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필객 4] 야밤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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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필객 4] 야밤의 추억

2023.04.05

낭만필객Ⅲ

글 한대균 부장판사(인천지방법원)

야밤의 추억

언제인지 벌써 까마득한 10여 년 전에 2년 넘도록 원치 않던 기러기 생활을 한 적이 있다(진심이다).
제 처가 아이들을 데리고 외국에 파견교육을 나간 덕분…. 아니 때문이다.
가족 없이 혼자서 지내야 했던 그 외롭던 시간이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다들 공감하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사건관계인들과 밀당하며 힘겨운 한 주가 지나가면 드디어 주말이 찾아온다.
얼마나 기다리던 주말인가! 오랜 시간 나의 애마 겸 캠프 가 되어 준 모하비에 몸을 싣고 심신을 달래줄 물가로 달린다.
이제 주말 동안의 낚시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설레는 주말 낚시 여행

한 주간 짬짬이 검색하여 선택한 목적지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하고 출발할 때가 주말 낚시 여정에 있어 가장 설레는 순간이다. 이번에는 어떤 녀석이 나를 반겨줄까? 혹시 이번에도 꽝을 치는 건 아닌지…. 크크 나도 모르게 배시시 비집고 나오는 썩소를 머금고 힘차게 달려본다. 가깝게는 수십 분에서 멀게는 서너 시간까지 걸리는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틀어놓은 라디오 방송이나 스트리밍 음악 연주는 덤으로 주어지는 즐거움이다. 온전히 주어지는 나 혼자만의 시간을 맘껏 즐기면서 음악에 맞추어 큰 소리로 노래도 불러본다.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가라앉지 않는 설렘을 안은 채 낚시용 의복(오래되고 낡아서 잘 안 입는 옷 중에 튼튼하고 방수가 될 만한 것으로 마련한다)과 장화로 갈아 신고 나서, 차 트렁크와 루프박스(차량 위에 설치하여 트렁크 대용으로 사용하는 박스로서, 비린내 나는 용품을 주로 싣고 다닌다)에서 낚싯대, 낚싯대를 받치는 받침대, 밤낚시에 필수적인 헤드랜턴, 잡힌 물고기를 담는 어망, 낚시 의자, 햇볕이나 비를 피할 수 있는 소형 파라솔, 물고기에게 갖다 바칠 각종 미끼, 낚시가방 등을 챙긴다. 자 이제 모든 준비를 마쳤다.

손이 덜 탄 낚시 포인트 잡기

주차 차량과 제법 떨어져 있어 좀 걸어야 하는 낚시 포인트를 향하여 낚시가방 등 각종 장비가 들어있는 짐을 메고, 또 들고는 힘겨운 발걸음을 재촉한다. 공기 좋고 물 깨끗하면서도 조용한 곳에서의 낚시를 선호하기에 주로 선택되는 포인트는 사람들 손이 덜 탄 한적한 곳이 많다. 이런 얘기를 하면 고기를 잡는 것보다 마음을 비우고 힐링을 목적으로 한다고들 많이 생각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경험상 사람들 손이 덜 타는 곳이 물고기도 더 잘 잡힌다. 아마도 물고기들이 순진해서일거라고 생각한다. 예전 어느 기사에서 본 기억으로는 물고기들은 기억력이 매우 나빠서 방금 겪은 일도 돌아서면 잊어버린다고 하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물고기들에게 학습 능력은 있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다. 해보면 낚시꾼들 손을 많이 탄 곳이나 유료 낚시터
(요금을 내고 낚시를 할 수 있는 양어장 같은 곳)일수록 물고기들이 더욱 까다롭게 입질을 하기 때문이다.
입질 얘기가 나왔으니 설명을 안 할 수가 없다. 낚시를 해보지 않은 많은 사람들은 낚시대에 미끼 달아 던져 놓으면 물고기가 덥석 물어서 잡히는 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경우는 운이 좋은 경우고, 대부분은 물고기들이 바늘에 걸려있는 미끼에 접근하여 건드리면서 탐색을 해보다가 미끼를 뜯어 먹거나 삼키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이물감을 느끼면 미끼를 뱉고 가버린다.
낚시꾼은 그 과정에서 물고기가 바늘에 걸린 미끼를 입속에 물고 있는 순간을 파악하여 순간적으로 낚싯대를 움직여 바늘이 물고기의 입에 걸리게 하는 것이다. 낚시꾼들은 물고기가 미끼를 탐색하며 삼키는 행태를 ‘입질’이라 하고, 낚싯대를 움직여 바늘에 걸리게 하는 행위를 ‘챔질’이라 한다.

