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에세이1] 부모님과 슬기로운, 그리고 즐거운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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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9

아버지

마음껏 에세이 1 I 부모님과 슬기로운, 그리고 즐거운 생활

글 김혜수 실무관(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

부모님과 슬기로운, 그리고 즐거운 생활

부모님 취미생활 함께 해보기
안녕하십니까. 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혜수 실무관입니다. 해가 바뀌고 따뜻한 봄이 찾아온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파릇파릇한 여름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싱그러운 계절을 보내면서 오랜만에 글을 써보려 하니 중고등학생 때가 생각나 왠지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처음 글을 쓸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주제는 역시 ‘첫 발령을 받은 신규직원의 걱정과 설렘’, ‘동기들과의 좌충우돌 일상’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좋아지는 날씨와 타지에서의 직장생활은 발령 전 부모님과 함께 보낸 시간들을 떠오르게 하였고 글로 남겨보면 좋을 것 같아 이렇게 글감으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성인이 된 이후로는 쭉 타지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본가에서 일주일 이상 머무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험생활이 끝나고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면 얼마간이라도 본가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고향에서의 특별한 시도를 하거나 계획을 세우기에는 코로나라는 커다란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고민 끝에 가장 가까운 곳에서 손쉽게 시도해 볼 수 있는 방법인 ‘부모님 취미생활 함께 해보기’를 떠올렸습니다. 요즘 부모님의 관심사가 무엇인지도 궁금했고 새로운 경험도 해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부모님께서 취미활동을 하실 때면 은근슬쩍 동행을 제안 드렸고 다행히도 흔쾌히 허락해 주셨습니다.

텃밭 가꾸기
아버지께서 아는 분께 작은 밭을 하나 얻으셔서 소소하게 가꾸셨는데 해가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텃밭이 아니라 그냥 밭이라며 고개를 내젓는 어머니와 하루가 다르게 애정을 쏟아붓는 아버지의 대조적인 모습은 매번 실소를 터지게 만들었습니다. 몇 해 전에 갔을 때까지만 해도 호박, 오이, 상추 등 전형적인 텃밭 채소들로 이루어진 작은 구획이었는데 어느새 고개를 들어 내다봐야 할 정도로 부지가 넓어져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고추, 상추, 가지, 복수박 등 좋아하시는 야채와 과일들을 어디에 어떻게 심으실 예정인지 설명해주셨고, 여름 이후에는 대파 모종, 배추 모종도 심어야 한다며 한껏 들뜬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굉장히 오랜만에 뵙는 아버지의 즐거운 표정이 참 반가웠고, 이렇게까지 푹 빠질 수 있는 취미를 찾으신 것이 기뻤습니다.
농작물을 가꾸는 일의 시작과 끝을 모두 경험해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많은 노동과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떠올리면서 간간이 들여다보며 손질해주고 예쁘게 잘 자란 열매들을 따 먹는 정도의 생각으로는 어림도 없었습니다. 잡초 방지용 비닐을 깔기 위해 골과 골 사이에서 커다란 비닐 롤과 망치를 들고 뛰어다니는 일이나 고추 모종을 심기 위해 땡볕에 쪼그려 앉아 비닐 구멍 사이로 물을 대는 일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초여름까지도 정말 괜히 따라다니겠다고 했나 싶은 생각이 일주일에 두세 번씩 들었었는데, 어느새 작은 씨앗에서 싹이 움트고 이파리가 푸릇푸릇하게 커가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흡족한 웃음을 짓는 부모님의 표정과 함께 저도 즐거워졌고 지난날의 근육통들이 드디어 결과물로 나타나는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계절이 지날수록 심었던 채소와 과일들은 놀라운 속도로 자라났습니다. 여름에는 잎채소들과 고추, 겨울부터는 대파, 배추 등을 수확하는 재미와 이웃 분들과 나눠먹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 년 동안 열심히 키우고 잘 말려 빻은 고춧가루와 속이 잘 차오른 배추로 담근 겨울 김장김치는 왠지 여느 김치와는 다른 느낌이 들기까지 했습니다.
텃밭을 일구거나 주말농장을 가꾸는 것은 단순히 ‘작물을 키워내 열매를 취한다’고만 생각하기에는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는 취미임을 느꼈습니다. 자연에 대한 이해와 주변 사람들과 나눌 줄 아는 즐거움까지 배울 수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발령을 받고 근무지로 오면서 이제는 텃밭을 사진으로만 접하고 있지만 밭일을 끝내고 방울토마토를 따 먹으며 바라본 텃밭의 풍경은 오래도록 기억이 날 것 같습니다.

