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긋는 여행]개항장 거리부터 동화마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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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는 여행]개항장 거리부터 동화마을까지_반나절 인천 여행

2019.06.04

인천에는 다양한 시간과 공간이 존재한다. 어떤 곳에서는 일본 근대 건축물과 마주치고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면 번화한 중국 시장을 연상시키는 풍경들이 펼쳐진다. 또 한 마을에서는 여러 동화 속 주인공들을 만날 수 있어 마치 동화책 속으로 시간여행을 온 것 같다.

개항기 역사가 살아있는 거리 박물관

외세에 의해 1883년 제물포항(지금의 인천항)이 열렸다. 제물포항을 통해 일본인, 중국인은 물론 서양인들이 차례로 우리나라 땅을 밟았고, 외국 문물도 함께 쏟아져 들어왔다. 외국인들은 지금의 자유공원이 있는 응봉산 주변에 터를 잡고 그들 나라 양식의 건축물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인천 중구청 일대 개항장 역사문화의 거리는 개항기 당시의 건축물이 많이 남아있는 공간이다. 특히 이곳은 과거 일본인 조계지로, 지금도 일본의 근대 건축물이 많아 ‘일본풍 거리’로 불리고 있다. 조계지는 일정한 지역 범위 안의 외국인 전용 거주지역을 말하는데, 당시 인천에는 일본 조계지, 청국(중국) 조계지, 서구 열강의 공동 조계지가 만들어졌다.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의 모습. 일본풍 거리에는 다양한 근대 석조건축물도 만날 수 있다.

일본풍 거리를 걷다 보면 일본 목조 주택에 한글 간판을 단 음식점과 사진관, 카페, 개인 작업실 등이 어우러진 모습에 이색적인 느낌을 받게 된다. 이 거리에서는 목조주택 외에 근대식 석조건축물도 여럿 만날 수 있는데, 현재 인천개항박물관과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이 건물들은 각각 과거 일본 제1은행 인천지점과 일본 제18은행 인천지점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역사문화의 거리에서는 일제강점기에 창고로 지어진 건물을 리모델링한 한국근대문학관과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대불호텔을 재현한 모습도 만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창고로 지어진 건물을 리모델링한 한국근대문학관.

인천아트플랫폼 내 공간. 이곳에서 드라마 〈도깨비〉 등을 촬영했다.

일본풍 거리 바로 뒤편에 눈에 띄는 장소가 있다. 인천아트플랫폼이다. 창작스튜디오, 전시장, 공연장, 생활문화센터 등을 운영하는 인천아트플랫폼은 구도심 재생사업의 일환으로 근대 개항기 건축물을 리모델링해 조성한 문화예술 창작공간이다. 이곳은 지역 예술가와 작가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함과 동시에 지역 주민과 예술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전시와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13개 건물로 구성된 인천아트플랫폼은 특히 도시의 역사성과 공간 특성을 문화적으로 활용하자는 시민들과 인천시의 의지가 모여 탄생한 공간이라 의미가 더 깊다. 지난해에는 인천과 관련된 다양한 출판물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인 ‘인천서점’도 문을 열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곳은 영화 <뷰티 인사이드>와 tvN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더 유명해졌다.

외국인 사교장 ‘제물포구락부’, 최초의 서구식 공원 ‘자유공원’

역사문화의 거리에서 뒤편으로 제물포구락부와 자유공원을 만날 수 있다. 제물포구락부는 개항장 조계지에 거주하던 미국, 독일, 러시아, 일본 등의 국적을 가진 외국인들이 친목을 도모하고 서로의 문화를 나눴던 사교장이었다. 건물 옆 잔디밭에는 조계의 경계를 나타내던 조계석이 세워져 있다. 제물포구락부는 1901년 사교장으로 문을 연 뒤 역사적 배경에 따라 용도가 달라졌다. 외국인 사교장이던 이곳은 1914년 이후에는 일본이 재향군인회관으로, 광복 후에는 미군 장교클럽으로 운영돼 왔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박물관으로 활용되었다가 1990년 박물관이 이전한 뒤로 전시·문화행사장으로 줄곧 활용돼 왔다.