기본적인 정통 낚시 기법 고집

이 글을 관심 있게 읽고 계신다면 그럼 낚시꾼들이 어떻게 입질을 파악하고 챔질을 하는 지도 의문이 드실게다. 이때 등장하는 중요한 낚시도구 중 하나가 ‘찌’라는 것이다. 최대한 간략하게 제가 주로 즐기는 민물낚시, 그중에서도 보편적인 찌낚시에 관하여 설명해 보겠다.
낚싯대에 연결된 낚싯줄(‘원줄’이라 부른다) 끝에 무게추 역할을 하는 봉돌(예전에는 주로 원재료가 납이었으나 요새는 친환경 소재인 황동이나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다)을 달고, 낚싯대와 봉돌 사이 낚싯줄 부분에 부표 역할을 하는 ‘찌’(보통 얇고 가는 꼬치에 부들 모양의 몸통을 중간에 꽂아놓은 것처럼 생겼다)를 달아서 수심에 따라 찌의 최상단 일부가 물 밖으로 살짝 나오게끔 위치를 조절한다(수심이 깊을 때는 찌를 낚싯대 쪽으로 올리고, 수심이 얕을 때는 봉돌 쪽으로 내리게 된다). 그리고 봉돌에 짧은 줄(‘목줄’이라 부른다)로 낚싯바늘을 달아서 낚싯줄이 팽팽하도록 봉돌을 물 밑바닥에 살짝 가라앉히고, 물 밖으로 살짝 나와 있는 찌의 움직임을 보고 입질을 파악하여 챔질을 하는 것이다.
최대한 간단히 설명했지만, 찌와 봉돌 사이의 부력 조절과 관련하여 실전에서 활용되고 있는 무궁무진한 노하우와 견해들이 있고, 이는 낚시 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인터넷에 난무하던 위 견해들을 무시하고 어릴 때부터 해오던 기본적인 정통 기법만 고집했던 나도 언젠가 옆에 앉은 다른 낚시꾼만 계속 물고기를 낚아 올리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배 아픈 경험을 하고서는(생각해보니 이런 꼴을 여러 번 당하다 보니 경쟁자 없는 조용한 곳을 찾게 되었나 싶기도 하다) 다양한 견해에 따라 이것저것 시도해 보게 되었고, 나름 쏠쏠한 재미도 보았다.
오매불망 월척을 위한 야밤 낚시

해 저물 무렵부터 새벽 한두 시까지의 야밤에 낚시를 주로 즐겼는데, 그 시간대가 주는 고요함과 차분함으로 인한 낭만적인 분위기도 정말 좋지만 무엇보다 대물이 나올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낚시꾼들이 오매불망하는 월척(토종 붕어 30.3㎝ 이상을 의미한다)은 모두가 잠든 조용한 야간에 많이 나온다는 속설이 있다. 이때 물고기의 경계심을 줄이기 위하여 물 쪽에는 헤드랜턴을 거의 비추지 않고 낚시를 하게 되는데, 입질 파악을 위한 찌의 움직임을 보기 위하여 화학물질로 빛을 내주는 일명 ‘케미컬 라이트’나 초소형 전지로 빛을 내주는 일명 ‘전자 케미’를 찌 상단에 부착하여 사용한다. 어두운 수면에 선명하면서도 은은하게 빛나는 찌불을 밝혀주는 케미는 밤낚시 기법에 없어서는 안 될 유용한 도구이지만 낚시의 매력을 한층 돋우어주는 낭만적인 요소이기도 한데, 요새 캠핑에서 유행하는 ‘불멍’에 견줄만한 것이 바로 ‘찌불멍’이라고 생각한다.
언제 물고기의 입질이 들어올지 몰라 긴장하며 찌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잊고 지냈던 시간과 사람들을 되돌아보며 추억의 삼매경에 빠지곤 한다. 물론 맥 빠지지만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 고민할 때도 있다. 어느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나는 밤에는 여러 대 낚싯대에 녹색불빛의 케미를 달아 던져 놓았더니 그와 너무나 흡사한 반딧불이가 그 주위를 맴돌며 마치 찌불이 날아다니는 듯 신기하고 재미있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하였다.

