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산책休] 끝과 시작의 기억이 쌓인 최남단 도시 해남

테마법원

2020.10.07

끝과 시작의 기억이 쌓인 최남단 도시
해남

끝과 시작은 맞닿아 있다고 한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남단 ‘땅끝마을’이 위치한 해남은 많은 이들이 새로운 각오를 다지러 찾아오는 곳이다. 자못 진지하게 해남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속에 숨겨 둔 간절함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민다.

글. 양가희 + 사진. 이정도

모노레일 타고 서 본 ‘땅끝’에서 가슴 탁 트이는 풍경을 만나다
근심걱정으로 마음이 답답하거나 일상생활에 변화가 필요할 때 사람들은 바다를 찾곤 한다. 탁 트인 시야 사이로 파도가 바위에 부서지는 소리를 듣노라면 가슴을 꽉 막고 있는 돌덩이마저 파도에 휩쓸려 가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몰려온다. 그래서 바다는 어느 누구에게나 ‘환기’의 장소가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 최남단, 해남의 땅끝마을은 잔잔한 파도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용기와 위로 또는 설렘을 건넨다. 끝이자 시작이라는 단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해남의 ‘땅끝’을 실감하는 방법은 갈두산 정상에 위치한 땅끝전망대에 올라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다. 갈두산은 비교적 낮은 산에 속해 땅끝전망대까지 도보로 약 30분 정도 소요된다. 그렇지만 경사가 가팔라 걷기 부담스럽다면 ‘땅끝모노레일’을 이용해도 좋다. 모노레일에서 관찰한 땅끝마을의 전경은 땅끝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것과 또 다르니, 짧은 시간 동안 알차게 풍경을 눈에 담아야 한다. 모노레일을 타면서 남은 아쉬움은 땅끝전망대에 오르고 난 후 금세 사라지니 걱정 없다. 현재는 코로나19로 땅끝전망대가 휴관 중이라 갈두산 정상에서 전망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더 먼 바다까지 내다볼 수 있는 땅끝전망대의 매력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진정한 땅끝을 가고 싶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곳, 바로 땅끝탑과 땅끝점이다. 땅끝전망대에서 해안산책로를 따라 내려가면 나타나는 땅끝탑에는 ‘이곳은 우리나라 맨끝의 땅’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땅끝마을의 의미가 온전히 전해진다.

땅끝전망대 명량대첩해전사기념관

진도대교 앞에서 명량대첩의 기억과 흔적을 더듬다
해남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상징은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이다. 정유재란 당시인 1597년 9월, 이순신 장군이 진도와 해남 사이의 명량해협(울돌목)에서 13척의 배로 일본군함 133척을 전멸시킨 이야기는 너무나 잘 알려진 역사다. 해남의 ‘우수영관광지’는 명량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옛 성지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한 곳이다. 이순신 장군을 기억하고 기리기 위한 터답게 우수영관광지에는 ‘명량대첩해전사기념전시관’이 자리한다. 이곳에서는 거북선과 이순신 장군, 명량대첩에 대한 기록뿐만 아니라 거북선 단면 조형물, 노젓기 체험시설, 4D 영상관 등을 통해 해남과 이순신 장군의 의의를 전달하고 있다. 명량대첩해전사기념전시관에 다녀오면 우수영관광지의 ‘명량대첩탑’이나 명량대첩의 현장인 울돌목과 진도대교 앞의 ‘고뇌하는 성웅 이순신상’이 좀 더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역사를 더 깊이 알고 나면 그때 그 당시 사람들의 희생정신과 갈망, 고민이 더욱 와닿기 때문이다.
명량대첩탑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영령을 기리기 위해 세운 탑으로, 높이 17m, 넓이 19.12m의 크기다. 탑의 중심이자 아래에는 이순신 장군을 중심으로 힘을 합쳐 싸우는 관병과 의병의 모습이 조각돼 있다. 명량대첩탑을 통해 든든한 수군의 기상을 엿보았다면, 고뇌하는 성웅 이순신상을 통해서는 장군으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을 오롯이 실감할 수 있다. 바다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순신상을 조용히 바라보면 그 이름처럼 정말로 이순신 장군의 고뇌가 느껴지는 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순신상 옆에서 바라본 울돌목과 진도대교가 마냥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었다.

고산윤선도유적지 이순신상

600년 나무가 전해 주는 문학과 예술의 정취 그리고 삶의 여유
해남의 오랜 역사가 깃든 장소는 우수영관광지에 그치지 않는다. ‘녹우당’이라고 불리는 고산윤선도유적지는 전라남도에 남아 있는 민가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녹우당은 원래 수원에 있던 것을 옮긴 것이라고 한다. 조선 제17대 왕인 효종이 고산 윤선도를 위해 수원에 집을 지어 주었는데, 효종이 사망하자 고산 윤선도가 집의 일부를 해남으로 옮겨 온 것이다.
고산 윤선도는 조선 시대의 문신이자 시조 작가로, 조선 3대 가인으로 불리고 있다. 그는 주로 자연과 화합을 주제로 시조를 지었는데, 대표적인 작품은 <어부사시사>와 <오우가>, <고산별곡> 등이다. 녹우당은 그의 삶과 꼭 빼닮아 보였다. 녹우당은 집 뒤의 비자나무 숲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비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이름의 뜻을 알고 나니 고산윤선도유적지의 푸름이 더욱 싱그럽다. 오랜 비가 그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인지 푸른 잎사귀마다 물기가 가득한 것은 물론이다.
녹우당 뒤편에 있는, 600년이나 된 비자나무와 은행나무는 나이를 잊고 푸릇푸릇함을 내뿜는다. 아마 고산 윤선도가 이 나무를 감상하면서 봄과 여름날에는 생기와 에너지를 노래하고, 가을, 겨울에는 저무는 삶과 여유를 깨닫지 않았나 싶다.
시간이 허락해 준다면 녹우당에 전시된 고산 윤선도의 작품과 그의 종손인 공재 윤두서의 그림을 찬찬히 눈에 담아 보는 걸 추천한다. 자연과 문학, 예술에 대한 애정과 정취가 담뿍 담긴 그들의 작품은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대흥사

