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발견2] 이집트 여행기

테마가 있는 글

[마음의 발견2] 이집트 여행기

2020.09.04

이집트여행기

이집트 여행기

글. 사진. 정상길 참여관(김천지원)

2월 5일
난생처음 피라미드를 실물로 본다는 설렘 때문에 일찍 잠에서 깼다. “영차영차” 하며 통나무를 깔고 그 위로 바위를 옮기는 이집트 일꾼들의 4,600년 전 함성이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호텔 문을 나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니 택시 한 대가 멈추어 선다. 기자(Gija) 피라미드까지 우리 돈 3만 원에 합의보고 택시를 타고 피라미드를 보러 간다. 중간에 택시기사가 슬슬 말을 걸어온다. “피라미드 다음에는 어디에 갈 건데?” “이집트 박물관.” “그럼 피라미드 구경하는 동안 기다렸다가 내가 이집트 박물관까지 구경시켜 줄게. 토털 20만 원 줘.” “그러지 뭐.”
택시기사의 확장 제안(extended proposal)에 걸려들었다. 익히 인터넷에서 읽은 수법이다. 피라미드 매표소 입구에 도착하니 저 멀리 직선거리로 2km 떨어진 곳에 사진으로만 보던 세 개의 큰 피라미드가 보인다. 쿠푸왕, 카프라왕, 멘카우레왕의 피라미드로서 이집트의 상징과 같은 것이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그 위용이 대단했다. 천년세월도 수유(須臾)던가, 4,600년도 흘러가고야 말았다. 4,600년 전에 중장비도 없이 바윗돌 250만 개를 쌓아서 높이 140m 정도의 이 거대한 피라미드 1개를 쌓고 그 안에 구조 역학적으로 방실도 만들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카이로 근처에는 이런 바윗돌을 채취할 만한 곳도 없다고 한다. 고분벽화에 바위를 배에 실어 운반하는 모습이 조각된 것으로 보아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수백만 개의 바위를 잘라서 배로 운반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나 혼자 상념에 잠기며 피라미드를 둘러보고 싶었는데 내가 원치 않는 가이드가 나를 이리저리 안내한다. 파라오의 무덤방으로 들어가고 싶었는데 그 옆의 작은, 왕비의 피라미드 안으로 안내하는 식이다. 스핑크스도 별도 입장료를 내고 경내로 들어가야 하는데 가이드는 정식 매표소가 아닌 출구 쪽으로 나를 들여보낸다. 피라미드 구경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가이드가 나에게 팁을 200달러 달라고 한다. 주기 싫으면 안 줘도 되지만 자기 서비스에 만족했으면 달라고 한다. 줄 수밖에 없었다.
사설 매표소에 도착하여 말을 반납하니 가이드가 건물 2층에 가서 따뜻한 차 한 잔을 대접하겠다고 한다. 2층에 올라가서 차를 얻어 마시는데 2층은 다름 아닌 그림 가게이다. 그림 가게 주인은 나에게 그림을 소개하는데 내가 그림을 살 때까지 소개한다. 이집트 특산 파피루스에 고급물감을 써서 그렸는데 형광안료를 써서 밤에도 보인단다.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은 파라오, 투탕카멘, 왕비, 피라미드, 야자수 등이다.
그림 가게를 벗어나는 길은 그림을 한 장 사주는 수밖에 없다. 작은 그림 하나를 선택하니 우리나라 돈으로 7만 원짜리라고 한다. 선방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가게 주인은 또 다른 그림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9만 원짜리 그 그림도 구매했다.
그림을 사고 나서야 택시 기사는 나를 태워 이집트 박물관으로 향한다. 도중에 점심을 먹기 위해 어느 식당에 들렀다.
가이드가 치킨을 권유하기에 내가 무난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어서 반가워했다. 이윽고 치킨 안에다가 밥을 넣고 튀긴 요리가 나왔는데 가이드는 뼈까지 하나하나 발라가며 맛있게 먹는다. 나도 한입 두입 치킨을 뜯어서 씹는데 웬일인지 목구멍 안으로 잘 넘어가지를 않는다. 치킨의 몸체가 작기에 “피죤?”하고 물으니 가이드는 비둘기 고기가 맞다고 하며 “딜리셔스?”라고 묻는다. 나는 맛있다고 말은 했지만 반은 삼키고 반은 입 밖으로 접시에 질질 흘리며 억지로 먹다가 반쯤 남기고 포기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서 택시 기사는 나를 이집트 박물관으로 데려가서 주마간산식으로 박물관을 구경시켜 준다. 유물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구경하고픈 마음이 좌절되었다. 아침에 택시기사를 잘못 만난 이후로 온종일 조리돌림 당한 기분이다. 하루 동안 뜯긴 돈이 700달러를 넘어섰다. 현기증이 났다.