늦가을 밤낚시를 함께한 의문의 정체(?)

하지만 밤낚시를 하다 보면 이런 낭만적인 상황만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아까도 얘기했다시피 사람들을 피해 한적한 곳을 찾아다니다 보니 보통은 야밤에 물가에 홀로 앉아 있게 되는데, 입질도 들어오지 않고 추억도 잘 떠오르지 않는 때에는 가끔 섬뜩한 느낌에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중 가장 기억나는 어느 늦가을 밤의 일이다. 강원도 인제 내린천 강변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그 포인트는 낚시나 물놀이 시즌이 한참 지나서 사람이 찾아올 리 만무한 곳이어서 오롯이 혼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이 포인트의 물고기는 모두 다 내거라는 생각을 하며 물속에 잠긴 찌를 바라보고 있은 지 몇 시간이 지났을까…. 내 자리 오른쪽 먼 곳에서부터 내 쪽으로 누군가 저벅저벅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그곳은 조명이 전혀 없는 오지인 데다가 그날은 그믐이어서 헤드랜턴을 켜야만 그 정체를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물고기의 경계심을 높이지 않기 위해 아주 가까이 다가오기 전까지는 헤드랜턴을 켜지 않을 생각으로, 심지어 고개도 돌리지 않고 소리만 듣고 있었다(너무 겁을 먹어서 얼어붙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내 쪽으로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를 숨죽이며 듣고 있던 그때, 느낌상 10미터 정도까지 접근한 상태에서 그 소리가 잠시 멈추는 것이었다. 더욱 긴장되는 순간 갑자기 텀벙텀벙 소리를 내며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머리가 잠시 복잡해졌지만 이내 ‘아 달팽이를 주우러 온 사람인가 보다.’라고 애써 생각하며(달팽이는 야간에 얕은 물가로 기어 나오기 때문에 그때 채집을 많이 한다. 하지만 그 당시 채집 시즌은 한참 지난 때였다) 낚시를 이어갔다.
그러나 낚시를 하면서도 그쪽에 계속 신경이 쓰여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데, 몇십 분이 지나도록 물에서 다시 나오는 인기척이나 소리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여러 차례의 고민과 번뇌 끝에 헤드랜턴을 켜고 마침내 그쪽으로 가보았다. 그런데 그 근처 강변이나 물속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근처를 잠시 헤매듯 돌아다니며 살펴보았지만 인기척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 선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래도 마음을 진정하고 자리로 돌아와서 낚시를 이어갔다(그때는 정말 낚시에 대한 열정이 어마 무시했나 보다). 조금 더 앉아 있다가 물고기 입질이 전혀 없어서 결국 정리하고 차로 돌아가서 잠을 청했던 것 같다. 지금도 그날 밤 벌어진 사건에 대하여 그 정체는 무엇이었고 또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많은 분들과 제 마음의 평화를 위하여 아주 설득력 있는 하나의 생각을 알려드리자면, 분명 맑은 강변에 살면서 야간에 고기잡이하는 수달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수달은 성체가 1미터 가까이 크기도 한다니, 그 기어가는 소리가 한밤의 적막함까지 더해져 저벅저벅 대는 사람 발자국으로 들린 것이 아닐까?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굳게 믿고 있고, 이렇게 마무리되어야만 한다. 앞으로도 계속 밤낚시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부낚시

