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 나의 삶 2]제주지방법원의 변화

테마가 있는 글

2019.03.06

제주지방법원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사람을 맞이하는 것이 입구에 서 있는 돌하르방과 야자수, 귤나무입니다. 햇빛 아래에서 그 모습을 보면 텔레비전에서 보던 휴양지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입니다. 근래에 제주 살이 등으로 제주가 인기를 끌면서 제주의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물가도 많이 올랐습니다. 특히 폭등한 부동산 가격은 제주도민을 예민하게 만든 듯합니다. 그러다가 사드 여파와 제주 살이 열풍이 시들어가면서 관광객과 인구 유입이 줄어들고 건축 호황도 없어지면서 각종 분쟁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제주도가 관광객에게는 파라다이스로 비쳐질지 모르지만,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2019년에 들어오면서 제주지방법원에 큰 변화가 두 가지 생겼습니다. 하나는 2018. 7. 제주지방법원 이동원 원장님이 대법관으로 영전하시면서 제주지방법원은 오랫동안 원장 부재를 겪었는데 2019. 2. 14.자로 이창한 원장님이 부임하신 것이고, 또 하나는 제주지방법원에 창원지방법원과 더불어 가사과가 2019. 3. 1.자로 신설되는 것입니다. 특히 가정법원이 없는 제주 지역에 가정법원의 역할을 대신할 가사과 신설은 의미 있는 일입니다. 그동안 가사재판은 민사과로, 가정(아동)보호·소년보호 재판은 형사과로, 협의 이혼은 종합민원실로 업무가 분리되어 있어서 서로 손발이 맞지 않아 가정법원의 후견 기능 강화와 걸맞지 않은 면이 있었습니다.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이혼, 소년 비행은 모두 부모의 갈등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상호 연관이 깊어 전문적이고 집중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제주지방법원은 2018. 7.부터 가사, 가정보호, 아동보호, 소년보호, 협의이혼 부분을 민사과 분실 형태로 한 곳으로 모아 운영하였는데, 2019년에 정식으로 가사과가 설치되었습니다.

그런데 가사 소년 업무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외부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보호관찰소나 소년원 같은 국가기관도 필요하지만, 심리 전문가의 도움이 더욱 절실합니다. 하지만 제주지방법원 청사에 심리 전문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상담실을 설치할 공간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심리 전문가들 네분이 모여 법원에서 의뢰된 가사재판·가정보호·아동보호·소년보호 사건의 상담을 진행할 상담소를 경치 좋은 한라산 자락에 개소하였습니다. 그 상담소가 백록통합상담센터입니다.

2017년 제주의 인구 1,000명당 이혼건수는 2.4로 거의 매년 이혼율 전국 1위입니다. 제가 보기에 그 원인은 음주와 폭력, 서툰 대화법입니다. 특히 음주와 폭력 문제는 매우 심각합니다. 그런데 음주와 폭력 문제의 원인은 자신의 감정과 의사를 정확히 전달하지 못하는 서툰 대화법입니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그냥 술을 마시고 술기운에 소리 지르고 폭력을 저지릅니다. 그래서 가정폭력으로 송치된 가정보호 사건에서는 행위자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에 대한 상담위탁 처분을 우선으로 하고 있습니다. 상담을 통해 이 문제들이 조금씩만 해소되어도 제주도의 이혼율은 떨어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아동학대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를 때리는 것이 훈육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부모가 여전히 많습니다. 심지어 때리지 않아 요즘 아이들이 버릇이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그러나 폭력으로 아이를 제압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폭력은 아이를 위축시키며 사고를 왜곡시킵니다. 더구나 부모가 가학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폭력은 더 이상 훈육이 아니고 범죄입니다. 어느 누구도 때릴 권한이 없고, 맞아야 할 의무도 없습니다. 폭력은 아이의 뇌를 멍들게 합니다. 맞고 자란 아이는 자신의 자녀들도 때립니다. 그래서 폭력은 대물림됩니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는 심리 전문가를 통해 훈육 방법을 고쳐야 합니다. 그래서 아동 학대 행위자에게도 상담 위탁 처분을 우선으로 하고 있습니다.

