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발견2] 트라이애슬론 대회를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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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9

트라이애슬론

트라이애슬론 대회를 추억하며

2019 통영ITU트라이애슬론 월드컵을 마치고

글. 최아름 판사 (의정부지방법원)

‘온 유어 마크(On your mark)’ ‘삐-’
수십 명의 사람들이 물살을 가르고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시합 전의 고양감도 잠시, 혼을 쏙 빼놓는 몸싸움이 시작됩니다. 팔로 어깨를 치는 사람, 몸통을 옆으로 밀어내는 사람, 심지어 어깨를 잡고 몸을 타고 넘어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스트레스와 긴장감으로 호흡은 빨라지고, 체력은 뚝뚝 떨어집니다. 보통 라인과 가까운 쪽은 몸싸움이 더욱 치열합니다. 최단 거리로 가서 힘을 절약하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만, 특히 초심자들은 만약의 사태가 발생하면 줄을 잡고 살아야 하므로 라인에서 멀어질 마음이 잘 생기지 않습니다. 수경 안에 짠 바닷물이 들어오거나 몸싸움으로 아예 벗겨져 버린다면 라인이라도 잡아야 다시 쓸 수 있습니다. 이렇듯 여러 이유로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얼굴도 알아볼 수 없는 다른 참가자들과 힘겨운 몸싸움을 하면서도 라인 쪽을 고수하였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6년 차, 조금 여유가 생겼습니다. 라인 쪽을 벗어나 약간 옆으로 향합니다. 라인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주위의 사람들도 적어집니다. 방향 감각이 떨어지므로 다섯 번에 한 번 정도 정면으로 호흡하며 다음 전환점에 떠 있는 부표를 확인합니다. 오픈 워터(Open water)에서는 실내 수영장 같은 레인이 없으므로 목표 방향을 설정하고 그대로 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같은 힘을 들이고도 더 많은 거리를 가야 하니 힘이 많이 들고 기록도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주기적으로 목표를 확인하고 스트로크(Stroke)를 똑바로 하더라도 방향이 조금씩 틀어지는 것을 막기는 어렵습니다. 주로 조류와 한쪽 방향의 호흡 탓입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연습할 때 양쪽 방향의 호흡을 하기 위해 팔을 세 번 저은 후 번갈아가며 한 번씩 호흡하는데, 아직 속도가 나지 않아 실전에서는 한쪽 방향으로만 호흡하기로 했습니다. 하나 둘, 하나 둘… 물의 온도도 적당하고, 몸 상태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트라이애슬론(Triathlon) 경기의 첫 번째 고비는 넘겼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를 갖고 페이스를 유지하는 데 집중합니다. 이때쯤이면 수심이 깊어져 물 색깔도 아주 짙어집니다. 가끔 알 수 없는 해초들이 발목을 휘감기라도 하면 공포심이 들 때도 있지만, 다행히 올해는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가끔 빠르게 치고 나가는 후발 주자들에게 양보도 하고, 다음 부표를 확인하면서 조금씩 나아갑니다.
수영 코스의 중·후반부에는 그간의 연습량이 드러납니다. 작년 대회 때는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이제 연습 좀 덜 해도 빠져 죽지는 않겠지?’라는 마음으로 수영 연습을 게을리 했더니 도중에 몇 번이나 라인을 잡고 숨을 골랐습니다. 올해에는 작년의 경험을 떠올리며 어느 정도 연습을 했더니 몸이 한결 가볍습니다.
주위에 참가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는 걸 보니 이제 수영 골인 지점이 다 된 것 같습니다. 마지막 스퍼트를 해 봅니다. ‘올해도 살았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면서도 바꿈터에서 어떤 순서로 무엇을 할지 생각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합니다. 물에서 나와 수경 밴드에 걸어 놓은 웨트슈트(Wet suit) 지퍼 끈을 잡아 내립니다. 해수를 씻어내는 담수를 맞으면서 뛰듯이 걸어갑니다. 이미 준비를 마치고 뛰어나가는 사람들, 이제 막 들어와 수건으로 몸을 닦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분주합니다. 바꿈터에서 보내는 시간도 경기의 일부이므로 기록 단축을 위해서는 빠르고 정확한 복장 전환이 필수적입니다만, 어차피 시상대에 올라갈 것도 아니므로 여유 있게 준비합니다. 물기를 닦고, 양말을 신고, 썬크림을 덧바르고, 사이클화를 신고, 배번표를 달고, 장갑을 끼고, 헬멧을 쓰고, 고글을 쓰고, 속도계를 작동시킨 후 사이클을 끌고 달려 나갑니다. 승차 가능선을 지나 사이클에 올라탄 뒤 힘차게 페달을 밟습니다. 나중에 달리기를 할 때 근육 경련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힘을 실어 꾹꾹 눌러 밟기보다는 사이클에 결착된 사이클화로 페달을 빠르게 돌리는 패들링(Pedalling)에 집중하여야 합니다.
