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순간들2] 산 속 주택에서 사계절을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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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6

산속주택

산 속 주택에서 사계절을 느끼다

언젠가 아내와 고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난 내가 돌아가서 편히 쉴 (남원)고향집이 있다고 했다. 그곳은 부모님, 누나와 함께 어린 시절 추억이 가득한 주택이다. 하지만 줄곧 서울의 아파트에 살았던 아내는 딱히 고향이랄 곳도, 기억에 남는 집도 없다고 했다.
우린 집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들에게 고향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공동의 소망을 품게 되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만들어 주고 싶은 집이란, 물리적 공간이라기보다는 마음이 쉬어갈 수 있는 고향과 같은 곳. 살아가면서 가끔 꺼내 추억할 수 있는 상징적 공간이었다.
그러던 중 지방 발령을 통해 우리의 소망을 실현할 기회가 찾아왔다. 우리는 서울과 전혀 다른 생활이 가능한 산 속 전원주택을 구했고, 주택에서 우리는 생활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가치관이 변화함을 느꼈다.
주택에서 지낸 지 이제 1년 남짓. 우리 가족이 지낸 사계절을 소개한다.

글. 사진. 한상술 판사(순천지원)

산속주택

우리는 작년 9월 서울 아파트에서 순천의 주택으로 이사를 왔다. 처음 이집을 보러 올 때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끝없이 산 속으로 들어가기에, 여긴 아니다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인적이 드문 이 산 속 집이 참 좋다.
주택 생활 3달째. 황금 같은 가을 시간을 보냈다. 집에서 1분 거리에 사람들이 잘 모르는 등산진입로가 있다. 이 진입로로 들어가면 쉬운 둘레길부터 밧줄을 잡고 올라가야 하는 험난한 코스까지 10개도 넘는 등산코스가 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쉬는 날은 항상 산이다. 오색찬란한 가을 산. 우린 그곳에 무던히도 올랐다.
짧은 시간에 아이들의 표정, 행동, 말투가 상당히 달라졌다. 더 활발해졌고 과감해졌다. 풍부해졌고, 밝아졌다. 아파트와 기차를 주로 그리던 첫째의 그림이 꽃과 나무, 새로 바뀌었다. 눈을 뜨면 내복 차림으로 뛰어 나가 자전거를 타고, 흙 놀이를 했다. 날이 좋을 때면, 하루 종일 밖에서 시간을 보냈다. 놀이터가 없어 이 집은 재미없을 것 같다던 첫째 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어른이 되어서까지 이 집에서 살고 싶다 말하기 시작했다. 사계절을 모두 경험해봐야겠지만, 다시 아파트로 가긴 힘들지 않을까. 뛰지 말라는 잔소리를 할 필요가 없으니 잔소리의 반은 줄어든 느낌이다.

주택에서 맞는 겨울은 추위와의 싸움이다. 내의, 기모 상하의, 조끼까지 기본 3겹씩 입고 양말도 선택이 아닌 필수다. 아무리 난방을 해도 실내온도 17도대를 유지하는 이 집. 그러나 이런 시베리아 추위에도 아이들은 여전히 안과 밖을 오가며 잘 놀았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실내와 밖의 온도 차가 크지 않아 오히려 감기 한번 걸리지 않았다. 나중에 집을 짓게 된다면, 꼭 정남향으로 단열에 무엇보다 신경 쓴 집을 짓겠다고 다짐해 본다.
눈이 너무 많이 내리는 날은 어린이집에 가지 못한다. 눈이 잔뜩 쌓인 경사가 심한 산을 어린이집 차량이 올라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쌓인 눈을 보고 비장한 웃음을 짓는 아이들은 아침을 먹자마자 완전무장을 한 채, 칼바람을 뚫고 나가 놀기 시작한다. 눈을 맞으며 타는 트램펄린의 맛을 아는 아이들.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얀 눈에 발자국을 내보고 이불 삼아 버둥거린다. 일찍부터 밖에 나가 있는 아이들 덕분에 아내는 어린이집 갔을 때와 다름없이 평소 하던 집 정리를 할 수 있다. 이따금 잘 노는지 창밖으로 확인을 하며.
울타리가 없고 앞집과 마주 보고 있는 집. 처음엔 사생활 보호가 되지 않고, 아이들이 놀다가 길을 잃을 수 있어 이 집의 단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울타리가 없기에 아이들은 앞 집 마당에서까지 자전거를 탈 수 있고, 더 자유롭고 넓게 놀 수 있다. 벽이 없는 만큼 이웃집들과의 교류도 잦은 편이다. 음식을 나누고, 급할 땐 아이를 봐주기도 한다. 이웃의 진정한 의미가 실현되는 곳이다. 주택을 떠난 이들은 주택의 겨울을 견디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가족에게 주택은, 겨울에도 너무나 매력적이다.

