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세상 X 낭만필객] 우리나라의 이름인 ‘대한민국(大韓民國)’, 그리고 ‘Korea’의 유래를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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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글 박형기 등기관(청주지방법원 충주지원)

대한제국(大韓帝國, Empire of Korea)의 성립
‘대한민국’은 우리나라의 정식 국호이다. 전부 한자어이다. 우리 국호의 직접적 뿌리는 고종황제가 선포한 ‘대한제국’이다. 고종은 1897년 10월 12일 황제로 즉위하고는 “조선은 중국에서 책봉의 의미로 받은 국호이니 제국의 이름으로 적합하지 않다. 우리나라는 곧 삼한의 땅인데, 천명을 받고 한 나라로 통합하였다. 따라서 ‘큰 韓[大韓]’이라는 이름이 적합하다.”라 하였다. 이후, 조정에서는 ‘대한제국’의 영문표기를 ‘Empire of Dai Han’으로 해 줄 것을 각국에 요청하였다. 하지만 ‘Empire of Korea’의 세계적 통용은 거스를 수 없었기에 결국 조정도 받아들이게 된다. 조선이 멸망시킨 고려 왕조의 국호가 결국은 영문 국호가 된 셈이다. 과연 그렇다면 왜 ‘한(韓)’이며 어째서 결국 ‘Korea’인 것일까?

전근대 시대 동양의 국제질서에 따른 각국의 국호의 제정
동양에서 황제국은 한 글자 국호를 썼다. 송(宋)·원(元)·明(明)·청(淸)과 같은 나라들이 그 예이다. 그에 따라 중국의 패권을 인정하는 주변의 국가들은 두 글자의 국호를 써야 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고려(高麗)·조선(朝鮮)과 같은 국호를 사용했으며, 그 외 일본(日本)·고창(高昌)·토번(吐蕃)과 같은 2글자 국호를 사용하는 나라들이 있었다. 심지어 고구려도 이 원칙에 맞추고자 고구려(高句麗)에서 고려로 바꾼 듯하다. 역사적인 동아시아 질서에 따라 두 글자 국호를 사용해 온 각국이지만 내심으로는 어디나 자주국가로서의 위상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우리 고려는 중국에 대한 사대의식이 그다지 높지 않았고 자신들의 군주를 해동천자(海東天子)로 여기며 군주를 ‘황제(皇帝)’ 또는 ‘폐하(陛下)’라 부르기도 하며, 당시 송나라의 통치 기구의 명칭들을 그대로 모방하였다. 개경의 궁궐은 황제국의 예법에 따라 정전인 회경전까지 5개의 문을 지나게 하였다. 경복궁은 정전인 근정전까지 3개의 문을 지나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리고 본래 황제가 죽은 뒤에 공덕을 기리어 붙이는 ‘묘호(廟號)’도 사용하였다. 그래서 고려시대 임금들에게는 태조(太祖)·광종(光宗)·현종(顯宗) 등의 묘호가 올려졌다. 묘호에 관한 전통만큼은 중국에 대한 제후국을 자처하던 조선에서도 이어졌는데, 중국은 이러한 관행을 알면서도 모른척하며 크게 지적하지는 않았다. 베트남도 역사적으로 큰 자주성을 보였다. 약 천 년간의 중국의 지배를 벗어난 베트남은 한 글자 국호인 ‘대월(大越)’을 사용하고, ‘황제’를 칭하며 연호도 사용하였다. 다만 중국과의 외교관계에서는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고자 청나라 황제의 ‘승인’을 얻어 ‘월남(越南)’이라는 국호를 사용했다. 이것이 ‘베트남’이라는 국호의 유래이다. 일본 역시 그들의 왕을 천황(天皇)이라고 칭한다. 2020년 도쿄 올림픽 개회식에서 일왕이 개회선언을 위해 장내에 나타나자 ‘Emperor of Japan’이라는 영문 자막이 달렸다. 전통적인 황제국가 모두 사라진 현대에 있어 ‘황제’의 호칭을 사용하는 유일한 이는 오직 일왕이다.