이집트여행기

2월 6일
‘르 빠사지 호텔’에서 일어난 후, 다음 목적지인 룩소르로 가기 위해 투르고만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오후 1시에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여 룩소르행 버스표를 끊으니 오후 9시에 출발하는 버스 한 대뿐이다. 버스 출발까지 9시간이나 남았다. 터미널 안의 PC방에서 시간을 보낸 후 룩소르행 버스에 오르니 룩소르까지 수백 킬로미터를 밤새도록 달린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버스가 정차하자마자 바로 화장실로 소변보러 갔다. 그러나 이내 나는 화장실에서 소변보는 것을 포기했다. 휴게소에 입식 소변기가 6개 있었는데 변기 한 개당 10명이 줄을 서 있었기 때문이다. 창문에 유리창도 없는 휴게실에는 이집트인들이 물 담배, 궐련 담배를 피우느라 연기가 자욱했다. 얼른 바깥으로 나와서 담벼락 뒤로 가서 주위를 살피니 이집트인들이 “노 프라블럼”이라고 말하기에 용기를 내서 담벼락 밑에다가 소변을 휘갈겼다. 발이 질퍽거려서 어스름한 불빛에 주위를 살피니 주위는 온통 오줌 천지여서 작은 늪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 휴게소 오줌 늪 사건은 나에게 이집트 정치 상황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다. 이집트의 공무원 수는 700만 명이다. 이집트보다 인구가 조금 적은 한국이 100만 공무원인데 8천만 인구의 이집트는 우리나라보다 일곱 배의 공무원을 고용하고 있다. 피라미드와 파라오의 무덤을 보려고 전 세계인들이 몰려들어서 돈을 엄청나게 뿌려대는데, 이집트 정부는 공무원 월급을 주느라 정작 필요한 사회간접자본에는 충분한 투자를 못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공무원 수를 줄이려고 시도하다가는 정권이 뒤집힐 것이다.

2월 7일
밤새도록 달린 버스는 아침이 되어서야 룩소르에 도착했다. 한때 테베라고 불린 룩소르는 옛날 이집트의 수도였다. 카르낙 신전에 입장하니 3,500년 전에 람세스 2세가 세웠다는 돌기둥들의 크기가 어마어마하고, 표면에 정교하게 조각을 해놓았다. 수많은 관광객이 오벨리스크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카르낙 신전에서 서너 시간을 보낸 후 나일강변 쪽으로 내려갔다. 사막지대에 우리나라 한강 크기의 강이 흐르는 모습이 비현실적이다. 이 강이 없으면 이집트는 성립할 수 없으니 실로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다.
나일강변을 걷고 있는데 피부가 흑인에 가까운 이집트 남자가 접근해 온다. 이집트의 소수민족인 누비아 사람인데 인접한 나라 수단 종족에 가깝다. 나에게 싼값에 배를 타고 나일강을 건너게 해주겠다며 배 타기를 권유한다. 쪽배 한 척 가지고 있는 보트맨인가 싶었지만, 반드시 이 남자를 따돌려야 한다. 무슨 제안을 해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은 예약해 둔 나일강 동안의 호텔에 가서 자야 하고, 내일 나일강을 건너 서안으로 갈 예정이라고 건성 건성으로 대답을 해놓고는 예약한 호텔로 갔다. 나일강변에 위치한 ‘마리팀 졸리 빌 리조트’ 호텔인데 방실이 방갈로 형태여서 휴양시설에 온 기분이다.

