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에세이 1] 임신, 출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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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껏 에세이 1] 임신, 출산기

2022.12.07

임신, 출산기

마음껏 에세이 1 I 임신, 출산기

글 김성인 판사(창원지방법원 밀양지원)

임신, 출산기

‘두 줄이야!’ 드라마 속에서나 보던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 표시다. 결혼한 지 약 1년 반 만에 아내의 배 속에 작은 생명이 움트기 시작했다. 심장 소리를 듣고, 빠르게 뛰는 모습을 직접 보아도 정말 저 작은 세포가 나중에 사람이 된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이제 우리 부부에게도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었다.

임신
아내는 음식, 행동, 걸음걸이도 매우 조심하며 엄마가 되는 준비를 자연스레 시작하였다. 나도 그런 아내의 변화에 동참하며 아빠가 되려는 준비를 시작하였지만, 사실 임신 기간 동안 나는 정확히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잘 알지 못한 상태로 그저 행복함만을 만끽하였던 듯하다.

5개월 정도가 되어 아이가 안정기에 들어섰다. 배 속의 아기는 정상적인 범위에서 잘 자라고 있다. 이제 본격적인 출산 준비에 들어가야 할 때이다. 아내는 주변의 출산 선배들로부터 출산, 육아에 필요한 물품 리스트를 받아 직접 정리를 하였는데, 산모 용품을 포함하여 무려 138개나 되었다. 기저귀, 젖병 등과 같이 필수적인 아이템들도 있었지만, 이름만으로는 구체적인 용도를 알 수 없는 생소한 물품들도 즐비했다. 처음에는 그 필요성에 의문이 있어 최소한의 물품만을 구매하였으나 나중에 아이를 직접 키우면서 결국 리스트에 있는 물품들 중 상당수를 구매하게 되었다.
역시 육아는 ‘아이템 빨’이다.

출산
‘OOO 산모 보호자분 분만실로 들어오세요’ 아내가 분만실에 들어간 지 1시간 정도가 지나도록 아무 소식이 없다. 제왕절개를 하는 만큼 금세 출산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까닭에 행여나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조마조마하던 차였다. 아이와 첫 대면에 나름 멋진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 비록 후줄근한 반바지에 운동복이었지만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아이는 하얀 이불에 싸인 채로 얼굴만 슬며시 내밀고 있었다. 따뜻하고 포근한 엄마의 배 속에 있다가 갑작스레 세상에 나와 모든 것이 낯설었을 것이다. 얼굴에는 그러한 불편한 심경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아이를 안아주고 싶었지만 코로나19로 직접 접촉은 허용되지 않는다. 아마 아이를 안을 수 있었어도 조그마한 아이를 떨어뜨리거나 다치게 할까 봐 안지도 못했을 것이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고 나를 아빠로 맞이한 과정에서 아이에게는 전혀 선택권이 없었다. 오로지 우리 부부의 원으로 우리의 아이로 태어났다. 왠지 원치 않게 이 세상에 태어난 아이에게 다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세상을 살아내는 것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아이에게 어느 상황에서라도 너를 응원하고 도울 아빠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어 아이에게 다짐 섞인 첫 말을 해본다. ‘최선을 다해 좋은 아빠가 되도록 노력할게. 잘 부탁해.’

‘아이가 숨을 쉬는 것을 좀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아이 엉덩이에 딤플이 있어서 정밀검사가 필요합니다.’ 임신 중 검사와 출생 직후 이루어진 육안 검사에서도 특별한 이상이 없었던 터라 의료진의 이러한 말은 충격적이었다. 의료진으로서는 당연히 해야할 말을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최악의 경우를 무덤덤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야속하기만 했다. 다행히도 아이의 호흡은 금세 정상을 찾았지만(갓 태어난 아기들은 종종 숨 쉬기가 어려운 경우가 있다고 한다), 딤플에 대한 정밀검사는 몇 주 후에나 가능하다고 한다. 검사와 그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 부부는 많은 기도를 했다. 출산 전 우리는 아이에게 바람이 참 많았던 것 같다. 똑똑하고, 예쁘고, 커서 훌륭한 사람 되라 등등. 그러나 검사와 결과를 기다리는 몇 주간 우리는 욕심을 내려놓았다. 아이가 단지 자신의 인생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만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몇 주 후 진행된 초음파 검사에서 정말 다행히도 아이에게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아이가 커가면서 문득 다시 우리의 욕심을 아이에게 강요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럴 때마다 이때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려 한다. ‘아가야 건강하고 자신과 남들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이 되거라.’

