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순간들1] 코로나가 바꾼 나의 유학 생활

테마가 있는 글

2021.02.05

유학생활

코로나가 바꾼 나의 유학 생활

글. 사진. 김경록 판사(울산지방법원)

2020년 2월, 보스턴에서 유학 생활을 즐기던 나는 넷플릭스에서 우연히 <팬데믹:인플루엔자와의 전쟁>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전염병의 위험성과 함께 미국은 얼마나 전염병을 심각하게 경계하고 철저히 감시하는지를 보여주었다. 뉴욕시 전체 시립병원의 전염병을 관리하는 사이라 마다드(Syra Madad) 박사가 직접 나와 평소에도 중국, 아프리카, 인도 등 전 세계의 전염병 창궐 상황을 실시간으로 체크하면서 뉴욕시에 전염병이 유행되지 않도록 억제하는 과정을 설명해주었는데, 그 당시 한국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라고 한다)의 대유행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것과 달리 미국에서는 그때까지 코로나가 유행하지 않던 것과 연관되어 깊은 감명을 주었고, 미국의 방역체계에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1달 뒤, 미국은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으로 Shut Down 조치를 시행하였고, 나는 대학교를, 5세 아이는 유치원에 가지 못하게 되었다!!??

1. 거리 두기 조치의 시작
나는 2019년 8월부터 일반해외연수로 보스턴에서 거주하였다. 보스턴의 상쾌한 날씨, 학구적인 분위기, 친절한 이웃과 우연히 만난 초등학교 동창 등과 함께 즐거운 유학 생활을 보내던 나에게 코로나로 인한 갑작스러운 Shut Down 조치는 날벼락과 같았다. 사실 2020년 2월 초순까지만 하더라도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코로나의 확산으로 인한 큰 우려는 없었는데, 3월에 들어서면서 코로나의 확산이 큰 문제로 불거지기 시작했고, 3월 중순에는 대부분의 주에서 곧바로 Shut Down 등의 조치를 취하였다. 이 조치는 각 주별로 그 수위가 다르긴 한데 일반적으로 우리의 3단계에 준하여 마트, 약국 등 필수 업종 외에는 모두 문을 닫게 된다.
보스턴의 경우 이러한 조치가 약 1주일의 유예기간을 두고 이루어졌는데, 하버드 대학의 경우 기숙사에 거주하는 학생들에게 월요일에 이를 통보하면서 금요일까지 기숙사에서 나가도록 하였다. 이로 인하여 로스쿨에 재학 중이던 외국인 학생 중 자국으로 돌아가기도 어렵고 외부에 방을 구할 수도 없는 일부 학생들은 기숙사에서 나가지 않는 시위를 하기도 하였다.
나 또한 졸지에 전문 백수로 전락하면서 유치원에 가지 않는 5세 아이, 배우자와 함께 모든 게 멈춘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였다.

유학생활

2. 마스크 구입
보스턴의 Shut Down 조치가 갑작스럽기는 하였으나 나는 한국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2월 말경에 미리 마스크 구입에 나섰다. 호기롭게 약국에 들른 나는 마스크가 진열되어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점원에게 마스크를 구입할 수 있는지 물었고, 돌아온 대답은 지금 내가 아픈지 여부였다. 나는 아프지 않지만 감기를 예방하고 싶다고 말하였는데, 점원은 단호한 어조로 “마스크는 아픈 사람이 남에게 병을 옮기지 않기 위해서 착용하는 것이지, 아프지 않은 사람이 예방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였다.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결국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이 미국은 코로나 확산 초창기에 마스크를 쓰는 이유를 ‘예방적인 측면’에서 바라보지 않았고, 마스크가 의료인이 쓸 수도 없을 만큼 부족하자 시민들의 대부분이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이후 상황이 점점 악화되자 천으로 마스크를 만들어 쓰기도 하였지만, 아직도 미국의 현지 상황을 담은 영상이나 사진 등을 보면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이 종종 목격된다. 이러한 인식 등이 미국에서의 급격한 코로나 확산에 일조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3. 식료품 구입
미국의 각 주에서 Shut Down을 시작한 이후 마트에서 사재기가 급증하였고, 보스턴의 코스트코에도 물과 화장지가 없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나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한국의 상황에 비추어 2월 말경에 미리 물, 휴지, 샴푸 등 생필품을 사놓았던 터라 걱정이 조금은 덜하였다. 생필품은 사재기가 가능하지만 식료품은 수시로 마트에 들려야 했는데, 마트의 크기에 따라 들어갈 수 있는 인원수가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입구에서부터 시작된 긴 줄을 따라 마스크와 장갑으로 무장한 상태에서 상당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처음에는 답답했지만 몇 번을 반복하고 나니 점심 식사 시간 및 저녁 식사 직후 시간 등과 같이 줄이 짧은 시간대를 알 수 있었고 이러한 시간대를 이용하여 식료품을 구입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식당이 문을 닫고 일부 식당이 배달 또는 픽업만을 하였는데, 당시 상황에서 선뜻 이를 이용하기 어려워 주로 집에서 밥을 먹게 되었다. 이 덕분에 요리 솜씨가 서툴던 와이프가 백종원 선생님의 유튜브를 구독하면서 요리 실력이 일취월장하였던 것이 아마도 이 기간 가장 큰 수확인 듯하다.