이집트여행기

2월 8일
호텔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어제 약속한 보트맨을 따돌릴 목적으로 약속 시각보다 한 시간 늦게, 약속 장소에서 200~300미터 떨어진 곳에서 내리니 어제의 그 보트맨이 떡하니 버티고 서 있다. 늦잠 자서 늦게 왔다고 둘러대고는 함께 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그곳에서 대기시켜둔 그의 택시를 타고 왕가의 계곡(Valley of the Kings)으로 갔다. 수많은 관광객으로 붐비고 있고, 이집트 경찰들이 기관단총을 메고 경계를 하고 있다. 매표소에 가서 안내문을 읽은 즉, 10개의 개방된 무덤 중 3~4개 보는데 3만 원이고, 10개의 무덤에다가 룩소르의 모든 유적지에 입장할 수 있는 입장권이 200달러이다. 언제 다시 이곳에 오랴 싶어서 200달러짜리 프리미엄 티켓을 구입했다. 이곳 파라오들의 무덤은 돌산을 길게는 100여 미터 파고 들어가서 가장 안쪽에 파라오의 미라를 안치한 터널식 무덤이다. 발견된 파라오의 미라는 모두 이집트 박물관으로 옮겼다. 투탕카멘의 무덤에 들어가니 별도의 비싼 표를 구매해야 하기에 관광객이 한 명도 없고, 관리인만 혼자 무덤을 지키고 있다. 투탕카멘의 미라는 이집트 박물관으로 옮기지 않고 유리관에 넣어서 무덤 한쪽에 전시하고 있다. 관리인이 참배하라기에 묵념하고 예를 표한 후 미라의 모습을 보니, 3,500년 전 18세에 죽은 투트-앙크-아문의 앳된 모습이 눈앞에 생생하다. 오랜 세월 동안 산화되어서 미라가 새카맣다. 이 무덤에서 쏟아진 금은보화는 금관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집트 박물관으로 옮겼는데 그 양이 아주 많아서 투탕카멘 특별 전시실을 마련해 놓았다. 18세에 죽은 파라오의 무덤에서 이렇게 많은 보물을 묻었는데, 70년간 이집트를 통치한 람세스 2세 등 다른 파라오들의 무덤에는 얼마나 많은 보물을 묻었을지 짐작할 수도 없다. 하지만 투탕카멘을 제외한 대부분의 무덤은 모두 다 도굴당했다. 왕의 무덤을 도굴한 자는 사형에 처했지만 배고픈 도굴꾼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도굴을 감행했다. 도굴꾼들이 투탕카멘의 무덤 옆 람세스 6세의 무덤을 도굴하면서 파낸 흙과 돌덩이들을 바로 옆에 산더미처럼 쌓아 놓았는데 그곳이 바로 투탕카멘의 무덤 입구였다. 그래서 후대의 도굴꾼들이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견하지 못했다.
여타 무덤에서도 그러했지만 이곳 무덤의 관리인도 “기브 머니” 하길래 우리 돈 3천 원에 해당하는 돈을 주고 나왔다. 근처의 세티 1세 무덤에 들어가니 관람객이 아무도 없었다. 이 무덤은 1,000 이집션 파운드(7만 원)를 별도로 지불해야 하니 비싸다고 관광객이 거의 오지 않지만, 나는 모든 곳에 갈 수 있는 프리 패스를 보여주고 관리인과 함께 터널 안으로 들어갔다. 파라오의 무덤 중 길이가 가장 길다. 100미터가 넘는 터널에는 왕, 왕비, 별, 개코원숭이, 상형문자 등이 그려져 있다. 관리인이 돈을 달라고 하길래 우리 돈 3천 원에 해당하는 돈을 주니 더 달라고 한다. 비중이 큰 파라오의 무덤이니 뇌물액수도 높다. 파라오의 무덤은 사진 촬영이 엄격히 금지되는데 내가 돈을 주니 관리인이 사진을 찍어 주겠다며 나의 휴대폰을 달라고 한다. 하지만 이곳은 사진기 휴대가 금지되며, 휴대폰의 배터리도 다 되어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결국 사진은 한 장도 못 찍고 협정가격(?)의 몇 배에 달하는 팁만 날리고 말았다. 며칠 후에 카이로 박물관에서 만난 한국 청년에게, 내가 준 팁 이야기를 하니 나로 인해 “이집션들 질 다 베리났다”고 말한다.
인생무상을 느끼며 왕가의 계곡 관람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돌아오니 드라이버가 기다리고 있다. 룩소르 시내로 가는 길에 드라이버가 나의 다음 행선지를 묻길래 룩소르에서 300킬로 떨어진 아스완에 있는 세계문화유산 아부심벨을 보러 간다고 하니 자기가 택시로 그곳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한다. 이제 오늘부로 이 사람을 떼어 버린다고 속으로 좋아했는데 헤어질 즈음에 또 다른 제안을 해오는 것이다. 아스완에서 카이로로 복귀할 때도 택시로 태워주고 그사이의 호텔 요금, 입장료, 식사비, 심지어 커피값까지 다 포함해서 1,000달러(120만 원)에 합의 보자고 끈질기게 조른다. 예상보다 지출이 훨씬 많아져서 속이 쓰리지만 결국 내가 체념하고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가 안내하는 허름한 빌라에서 하룻밤 묵기로 하고, 더 이상의 추가 부담은 없는 것으로 다짐을 받았지만 이틀 뒤 벌어지는 상황에 견주어 보면 아무 쓸데없는 일이었다.

