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 나의 삶]독일에서 있었던 이야기

테마가 있는 글

2018.03.02

나의 삶

독일 남서부에 위치한 프라이부르크(Freiburg)로 해외연수를 가서 가족들과 1년간 생활을 하고 우리나라에 돌아온 지도 벌써 4년이 되었다. 프라이부르크는 인구가 약 20만 명인 대학도시이자 프랑스, 스위스와 가까운 국경도시인데, 자국 내에서도 일조량이 많은 편이어서 독일 사람들이 은퇴하면 살고 싶어 하는 도시라고 한다. 솔직히 그곳에 가기 전에는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프라이부르크대학교로 연수를 가게 된 이유는 입학허가 신청메일을 보냈던 독일의 여러 대학 가운데 유일하게 입학허가서를 보내준 대학교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서 보니 매우 아름다운 도시였다. 혹시 하이델베르크를 지나서 스위스나 프랑스로 넘어가는 여행 계획을 세우는 분들이 있다면 프라이부르크를 방문해서 뮌스터대성당 앞에서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먹어보기를 권한다. 지금도 가족들과 가끔 프라이부르크에서 지냈던 이야기를 하면서 추억에 잠긴다. 1년이라는 기간이 아주 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외국에서 어린아이 셋을 키우면서 지내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두 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다.

