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럿이 하모니] 싱그러운 햇볕 아래 푸른 잎이 움트다 - 서울회생법원 '그루터기 정원텃밭' 동호회

테마법원

2021.07.09

정원텃밭

싱그러운 햇볕 아래 푸른 잎이 움트다
서울회생법원 ‘그루터기 정원텃밭’ 동호회

30만 평 대지를 일구며 꿈꾸는 대로 살았던 동화작가 타샤 튜더는 구순의 나이에도 정원 가꾸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원을 관리함으로써 마음의 평온과 행복을 추구했으니 자연 가까이에서 식물을 돌보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를 알 수 있다. 서울회생법원 ‘그루터기 정원텃밭’ 동호회 회원들 또한 하루하루 자라나는 푸른 잎을 보며 소소한 희열을 느낀다고 전했다.

글. 노초롱 사진. 이정도

올해 식목일에 시작한 의미 있는 동호회
비가 내린 다음날이라 그런지 유난히 쾌청한 날씨가 옥상 텃밭을 찾은 이들을 반겼다. 구름 한 점 없는 탓에 햇볕이 쨍쨍해 눈이 부실 정도였지만, ‘그루터기 정원텃밭’ 동호회 회원들은 작물이 잘 자랄 수 있는 좋은 날씨라고 입을 모았다.
“텃밭 동호회가 생기기 전부터 직원 몇몇이 채소를 가꾸고 있었는데, 조금 더 많은 구성원이 함께하기를 원하면서 올해 식목일을 기점으로 동호회를 창설하게 됐습니다. 4층 옥상 여유 공간 한편에 텃밭을 만들어 회원들과 각종 채소를 가꾸면서 잠시나마 휴식을 취하고,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삶을 추구하고자 합니다.”
창설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회원 각자에게 주어진 텃밭 상자를 가꾸는 것 외에 아직 특별한 활동은 하지 않았지만, 회원들은 점심시간이나 휴식 시간을 활용해 힐링할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만약 텃밭도 없는데 옥상에 와서 우두커니 그냥 앉아있으면 좀 그렇잖아요. 그런데 텃밭이 생기면서 테이블이랑 파라솔도 놓고, 올 때마다 한 뼘씩 자란 푸릇푸릇한 작물을 볼 수 있으니 참 즐거워요. 주말 이틀 동안 못 봤다가 다시 들렀을 때 애틋한 마음이 들 정도예요.”
김현정 참여관은 개인적으로 챙겨 온 비료를 다른 회원들의 텃밭에도 나눠 뿌리면서 말을 이었다.
“예전에 제 텃밭에 비료를 뿌려줬더니 토마토가 눈에 띄게 성장했거든요. 회원들이 모두 부러워하기에 오늘 큰마음 먹고 가져왔습니다. 비료를 주기 전과 후를 비교해보면 확실히 효과가 있더라고요. 비료를 준만큼 다 잘 자랐으면 좋겠어요.”
회원들은 텃밭 동호회만의 장점으로 작물이 무럭무럭 자랄 때 느끼는 뿌듯함을 꼽았다. 더불어 지금처럼 코로나19에 따른 언택트 시대, 다소 경직될 수 있는 일상에서 동료들과 업무 외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여유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여기는 약속하지 않아도 되는 만남의 장소랄까요? 서로 잘 알지 못해도, 굳이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이곳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이들은 다 식물을 좋아하는 분들이니까 왠지 마음이 통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지기도 하고요. 동호회의 목적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처음에는 이 땡볕에 누가 할까, 한 대여섯 명이나 될까 싶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추가 모집까지 해서 현재 서른한 명 정도의 인원이 활동하고 있으니 앞으로 더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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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물의 성장을 함께 나누며 소통하는 사람들
올해는 동호회가 창설된 첫해라서 상추나 방울토마토, 깻잎 등 잘 자라는 작물들을 위주로 심었는데, 그러다 보니 서로 비슷한 작물이 겹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작물을 키우는 사람의 스타일이 드러나기도 한다.
