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에세이 2] 우리집 사모님의 MB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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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6

마음껏 에세이 2 I 우리집 사모님의 MBTI

글 류승원 참여관(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우리집 사모님의 MBTI

우리 가족은 나, 우리집 사모님, 5학년 장녀, 3학년 차녀 이렇게 4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우리집 사모님’은 아내를 대외적으로 표현할 때 내가 자주 쓰는 표현이다. 아내 혹은 와이프가 일반적인 표현이겠지만 나는 우리집 사모님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입에 붙었다. 마치 옆 동네 아주머니를 지칭하는 듯한 말이랄까. 그만큼 우리집 사모님과 나는 성향이 다르다. 처음에는 이 다름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에 대한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우리집 사모님과 다른 나
첫 번째로 나는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주말에는 집에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힐링하는 것을 좋아한다. <미스터 션샤인>을 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역사를 다룬 드라마가 이렇게 신선한 시각으로 연출할 수도 있구나를 느꼈고, <또 오해영>을 보면서 남자인데도 여주인공의 마음이 이해가 갈 정도로 시청자의 공감을 살 수도 있음을 느꼈다. 또한 <관상>에서 수양대군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그 카리스마에 저절로 뒷걸음질 치기도 하였으며, <타짜>를 오랜만에 다시 보면서 곽철용의 대사 “어이 젊은 친구 신사답게 행동해~”, “묻고 떠블로 가~”를 따라해 보기도 했다.
그에 반해 우리집 사모님은 외부활동에 적극적이다. 결혼 전에는 영어회화 동호회에도 다녔고, ‘산은 보라고 있는 것이지 타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명언처럼 들리던 나와는 달리 그녀는 등산을 좋아했다. 결혼 후에도 주말에는 마트나 벚꽃놀이, 핑크뮬리 감상 등 밖에 나가는 것을 좋아했다. 최근에는 다이어트 때문이기는 하지만 평일에도 저녁에 운동을 갔다 온다.
두 번째로 나는 요리를 할 때 비교적 레시피에 맞게 하려고 노력한다. 라면 하나를 끓여도 뒷면 레시피에 나와 있는 물의 양과 시간을 준수한다. 그리고 볶음밥에 넣을 양파, 감자, 당근도 가급적 아이들이 먹기 편하도록 잘게 썰어서 넣는다. 속도는 좀 느려서 30분 정도 시간이 걸리지만 다행히 아이들은 나의 볶음밥을 맛있게 먹어준다.
그러나 우리집 사모님은 라면을 끓이면 물의 양이 일정하지 않아 어떤 때는 라면 국물이 한강이 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동일한 요리를 할 때에도 양파, 감자, 당근의 크기도 그때그때 달라 ‘겉촉속바’인 당근을 맛볼 수도 있다. 안 익었다는 얘기다. 다만 10분 안에 요리하나가 뚝딱 만들어져 출근과 등교하기 바쁜 아침에는 대단하다고 생각이 든다.
세 번째로 나는 아이들이 친구들과 있었던 일을 얘기해주면 바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조언해주고 있다. 만약 친구와 말다툼을 했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고, 아이의 감정을 위로해 준 후에 그런 상황에서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 이후에 친구와 화해하려면 이렇게 말을 건네보는 것은 어떠냐고 조언해준다.
그러나 우리집 사모님은 아이를 위로하고 격하게 편들어 준 후에 친구가 그 애밖에 없는 것도 아닌데 다른 친구들과 만나라고 말한다. 아이는 당장 절교할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말해도 마치 본인이 그 아이와 싸운 것인 마냥 그런 애랑은 만날 필요가 없다고 흥분한다.