여러 참가자들과 함께 평소에 달리기 어려운 잘 포장된 차로를 마음껏 달립니다. 햇빛을 맞으며 탁 트인 바다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타나는 바위와 산을 배경으로 언덕들을 오르내리다 보면, 몸은 분주하면서도 이상스레 마음은 편안해집니다. 하나둘 밀려오는 생각에 저항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이어나가 봅니다.
트라이애슬론 경기가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1978년경 하와이(Hawaii)에 주둔하던 미국 해군 소속 제이 콜린스(J. Collins) 중령이 동료들과 맥주를 마시면서 ‘사이클 선수와 달리기 선수, 수영 선수 중 누가 가장 멋있고 강한 선수냐’는 설전을 주고받다가, 쉽게 답이 나오지 않자 당시 성행하던 와이키키(Waikiki) 바다 수영(3.9km), 오아후(Oahu) 섬 일주 사이클(180.2km), 호놀룰루(Honolulu) 국제마라톤(42.195km)과 같은 거리를 한 사람이 쉬지 않고 하게 하자는 제안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유력합니다. 같은 해 2월 세계철인3종경기연맹이 결성되면서 하와이에서 첫 국제대회가 개최되었고, 제한시간인 17시간 이내에 완주하면 철인(Iron man)의 칭호를 주었다고 합니다.
트라이애슬론 경기는 크게 풀코스 경기와 단축코스 경기로 나뉘는데, 위와 같이 총 226.3km로 구성된 대회가 풀코스, 일명 킹(king)코스 경기이고, 현재 사회체육으로 정착된 단축코스 경기는 수영 1.5km, 사이클 40km, 마라톤 10km(주니어 선수들의 경우 750m, 20km, 5km로 그 절반)로 구성된 총 51.5km의 일명 로열(Royal) 또는 올림픽(Olympic)코스가 표준이 되었습니다. 동료 중에는 언젠가 킹코스 대회를 완주하고 싶다는 친구도 있지만, 저는 풀코스 마라톤을 한 번 뛰어보고 무릎이 너무 아팠던 적이 있어 올림픽코스 경기 참가만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가끔 대회장에 킹코스 완주자들이 그 징표인 ‘finisher’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돌아다니면, ‘나도 언젠가 한 번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트라이애슬론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에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하면서 기념으로 풀코스 마라톤을 나간 적이 있었는데, 마라톤을 완주하고 나니 트라이애슬론도 한 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육군3사관학교에서 법무관 후보생으로 훈련을 받을 때 장교 임관 기념으로 함께 참가할 사람을 찾아보았습니다. 처음에는 5∼6명이 모였었는데, 결국에는 쓸쓸하게 혼자 나가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법관 임관 후 마음이 맞는 동료들을 만나 세 번째 참가할 때부터는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일 년에 한 번 트라이애슬론 대회를 완주할 수 있다면, 법관으로서 필요한 체력은 충분히 갖출 수 있다’라는 뜻을 가지고 함께 시작하게 되었는데, 어느덧 5년이 되었네요. 아픈 곳이 있다고 하면서 참가하지 않은 동료(동료 1)가 알고 봤더니 놀러 갔던 것이 탄로 나서 일 년 내내 다른 동료들의 구박을 받았던 일, 매년 나갈 때마다 ‘내가 이걸 도대체 왜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투덜대는 동료(동료 2)를 계속 설득하여 결국 매년 함께 나갔던 일, 수영 기록이 좋았던 동료(동료 3)를 사이클 구간에서 추월하면서 ‘화이팅!’ 하면서 지나갔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뒤처지지 않기 위해 오버페이스를 해서 평소 실력조차 발휘되지 않았던 일 등 소소한 일화도 참 많았습니다.
대회는 보통 일요일 아침에 시작합니다. 그 전날인 토요일, 대회장에 도착하여 선수 등록을 한 후 사이클용 배번을 헬멧과 사이클에 붙이고 검차를 받습니다. 검차를 마친 사이클은 미리 바꿈터에 거치해 놓아야 합니다. 대회 시간이 정오가 넘어가면 너무 더워 사고가 발생할 수 있어서, 이를 피하기 위해 7∼8시쯤 수영을 시작하려면 대회 전날의 사이클 거치가 불가피합니다. 그래서 동료들과는 보통 대회 전날 4시쯤 대회장에 모입니다. 선수 등록, 사이클 검차 및 거치를 마치고 5시쯤에 시작하는 설명회를 듣기 위해서입니다. 같은 대회라도 매년 코스가 조금씩 바뀔 수 있어 들어놓으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