“저는 다른 분들보다 한 달 늦게 배정받아서 작물들이 조금 느리게 자라고 있거든요. 크게 키우려면 열매 몇 개만 남겨두고 중간 중간 따줘야 한다던데, 손톱만큼 자라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못 따겠더라고요. 얼른 키워서 먹는 것보다 보는 재미로 키우는 관상용 작물이랄까요? 지금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아요.”
김정필 참여관의 말에 옆에서 듣던 안순희 실무관은 다른 입장을 이야기한다.
“저는 크고 튼실하게 키워서 바로바로 먹으려고요. 상추랑 깻잎은 크는 대로 따줘야 잘 자란다고 해서 열심히 먹고 있거든요. 확실히 마트에서 파는 상추보다 훨씬 신선해요. 방울토마토도 보는 재미보다는 먹는 재미가 더 클 것 같아서 얼른 자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적물을 키우는 스타일은 각기 다르지만 ‘그루터기 정원텃밭’ 동호회가 추구하는 바탕은 모두 같은 ‘성장과 소통’이다. 자주 찾지 않는 옥상의 방치된 공간을 생명이 자라는 녹색 공간으로 만드는 동시에 코로나19로 단절되고 멀어진 동료와의 관계를 이어가고자 하는 것. 회원들은 매일 조금씩 자라는 식물을 돌보며 생명의 경이로움과 꾸준하고 성실한 자세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고 덧붙였다.
“기특하다고 할까요. 날씨가 맑든, 흐리든 강한 생명력으로 자기 할 일을 꾸준히 하니까요. 이 작은 식물들도 꾸준히 자기 일을 하는데 나도 맡은 역할에 충실해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깁니다. 이렇게 옥상에서 텃밭을 둘러보면 잘 알지 못하는 동료인데도 친근한 느낌이 들어요. 식물마다 키우는 동료의 이름이 쓰여 있으니까 키우는 스타일로 말미암아 이 분은 어떤 분이겠구나 짐작할 수도 있고, 또 나중에 보면 정말 예상대로 비슷하기도 하고요.”
김현정 참여관의 말처럼 동호회 활동은 단순히 작물을 기른다는 것 자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함께 텃밭을 가꾸면서 재판부 구성원들과 소통하는 SNS에 관찰 일기를 올리며 소식을 나누기도 하고, 적은 양일지라도 수확하는 작물들을 동료와 나눠 먹으며 공유하기도 한다. 직접 가꾸고, 함께 소통하고, 힐링하는 지속적인 동호회 활동을 지향하는 ‘그루터기 정원텃밭’ 동호회의 네 가지 활동 방향이 그대로 맞아떨어지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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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텃밭 공간이 함께하는 잔잔한 풍경
출근하기 전 오분, 점심시간에 잠깐 그리고 퇴근하면서 둘러보는 정도지만, 옥상 텃밭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회원들의 마음에 안정을 준다. 온종일 책상에 앉아 컴퓨터만 보던 시야를 트여주는 한편, 여러 민원인을 응대하며 지친 마음을 위로해주기도 한다.
“해와 바람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누구라도 함께할 수 있습니다”라고 소개하는 성기석 판사에 이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설렘과 기대, 기쁨을 느끼고 싶다면 대환영입니다”라는 안순희 실무관까지 그루터기 정원텃밭 동호회는 힐링이 필요한 직원에게 언제든 활짝 열려있다고 말한다. 앞으로 규모가 더 확대된다면 봉사동호회인 ‘사랑나눔회’와 연합해 직접 기른 농작물을 어려운 이웃과 나누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텃밭의 작물뿐만 아니라 반려식물, 반려동물 등으로 자연과 함께하는 동호회로 발전해 직장생활에 활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김정필 참여관이 말하자 김현정 참여관도 “자연과의 교류를 통해 구성원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더 나아가 다른 직원들에게도 따뜻함을 전해줄 수 있는 순환의 출발점이 됐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바람을 전했다.
답답하게 막혀있는 도심 속 고층 건물 사이에 자리한 ‘그루터기 정원텃밭’에서라면 따뜻한 햇볕 아래 흙을 직접 일구며 싱그러운 푸른 잎의 성장을 마주할 수 있다. 자그마한 힘으로 씩씩하게 일어나는 생명력으로 하여금 잠시나마 지친 일상을 위로받길. 자연이 주는 초록의 힘은 생각보다 아주 강력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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