유학생활

4. 집회와 시위
코로나가 장기화되던 5월 25일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사건으로 여러 주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뉴스를 통해 뉴욕과 엘에이 등지에서 상점을 약탈하는 사건이 일어났다고 보았으나 내가 살던 보스턴은 조용한 편이어서 그 시위를 직접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6월 6일 저녁 무렵 아이가 좋아하는 함박스테이크를 오랜만에 픽업하기 위하여 하버드 대학 앞에 주차하고 식당에 들어갔다. 약 20분 후 양손에 함박스테이크를 들고 나와 보니 그사이 통제된 도로에는 힙합 음악을 크게 튼 채 서행하는 시위 차량과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행진으로 가득했다. 잠시 당황한 나는 침착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자연스럽게 함박스테이크를 한 손으로 몰아들고선 다른 손을 열심히 흔들면서 통제가 해제될 때까지 시간을 보냈다. 그다음 날에는 하버드 대학 인근 공원에서 수십 명의 사람이 모여 릴레이 연설 등 시위를 하는 모습을 목격 할 수 있었다.
당시 10인 이상 모임이 금지되었음에도 이러한 평화 시위는 곳곳에서 이루어졌는데, 미국의 가장 큰 쟁점 중 하나인 인종차별과 관련된 것이어서 그에 대한 예외를 두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5. 여가생활
최초 2주를 예정했던 Shut Down 조치는 수그러들지 않는 코로나 확산의 기세로 인하여 계속해서 연장되었다. 처음에는 가족들의 안전이 최우선이었고 이 시기를 잘 견디려는 의욕이 충만하였기 때문에 아이와 함께 홈스쿨링과 운동을 하고 요리를 만들면서 시간을 잘 흘려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1달 이상 집에만 있게 되니 결국 답답함에 지쳤고, 나는 가족들과 함께 인적이 없는 바닷가나 공원을 찾아다녔다. 공원이 도시 곳곳에 분포해있고, 바다가 인근에 있는 보스턴의 지형이 나에겐 큰 힘이 되었다. 차를 타고 사람이 없는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집에서 준비해간 도시락을 차에서 먹는 등의 나들이는 지금도 반짝이는 바다보다 더 선명하고 아름답게 기억된다.

6. 한국으로
나는 5세 아이의 안전 등을 이유로 예정된 연수 기간보다 약 1개월 이상 일찍 귀국하게 되었다. 귀국을 준비하던 6월 즈음에도 경제활동이 완전히 재개된 것은 아니라서 관공서와 은행 등의 업무를 보는 데 어려움이 있었고, 한국행 비행기 편이 많이 줄어들어 표를 구할 때도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무탈하게 귀국할 수 있었다. 인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듯한 유학 생활을 조기에 마감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많았지만 지나고 보면 누구도 경험하기 어려운 시절을 미국에서 보내면서 얻은 것들도 많다. 긴 하루를 가정에서 즐겁게 보내기 위해서 인근에 사는 친구 가족들과 자주 만나거나 아이와 함께 그림을 그리고 유튜브를 보면서 태권도와 요가를 배우는 등 집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이라면 대부분 해보았던 것 같고, 그 과정에서 식구들 사이, 이웃들 사이가 더욱 단단해졌던 걸 느꼈다.

"테마가 있는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