차 문화의 성지 ‘대흥사’에서 얻은 좋은 끝맺음과 새로운 시작
녹우당의 고즈넉한 분위기에 취한 사람들은 두륜산 중턱에 위치한 ‘대흥사’로 발길을 돌려도 좋다. 대흥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천년고찰로, 해남의 명산 중 으뜸이라 불리는 두륜산과 한옥의 부드러운 곡선이 만나 절경을 이룬다. 대흥사는 그 세월이 오래된 만큼 여러 고승이 중건을 반복해 유지해 왔다. 그러다 임진왜란의 승병장이었던 서산대사 이후 규모가 더욱 확장됐다고 한다.
대흥사는 우리나라 차 문화의 성지로 알려져 있다. 대흥사가 우리나라 차 문화의 시작점이 된 데에는 ‘초의선사’라는 대선사의 역할이 컸다. 초의선사는 우리나라의 다도를 정립하고 차 문화 보급에 앞장선 스님으로, 대흥사에서 40여 년을 지낸 인물이다. 초의선사는 대흥사에서 산길을 올라가면 나오는 ‘일지암’에서 다산 정약용이나 추사 김정희 같은 석학들과 차를 마시며 교우했다고 한다. 차와 선이 한 가지라는 ‘다선일미(茶?一味)’ 사상을 바탕으로 다도의 이론을 정리한 것은 물론, 차를 직접 만들어 다시금 차 문화를 부흥시켰다고.
이런 이야기를 알고 나니 두륜산이 두 팔 벌려 안은 대흥사에서 따뜻한 차 한 모금을 여유롭게 마시며 해남 여행의 끝맺음을 완성해도 좋을 듯싶다.
해남의 역사와 풍경, 분위기를 좀 더 알고 간다면 끝과 시작이라는 의미에 더해 더 많은 것을 얻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잘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얻고 싶은 간절함이 해남의 풍경과 만나 긴장을 녹여 준다. 마음의 결을 정돈하는 데 이만한 여행이 또 어디 있겠는가.

해남지원 직원들이 추천하는 해남에 오면 놓치지 말아야 할 명소

해창주조장 도솔암 운림산방

사진 출처: 해남군청, 진도군청, 해창주조장

역사가 담긴 깊은 막걸리 ‘해창주조장’
이곳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인 192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지금의 주인장은 13년 전, 3번째 주인에게 기술을 전수 받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은근하면서도 투박한 맛의 막걸리가 일품이며, 40여 종의 수목이 빽빽하게 들어찬 일본식 정원이 아름다운 곳입니다. 일본식 고택과 일제강점기 수탈의 흔적인 곡물창고는 아픈 상처지만, 근대문화유산으로 보존될 정도로 단순한 주조장을 넘어 근대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문화공간입니다. - 강승호 행정관

숨겨진 보물 같은 경치 ‘도솔암’
호남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달마산에 위치한 도솔암은 통일신라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미황사의 암자입니다. 기암괴석이 이어진 바위병풍의 꼭대기에 위치한 데다 땅 끝 일대와 다도해가 한눈에 내려다 보여 아름다운 경관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추노>, <각시탈> 등 인기 드라마 촬영지이기도 한데,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숨겨진 보물 같은 곳입니다. - 김대영 사무관

빼어난 글과 그림의 뿌리 ‘운림산방(雲林山房)’
진도에 가면 세 가지를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글씨와 그림, 노래가 그것입니다. 이 중 글씨와 그림은 운림산방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운림산방은 조선 말기 남화(南?)의 대가인 소치(小癡) 허련(許鍊)이 귀향하여 건립한 곳입니다. 첨찰산 아래에 자리하여 안개가 구름숲처럼 피어오르며 연못과 정원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 김광수 참여관

전한 명량해전의 격전지 ‘명량(明亮)’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왜선 133척을 13척으로 격퇴하여 승전한 곳으로 유명한 해남군 화원반도와 진도 사이의 해협입니다. 지명의 유래는 물살이 빠르고 소리가 요란하여 바닷목이 우는 것 같다고 하여 ‘울돌목’이라 한 데서 유래하였습니다. 울돌목 해상에서 뜰채를 이용하여 숭어잡이를 하는 모습도 볼 수 있고, 근처에는 명량 해협을 잇는 진도대교와 진도타워가 있어서 한 번 둘러볼 만합니다. - 장세은 실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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