주택의 봄은 코로 먼저 느낄 수 있다. 혹독한 추위를 겪어서인지 봄이 세상 반갑다. 나무들이 형형색색의 옷을 입는 과정을 보는 것은, 이 곳의 큰 재미 중 하나다. 죽은 줄 알았던 가지에서 초록 순이 나고, 마른 풀 사이로 노랑, 보라, 빨간 꽃들이 밀려 올라온다. 여러 향기가 정신없이 피어나는 이 곳. 강아지는 정원의 곳곳을 자유롭게 누비며 냄새를 맡는다.
배달음식이 오지 않는 우리 집. 하교시켜 집까지 데려다 주는 학원. 당연히 없다. 덕분에 학원을 다니지 않는 첫째 아이는 동생이 하원하는 5시까지 혼자 놀아야 한다. 그래도 이곳은 아이가 혼자 시간을 보낼 거리가 많다. 분필로 바닥을 스케치북 삼아 그림 그리기. 마당에 텐트와 장비를 갖춰 놓고 캠핑 놀이하기. 큰 바위 경사면에 올라가 미끄럼틀도 타고, 바람이 부는 날엔 자연스레 연을 가지고 나와 날린다. 비가 오는 날엔 비옷을 입고 장화를 신은 후, 집에 있는 모든 우산을 데크에 펼쳐 놓고 집짓기 놀이를 한다. 진흙이 된 텃밭에서 첨벙첨벙 까르르르. 아이의 웃음소리가 곳곳에 울려 퍼진다.

휴일 쨍한 햇빛과 하늘. 이런 날은 묵혀둔 일들을 해야 한다. 온 가족의 이불을 털어 옥상으로 올라간다. 빨랫줄에 널어 뽀송하고 빠삭하게 햇빛샤워시킨다. 정원의 잡초를 깎은 뒤 2주 만에 발목 넘어서까지 무성하게 다시 자란 잡초들. 이젠 꽃까지 펴 벌들이 쉴 새 없이 윙윙거린다. 깎아내고 뽑고를 반복한다. 어느새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가 시큼한 풀냄새가 고약하다며 우산을 하나씩 들고 나와 튀는 풀을 막고 있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뗀 막내 아이는 데크 위에 마련해 놓은 작은 간이 놀이터(수영장, 미끄럼틀, 트램폴린)에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느라 분주하다. 아내는 집 앞 텃밭에서 빨간 보리수와 까맣게 익은 오디를 따다 청을 만든다.
텃밭과 정원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변한다. 오늘은 또 어떤 꽃이 피었는지, 어떤 작물이 자랐는지 살펴보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자연과 함께하는 이곳의 삶은 매일매일 경이롭다. 애써 돌보지 않아도 모든 것이 잘 자라니 자연의 섭리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해먹에 누운 아이들은 이제 꽤 자연스럽게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별의 모양을 감상한다. 집 주변에 어떤 새가 살고 있는지 무슨 나무가 심어져 있는지 관심을 갖고 둘러본다.
요즘 날씨가 좋아 부쩍 바비큐를 자주 해 먹는다. 고기를 먹은 후 고구마 대신 마시멜로를 구워보았다. 양손에 마시멜로를 들고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을 보며 밤이 늦도록 이야기를 나눈다.

에필로그 산 속 주택의 삶은 불편함(벌레, 추위, 지리적 고립 등)의 연속이지만 그것을 상쇄하는 아니 능가하는 자유와 여유가 있다. 우리가 훗날 집을 구하게 된다면 아파트로 가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우리 부부는 이곳에서 또다시 공동의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이곳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우리만의 멋진 집을 지어보기로 말이다.
가족 구성원 각각의 바람을 담은 집. 우린 앞으로도 계속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주택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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