기러기 생활, 낚시 노숙 생활

기러기 생활을 하는 동안 너무 춥거나 물이 얼었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주말이면 거의 물가에서 낚시를 하면서 노숙 생활을 했던 것 같다. 한 주간의 시름을 잊고 잠시나마 자연인으로 돌아가 물고기 사냥도 하고, 요리도 하고, 잠도 자면서 행복한 노숙 생활을 영위했다.
그리고 예상하셨겠지만, 드디어 꿈에 그리던 가족들의 귀환! 가족들이 외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는 너무나 그리웠던 가족들과의 일상으로 복귀해야만 했다. 그 후로 저는 기회가 될 때마다 온갖 감언이설로 우리 가족들을 다시 물가로 이끌었고, 여러 우여곡절 끝에 강가에 있는 펜션에서 가족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낚시 여행으로 타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가족여행 명목으로 간 낚시임에도 제 처에게 아이들을 떠맡기고(이상하게도 아이들은 낚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밤중까지 낚시에 몰두하다 보니, 여행의 끝이 좋을 리 없었다. 결국 물가로의 여행을 거부하기에 이른 제 처에게 남편과 아빠로서의 역할을 다하기로 굳게 맹세하였고, 그 후로는 펜션에서의 저녁 식사와 설거지를 담당하였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눈치를 보다가 평화로운 분위기가 조성되면 강가에 나가곤 했다. 그러면 거의 야밤에 낚시를 시작하게 되는데, 어느 정도 손맛이라도 보려면 새벽까지는 열심히 낚시질해야 한다. 그래서인가? 가족여행만 다녀오면 그렇게 몸살을 앓았나 보다.

부부 낚시를 즐기다

아이들이 더 이상 같이 놀아주지 않는 요새는 우리 부부만 같이 낚시를 다닌다. 아이들도 없는 마당에 돈이 아까우니 펜션까지 잡기는 뭐하고, 제 처를 모시고 집에 와서 편하게 자야 하니 야밤이 아닌 저녁까지만 낚시를 하게 되었다. 맘껏 낚시를 할 수가 없어 아쉬울 법도 한데, 처가 옆에서 챙겨주면서 조언(적절한 표현을 생각해 내느라 정말 고생했다)을 해주니 오히려 편하고 좋은 점이 많다. 일단 무섭지, 아니 외롭지 않다. 끼니 거르는 일이 없으며, 추위에 떨면서 고생도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신기한 게 처가 찍어주는 곳에서 낚시를 해보니 야밤까지 무리하지 않아도 제법 조과가 짭짤하다. 제 처에게 아부 떨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정말로 생애 첫 사짜 붕어(길이 40㎝ 이상 되는 붕어)도 잡아보고, 준수한 씨알의 메기까지 여러 마리 잡아 몸보신도 했다. 역시 마음을 비우니 좋은 일이 생기나 보다. 거기다 가끔 처가 좋아하는 등산도 함께 하니 계속 쭈그리고 앉아서 낚시만 할 때보다 건강이 더 좋아진 기분은 보너스인 듯하다.
사실 이제는 예전같이 오지를 찾아다니며 야밤까지 낚시를 하려고 해도 엄두가 나질 않는다. 지금은 미소를 지으며 즐거운 추억으로 떠올리고 있지만 앞서 얘기한 거와 같은 으스스한 사건들, 차량이 진흙탕이나 모래 자갈밭에 빠져 고생한 일, 물고기 미끼만 챙기고 물과 음식을 제대로 챙기지 않아서 목마르고 배고픈데도 물고기가 계속 잡혀서 밤을 새웠던 일, 비좁은 낚시 자리에서 고라니, 뱀 등 야생동물을 맞닥뜨려 당황했던 일, 차에서 자다가 너무 추워서 덜덜 떨면서 깼던 일 등을 생각해보면, 한편으로는 어찌 그 고생을 했을까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그래 그땐 지금보다 한 살이라도 젊었으니까 가능했지 뭐! 그야말로 화려했던 지난날의 ‘야밤의 추억’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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