왜 ‘한국(韓國)’ 인가?
대한민국의 핵심글자인 ‘한(韓)’에 관하여 현대 한국어 ‘큰’과 연관 짓는 설이 있지만 언어학적 근거는 없다. 다만, 고대 삼한(三韓)에서 유래된 것만이 확실하다. 옛 사람들은 삼한을 삼국과 같이 보며 한반도 전체의 별칭으로 여겼다. 그래서 고려 태조 왕건은 후삼국통일에 특히 공이 높은 이들을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이라 하였고, 현종은 거란과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강감찬·양규·김숙흥 등을 삼한후벽상공신(三韓後壁上功臣)으로 예우했다. 그렇다면 ‘한(韓)’의 유래는 무엇일까? 일단 중국 전국시대 국가 중 하나였던 한(韓)나라가 눈에 띈다. 이 나라는 나중에 진나라에게 패망해 사라졌다. 그런데 이 한(韓)은 나중에 한반도의 정치세력의 기록에 다시 사용된다. 3세기 역사서인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한반도 중남부에 마한·진한·변한이 있음을 가록하였다. 이는 고대 한반도 단어를 당시의 가장 유사한 중국어 발음의 글자로 표기한 것이다. 당시의 상고 중국어에서 ‘한(韓)’은 ‘가르’ 정도의 소리였다. 이를 뒷받침하듯 각종 사서에서는 한반도 남부의 세력들을 ‘가라(伽羅)’라고 표기한 것이 보이는데, 고대 일본어 자료에서도 한반도를 ‘카라쿠니[韓國]’로 표기한 예가 확인된다. 그렇다면 마한(馬韓)은 당시에 ‘마가라’ 또는 ‘마가르’ 정도로 불렸을 것인데, ‘마’를 고구려 관직명 ‘막리지(莫離支)’와 연관이 있다고 보면 결국 마한은 ‘큰 나라’라는 뜻이 된다. 역사의 흐름 속에 삼한은 모두 소멸하였다. 그리고 ‘가라’ 또는 ‘가르’라는 원래의 소리는 잊혀졌고 한자 표기인 ‘한(韓)’만 남았다. 그리고 19세기말, ‘한(韓)’은 약 1400여년의 기다림 끝에 나라이름으로 부활한다.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1910년에 일본은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하였다. 한반도는 다시 조선이 되었으며 고종과 순종은 ‘왕(王)’으로 격하되었다. 하지만 3.1운동이 일어나자 처음에 ‘조선독립만세’이던 구호는 ‘대한독립만세’로 변하였고 이로서 ‘대한(大韓)’은 다시 살아난다. 1919년 4월 10일의 상해임시정부 임정회의에서 애국지사 신석우는 우리나라의 새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제안했다. 그러자 몽양 여운형은 ‘망한 나라의 이름’이라며 반대하였다. 하지만 “대한으로 망했으나 대한으로 다시 일어서 보자” 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져 ‘대한민국(大韓民國)’ 이 새 국호로 결정되었다. ‘대한(大韓)’은 앞서와 같이 고종황제가 만든 국호이며, ‘민국(民國)’은 영어 ‘republic’의 번역이다. ‘republic’의 다른 번역에는 ‘공화’가 있다. 근대에 세습 군주가 없는 국가체제를 뜻하는 그 단어가 동양에 전해지자 일본에서는 이를 ‘공화국(共和國)’으로 번역했고, 중국은 ‘민국(民國)’으로 번역했다. 그래서 신해혁명을 통해 청왕조를 무너뜨리고 건국된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은 ‘중화민국(中華民國)’을 국호로 하였다. 우리 국호가 ‘대한민국’의 4글자인 것은 이 중화민국의 글자 수를 의식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된다. 또다른 번역인 ‘공화국’은 사마천이 지은 사기(史記)에 유래가 있다. 주나라 10대 려왕(勵王)이 폭정으로 폐위되면서 한동안 국왕이 없던 시기에 재상들이 ‘공동으로 화합하여’ 나라를 운영했는데 사마천은 이때를 ‘공화시대’라 기록했다. 일본은 이에 착안하여 ‘republic’을 ‘공화국’으로 번역했다. 지금은 일본의 번역인 ‘공화국’이 대세가 되어 ‘민국’은 ‘대한민국’과 ‘중화민국(현재의 대만)’외에는 사용되는 예가 없다.

