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즐거움] 나의 일 나의 삶 1

테마가 있는 글

[함께하는 즐거움] 나의 일 나의 삶 1 - 마당 있는 집에서

2019.07.04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귀촌해서 오래된 한옥을 만나 꽃과 나무를 가꾸며 정들어가는 과정을 소개합니다.

오래 전부터 마당 있는 집에서 사는 것을 꿈꿔왔다. 아침에 일어나 꽃들과 눈 맞추면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웃어주는 사랑스러운 꽃들이 만발한 그런 집에 사는 것을 꿈꿔오다 마침내 지난해 오랜 꿈을 실행에 옮겨 군산으로 귀촌했다.

인천과 서울에서 근무하며 동료들과 맺은 인연도, 서울고등법원과 중앙지방법원에서 산악회 총무를 하며 함께 땀 흘리며 쌓은 정(情)도, 서울중앙지방법원 공감한마당과 서울고등법원 가을동화에서 색소폰을 불던 추억도 뒤로하고 은퇴 후를 생각하며 서울을 떠나왔다.

너무 컸다. 내가 감당하기에는 집의 규모가 너무 컸다. 이젠 돌이킬 수 없는 내 선택을 후회하며 눈 딱 감고 3년만 버텨보자고 마음을 다잡으며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우선 건물은 생활하는 데 불편하더라도 원형을 훼손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건물에 덧댄 불필요한 부속건물과 차양시설을 걷어내고 천정을 뜯어내자 비로소 이 건물의 속살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성 들여 지어진 집이었다. 아름다운 처마선과 고래등 같은 지붕선이 살아 있었고, 시원한 대청과 따스한 봄볕 드는 마루가 있었다. 또한 이 집에는 진귀한 손님인 꾀꼬리와 새들이 편안하게 내려앉을 나무가 있었고, 원 없이 꽃과 나무를 가꿔보고픈 꿈을 실현해 줄 드넓은 마당이 있었다. 이러한 것들이 내가 아파트의 편안함을 포기하고 마당 있는 집의 불편함을 받아들인 이유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만석꾼이 살았던 터였고, 집 뒤 솔뫼동산에는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고종에게 을사오적을 처단하고 늑약을 폐지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리고 자결한 애국지사 송병선 선생(우암 송시열 선생의 9대손으로 송영무 국방장관의 고조부임)의 묘역이 있는 등 수많은 사연을 간직한 곳으로 동네 할머니들은 이 집에서 부자 되라고 덕담하신다.

본채가 어느 정도 생활할 수 있게 정리되자 다음은 정원 조성에 힘썼다. 내가 추구하는 정원은 비움과 여백이 있는 정원이었다. 욕심껏 꽃과 나무를 채워 넣기보다는 덜어내고 비움으로서 여백의 미를 살리되 빈약하지 않게 살짝 볼륨을 주어 입체감을 살리고자 했다. 처음은 이렇게 거창하게 시작했으나 결과는 어떻게 마무리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저 내 안목을 믿고 밀어붙일 수밖에…

정원에는 수많은 꽃과 나무들이 심어졌다. 자주달개비, 수선화, 금낭화, 구절초, 백합, 작약, 꽃잔디, 다알리아, 반송, 용송, 배롱나무, 단풍나무, 자목련, 철쭉, 금목서, 은목서, 골담초, 능소화, 백도화, 옥매화, 감나무, 대추나무 등 50여 종의 꽃과 나무를 심었다. 그렇게 정원에 꽃과 나무를 심고 긴 겨울 행여 추위에 녀석들이 얼어 죽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애타게 봄을 기다렸다.

드디어 거짓말처럼 봄이 왔다. 긴 겨울 추위에 떨던 녀석들도 하나 둘 기적같이 꽃망울을 터드리고 있었다. 담장 옆 매화가 앞장서고 수선화, 살구꽃, 백도화, 옥매화, 철쭉, 작약, 모란, 자목련, 라일락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투어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지난 겨울 칼바람과 모진 추위를 이기고 내게 와준 녀석들이 고맙다. 살아줘서 고맙고 더군다나 예쁜 꽃까지 선물하니 더더욱 고마운 녀석들의 그 여리디 여린 꽃잎에서 나는 희망을 본다. 그리고 나 또한 어떠한 시련에도 좌절하지 말고 끝내 일어서리라고 다짐해본다.

저녁 식사 후 아내와 함께 정원 곳곳에 어떤 꽃을 심을지 도란도란 얘기하며 산책하는 것 또한 이곳에서 누리는 호사다. 아직도 심어야 할 꽃과 나무가 많고 건물 마무리 공사는 더디지만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시골살이라는 것이 시간은 내 편이므로…

어느 정도 집이 정리 되는 날 벗들을 청하여 봄이면 따스한 봄볕을 나누며 매화향에 취하고, 여름이면 시원한 대청마루에서 달콤한 수박으로 더위를 쫓고, 가을이면 구절초 만발한 정원을 거닐며 정담을 나누고, 겨울이면 언 가슴을 녹이는 달콤한 색소폰 연주를 들려주고 싶다. 한때 만석의 재물로 가득 찼던 이곳에 나는 만 송이의 꽃을 심어 이 집을 찾는 이들에게 꽃향기 가득한 행복을 선물하고 싶다.

도시의 빡빡한 생활에서 벗어난 나는 어쩌면 지금 꽃에 취한 꽃중년의 인생 2막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글. 김영석 사무관(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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