가사재판을 하다 보면 부모가 분노와 실망, 우울로 서로를 비난하고 본인의 상처가 너무 커 자녀를 돌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서 이 순간이 끝나기만을 바라며 빨리 판결 선고만 해달라고 합니다. 그 안에서 아이들은 ‘우리 엄마 아빠가 정말 이혼하는 것일까? 이혼하면 나는 누구와 살아야 하지? 엄마와 살게 되면 앞으로는 아빠를 보지 못하는 것일까? 친구들이 엄마 아빠의 이혼을 알면 어떻게 하지?’라며 불안감을 느끼고 말수도 줄어듭니다. 어떤 아이는 자살 소동을 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부모는 본인이 힘들어서 아이들의 그 마음을 눈치 채지 못합니다. 더구나 부모가 힘든 현실을 피하고자 이혼만 해주면, 양육을 포기하고 아이도 만나지 않겠다고 합의할 경우에는 문제는 더욱 심각해집니다. 그래서 가사재판에서는 부모와 아이를 안정화시키는 상담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 상담 과정에서 아이들의 의견을 들어 주 양육자를 협의하도록 하고, 면접교섭도 하게 합니다.

재판을 하다 보면 주 양육자보다 양육비를 지급하고 정기적으로 면접교섭하는 부 양육자의 역할이 더 중요함을 깨닫습니다. 부 양육자가 양육비를 주지 않고 면접교섭마저 하지 않을 때 아이들은 사라진 부모를 원망하고 우울감에 빠지면서 외톨이가 되기도 합니다. 주 양육자는 부족한 양육비를 충당하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지쳐 아이 양육을 소홀히 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부모에 대한 분노를 사회와 친구에게 뿜어내고, 주 양육자도 훈육을 포기하여 소년 비행으로 법원에 오기도 합니다. 부모는 이혼 재판에, 아이는 소년보호 재판에 나오는 가족도 있습니다. 양육 환경은 부모가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년 재판에서 상담을 위탁할 때 반드시 부모도 함께 받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가 변할 때 아이들도 변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보호소년을 상담하면서 비 양육자와 보호소년의 면접교섭을 회복시켜 주거나, 아동보호 상담하면서 친권자와 주 양육자 변경을 도모하기도 합니다. 제주지방법원은 가정보호와 아동보호, 가사재판, 소년보호 재판에서 자녀와 관련된 문제는 논스톱으로 해결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가사재판, 가정보호 재판, 아동보호 재판, 소년보호 재판에서 상담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전문성과 경험이 많은 역량 있는 상담가가 필요합니다.

2019년 현재는 백록통합상담센터에서 상담위원 세 분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법원에서 그 상담소 운영비를 보조할 방법이 없어서 그 분들이 상담비 중 일부를 갹출하여 상담소 운영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백록통합상담센터에서는 상담만 하는 것이 아니고, 2018년에는 법원에서 위탁한 소년보호 사건 캠프, 가정보호 사건 캠프 등 각종 행사도 진행하였고, 2019년에도 그리할 예정입니다. 상담위원들은 판사, 조사관들과 매월 사례회의를 통해 사례를 공유하면서 보다 나은 가족 문제 해결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숨비소리>

소년보호사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숨비소리’라는 비행 청소년 회복 시설입니다. 이 시설은 천주교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2018년 하반기에 제주 이시돌 목장 안에 개소하였습니다. 그동안 제주지방법원에서는 비행 청소년 회복 시설이 없어서 폐쇄형인 소년원에 의존했지만, 이제는 개방형 청소년 회복 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개방형 청소년 회복 시설의 최대 장점은 보호자의 보호력을 상실하여 통제가 불가능한 청소년을 위탁보호위원의 집에 위탁하여 함께 숙식하며 일반 학교나 직장에 다니게 하는 등 사회와 단절되지 않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숨비소리에서는 신부님 두 분이 아이들과 함께 숙식을 하며 성심껏 돌보고 있습니다. 또한 백록통합상담센터와 숨비소리가 연계하여 숨비소리에 위탁된 보호소년과 그 보호자 상담을 하면서 보호소년이 위탁 기간이 만료되면 가정에 잘 복귀하도록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다만 숨비소리에서는 남자만 위탁을 받기 때문에, 현재 천주교 살레지오 수도회의 도움으로 여자 청소년 회복 시설을 준비 중입니다. 아마도 2019년 하반기에 개소할 것으로 보입니다.

가족에게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가정법원을 찾게 되고, 가정법원이 그 가족 문제를 잘 해결하려면 여러 외부기관과 법원 간의 네트워크가 매우 중요합니다. 제주지방법원 가사과는 네트워크를 잘 활용하여 가족 문제 해결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할 것입니다.

글. 장창국 부장판사(제주지방법원)

"테마가 있는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