제물포구락부를 따라 계단을 오르다 보면 금세 사방이 확 트인 공간을 만나게 되는데, 이곳이 바로 자유공원이다. 자유공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으로 인천 시가지와 앞바다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공간이기도 하다. 지난 1888년 11월에 조성된 이곳은 처음에는 ‘만국공원’으로 불리다가 1957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자유공원은 맥아더 장군 동상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널리 알려졌듯 맥아더 장군은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인물이다. 인천 앞바다를 지그시 바라보는 듯한 맥아더 장군의 모습이 여전히 인상적이다. 자유공원은 벚꽃으로도 유명해 봄이면 꽃놀이를 하려는 가족 단위나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

월병 먹고, 동화 속 주인공으로 변신

자유공원 정상부에서 인천역 방향으로 10분 정도 걸어 내려가면 인천 차이나타운에 다다를 수 있다. 인천역과 마주 보고 있는 인천 차이나타운은 우리나라 최초의 외국인 마을이자 국내 차이나타운 중에서도 인기가 유독 많은 곳이다. 중국을 떠올리게 하는 붉은 건축물들과 홍등, 그리고 짜장면, 공갈빵, 월병 등 중국식 먹거리를 즐길 수 있어 가족 단위나 연인들에게 인기가 많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처음 짜장면을 팔았다는 공화춘도 이곳에서 1905년 문을 열었다. 공화춘이 있던 자리는 현재 짜장면의 역사를 소개하는 짜장면박물관으로 바뀌었다. 인천 차이나타운의 역사는 1882년 임오군란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청나라의 군인과 함께 우리나라로 건너온 군역상인들은 청나라 군대에 물자를 공급하면서 우리 상인과 무역을 했다. 1884년 4월 ‘인천화상조계장정(仁川華商租界章程)’이 체결되면서 지금의 인천시 선린동 일대 1만 6,500㎡에 중국 조계지가 세워졌고, 이후 중국의 건축물을 본뜬 건축물들이 세워지면서 차이나타운이 형성됐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며 잠시 주춤했던 이곳은 1992년 한·중수교가 체결되면서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인천 차이나타운은 중국의 전통 음식을 파는 음식점이 많아 주말이면 많은 관광객이 찾는 인천의 대표 관광지이다.

송월동 동화마을. 마을 곳곳을 동화 속 캐릭터들로 꾸며 관광객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트릭아트 스토리’ 전경.

차이나타운에서 5분 정도 걸으면 송월동 동화마을이 나온다. 송월동 동화마을은 한눈에도 편의시설이나 볼거리가 많아 관광객에게 인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화마을’이라는 이름처럼 세계 명작 동화를 테마로 조성해 마을 구석구석에 도로시길, 빨간모자길, 바다나라길 등 11개의 테마 길을 마련하고 곳곳에 동화 속 이야기를 재구성한 벽화와 트릭아트를 설치했다. 특히 동화마을길 중간쯤에 자리한 ‘트릭아트 스토리’는 이곳 동화마을의 또 다른 명소로 꼽힌다. 인천중구시설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 이곳에는 39가지 트릭아트 외에도 거울미로, 블랙아트 등 흥미로운 체험거리로 가득하다. 원래 이 마을은 사람들이 떠나면서 낡은 건물과 주로 노인들만 남은 허름한 마을이었으나 인천 중구청이 2013년에 주거환경 개선사업을 벌여 ‘관광마을’로 탈바꿈했다.

‘최초’를 간직한 답동성당과 내리교회

인천에는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종교 건축물도 있다. 인천 중구에 위치한 답동성당은 개항기에 건립돼 국내 성당 가운데 가장 오래된 서양식 근대 건축물이다. 1897년 건립돼 1937년 증축되었으며 인천을 대표하는 근대 건축물이자 서울의 명동성당과 함께 민주화의 성지(聖地)로도 꼽힌다. 실제로 1990년대 중반까지도 수많은 노동자가 이 성당에 들어와 공권력에 대항하며 천막농성을 벌였다고 한다.

답동성당의 모습.

답동성당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우리나라 최초의 감리교회인 내리교회가 나온다. 한국의 첫 개신교 교회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곳은 신자들 사이에서 ‘한국의 어머니교회’로 불린다. 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젠러가 1891년 11월 내리교회 예배당을 건립했다. 내리교회는 다양한 ‘최초’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1894년에는 국내 최초의 여성전용 예배당을 건축했고, 1897년에는 최초의 기독청년회를 조직했다. 또 1899년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교를 설립해 한국인 최초의 목사인 김기범 목사를 배출했다. 내리교회는 또 1907년 우리나라 교회 최초로 예배당에 남녀 칸막이를 없애기도 했다.

인천은 지리 여건과 국내 역사적 배경 속에서 다양한 외국 근대문물을 흡수하며 성장했다. 이번 주말, 민족의 아픔이기도 했던 시간들을 녹여내 문화로 발전시킨 인천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글. 이원덕 _ 사진. 김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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