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에세이1] 혼자 하는 여행

테마가 있는 글

[마음껏 에세이1] 혼자 하는 여행

2022.09.06

해 진 직후의 드레스덴

마음껏 에세이 1 I 혼자 하는 여행

글 김근홍 판사(대전고등법원)

코로나19로 인한 해외여행의 제약이 점차 풀리면서 주변 사람들과 해외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 나누곤 합니다. 제 경험들을 말하면 사람들은 제가 주로 혼자 해외여행을 했다는 사실에 놀라곤 하는데요. 그래서 이번 기회에 제가 혼자 해외여행을 했던 경험들에 관하여 몇 가지 소소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계기
제가 처음 홀로 해외여행을 하기로 결심한 것은 군에서 전역을 한 달여 앞두고 남은 휴가를 어떻게 쓸 것인지 고민할 때였습니다. 법원에 임관하면 여행도 제대로 다니기 힘들 것 같아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는데, 무슨 용기였는지 이번에는 가족과 같이 가는 여행이 아닌, 패키지여행도 아닌, 혼자 일본으로 자유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지금도 해외에 나갈 때는 빠뜨린 것이 있지는 않은지, 강도를 당하면 어떡하지 등등의 걱정이 생겨 항상 긴장하고는 하는데, 그 당시에는 혼자 해외에 나가는 것이 처음이어서 더더욱 겁나고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그나마 우리나라와 같이 한자문화권에 속하고 치안도 좋은 곳이어서 다른 나라보다는 편하게 여행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공항에 내려서 첫날의 숙소로 향하는 길은 이상하리만치 어렵고 힘들었습니다.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여 버스 정류장을 찾고 숙소로 향하는 버스를 탔지만, 제가 버스는 제대로 탄 것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숙소에 도착한 후에야 비로소 긴장이 풀렸고, 하루 종일 긴장감에 휩싸였던 탓인지 숙소에서 저녁을 먹은 후에는 바로 잠들었습니다. 일찍 잠든 탓에 새벽 3~4시쯤 잠에서 깨었는데, 너무 이른 시각이어서 무엇을 할지 또 다시 궁리하다가 다행히 호텔 내부에 있는 온천이 24시간 운영한다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새벽에 온천에 가니 아무도 없어 저 혼자 온천탕을 이용할 수 있었는데, 대중목욕탕에 혼자 있는 것과는 또 다른 정취가 있더군요. 건물 밖에 있는 온천탕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온천욕을 즐길 수 있었는데, 때마침 그날 새벽에 눈이 내려서 저는 뜨거운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눈 내리는 밤하늘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홀로 깨어있는 새벽, 사위가 고요한 가운데 차가운 공기와 살포시 내려앉는 눈에 머리는 더없이 차가웠지만, 그때 저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벅찬 감동을 받았습니다. 제가 왜 그런 감동을 받았는지는 아직까지도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때의 가슴 벅찬 기억은 이후로도 제가 혼자서 여행을 하도록 이끌었습니다.
비록 다음 날에는 밤새 내린 폭설에 시내로 가는 버스가 끊겨 무척 고생하였고, 그 이후로도 귀국할 때까지 많이 헤매었지만, 저에게는 그런 순간들마저도 재미와 추억으로 느껴졌습니다. 그 이후 저는 결혼하기 전까지 휴정기마다 외국으로 홀로 떠나는 여행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생트 샤펠 사진
혼자 하는 여행을 즐기던 저는 어느 순간 밤에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소심한 성격 탓에 홀로 술집에 가기도 어려웠던 저는 저녁 식사 후 숙소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다 잠이 들고는 하였는데, 평소에도 밤늦게 잠드는 저에게는 외국에서의 밤이 더더욱 길게 느껴졌습니다.
또 다시 궁리를 거듭하던 저는 비교적 가성비가 좋은 DSLR 카메라를 장만해 여행을 하면서 사진을 촬영해 보기로 했습니다. DSLR 카메라로 촬영하면 스마트폰 카메라를 이용하는 것보다 좋은 사진을 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고, 밤에 야경 사진을 촬영하는 재미도 있을 것 같았거든요. 이후로는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카메라를 챙겨 다니면서 꾸준히 사진을 촬영하였는데, 카메라 렌즈나 삼각대 등의 장비를 하나씩 모으고, 사진 촬영이나 보정 작업에 관해 짤막하게 공부하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해외에서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경치가 좋은 곳, 아름다운 곳을 촬영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됩니다. 특히 해가 질 무렵이나 야경을 촬영하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카메라를 담은 백팩에 맥주 캔도 두어 개 넣어두고, 음악을 들으면서 맥주를 마시고 아름다운 풍경을 촬영하면 한껏 기분에 취하게 됩니다. 사진 결과물은 항상 맘에 안 들지만 말이죠. 특히 대부분 스마트폰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보다도 밋밋한 느낌이 들어 당황스러울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도 사진 촬영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이번에는 어디에서 작품을 한 번 건져볼까 알아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오면 여행에서 촬영한 사진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을 SNS 프로필 사진으로 등록하기도 했습니다. 사진이 멋있다는 칭찬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지만, 사진 결과물이 변변찮으면 뭐 어떻습니까. 사진 촬영에 마음을 기울이는 그 순간에 제가 재미있었으면 충분한 것이죠.