드라이브

드라이브
어머니께서는 주말이나 하루 일과를 마치고 여유가 되실 때면 드라이브를 시켜주곤 하셨습니다. 너무 늦은 시간이 아니면 저도 따라가곤 했었는데, 바닷가를 따라 해안도로를 쭉 달리기도 하고 (거의 알아듣지 못했겠지만)동네에 새로 난 길을 알려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서로 그날 있었던 일들을 말하거나 상의할 일 혹은 궁금한 것들, 그해 휴가를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등을 이야기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다양한 취미생활을 가져보신 어머니의 가장 오래된 취미 중 하나가 드라이브인데, 어쩐지 그 이유가 궁금해져 여쭤본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운전하는 것이 좋기도 하고 마음 내킬 때면 언제든지 혼자서도 가능한 거라 좋다고 하시며 “거창할 필요는 없으니까~ 운전하는 나도 좋고 타고 있는 너도 재밌잖아.”라며 웃으셨습니다.
정말 별것 아닌 대화를 나누고 새로울 게 없는 동네 길을 달리는 일이었지만, 어머니와 함께 봤던 창밖 풍경이나 얘기를 나눴던 순간들이 참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운전할 수 있는 어른이 되면 꼭 내가 운전해서 어머니와 함께 드라이브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작년 겨울에 운전연수를 받았고 드디어 저의 오랜 바람을 실현하게 되었습니다. 한낮에 해안도로를 달리는 코스로 정하고 어머니와 함께 차에 올랐습니다. 뒤바뀐 자리에서 어머니께서는 ‘드디어 네가 운전을 하는구나.’, ‘코너링이 부드럽게 잘 돼야 해. 연습 많이 하자.’, ‘정신 바짝 차리고 운전해야 한다.’는 등의 말씀을 해주셨는데 이 상황이 참 신기하고 웃기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존재와 함께 별다른 걱정 없이 떠들면서, 웃으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을 취미로 삼으셨던 어머니의 마음을 느껴볼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좋았습니다. 제가 타지 생활 중에 본가에 방문할 때면 어머니께서 항상 오랜만에 드라이브 가자고 해주시곤 했었는데 그때는 그것이 저를 위해 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보니 그렇게 예전처럼 두런두런 이야기하면서 밤길을 달리는 것이 어머니께도 필요한 시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괜히 마음이 시큰해졌습니다. 특별하거나 거룩하지 않더라도 가까운 곳에서 찾는 행복과 안도감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풍요로운 마음으로 성장하는 사람되기
교육 일정이 예년보다 늦어지면서 생각지도 못한 여유가 생겼고 덕분에 1년이 조금 되지 않는 기간 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해, 그리고 부모님(특히 아버지)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표현하는 것이 어색하셨던 경상도 출신의 아버지께서는 이제 ‘우리 혜똥이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해봤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실 수 있게 되셨고, 언제나 원더우먼 같았던 어머니께서는 당신의 걱정과 고민을 털어놓게 되셨습니다. 앞으로 아마 이렇게까지 긴 시간을 부모님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일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제가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어릴 때는 몰랐던 부모님의 고충과 깊은 사랑을 깨달아 갈 기회가 남아있다고 생각하니 마냥 아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으며 일을 배워나가기에도 바쁘지만, 나중에 여유가 생긴다면 어떤 것이라도 취미를 가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는 취미와 함께 더욱더 성장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매일매일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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