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발견1] 달성공원 무료급식 자원봉사활동을 다녀와서

테마가 있는 글

2020.09.04

자원봉사활동

달성공원 무료급식 자원봉사활동을 다녀와서

글. 사진. 유지상 판사(평택지원)

다양한 동물들과 가볍게 거닐기 좋은 산책로가 있는 대구의 달성공원은 주로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 또는 연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나 역시 대구에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있지만, 이번만큼은 혼자서, 그것도 이렇게 화창한 토요일에 달성공원으로 향하고 있다. 오랜만에 동요가 아닌 가요를 들으며 운전을 하니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온다. 이는 분명 자원봉사활동에 참가하게 된 기쁨일 것이요, 결코 주말 육아에서 벗어난 기쁨은 아닐 것이다.

며칠 전 나는 몸을 정갈히 하고, 무릎을 꿇고,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평소 하지도 않던 기도를 했다. 2살 터울의 하나뿐인 동생이 공무원 시험의 합격 문턱에서 떨어질 위기에 처했다. 분명히 합격할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불합격이 확실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고, 집안 분위기는 그야말로 초토화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좋아했던 우리 형제였기에, 시험을 마친 동생에게 미리 합격축하선물로 사주었던 게임기가 중고로 팔려나갈 위험에 처했다. 나는 동생에게 뭐라도 보탬이 되고 싶었고,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다.

‘동생이 합격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제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그동안 말로만 하겠다고 하던 자원봉사활동을 꼭 다녀오겠습니다! 제발 동생이 합격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때도 생각했었지만 정말 보잘것없는 기도였다. 몇 년 동안 성당에 코빼기도 안 비춘 것은 차치하더라도,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자원봉사활동을 다녀오겠습니다’라니. 자원봉사활동은 말 그대로 아무런 대가 없이 오로지 봉사의 열정으로 행하는 숭고한 행위가 아니던가. 무엇보다도 ‘공무원 시험 합격’과 ‘자원봉사활동’을 교환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급부의 불균형이 심해 불공정한 법률행위로 보였다. 아마도 이런 기도를 했던 사람은 내가 처음일 것이니,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의 무경험을 이용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효력이 없는 기도였지만, 기도에 임하는 나는 나름대로 진지했고, 간절했다.

그런데 정말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동생이 공무원 시험에 최종합격한 것이다. 10명도 안 되는 합격자 중 1명이 임용을 포기하였고, 합격 대기순번 1번이었던 동생이 추가로 합격하게 된 것이다. 요즘 같이 경쟁이 치열한 공무원 시험에서 추가합격이라니. 온 가족이 모여 기쁨을 나누었고, 중고로 팔려나갈 뻔한 게임기도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나는 불공정한 법률행위에 흔쾌히 임해주신 분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바로 자원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단체를 알아보았고, 이렇게 오늘 달성공원으로 오게 되었다.

자원봉사활동

우리 ‘당기나기’(당신이 기쁘니 나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봉사단 국장님의 안내를 받고 도착한 곳은 달성공원 중 사자와 코끼리 우리 사이에 위치한 넓은 공터였다. 아니, 분명히 공터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지금 보니 아니었다. 이미 수십 명의 봉사단원들과 각종 짐을 가득 실은 화물차로 북적이고 있었고, 수 개의 대형 천막이 튼튼하게 설치되어 있었으며, 그 주변에는 급식을 기다리시는 어르신들도 벌써 자리를 잡고 앉아계셨다.

처음 보는 광경에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멍하니 서 있었더니, 국장님이 양손에 두 장의 앞치마를 들고 다가오셨다. “우리 봉사단은 봉사를 시작하기 전 서로의 앞치마를 매줘요. 오늘 같이 고생할 테니 격려해주자는 의미입니다.” 이윽고 국장님이 내게 앞치마를 매어주셨고, 나도 국장님의 앞치마를 매어드렸다. 처음 만난 남자 둘이 서로에게 앞치마를 매어주는 모습이 조금은 어색했지만, 국장님의 환한 미소에 금세 마음이 편안해졌다.

바로 앞 대형 천막 아래에서 5명 남짓한 여성 봉사단원들이 비빔밥에 들어갈 채소를 손질하고 있었다. 집에서 높은 비율의 요리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나는 당당히 도마와 칼을 집어 들고 얼마 없는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그런데 채소를 어떻게 손질하지? 적당한 크기로 자르면 되나?’ 잠시 손을 멈추고 곁눈질로 옆 봉사단원을 훔쳐보던 중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어르신들은 두꺼운 채소를 잡수시기 어려우니 오늘도 모든 채소를 채썰어주세요!”

