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필객] 늘 꿈을 꾸었고 드디어 이루다 (부제 : 다시 새로운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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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5

글 김재로 행정관(대전지방법원 등기국)

#1. 출발(出發)
2023년 7월 4일,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에 아이들과 인사도 못 나누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공항버스 속에서 아이들을 아내에게 맡겨두고 가야 하는 미안함과 앞으로의 여정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가득했다. 실무관 시절 녹록지 않은 현실 속에서 방황하던 나에게 한 줄기 빛처럼 찾아온 해외연수는 해방구가 되어줄 거라는 바람으로 꿈이 되었고, 12년간에 준비했던 결실이 드디어 현실이 되어서 삿포로행 비행기와 함께 푸른 하늘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2. 도착(到着)
언제나 새로운 곳에서 시작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입국과 동시에 공항에서 재류카드 발급, 기숙사 화재 보험 가입, 다음날 구청에 주소등록, 건강보험 가입, 연금 가입 및 면제, 핸드폰 개통, 통장 개설 등 소위 일본 장기체류 3종 세트를 무사히 마쳤다.
연수 오기 전에 코로나 기간과 둘째 육아휴직으로 인하여 일본어 공부를 전혀 못했던 터라 더듬더듬 이였지만 그래도 조금씩 의사소통이 되어 가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내가 국외연수 기관으로 선택한 곳은 홋카이도 삿포로 시에 위치한 홋카이도대학교 법학연구과이다. 1876년 일본 메이지 정부 주도로 홋카이도의 개척시대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최초 농학교로 설립되었고,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Boys, be ambitious)’라는 명언으로 유명한 윌리엄 스미스 클라크 교수가 초대 총장으로 역임되었으며, 학교 곳곳에 클라크 교수의 동상과 업적을 기리는 건물이 많다.
150년 역사와 더불어 자라온 큰 나무의 조경이 잘 되어 있어서 매 계절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 준다. 넓은 면적의 학교 캠퍼스는 대학생과 삿포로 시민들의 러닝 명소이며 2020년 도쿄 올림픽 당시 마라톤 코스이기도 하였다.
해외 연수 신청을 받아준 법학연구과의 사토 유키 교수님과 만나 법원의 해외연수 과정에 대한 설명과 앞으로의 연구과제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등기업무를 맡고 있다고 하니 일본의 민법 및 부동산등기법 개정에 따른 소유자불명토지해소에 관한 책을 선물로 받을 수 있었다. 다른 연수기관은 잘 모르지만 홋카이도대학은 외국인 연구원을 위해 연구실을 제공해 준다. 우연히도 같은 연구실에는 검찰청 소속의 검사님도 계셨고 이런저런 일본 생활의 감상과 노하우를 전해 받을 수 있었다.

#3. 생활(生活)
해외연수는 매일 출퇴근하던 일상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환경 속에서 지내게 된다. 물론 연구보고서 작성이라는 큰 숙제가 있지만 해외연수 중에 충분히 완성할 수 있으며, 연구보고서 외에 대상 국가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해외연수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5년 전에 여행으로 삿포로와 오키나와를 방문한 적이 있었고, 4년 전 제20회 한·일 등기관 연수 중 도쿄를 방문한 적이 있지만 이처럼 오랜 기간의 체류는 처음이었다. 홋카이도는 일본의 4개의 섬 중 혼슈를 제외하고 최북단에 위치한 섬이다. 면적은 한국의 약 9분의 7정도로 넓은 면적을 가지고 있다. 홋카이도의 총인구는 510만 명 정도이며 홋카이도청이 위치한 삿포로시는 인구 190만 명이 거주하는 홋카이도 내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한국의 대전광역시와는 협력 도시로 지정되어 있다.

과거에는 아이누족이 살았던 곳으로 원시림과 야생동물이 가득하여 미지의 섬으로 알려졌다. 16세기부터 섬 남부에 일본인들이 이주하였고, 18세기 일본의 메이지유신의 세워진 신정부는 홋카이도를 일본에 편입하고 개척사를 건설하여 본격적으로 홋카이도를 개발하기 시작하여 지금의 홋카이도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홋카이도는 한국인에게 잘 알려진 관광의 섬이다. 특히나 한국에서 お元気ですか?(오겡키데스까?)라는 대사로 많은 인기를 얻었던 일본 영화 <러브레터(LOVE LATTER)>의 배경지이다. 실제로 만나본 일본인들에게 물어보았으나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고, 오히려 최근에 방영된 넷플릭스 드라마 <첫사랑(はつこい)>으로 유명세를 얻고 있다. 특히나 여름에는 일본 본토의 무더위를 피해 가장 많이 찾는 여름휴가의 명소이다. 여기 오기 전에 홋카이도의 여름은 시원할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올해는 이상기후로 인하여 기온이 연일 30도 이상 올라갔으며, 장마전선도 이곳까지는 북상하지 않아서 엄청 더웠다. 여름이 짧고 시원한 홋카이도에는 에어컨이 없는 곳이 많아서 어느 해보다도 더운 여름을 보냈다.