이집트여행기

2월 9일
아침 일찍 가이드가 찾아와서 아스완으로 가자고 한다. 그의 친구도 한 명 데리고 왔다. 두 사람이 교대로 운전해서 간다.
“토일릿(화장실)?” 하고 묻기에 그러자고 하니 길옆에 차를 세우고는 모래벌판을 가리키며 그곳에 소변을 보라는 의미로 “water”라고 외친다. 사막지대의 고속도로답게 바람이 불면 모래가 도로 위로 쓸려 올라온다. 검문소에서 경찰이 차를 세우길래 가이드가 뒤에 탄 승객은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니 경찰관이 “고리?”라고 말하며 차를 통과시키는데 내 귀에는 ‘高麗?’로 들린다.
아스완 시내에 진입하여 점심을 먹은 후 가이드는 나일강의 돛단배인 펠루카를 타러 가자고 한다. 가이드는 이번에도 말을 바꾼다. 펠루카 체험 비용은 별도이니 100달러를 달라고 한다. 나는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항의도 못 하고 100달러를 교부했다. 타국 땅에서 현지인과 싸우면 나만 손해다. 펠루카를 타고 나일강을 유람하다가 강 중간에 있는 어느 유원지에 배를 댄다. 유원지를 구경하며 돌아다니는 도중에 가이드는 은근히 이집트에 고아가 많음을 강조하며 기부하기를 권유하기에 돈 없다며 거부했다. 저녁에 한국에서 예약해 둔 아스완의 호텔에 묵으며 야반도주할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미리 가이드에게 준 많은 돈도 아깝고, 마땅히 도망갈 곳도 없고 해서 생각을 접었다.

2월 10일
새벽에 호텔로 가이드가 찾아왔다. 일찍 길을 나선 우리는 몇 시간을 달려서야 아부심벨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부심벨은 거대한 아스완 댐을 지으면서 수몰 위기에 처한 바위산을 유네스코를 통한 세계 각국의 도움을 받아 60미터 위쪽으로 옮겼다. 람세스 2세와 그의 왕비를 조각한 거대한 바위산을 톱으로 썰어서 해체한 후 다시 위쪽으로 60미터 옮겨서 이어 붙였다. 누비아 지방까지 정복한 람세스 2세가 “나는 왕 중의 왕이로다. 너희 이른바 강자들이여, 나의 위업을 보라, 그리고 절망하라(파라오의 좌상 받침대에 새겨진 문구)”라며 3,500년을 호령하는 듯하다.
아부심벨 구경을 마치고 아스완 시내에 복귀하니 가이드가 끈질기게 나에게 보육원에 기부하라고 권유한다. 자기가 후원하는 보육원에 130명의 고아가 있는데 시리아 전쟁고아도 많다고 한다. 고아들이 밥을 사이에 놓고 싸우고 있으니 1인당 만 원씩 총 130만 원을 기부하면 머나먼 곳에 사는, 얼굴도 모르는 아빠를 생각하며 아이들이 “파파 땡큐”하며 고마워할 것이라고 한다. 난색을 표하며 버티니 승낙할 때까지 나를 설득한다. 결국 나는 버티지 못하고 승낙하니, 아스완 시내 은행으로 나를 데려가더니만 현금 자동인출기에서 돈을 뽑으라고 한다. 손목이 아프도록 130만 원에 해당하는 이집트 지폐를 뽑아 주었지만 가이드는 “모아 모아” 하며 더 뽑아 달라고 한다. 계속 돈을 뽑아 주다가 1일 인출 한도를 초과하니 더 이상 돈이 뽑히지도 않는다. 국제 호구(International sucker)의 끝판왕으로 등극하는 순간이다.
약속과 달리 가이드는 자기 택시로 나를 카이로로 데려다주지 않고 아스완 기차역으로 데려간다. 근처 식당에서 식사하는데 시리아 내전을 피해서 이집트까지 피난 온 시리아 여인들이 아기를 안고 “수리아(Suria), 기브 머니” 하며 돈을 달라고 구걸하고 있다.
가이드는 택시로 카이로까지 데려다주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아스완 기차역에서 1등급 기차를 예매해 주었지만, 말이 좋아 1등급 기차이지 좌석은 땟국물이 자르르 흐르고 화장실은 지린내가 진동하고 바닥에 소변이 흥건하며, 변기 안의 대변은 내려가지도 않고 있다. 목이 말랐지만 화장실에 가기 싫어서 기차 안에서 내내 물을 먹지 않았다. 밤새도록 열차는 800킬로미터를 12시간 동안 달려 카이로에 도착하니 아침이다.

