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필객 1] 입춘대길, 물길따라 춘천산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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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7

의암댐 차리꽃과 주변의 다양한 봄 풍경

낭만필객Ⅰ

입춘대길, 물길따라 춘천산책하기

글 윤정인 부장판사(춘천지방법원)

호수와 강의 도시 춘천
“윤 부장은 입춘대길이란 말 들어봤지?” 춘천에 처음 부임하던 날 법원장님이 하신 말씀이다. 춘천으로 처음 들어오는 사람들이 한 번씩은 들어봤을 入(立을 쓰지 않고 入을 쓴다)春大吉(입춘대길)이란 ‘춘천에 왔으니 좋은 일이 생길 거에요’라는 덕담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춘천에 와서 ‘대길’해지는 것이 아니라, 춘천에 들어온 것 자체가 대길한 일이거나, 대길하기 때문에 춘천에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춘천은 서울에서도 가깝고, 법원에서 전입자들에게 제공하는 맛집 50선, 200선 책자가 있을 정도로 맛집, 카페가 많고, 문화생활 콘텐츠가 풍부한 살기 좋은 도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내 기준, 입춘대길의 가장 큰 이유는 호수와 강들 때문이다.나는 어려서부터 유난히 물을 좋아 했는데, 바라만 보는 것도 좋고 뛰어드는 것도 좋아한다. 바다보다는 강이 좋고, 강보다는 잔잔한 호수가 좋다. 그 호수를 겹겹의 산이 감싸고 있다면, 햇빛 쨍한 맑은 날 잔잔하게 반짝이는 호수에 겹산과 하늘과 하얀 구름의 그림자가 거울처럼 드리워져 있다면, 내가 생각하는 천국의 모습이 이런 것이다(최근에 본 초겨울 파로호의 모습이 이와 매우 흡사했다).
춘천에는 3개의 댐에 의해 생겨난 3개의 호수가 있다. 춘천 시내 중도 부근에서 북한강과 소양강이 y자 모양으로 만나서 하나의 북한강이 되어 서쪽으로 흘러간다. 왼쪽 위에서 내려오는 북한강을 춘천댐이 한번 막아서고, 오른쪽 위에서 내려오는 소양강을 소양강댐이 막아선 후 레고랜드가 있는 중도 근처에서 합류하여 하나가 된 북한강을 의암댐이 다시 막아선다. 이후 가평 청평댐을 지나고 양평 두물머리에서 남한강과 만나 한강이 된 후 팔당댐을 지나 서울까지 흘러간다. 작년 2022년 8월에 소양강댐에서 방류한 물이 13시간 만에 한강 잠수교에 도착했다고 한다. 물론 소양강물이 한강에 도착하는 시간은 소양강댐 및 그 하류 댐들의 전체 방류량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진다. 그러나 13시간이라는 우연하면서도 구체적인 숫자 덕분에 물의 여정을 상상하며 춘천과 서울의 거리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여하튼 이렇게, 춘천에는 춘천댐에 의한 춘천호, 소양강댐에 의한 소양호, 의암댐에 의한 의암호라는, 본디 강의 일부인 호수들이 있다.
또 위 호수들(사실은 강)의 지류인 천들이 춘천 시내에 거미줄처럼 퍼져있다. 우선 공지천이 춘천IC 인근의 동내면 대룡산에서 발원하여 춘천 시내를 관통하며 흐르다 의암호로 흘러들어 북한강의 일원이 된다. 공지천으로는 또 그 지류인 퇴계천과 약사천이 흘러든다. 그밖에도 이름을 다 알 수 없는 작고 사랑스러운 천들이 춘천 여기저기에 있다. 공지천쪽에서 약사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관광명소인 죽림성당으로 갈 수 있고, 여기서 조금 더 가면 육림고개, 약사명동, 조양동 등 구시가이다. 공지천쪽에서 퇴계천을 거슬러 가면 김유정로로 가게 된다. 퇴계천의 발원지는 경춘선 강촌역과 남춘천역 사이의 김유정역 근처라고 하는데, 김유정역 인근에는 관광 레일바이크 승차장이 있다.
따라서 춘천 도보여행 또는 자전거여행을 계획한다면 물길을 따라 다니면 된다. 자동차로 다니는 경우에도 소양호 구역, 춘천호 구역, 의암호 구역, 그리고 그 외 구역(구 시가, 김유정역, 구봉산 등)으로 나누어 생각하면 쉽다.