육아
‘일단 분유를 먹이자’ 도저히 왜 우는지 알 수가 없다. 아이는 그 자체로 엄마, 아빠에게 큰 기쁨을 주고 있지만 울음을 터트리는 동안에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한다. 아이가 울음으로 우리에게 나의 욕구를 찾아 해결해달라는 문제를 내면 우리는 그 문제의 답을 찾아 즉각 해결하여야 한다. 본격적인 육아가 시작되기 전, 아기는 아직 1차적 욕구만을 충족시켜 주면 되니 잘 먹이고, 재우고, 기저귀 체크만 잘 하면 크게 어렵지 않게 신생아 시기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며칠은 그게 제대로 작동하였다. 그러나 알고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도저히 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이유를 모르는 경우 일단 먹여서 재워보라는 조언이 생각나 분유를 주었지만 잘 먹지도 않는다. 울음을 분석해 준다는 앱도 깔아보지만 원인과 해결책은 오리무중이다. 늦은 밤에 누구에게 물어볼 곳도 없다. 결국 우리는 아이가 아픈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서둘러 병원에 방문했다. 그런데 당황스럽게도 아기는 병원에 도착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울음을 멈추고 잠이 들려 한다. 아마도 아기가 낸 문제는 더 오랫동안 자신을 안아 주고 사랑을 표현해 주며, 잠들 때까지 곁에 있어 달라는 것이었나 보다.

‘김아윤’ 생후 약 1달이 좀 못 되어 우리는 아이 이름을 정했다. 아이 이름을 정하기 위해 출산 전부터 많은 고민을 하고 집안 어른들로부터 의견도 듣기도 하였지만, 쉽사리 결정을 하지 못하고 계속 미루어 두었다. 이름은 아이와 평생을 함께 하고, 정체성 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고민이 길어졌다. 우리의 바람을 자꾸만 이름을 통해 아이에게 투영하려는 것도 결정을 주저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결국 우리는 출생신고 기한 마지막 날에서야 결정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최종 결정 과정은 다소 싱거웠는데, 여러 개의 최종 후보 이름들을 하나씩 아윤이에게 불러줬을 때 아윤이가 가장 좋아했던(우리가 그렇게 느낀 것이겠지만...) 이름이 아윤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아기는 아윤이가 되었다.

출산 휴가
‘무슨 남자가 출산휴가를 써. 자기가 낳는 것도 아닌데. 출산 때문에 재판을 연기하는 게 말이 돼’ 내가 재판연구원 생활을 할 때만 해도 남자 판사님들이 출산휴가를 쓰는 것이 자유롭지 않았다. 출산 때문에 기일을 잡지 말아 달라고 부장님께 말씀을 드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우리 때는 출산할 때 가지도 못했다’는 등의 ‘라떼는 말이야’식 말씀도 들은 것 같다. 남성의 육아 휴직은 더욱 이례적이었을 것이다. 어느 남자 판사님께서는 육아 휴직을 사용하자 승진 포기는 물론 퇴사를 계획 중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제도는 있었지만 구성원들의 인식은 제도와 괴리가 있었다.

그러나 10년도 되지 않아 세상이 바뀌었다. 전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기록 중인 것을 넘어 인구 데드크로스가 발생한 우리나라의 인구 감소는 국가의 존폐를 가를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고, 어떻게든 출산율을 반등시키기 위한 사활을 건 전 국가적 차원의 노력이 진행 중이다. 많은 사기업들도 앞다투어 자신들이 아이 키우기 좋은 회사임을 강조하고 이러한 회사가 구직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법원도 10년이 채 되지 않은 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이니 편히 다녀오세요’ 출산휴가를 고민하고 조심스레 말씀을 드렸을 때 지원장님이 해주신 말씀이다. 밀양지원은 법관이 지원장님 포함 5명에 불과하고 당직은 3명이 1주씩 맡고 있으며 나는 매일 결재가 필요한 신청사건과 모든 합의부 재판업무를 맡고 있어 내가 2주의 자리를 비우는 경우 남은 구성원들의 업무부담은 적지 않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출산 휴가를 쓰는 것이 구성원들에게 죄송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지원장님과 부장님, 판사님들께서는 본인들의 불편을 흔쾌히 감수하겠다고 해주셨다. 출산 전후로 우리 지원의 많은 직원 분들께서도 축하 말씀과 더불어 아윤이에게 필요한 선물도 주셨다. 우리 지원 구성원의 지원과 희생으로 나는 낯선 세상에 발을 디딘 아윤이와 출산 후 회복과 육아로 걱정이 많던 아내와 귀중한 2주의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다.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선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말처럼 아윤이 역시 우리 지원 구성원 모두의 도움으로 무사히 세상의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마치며
이제 아윤이는 70일이 되었다. 아윤이는 여전히 엄마, 아빠에게 많은 문제를 던져 주고 있지만, 그저 건강하게 자라주고 있음에 감사하다. 아이는 커가면서 더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를 우리에게 던져 줄 것이다. 아이가 아무런 문제 없이 자란다면 좋겠지만 그것은 우리의 욕심일 것이다. 단지 바라는 것은 우리 부부가 그때마다 올바른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지혜를 갖추고 있길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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