갑자기 등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고, 손에 쥐고 있던 칼은 갈 곳을 잃은 채 방황했다. 무려 채썰기라니! ‘집에서 높은 비율의 요리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나’였지만, 그런 고급 기술은 장착되어 있지 않았다. 여성 봉사단원들은 모두 아주 능숙한 솜씨로, 빠르게 채썰기를 시작했고, 나도 이런 채썰기의 향연 속에 휩싸인 채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어떻게든 흉내를 냈다. 그러나 흉내 내기는 얼마 가지 못해 탄로가 났고, 곧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혔다. “우리 판사님은 공부만 하셨나봐? 칼질을 잘 못 하시네~”

자원봉사활동

‘국장님! 우리 방금 전만 해도 서로 앞치마를 매어주던 둘도 없는 사이가 아니었던가요!’ 국장님의 배반의 비수가 심장까지 파고들던 순간, 주위의 봉사단원들에게 ‘판사’라는 단어가 전달된 느낌이 들었고, 찰나의 침묵이 흘렀다. 이제는 포기할 수도, 도망칠 수도 없었다. 나의 채썰기에 개인적인 자존심뿐만 아니라, 생각지도 못했던 법원의 명예까지 걸리게 되었다. 나는 서투른 칼질로 열심히 채썰기를 반복했고, 결국 크지는 않지만 작은 성과를 이뤄냈다. 최상급 채썰기 기술을 보유하신 봉사단원으로부터 “판사님 채썰기 잘하시네~”라는 칭찬을 들은 것이다. 아아, 해냈다. 법원의 명예를 지켜냈어.

자원봉사활동

폭풍과도 같은 시간이 지난 뒤에는 다행히 채썰기와 같은 고급 기술을 요구하는 일은 없었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몸 쓸 시간이 다가왔다. 밥을 짓고 채소를 삶고 냉국을 만드는 일은 주부 봉사단원들의 몫이었다. 나는 듬직한 고등학생 봉사단원들과 함께 화물차에 잔뜩 실려 있던 테이블과 의자를 내리고, 파라솔을 펼쳐 테이블 중앙에 꽂고, 음식이 담긴 대형 솥과 식기를 배식 장소로 옮겼다. 이따금 날아오는 다른 봉사단원들의 따가운, 아니 따뜻한 시선에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이제는 어르신들에게 음식을 대접해드릴 차례다. 우리 ‘당기나기’를 포함한 수 개의 봉사단체의 봉사단원들이 어르신들 앞에 나란히 서고 정중하게 인사를 드렸다. 이미 테이블과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아계신 500여분의 어르신들에게 직접 비빔밥과 냉국을 가져다드렸고, 봉사단원들도 삼삼오오 모여 남은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이날 먹었던 비빔밥과 냉국이 지금껏 먹었던 것들 중 손꼽을 정도로 맛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더 많은 어르신들이 오시면 남은 음식이 없어 라면을 끓여먹기도 한다는데, 난 운 좋게 진미를 맛보았다.

모두의 식사가 끝난 뒤에는 뒷정리를 하였다. 어르신들은 대부분 댁으로 돌아가셨고, 몇몇 어르신들만 남아 뒷정리하는 봉사단원들의 모습을 지켜보셨다. 나는 작은 의자에 앉아 각종 식기를 세제로 닦아 헹구고, 대형 천막을 접어 정리하고, 테이블과 의자를 화물차에 실었다. 이미 정오가 지난 지 오래라 햇볕이 따가웠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숨이 찼다. 힘들어 하는 티를 내면 또 다시 “우리 판사님은 공부만 하셨나봐? 힘을 못 쓰시네~”라는 국장님의 두 번째 비수가 날아올 것만 같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뒷정리가 끝남과 동시에 공식적인 무료급식 자원봉사활동이 마무리되었고, 나는 남은 봉사단원들과 짧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달에 한번 있는 이 자원봉사활동을 몇 년째, 하루도 빠짐없이 하셨다는 봉사단원의 이야기에 놀란 것도 잠시, 화물차에 테이블과 의자 등을 가득 싣고 오신 봉사단원이 곧바로 다른 봉사활동을 하러 가신다는 것에 더 놀랐다. “판사님, 엄청 바쁘실 텐데 어떻게 오시게 되었어요? 정말 대단하세요”라는 봉사단원들의 칭찬에는 몸 둘 바를 몰랐다. 평소 봉사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정작 오늘 봉사활동에 오게 된 계기에 대해서 생각하니 너무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자원봉사활동

나는 이후에도 몇 번 더 달성공원 무료급식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했다. 처음에는 내가 하는 일에만 집중했지만, 차차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고, 이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자기 일을 찾아 열심인 모든 봉사단원들에게 진심으로 감탄하게 되었다. 이토록 자발적이고 성실한 단체가 과연 어디 있을까? 자원봉사활동을 한다고 하여 개인적인 이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처럼 훌륭한 단체에 소속되어 그 활동에 조금이나마 일조했다는 생각에 큰 자부심이 생겼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 어르신들을 보게 되었다. 음식을 드리기 전 인사를 올리는 봉사단원들에게 박수를 보내주시는 어르신들을 보면 없던 힘도 생겼다. 식사를 맛있게 하시는 어르신들을 보면 뿌듯했고, 기뻤다. 고맙다고, 맛있다고 말씀하시며 손을 잡아주시는 어르신들을 만나면 가슴이 뭉클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눈과 마음에 담게 되었고, 이는 자원봉사활동을 할 때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을 할 때도 큰 힘이 되었다.

내가 어르신들에게 도움을 드린 것이 아니라, 어르신들이 내게 도움을 주셨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연한 계기에 참여하게 된 자원봉사활동이 내게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일상의 사소한 일들에 대해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고, 내가 가진 모든 것에 대해서도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달성공원의 어르신들과 ‘당기나기’ 봉사단원들이 무척이나 보고 싶고, 또 그립다.

"테마가 있는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