설명회를 듣고 나서는 대회장 근처의 식당에 가거나 숙소에 돌아가 다 함께 저녁을 먹습니다. 사실 경기를 하는 것도 좋지만, 대회 전날 동료들과 함께 한잔하는 것이 매년 대회에 참가하는 것의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동료들, 그 가족들과 함께 그동안 못 나눴던 이야기도 나누고, 새로 태어난 아이들과 인사도 나눕니다. 공교롭게도 올해는 대회 전날이 저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었습니다. 특히 올해에는 저희의 첫 번째 아이가 태어나기도 했고요. 아내가 서프라이즈로 준비해 준 ‘결혼기념일에 철인 대회라니!’라는 문구가 새겨진 케이크를 나눠 먹으면서 내일 경기 때 다치지 않고 무사히 완주하자는 덕담을 주고받습니다(지면을 빌어 다시 한 번 아내에게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마음을 전합니다).
대회 당일에는 긴장감으로 5시 정도에 눈이 떠집니다. 미리 준비해 둔 삼각김밥을 먹고 경기복을 입은 후, 몸에 배번 스티커를 붙입니다(바디 넘버링, Body numbering). 두 번째 대회 때까지는 이 스티커를 제대로 붙이는 게 어렵고 귀찮아서 경기 당일 아침 대회장에서 제공하는 매직펜으로 몸에 직접 썼는데, 동료들과 함께 참가했던 세 번째 대회 때부터 배번 스티커를 붙이는 걸 시도해 봤습니다. 당시 선수 등록을 할 때 대회 관계자에게 붙이는 방법을 문의했었는데, 아주 친절한 어조로 ‘물 위에 스티커를 5분 정도 띄웠다가 종이가 떨어지면 비닐을 들고 몸에 붙이면 된다’라고 하여, 다음 날 아침에 들은 그대로 했다가 아까운 시간만 30분 이상 흘려보낸 일화가 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건 초등학교 시절에 많이 해봤던 일명 ‘판박이 스티커’로, 먼저 비닐을 제거한 후 스티커 뒤편에 물을 충분히 묻히고 앞면을 몸에 몇 초 대었다가 떼면 깨끗하게 붙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 대회 관계자는 문의하는 사람이 초심자로 보이니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짓궂게도 정확히 반대로 알려준 것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함께 참가했던 동료들도 모두 ‘이거 완전히 속은 것 같아요!’라면서 당황하였는데, 당시 아내가 “법관 넷이 모여도 판박이 스티커 하나 제대로 못 붙인다”라고 하여 다들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벌써 사이클 구간이 끝났습니다. 다시 바꿈터로 돌아와 마지막 순서인 달리기를 준비합니다. 초반에는 근 전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속도가 나지 않습니다. 사이클을 탈 때 패들링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특히 통영 대회는 사이클 구간에 오르막(업힐, Uphill)이 많아 다른 대회에 비해 다리에 가해지는 부담이 더 큽니다.
2∼3km가 지나 근 전환이 대체로 이루어진 후에는 근육 경련과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과연 다리가 마지막까지 버텨줄 수 있을지’ 걱정이 될 정도로 다리 근육의 여기저기가 서서히 경직되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래도 올해는 연습을 어느 정도 했으니, 끝까지 달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비교적 피로가 덜 쌓인 부위를 쓰려고 노력하면서 적당한 페이스를 유지합니다. 혹시라도 가벼운 근육 경련이 시작된다면, 그대로 달리는 것이 답입니다. 괜히 멈춰서 스트레칭이라도 하고 있으면 경련이 더 심해져서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다행히 올해도 다리가 잘 버텨주었습니다.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달리기 구간의 마지막 코너를 도니, 드디어 대회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번의 완주는 저에게 더 특별합니다. 올해 태어나 100일이 갓 지난 제 아들과 함께 결승선을 통과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경주 대회 때 한 동료가 아들과 함께 골인하는 것을 보면서부터 마음에 품었던 꿈이었습니다. 결승선을 500m 정도 남겼을 때부터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이제 몸이 힘든 것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저 멀리서부터, 저를 기다리고 있을 아내와 아이를 찾습니다. 골인 지점은 응원하는 사람들로 가득한데, 아내와 아이는 어디에 있을까요. 달리기는 뒷전이고 사람들 속에서 아내와 아이를 찾으려는 제 눈길이 간절합니다. 아! 저기에 있습니다. 아내로부터 아이를 받아 최대한 흔들리지 않게 결승선을 향해 걷는 듯 달립니다. 잠에서 덜 깨어 어리둥절한 표정의 아이와 함께, 드디어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그 순간 이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다고 느꼈습니다. “아들아, 건강하게 이 세상에 와 주어서 고마워. 지금 이 순간을 잊지 않고, 더 멋진 아빠 될게.” 올해 대회도 참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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