 단전이 되어 에어컨이 끊기는데 그때마다 새벽에 호텔 사장이 나와 자체 발전기를 돌려 가동시켜주었다.
식당 종업원들은 맥주를 마시는데 시원하지 않다고 불평하자 소나기 중에 오토바이를 타고 나가 얼음을 사다 주었고 모기가 물까 봐 다리에 기피제를 연신 피워주었다. 심지어 뇌물로 유명한 미얀마 군경도 한국인 관광객이라고 하면 교통범칙금까지 면제해주고 여행을 잘하길 빌어주었다.
미얀마의 유적은 가이드북에 나온 대로 대단히 규모가 크고 예술적으로 아름다웠지만 엄마와 난 그보다 미얀마 사람들의 정을 느낀 것에 더 만족했다.
둘러보니 아무리 지옥이라도 부처를 닮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그곳에 산다면 천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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