공연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여행할 때였습니다. 저녁 식사를 한 뒤 시내 골목길 구경을 하며 걷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팸플릿을 나누어 주기에 받아 보았더니 근처 성당에서 클래식기타 트리오가 공연을 한다더군요. 공연비도 저렴했고, 성당에서 음악 공연을 한다는 것이 이색적으로 느껴져 호기심에 그 공연을 관람하였습니다. 비교적 작은 규모의 성당이었고, 내부 장식도 수수한 편이었지만, 성당 특유의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할 수 있어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그 후 저는 여행을 할 때마다 현지에서 어떤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최대한 많은 공연을 관람하려고 하였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생트 샤펠에서 바이올린 4중주의 사계 공연을 관람한 적이 있습니다. 석양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투과하여 만들어내는 자연과 인공의 아름다운 조화는 어디에서도 겪어보기 어려운 것이었고, 환상적인 공간을 가득 채우는 선율은 제 영혼마저도 조금이나마 채워주는 것 같았습니다.
프라하에서는 우연히 오페라 돈 조반니를 관람할 기회가 있었는데, 예상과는 달리 졸리지도 않고 재미있었습니다. 클래식에는 문외한이지만, 관람 전 인터넷에서 오페라의 내용을 파악하고 보니 어느 정도는 맥락을 이해할 수 있더군요. 공연뿐만 아니라 오페라하우스 건물이 100년 이상 된 아름다운 곳이어서 건물 내외부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운치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우연한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지만, 해외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공연을 관람하려고 노력했던 것은 랜드마크 위주로 둘러보는 여행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귀국
1~2주간의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면 역시 집이 최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호텔도 제가 사는 집보다 편할 수는 없으니까요. 해외여행을 하면 시차적응하는 데 어려움도 있고, 평소보다 부지런히 움직이다 보니 그동안 쌓인 피로가 큰데, 집에서는 그런 피로가 모두 풀리는 기분입니다. 무엇보다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 지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고, 혹시 모를 사고와 실수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긴장하고 있다 보니 집에 돌아오면 더욱 편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해외여행이 재미와 새로운 경험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하더라도, 일상의 편안함을 대신할 수는 없는 듯합니다.
해외에서 돌아와 먹는 한식은 참으로 맛있습니다. 해외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한식을 피하지만, 그렇다고 현지식이 제 입맛에 맞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모르게 한국에 돌아가면 무슨 음식을 먹을지 고민하는 저를 발견하는 경우가 꽤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뼈해장국의 적당한 얼큰함과 조미료 맛이 제일 많이 떠오르더군요. 음식도 한식이 최고입니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가 평소보다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외국에서의 저는 뜨내기 여행객이자 이방인일 뿐이죠. 무엇보다 같이 대화하고 함께 식사할 사람도 없는 혼자입니다. 평소와는 다른 공간에서 느끼는 그 생경함이 매력적이어서 휴정기마다 홀로 떠나고는 했지만, 오히려 그런 경험 때문에 저의 주변 사람들이 주는 안정감과 편안함, 충분한 의사소통과 감정적 교류가 이렇게도 소중한 것이었구나 하고 느끼게 됩니다. 결국에는 제게 익숙한 것들이 이렇게도 값진 것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 있다는 점이 홀로 하는 해외여행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합니다.

이제는 저도 가정을 꾸렸기 때문에 더이상 혼자 하는 해외여행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가끔씩 아내에게 앞서 말했던 경험들을 혼자만 신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아내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래서 혼자 여행 가고 싶어?”라고 묻거든요. 물론 저는 한 치의 거짓 없이 “앞으로는 무조건 당신하고 같이 가고 싶지.”라고 말하는 진실한 남편입니다.

"테마가 있는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