우리나라의 또 다른 이름 ‘고려(高麗)’
우리나라의 영문명 ‘Korea’는 누구나 알듯 ‘고려’에서 유래했다. 고려왕조 멸망 후에도 ‘고려’라는 이름은 생명이 다하지 않았다. 해방 후에는 우리 국호를 ‘고려공화국’으로 하자는 주장도 있었다. 그렇다면 고려는 왜 고려일까? 과거에는 고려 태조 왕건이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미로 지었다고 알려져 있기도 했지만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일단 고려의 어원부터 생각해보자. 중국학자 왕충이 쓴 ‘논형(論衡’에서는 고대국가인 부여의 시조 ‘동명(東明)’이 ‘고리국(藁離國)’ 출신이라 적혀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의하면 부여에서 탈출한 추모(鄒牟, 주몽)가 ‘고구려’를 세웠다. ‘고(高)’를 뒤의 글자를 미화하는 표현으로 본다면 ‘구려(句麗)’가 고구려의 본 이름일 것이다. 그렇다면 ‘구려’ 와 앞서의 ‘고리’는 같은 단어의 다른 표기일 가능성이 크다. 위 단어들의 어원에 관하여는 삼국지 동이전에서 언급한 성(城)을 뜻하는 고구려 단어 ‘구루(溝樓)’, 그리고 삼국사기에서 큰 마을의 이름으로 자주 쓰이는 ‘홀(忽)’이 주목된다. 인천의 고대 지명 ‘미추홀(彌鄒忽) 또는 매소홀(買召忽)’인데, 이들의 추정 고대 음가는 ‘밋[水]골’, 현대어로 하자면 ‘물골’ 이다. 결국 ‘구루’나 ‘홀’ 모두 현대 한국어에서 마을을 뜻하는 ‘골’과 연관이 있으며 ‘구려’의 어원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고구려는 고대 돌궐어에서 ‘뵈퀴리[貊句麗]’로 불렸다. 한편, 중국 신(新)나라 황제 왕망은 고구려를 비하하여 ‘하구려(下句麗)’라 부르기도 했다. 이후, 고구려는 장수왕 시기에 국호를 ‘고려(高麗)’로 확정한다. 그래서 필자의 고향인 충주에 있는 고구려비에도 ‘고려태왕(高麗太王)’이라는 글자가 있다. 이후 고구려는 ‘고려’로 통용되었으며 마지막까지 유지되었다. 나중에 통일신라 말기의 혼란기에 각지의 군웅할거 시대 이후, 한반도 중부의 패권을 잡은 궁예는 서기 901년에 ‘고려’를 세웠다. ‘후고구려(後高句麗)’라는 이름은 나중에 다른 고려와 구분하려 붙인 이름이다. 궁예는 나중에 국호를 마진(摩震), 태봉(泰封) 등으로 바꾸었는데, 태조 왕건은 궁예를 몰아내고 다시 ‘고려’를 건국했다.

고려(高麗)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고려는 높을 고(高)와 빛날 려(麗)이다. 소리도 괜찮고 뜻도 매우 좋다. 고려 멸망 직후, 세종대왕이 지은 용비어천가에는 ‘麗運이 衰ᄒᆞ거든(고려의 운이 쇠퇴하였으므로)’라는 문구가 있는, 이 주석에 ‘麗音离高麗也(‘려’는 ‘리’로 읽는다. 고려를 뜻한다.)’라고 하였다. 동국정운에서도 려(麗)는 ‘빛나다’라는 의미일 때는 ‘례’이고 나라이름일 때는 ‘리’로 나온다. 청나라 옥편 강희자전에서도 나라이름일 때는 ‘리’로 읽는다며 아예 ‘고구려’와 ‘고려’를 예로 들었다. 동아시아에서 나라이름에 ‘려(麗)’가 쓰인 경우는 ‘고구려, 고려, 구려’ 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언중들은 이미 어느 순간부터 이 원칙을 어기고 ‘리’가 아닌 ‘례’에 가까운 소리로 읽었다. 성현, 안정복, 박지원 같은 학자들이 이 문제를 지적했음에도 되돌릴 수 없었다. ‘고례[高麗]’는 현대 한국 한자음 ‘고려’로 최종 정착되어 한국사 교과서에도 ‘고려’로 적혀있다. 다만 ‘옛날 옛날 고릿적에……’ 와 같이 옛 이야기책의 표현에서 ‘고리’가 화석처럼 남아있다.