큰 딸 유빈이는 집 근처에 있는 독일 공립학교인 요한 페터 헤벨 초등학교( Johann-Peter-Hebel Grundschule) 3학년을 다니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미리 6개월 정도 독일어를 배우긴 했지만, 턱없이 부족한 언어 실력 때문에 힘들어할까 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비교적 독일 아이들 사이에서도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빈이가 집에 와서 고민을 털어놓는데, 자기가 무슨 이야기만 하면 독일 여자애들 2명(한 친구의 이름은 마라였고, 나머지 한 친구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이 서로 소곤대면서 자기를 자꾸 놀린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무슨 이야기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지만, 그 느낌을 알 수 있으니까 힘들다고 한다. 아이에게 1주일 정도만 참아보라고 했는데, 두 아이들이 계속 그렇게 한다고 한다. 고민을 하다가 담임선생님 그리스하버(Grieshaber)에게 유빈이가 이런 고민을 갖고 있으니까 관심을 가져달라는 편지를 써서 아이를 통하여 전달하였다. 며칠 후 학교 교실에서 ‘Eltern Abend’(1년에 2번 정도 열리는데 학부모와 선생님이 모여서 학교 생활 전반에 대하여 토론하는 시간)가 오후 8시에 있어서 참석을 했다. 처음에는 우리나라를 생각해서 조금 유별난 엄마들이 몇 명만 참석하는 줄 알았는데, 가서 보니 반 아이들이 총 25명인데 학부형 24명(아빠는 나 포함해서 3명)이 참석해 있는 것이다. 선생님을 포함해서 25명이 둥글게 의자에 앉아서 열띤 토론이 시작되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갑자기 선생님이 “유빈이 아버님, 유빈이가 학교에서 겪은 일에 대하여 말씀해보세요” 하는 것이다. 미리 말씀 좀 해주시지 하는 마음도, 이렇게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면 유빈이가 더 힘들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갑자기 생겼다. 나는 서툰 독일어로 우리 유빈이가 한국에서는 친구를 많이 사귀었는데 여기 독일에서도 그랬으면 좋겠고, 2명의 친구들이 유빈이를 자주 놀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내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또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마침 2명의 엄마들도 참석을 했다. 마라의 엄마는 자기는 잘 몰랐다고 하면서 아이에게 주의를 주겠다고 한 것으로 나는 알아들었다(솔직히 정확한 해석인지는 자신이 없다). 그렇게 2시간의 ‘Eltern Abend’ 시간이 끝났다. 잘 들리지 않는 독일어를 집중해서 들으려고 노력하느라 완전히 진이 빠졌는데, 레바논에서 온 아이 엄마가 나에게 와서 “You and your child should be strong in germany!”(당신과 아이는 독일에서 더 강해져야 해요)라고 격려를 해 준다. 이젠 내 할 도리는 다했다고 생각하고 있던 어느 날, 메일함을 열어보니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열어 보니 반 친구 엄마가 유빈이를 집에 초대하겠다고 하면서 언제 자기 집에서 자기 아이랑 놀게 할 수 있는지 문의하는 내용이었다. 며칠 뒤 유빈이는 그 친구 집에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나의 고등학교 친구인 L은 음대를 졸업하고 독일로 이민을 와서 울름(Ulm, 고딕 양식의 대성당이 유명하며,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출생지이다)에서 살고 있다. L은 연수 초기부터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독일에서 친구가 그리울 때면 우리 가족은 L이 살고 있는 울름을 찾곤 했다. 프라이부르크에서 울름까지는 자동차로 약 3시간 정도 걸렸다. 그날도 3시간 정도 걸려서 오후 6시에 울름에 도착했다. 친구 집에 가기 전에 저녁에 먹을 맥주와 고기를 사려고 대형슈퍼마켓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그때 지극히 유쾌했던 우리 가족의 평화를 깨는 일이 발생했는데…, 내 지갑이 없어진 것이다. 지갑에는 신용카드 2장, 현지은행 직불카드, 신분증, 300유로 등이 들어 있었다. 나와 아내는 서둘러서 자동차 안과 가방 등을 찾아보았는데 지갑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지갑을 잃어버렸다면 그렇게 허둥대지 않았을 텐데, 외국에서 지갑을 잃어버리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서둘러서 L의 집에 가서 일단 국제전화로 H사와 S사에 연락해서 신용카드 분실신고를 하였다. 바지 주머니에서 지갑을 뺀 일이 어디에서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프라이부르크에서 울름으로 오는 중간에 화장실에 갔고 아이들 과자를 사주기 위해서 고속도로 휴게소를 2군데 정도 들렀었다. 그런데, 현금을 주고 과자를 샀기 때문에 어느 휴게소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L은 우선 경찰서에 가서 분실신고를 하고, 반대방향으로 고속도로 휴게소를 하나씩 찾아가면서 기억을 더듬어보자고 제안을 하였다. 그래서 L과 나는 경찰서에 가서 분실신고를 하였고, 경찰은 찾으면 연락을 주겠다고 하는데 큰 기대는 하지 말라는 느낌이었다. 경찰서를 나와서 울름에서 프라이부르크 방향으로 거꾸로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하였다. 나는 운전이 서툴고 특히 저녁이라서 L이 운전을 했는데,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집에서 쉬어야 하는데, 내 실수로 친구만 고생을 시키네. 친구를 만나서 회포를 풀려고 했는데, 이게 뭐지?’ 낮에 지나왔던 고속도로와 그 주변 경관을 지켜보는 나의 마음은 무거웠다. 표정이 어두운 내 얼굴을 보고 L이 걱정 말라고 하면서 천천히 찾아보자고 하였다. L과 나는 가족들이 있을 때는 서로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했다. 다소 마음이 편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무거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40분 정도 고속도로를 타고 나서 이제 나오는 휴게소마다 가보기로 하였다. 몇 번 허탕을 쳤다. 시간은 거의 오후 9시 반 쯤 되어서 거의 포기할 단계였다. 거의 칼스루에(Karlsruhe, 프라이부르크에서 차로 1시간 정도 걸리는 도시)에 다 왔을 즈음에 나타난 한 휴게소를 L이 가보자고 하였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들어가는데 낮에 왔던 휴게소였다. 휴게소에 딸린 주유소 옆에 자동차를 세워 놓았던 것으로 기억이 났다. 자동차를 세웠던 곳 주변을 둘러봐도 지갑은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휴게소 안으로 들어가서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와! 점원이 내 지갑을 내주는 것이다. 자기보다 먼저 근무한 직원에게 전달받았는데, 다른 손님이 주유소 옆을 지나다 떨어진 지갑을 보고 휴게소 카운터에 맡겼다는 것이다. 지갑을 살펴보니 신용카드, 현금 등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Danke!”(고맙습니다!)를 연신 외쳤다. 그리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그 먼 길의 여러 휴게소를 함께 가 준 L에게 정말 고맙다는 이야기를 했다. 울름 L의 집에 도착하니 12시가 넘었고, 아이들은 모두 자고 있었다. 나와 아내, L과 그 아내 이렇게 4명이서 힘들게 찾은 지갑이야기를 하며 웃음꽃을 피웠다. 다음날 울름 극장(Theater)에서 활동하는 L이 지갑을 찾은 이야기를 하니까 그 얘기를 들은 직장동료들이 박수를 치면서 “Noch Deutschland!”(여전히 독일은!)라고 외쳤다고 한다.

독일이 우리나라보다 살기 좋은 나라라고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 곳에서 있었던 1년이라는 기간 중에서 인상 깊었던 이야기를 적다 보니 두 이야기를 하게 되었을 뿐이다. 아이의 문제를 쉬쉬하지 않고 함께 터놓고 고민해준 유빈이의 담임선생님 그리스하버와 다른 학부모들, 힘든 일이 있을 때 자신의 일처럼 함께 고민해주고 큰 힘이 되어준 친구 L, 지갑을 돌려준 이름 모를 친절한 독일인에게 이 기회를 빌려 정말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당시에는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아련한 추억이 되어 버린 독일에서의 1년은 나의 삶 속에서 항상 힘이 되는 강장제로 남아 있을 것이다. ‘Tschüs!’(안녕!).

글 이한석(대전지방법원 사법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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