1972년 삿포로 동계 올림픽이 열렸을 정도로 겨울에는 홋카이도 전체가 설국으로 변하며 유명한 삿포로 눈 축제는 매년 1월 중순부터 2월까지 열리며 홋카이도의 눈질은 파우더 눈이라고 불리 울 만큼 부드러워서 세계의 스키어들이 찾는 스키명소이다. 가격 대비 저렴하고 4월까지 스키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은 또 다른 매력이다.

지난 6개월 동안 홋카이도에서 가장 좋았던 점을 뽑는다면 바로 깨끗한 자연환경이다. 한국에서는 늘 미세먼지 정보를 확인하고, 아이들과 마스크를 써야 하거나 외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매일 맑은 공기와 푸른 하늘은 늘 기억에 남는다.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푸른 수평선을 지나면 나타나는 해안 절벽은 제주도나 호주의 골든코스트처럼 한눈에 담기기 어려울 만큼 장관이었다.
바다만큼 넓었던 세계자연유산인 도야호수, 시코츠호수, 2000년 초반까지도 화산이 분출한 쇼와 신장과 모두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우스산 로프웨이 전망대 유럽느낌의 니세코와 루스츠, 한라산만큼 높고 홋카이도의 후지산이라 불리는 요테이산, 뜨거운 온천수와 유황을 직접 느낄 수 있는 노보리베쓰, 한여름 라벤더와 멜론으로 유명한 후라노와 비에이는 오히려 가을에 선명한 단풍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자연을 바라보며 늘 들었던 생각은 이곳에 조선이 먼저 진출했으면 어땠을까? 라는 엉뚱한 상상을 해보곤 하였다. 우리나라였으면 할 만큼 부러운 자연환경이었다.

#4. 이해(理解)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이라는 말처럼 여행에서 느끼지 못했던 일본을 정말 알고 싶었고 한국을 많이 알려주고 싶어서 많은 곳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일본인을 만나면서 대화를 하고 싶었던 바람인지 몰라도 운 좋게 학교, 카페, 식당 등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만난 일본인들과 친해지고 대화도 나누면서 교류를 이어갔다. 교류를 통해서 처음 일본에 와서 답답하게 느꼈던 일본의 여러 시스템에 대하여 한국인의 입장이 아닌 일본인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하니 변화가 늦은 일본 사회에 대하여 납득이 되었다. 또한 일본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안전망 확충이라든지 장애인에 대한 배려, 대중교통 이용과 운전습관, 학생들의 여유로운 동아리나 체육활동 등은 오히려 부러움을 느끼기도 하였다.
가끔 매스컴을 통해서 ‘혐한’으로 인하여 일본에 대한 인식이 좋지 못한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다행히 경험하지 못했고 어느 사회나 그렇듯이 일부 잘못된 인식을 가진 이들의 행동으로 비롯된 현상이라고 본다. 우려와 달리 해외연수 중 내가 직접 느낀 한류 열풍은 다음과 같다.
삿포로의 대표 번화가인 스스키노에는 한국요리전문점에 일본인들로 가득하고 삼겹살은 최애 인기 메뉴이다. 젊은 남성이나 여성들은 한국식 헤어스타일과 화장법이 유행을 하고, 한국 화장품은 늘 인기상품이며, youtube나 SNS에는 한국여행에 대한 소개가 넘쳐난다. 한국마트나 한국식 카페에서 파는 김밥, 잡채, 양념치킨 등은 언제나 매진이다. 서점에 가면 영어 서적만큼 한국어 서적이 비치되어 있으며 특히나 젊은 일본인들이 책을 구매하거나 관심을 갖는 것을 보기 쉽다. 참 좋은 현상이고 직접 느낄 수 있어서 한국인으로 뿌듯했다.
이에 더해서 늘 한국에 관심이 있는 일본인에게는 적극적으로 내가 살고 있는 공주시뿐만 아니라 맵지 않고 맛있는 한국 음식에 대해서 소개를 해주었으며, 기회가 된다면 꼭 한국의 근대사를 알 수 있는 독립기념관이나 서대문형무소 등을 방문해달라고 했다. 일본인뿐만 아니라 학교 내의 다른 나라의 교환학생들에게도 한국이란 나라의 인지도를 확인할 수 있었고, 특히나 BTS나 블랙핑크 등 세계적인 아이돌의 인기로 인해 한국이라는 브랜드가 널리 알려져 있음을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

#5. 발전(發展)
먼저 평범한 법원공무원으로서 부족한 제가 해외연수를 가게 되는 데에 배려해 준 나의 사랑하는 가족과 연수 준비에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이번 6개월을 통해서 오랜 기간의 꿈을 현실로 이루었고, 이 소중한 경험을 통하여 앞으로 새로운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시 새롭게 꾸는 그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고자 합니다. 아직 해외연수를 희망하는 법원 가족 여러분 포기하지 마시고 도전하면 그 꿈은 이루어집니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연금술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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