고려(高麗)는 코리아(Korea)가 되고
그렇다면 고려는 언제부터 영문 단어 ‘Korea’의 어원이 되었을까? 분명 이역만리 외국에서 온 누군가가 고려를 알고서는 전했을 것이다. 이탈리아 여행가 마르코 풀로는 동방견문록에서 고려를 ‘Cauly[카울리]’라 적었다. 현대 중국 표준어로 고려는 ‘까오리’이다. 둘다 ‘Korea’의 발음과는 사뭇 다르다. 따라서 ‘Korea’는 당시 한반도에서의 ‘고려’에 관한 발음을 직접 들은 누군가에 의해 전해졌을 것이다. 16세기 초 포르투갈 문헌에는 ‘Gores’로, 중세 시기 류큐(오키나와)에서는 ‘Gore’로 불렀다는 기록이 발견된다. 하지만 유럽 문헌에서 현재의 ‘Korea’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단어는 네덜란드의 문헌에 나타난 ‘Insula de Core(고려 섬)’이다. 동양에 관한 지리적 지식이 부족했던 서양에서는 한반도를 섬으로 오인한 사례가 꽤 있었다. 스페인에서는 ‘Corea’로 프랑스에서는 ‘Coree’로 정착되었다. 이후, 국가 명에 붙는 접미사 ‘-ia’가 더해져 Corea가 되고 철자법 변화에 따라 최종적으로 Korea가 되었다. 결국 돌고 돌아 세종대왕의 ‘고려가 아니라 고리로 발음하라.’라는 방침에 가까워진 셈이다.

대한민국(大韓民國), 그리고 Republic of Korea
이상과 같이 우리나라 국호의 핵심단어인 ‘한(韓)’은 한반도 고대 남부어로서 정치집단을 의미한 이른바 ‘가라’ 정도의 소리를 옛 중국어 발음 중 가장 유사한 글자인 ‘韓(한)’으로 표기한 것에서 유래하며, ‘Korea’의 어원인 ‘고려’ 역시 옛 문헌에 나타나는 ‘구루’, 홀[골] 등에서 유래하는 것을 살펴보았다. 얼마 전 뉴스에서 눈이 확 뜨이는 기사를 발견했다. 세계 각국으로 판매되는 코카콜라 캔에 ‘K-WAVE’, ‘상큼 최애 맛’이라는 글자도 들어갔다는 것이다. 코카콜라 캔의 외국어 표기는 100여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한류(韓流)가 정말로 대단하긴 한 모양이다. K-pop, K-Food, K-culture 모두가 인기이다. 역사적으로 지금처럼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전성기를 누린 시기가 또 있나 싶다. 현재 남과 북 모두의 영문 국호에는 모두 ‘Korea’가 들어간다. 같은 집안이므로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예전 일기예보 뉴스에서는 북한지역 날씨도 보도되더니 어느 순간부터 남한 날씨만 예보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가장 높은 산을 백두산이 아닌 한라산으로 답하는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북한도 최근 자신들의 ‘애국가’ 가사에서 한반도를 뜻하는 ‘삼천리’를 삭제하고 ‘대한민국은 우리의 주적’이라며 위협을 하고 있다. 이에 한반도의 자주적 통일국가이자 문화대국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선조들이 지은 나라이름인 ‘대한민국’, 그리고 한반도 내의 자주적 역량으로 통일을 완수한 고려와 그에서 유래된 영문 표기인 ‘Korea’ 에 담긴 의미들을 다시금 생각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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