의암호 자전거 도로

대중적인 관광지 의암호와 소양호
먼저 의암호 근처가 가장 대중적이고 접근성이 좋은 관광지라고 할 수 있다. 남춘천역에서 도보 10분 정도 거리의 시내에 있고, 주변에는 최근에 지어진 멋진 카페들이 있어 아인슈패너를 마시며 잔잔한 호수와 레고랜드와 춘천대교를 바라볼 수 있다. 의암호 둘레길, 의암호 스카이워크와 소양강 스카이워크, 삼악산 케이블카도 의암호 주변에 있다. 의암호 둘레길은 자전거 코스로 유명한데 특히 레고랜드 맞은편으로 벚나무와 단풍나무가 길게 심겨 있어 자전거뿐 아니라 도보로 산책하기에도 좋다. 봄에 벚꽃 터널을 걸을 땐 꿈속에 있는 듯 환상적이고 가을에 반짝이는 강물을 보며 단풍 터널을 걸으면 온 마음이 힐링 되는 느낌이다.
소양호 쪽은 법원이나 남춘천역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져 있어 다소 멀지만 전통적인 관광지이다. 유명 닭갈빗집들과 막국숫집들이 몰려 있고, 청평사도 있다. 봄에는 벚꽃 명소이고, 가을에는 단풍 명소이다. 봄, 가을로 선선할 때 유람선을 타고 청평사까지 들어가 산책하는 코스는 춘천 하면 떠오르는 의례적인 관광코스지만 계절과 날씨에 따라 매양 달라 식상하지 않는다. 2~3년에 한 번 정도 여름 장마 후 소양강댐의 수문을 열고 물을 방류할 때는 거대한 하얀 물보라가 압도적인 장관을 연출한다. 춘천의 조망 스폿으로 중앙고속도로 춘천휴게소, 구봉산 카페거리, 삼악산을 들 수 있는데, 구봉산 카페거리에서는 소양호가 잘 보이고, 삼악산 케이블카 전망대에서는 의암호가 잘 보인다.

조용한 쉼이 있는 춘천호
춘천호 쪽은 좀 더 마니아적이다. 이제 춘천 잘 알이 되었다면, 자연을 좋아한다면 조용히 쉬고 싶다면 춘천호로 가야 한다. 춘천호도 법원에서 차로 30분가량 소요된다. 매운탕거리 근처 오월리의 자목련 꽃이 아름답게 피는 카페오월에서는 비교적 작은 사이즈인 춘천호와 춘천댐을 통째로 조망하며 조용히 물멍하기 좋다. 여기서 좀 더 들어가면 깊은 산속 계곡을 따라 미술관과 레스토랑과 숙소가 길고 웅장하게 배치되어 있는 이상원미술관이 있다. 미술관 카페에서 바라보는 산뷰도 멋지다. 미술관 근처에는 더운 여름 계곡에 발 담그고 고기 구워 먹으며 놀기 좋은 집 다리 휴양림이 있다. 춘천호 근처의 한국수력원자력 발전소는 춘천에서 첫손 꼽히는 벚꽃 명소이다. 화천과의 경계 부근에 있는 부귀리 물안마을은 늦은 벚꽃 명소이다. 춘천 시내도 서울보다 벚꽃의 개화 시기가 늦은데, 이곳은 산속이라 춘천 시내보다 한두 주가 더 늦어서 전국에서 늦은 벚꽃놀이를 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긴 벚꽃 터널이 이어지는 작은 마을이 순식간에 북적북적댄다.

