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순간들1] 포항에서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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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순간들1] 포항에서의 추억

2021.07.09

포항에서의 추억

글. 사진. 김현준 판사(포항지원)

컴퓨터를 켜고 업무를 시작하려는데 영상통화가 걸려온다. 유치원 가방을 메고 킥보드에 올라 타 있는 셋째 아들 도엽이의 모습이 보인다.
“아빠, 언제 갔어?”, “몇 밤 지나면 서울 올 거야?”, “아빠 미워. 미워.”, “아니, 아빠 착해.”, “도엽이도 착하지?”, “보고 싶어.”, “사랑해.”,
온갖 질문과 감정들이 표출된다. 올해 초까지 포항에서 함께 생활하던 도엽이는 주말에만 아빠를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영 불만인 모양이다.
어느덧 익숙해진 월요일 아침의 풍경.

환호공원, 포항 철길 숲, 오도리, 이가리 해변, 내연산 계곡, 호미곶, 구룡포 일본인 가옥 거리, 영덕 메타세콰이어 숲, 옥계 계곡, 청송 주왕산, 주산지 등등... 함께 근무하던 판사님이 “휴양 온 것 같다.”는 장난 말씀을 하실 정도로 우리 가족은 지난 3년간 포항에서 생활하면서 참 열심히도 돌아다녔다.
그 중 마음이 내킬 때마다 돗자리와 간단한 간식거리만 챙겨 찾아가곤 했던 10분 거리의 바닷가에서의 일상이 가장 그립다.

문득 가족들의 기억 속에는 포항이 어떤 모습으로 남겨져 있는지 궁금해졌다.

“당신은 포항 생활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게 뭐야?”
“바다.”
아내가 대답한다. 역시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했던가. 아내는 포항의 바다를 유난히 사랑했다.
제주도나 하와이, 캘리포니아의 여느 해변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고 하면서...
멀리 보이는 바다의 풍경을 바라보거나 여름철 백사장에서 아이들과 모래 놀이를 즐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가슴까지 오는 장화를 신고 따개비, 게, 군소 등 갯바위 근처 생물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던, 또 밤이 되면 해루질을 나가자고 줄기차게 이야기하던 아내...
그날그날의 날씨에 따라 표정을 달리하는 바다의 빛깔, 해안도로를 따라 펼쳐진 이름 모를 해변과 그 안의 다양한 생물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로에서의 접근성, 주변 지형과의 조화 등이 다른 지역과는 차별화되어 있다며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포항의 바다에 대해 설명하던 아내의 모습이 떠오른다.

“형섭이도 바다?”
올해 중학생이 된 첫째 아들에게 물었다.
“아니, 난 바다는 별로.”, “하늘... 그리고 별.”
포항에서 생활을 시작하면서 사진 촬영에 취미를 붙인 형섭이는 유독 밤하늘 사진 찍기를 좋아했다. 특히 인근의 캠핑장이나 휴양림과 같이 별을 관찰하기 좋은 장소로 놀러 가게 되면 늘 사진 촬영이 1순위였고, 그런 날이면 별이 밝아지는 새벽 2~3시경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함께 촬영에 적당한 장소를 찾아다니는 일이 다반사였다.
캠핑장에서 줄곧 뛰어놀아 녹초가 되어 잠이 들었다가도 하늘, 별 이야기가 나오면 힘든 기색 없이 일어나던, 저녁 무렵 비가 오거나 날씨가 흐려지면 실망스러운 마음에 낯빛도 함께 어두워지던 형섭.
날이 흐려서 낙담해 있던 중 하늘 가득했던 구름이 걷히면서 갑작스럽게 별무리가 나타나던 장면, 밤하늘을 길게 가로지르는 별똥별을 바라보며 감동하다가 소원을 빌지 못했다며 서로 아쉬워하던 순간, 한겨울에 모델 노릇을 하느라 추위에 떨면서 몇 번이고 1분 넘게 한 자세로 서 있었던 기억 등은 지금도 때때로 형섭이와 함께 소환해 보는 소중한 추억들이다.

“나는 회. 회는 역시 자연산이지!”, “수족관에 있는 거 말고 직접 잡은 것.”, “그 긴 거 있잖아, 뱀 같이 생긴 거. 그거하고 배낚시 가서 먹은 거, 그게 최고야!”
둘째 형진이가 끼어든다.
유치원에 들어갈 무렵부터 유난히 회를 좋아했던 형진이는 포항에 와서 소위 자연산 회에 맛을 들이게 되었다. 특히 장난처럼 시작했던 낚시에서 운 좋게 직접 낚은 물고기를 맛본 이후로는 늘 낚시 타령이었다. 그래서 바닷가에 나가는 날이면 성화에 못 이겨 늘 낚시대를 펴고, 또 회를 먹지 못하게 되었다고 실망하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어떻게든 한 마리라도 잡아보려고 안달을 하던 우리 가족이었다.
한 번은 작은 뱀장어 같이 생긴 배도라치라는 물고기가 잡혔다. 도저히 손질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이건 놓아주자.”라고 했더니 “먹지도 않을 거면서 왜 낚시를 해!”라며 토라진 형진, 그리고 “검색을 해 보니 제법 맛이 있다는 평이 많다.”는 아내. 울며 겨자 먹기로 회를 뜨는데 예상했던 대로 어찌나 요동을 쳐 대던지... 그 이후로 배도라치가 낚일 때면 “지금까지 먹은 회 중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세우던 형진이의 모습이 떠오르며 한숨과 함께 만감이 교차하는 심정이었다.

“도엽이는?”
“우리 집, 우리 같이 살았던 그 집 있잖아, 거기.”, “도엽이는 거기가 제일 좋았어. 다시 그 집에 가서 살고 싶어.”
첫돌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포항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도엽이에게는 포항이 고향과도 같고 아마도 포항에서의 추억들이 기억의 대부분일 것이다. 서울로 이사할 무렵에는 포항 현지 억양을 제법 그럴싸하게 구사하던 도엽.
그래서인지 포항에서 살았던 집, 그리고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형, 누나들을 많이 그리워한다. 얼마 전 포항에 놀러 왔을 때에도 예전 동네를 찾았다가 “다른 사람이 살고 있어서 전에 살던 집에는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니 친구들을 만나 놀면서도 무척이나 시무룩해 있던 아이...

이렇듯 함께 포항에서 생활했지만, 아내와 세 아들은 각자의 상황과 관점에서 저마다의 포항을 경험하고 느낀 듯하다.

지금도 포항에서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과 빈번히 연락하고, 그들과 재회하기를 기약하는 아내, 별을 촬영한 사진들을 방 한편에 걸어 둔 형섭, 개울가의 작은 물고기만 봐도 회 이야기를 꺼내는 형진, 그리고 때때로 가족 모두 다시 포항에 가서 살고 싶다고,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도엽...

삶의 단계들을 거쳐 가면서 아내와 아이들의 추억은 다른 모습으로 변형되고 퇴색되어 가겠지만, 부디 포항에서의 3년이 지금까지와 같이 내내 아름답고 또 그리운 시절로 기억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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