2월 11일
오늘 한밤중 비행기로 떠나기에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서 택시를 잡아타고 ‘미단 따흐릴’ 하고 외치니 카이로 박물관이 있는 타흐리르 광장에 내려준다. 박물관에 다시 가서 구경하다가 미라 특별전시실에 들어가서 파라오들의 미라를 찬찬히 살피며 설명문을 읽었다. 모든 미라는 얼굴과 팔다리를 제외한 부분이 삼베 같은 천으로 덮여 있다.

마음의발견
세케넨레 타오 2세 - 미이라 전시실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파라오이다. 얼굴에 큰 상처가 많이 보인다(signs of dramatic battle wounds). 최고 통치권자가 되기도 쉽지 않구나. 수많은 전투의 선두에 서야 했을 것이다. 지금부터 3,570년 전, 용감한 세케넨레는 이집트의 일부를 점령한 힉소스인들과 전투를 벌이다 그들의 최신식 청동 도끼에 머리를 맞아 사망했다. 오늘날 의사들이 그 부상 부위들을 진단한 결과, 그의 두개골은 도끼날, 철퇴, 창에 맞아 몇 군데가 깨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투트모스 3세 - 3,504년 전에 즉위했으며 아시아에 17회, 누비아(지금의 수단지역)에 2회 원정하여 광대한 영토와 방대한 전리품을 획득함으로써 크게 번성하였다. 이집트의 나폴레옹이라고 불린다. 그가 세운 오벨리스크가 현재 런던과 뉴욕에 하나씩 있다. 아멘호텝 2세 - 투트모스 3세의 아들이다. 지금부터 3,450년 전에 파라오로 즉위했다. 수차례 시리아를 공격한 위대한 전사로 알려져 있으며, 성경의 출애급시에 이집트의 왕이었으며, 그의 미라는 고고학자 로레(Victor Loret)에 의하여 1898년 왕들의 계곡 KV35 무덤에서 석관에 들어 있는 채 발견되었다. 람세스 2세(3,303년 전 출생) - 미라 전시실에서 가장 인기가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큰 매부리코에 강한 턱을 가졌으며 원형탈모가 심한데 노란색 머리카락이 뚜렷하다. 투탕카멘이 18세에 요절한 뒤 수십 년 뒤에 즉위했으며, 히타이트와 카데시 전투를 치르고 세계 최초로 여겨지는 평화조약을 체결했다. 바로 뒤에 누워있는 그의 아버지 세티 1세와 얼굴과 체형이 많이 닮았다.

박물관 마감 시간인 오후 5시에 나와서 근처 호텔에서 다섯 시간 동안 휴식을 취한 후 밤 10시에 호텔에서 나와 카이로 공항에서 귀국 비행기를 탔다. 지금쯤 130명의 이집트·시리아 고아들이 “아빠, 감사합니다” 하며 얼굴도 모르는 나에게 고마워하고 있겠지.

"테마가 있는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