파로호 선착장

호반 정경이 아름다운 파로호
그리고 나는 여기에 춘천호 상류의 파로호도 꼭 덧붙이고 싶다. 춘천호에서 차로 15분 정도만 더 달리면 또 하나의 호수의 도시 화천이 있다. 화천은 선거관리위원회 때문에 종종 방문하게 되는 곳인데 파로호의 호반 정경이 춘천 못지않게 아름답다. 휴전선과 접한 최전방이고 강원 북부 내륙이라 여름에 몹시 덥고 겨울에 몹시 춥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기상이 강건하고 소박하다.
선거관리위원회의 여성위원님들 말씀으로는 예전 화천에서는 여고생들도 교련 시간에 나무총을 메고 밤샘 행군을 했었다고 한다. 파로호 선착장에 서면 앞서 말한 겹산에 둘러싸인 천국 같은 파로호 풍경을 볼 수 있다. 파로호는 화천댐에 의하여 만들어진 호수인데 6·25 때 수많은 중공군의 시신이 수몰되었다고 하여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뜻의 ‘파로호’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여름까지는 상류에 있는 북한 임남댐(일명 금강산댐)에서 물을 가두고 있어 물이 많지 않고, 가을 이후가 되어야 어느 정도 물이 찬다고 한다. 그래서 맑은 날씨의 가을에 또는 눈 내린 겨울에 특히 아름답다. 선착장 바로 앞 파로호 횟집의 쏘가리 매운탕과 제철 산나물 반찬들도 기막히다. 기왕 파로호까지 갔다면 평화의 댐 인근의 원래 육지였지만 호수 속 섬이 되어 버린 비수구미마을과, 비수구미 가는 길에 있는 단풍 명소 해산령도 꼭 가보길 추천한다.

공지천

법원 가족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는 공지천
다음으로 사랑스러운 작은 천들을 살펴보자.
호수들이 주말용, 관광객용이라면 천들은 주중용, 현지인용이다. 춘천 법원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5분 정도 걸어가면 공지천변으로 내려갈 수 있다. 공지천변에서 오른쪽을 택하여 걸어가면 곧 약사천 합류지점과 만난다.
약사천은 한때 복개되어 있었으나 2013년 이후 시에서 생태하천 복원사업을 하고 분수와 조명을 설치하여 예쁜 수변공원으로 조성하였다. 약사천으로 들어서지 않고 공지천변을 오던 대로 계속 걸을 경우 도보 약 30분에 의암호 둘레길 초입인 의암호 조각공원에 다다른다. 여기서 레고랜드 맞은편까지 앞서 말한 벚꽃·단풍 터널이 있다. 반대로 공지천변에서 왼쪽을 택하여 걸어가는 경우에는 도보 약 15분에 퇴계천 합류지점과 만난다. 약사천, 퇴계천은 졸졸 흐르는 시냇물 느낌의 작은 천이고, 공지천은 2차선 차도 정도 폭의 꽤 큰 천으로 양안에 보도, 자전거전용도로, 꽃밭, 운동기구 등이 잘 정비되어 있다. 그래서 공지천은 춘천시민들의 출퇴근길이자 운동장이다. 늦은 밤까지도 운동을 하거나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이 있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다. 춘천 법원과 관사들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 객지 생활하는 춘천법원 가족들의 출퇴근길에 위로와 기쁨을 준다.
물길 따라 춘천 따라…入春大吉
최근 행복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 모든 일에 막힘이 없을 줄 알았는데, 나는 여전히 매사 서툴고 마음속은 늘 부산스럽게 흔들린다. 이런 마음속 소란이 가끔씩 사라지고, 내 결정에 확신이 들 때 나는 행복하다고 느낀다. 매 순간 처음인 인생에서 내가 의지할 것은 나 자신을 포함하여 자연이 본래 가지고 있는 자성(磁性) 밖에는 없다. 자연의 일부인 내 본성을 망가뜨리지 않는 한, 배꼽시계가 내게 필요한 영양분을 알려주듯이 자연이 가진 정교한 자성이 나를
올바른 길로 인도할 것이다. 물길을 따라 춘천(그리고 화천)을 이리저리 거닐 때 가끔 나는 그런 순간에 도달한다. 그러니 어찌 ‘入春大吉’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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