네 번째로 나는 여행을 갈 때 계획을 세워서 간다. 미리 목적지까지 가는 예상 경로와 킬로 수 등을 알아보고, 가보고 싶은 관광지도 미리 인터넷을 찾아보고 영업시간이나 주차장소 등을 확인해둔다. 물론 나 혼자서 정하는 것은 아니고 상의하여 정한다.
반면 우리집 사모님은 즉흥적이다. 여행을 가서 숙소에서 내일 예정된 일정과 관계없이 가보고 싶은 곳을 정한다든지, 그날의 여행을 마치고 차를 타고 숙소로 가는 도중에 어디 한군데 들렀다 가자고 갑자기 말하기도 한다. 내비게이션에 미리 목적지를 입력하고 가는 나로서는 심히 당황스럽다. 우회전하기 불과 5초 전에 직진해야 하는 목적지를 말하면 내가 행동으로 옮기는 데 주어진 시간은 2~3초에 불과하여 난감하다.
“자기야~ 이순신 공원 보러 갈까?”
“지금?”
“아니다~ 지금 가면 숙소에 좀 늦게 들어가게 되네... 잠시 갔다올까...”
(그래서 가자고? 말자고? 간다면 정차해서 내비게이션 찍을 만한 데는 있으려나...)

이쯤 되면 나의 MBTI 유형이 유추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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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유형이라고 한다.
그러던 중 MBC프로그램 <놀면 뭐 하니>에서 MBTI 특집을 하는 것을 보았다. 출연한 연예인들의 MBTI 중 에너지 방향이 내향적인지 외향적인지를 각종 게임 등을 통해서 맞추는 특집이었는데, 나는 나의 MBTI를 알고 있었기에 그런 나의 성향을 대입해가며 재미있게 시청했다.
그러다 문득 우리집 사모님은 어떤 유형인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인터넷사이트 중에 MBTI 유형을 말해주는 사이트를 알려주며 한번 해보라고 했다. 15분 정도 지났을 무렵 우리집 사모님의 MBTI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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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알파벳 조합이었다. 가만히 보니 나와 겹치는 알파벳이 하나도 없었다. 갑자기 깨달았다. 왜 ‘아내나 와이프’가 아닌 ‘우리집 사모님’이었는지...
성격유형이 나와 달랐기에 외출이나 여행 및 일상생활에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여럿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성격이나 성향이 나와 다르다는 것은 10년 이상 살아오면서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성적표(?) 같은 형태로 받아보니 그것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이런 성격유형도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좀 더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느낌이랄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4%나 있었구나.’
‘여행 계획을 함께 상의해서 정했지만 그것도 정해진 틀로 인식해서 벗어나려 할 수도 있겠구나.’
사람을 이렇게 도식화하여 인식하려 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연구의 목적도 있겠지만 그 본질은 타인을 이해하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제서야 우리집 사모님의 여러 상황에서의 여러 행동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어차피 내가 가진 생각이나 성향이 정답이 아니니까...
그리고 그 성향이 완전히 고정되는 것도 아닌 듯하다.

생각과 성향은 고정되지 않는다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던 나도 지금은 가족들을 데리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새로운 것을 체험한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 우리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실내복합놀이시설이나 어드벤처파크에서 외나무다리 등 각종 장애물을 넘어 마지막에는 집라인을 타고 내려오는 것이다. 드라마를 첫회부터 끝까지 본 적이 거의 없는 우리집 사모님은 얼마 전에는 <펜트하우스>를 재미있게 보았고 최근에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재미있어 보인다면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행을 갈 때도 나는 이제 최소한의 정보만 검색한다. 그리고 오후에 두 군데를 여행하려고 계획 하였으나 첫 번째 여행지가 마음에 들면 거기서 계속 놀다가 숙소로 바로 들어가기도 한다. 요즘 우리집 사모님은 입장티켓이 필요한 여행이 예정되어 있으면 미리 티켓을 구매하여 여행을 가고, 열차를 타야할 경우에는 미리 여유있게 티켓을 발권해 놓는다.
이제는 아내나 와이프라고 지칭을 할까? 하지만 나는 여전히 우리집 사모님이라고 지칭할 예정이다. 내 성향이 상대방의 성향과 같게 바뀐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대방을 그 자체로 이해할 수 있기에 오히려 ‘우리집 사모님’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고 한다면 궤변이려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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