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긋는 여행]안동의 봄을 걷다_과거와 현재를 잇는 시간여행

테마법원

2019.04.03

안동을 여행할 때면 늘 마음이 급하다. 쓸 수 있는 시간에 비해 가보고 싶고, 먹어봐야 할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안동에는 우리나라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이 필름처럼 기록돼 있고, 안동 지역 전통 먹거리 역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2009년부터는 벽화마을로 유명해진 동네가 있다고 해서 이곳 역시 안 들를 수가 없다.

한국의 美를 비추는 거울

‘안동’하면 누구나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곳이 있다. 하회마을이다. 낙동강이 ‘S’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른다고 해서 하회(河回)마을이라 이름 지어진 곳.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자리한 이 마을은 풍산 류씨의 동성촌으로, 우리 선조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와가(기와집)와 초가가 잘 보존돼 문화·역사적 가치가 큰 곳이다. 조선 명재상으로 꼽히는 서애 류성룡 선생도 여기서 태어났다. 특히 부용대에서 하회마을을 내려다 보노라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간 듯한 착각에 빠진다.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이름을 올린 하회마을은 외국 관광객은 물론 국내 관광객도 즐겨 찾는다. 안동하회마을 관리사무소에 따르면 하회마을을 찾은 관광객은 지난해까지 5년 연속 100만 명을 돌파했다.

하회마을은 선조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 문화관광지이다

안동에 왔다면 도산서원도 가보는 것이 좋다. 도산서원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대유학자 퇴계 이황 선생의 삶과 사상이 함축된 공간이다. 서원은 크게 이황 선생이 생전에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며 제자들을 가르친 ‘도산서당’ 영역과 사후에 제자들이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지은 ‘도산서원’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특히 퇴계가 직접 설계한 도산서당은 소박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이 진하게 묻어나는 공간이다. 영남 유학의 중심지였던 이곳은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속에서도 존속했으며, 현재 서원에는 약 400종 4,000여 권이 넘는 장서와 장판, 이황 선생의 유품이 남아 있다.

남편에 대한 원이 엄마의 사랑을 담은 월영교는 국내에서 가장 긴 목조다리이다

안동 월영교는 조선시대의 사랑을 노래한다. 400여 년 전, 요절한 남편을 기리기 위해 그의 아내 ‘원이 엄마’가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미투리 한 켤레를 지었다. 안동시는 2003년 이 부부의 숭고한 사랑을 오래도록 기념하기 위해 원이 엄마의 미투리를 형상화한 월영교를 만들었다. 월영교는 국내 최장의 목조다리로, 다리 길이가 387m에 이르는데, 일교차가 심한 날이면 강 위로 안개가 내려앉아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독립운동의 산실, 임청각을 아시오?

일제 강점기에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지역이 안동이다. 만지 이상동 선생은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을 듣고, 3월 13일 안동장터에서 태극기를 그린 종이 방패연을 흔들며 1인 만세운동을 펼치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이 사건은 안동지역의 대규모 만세운동을 확산시킨 불씨가 되었다. 실제로 3월 27일까지 총 14차례에 걸쳐 1만 명 이상이 참가하는 대규모 만세운동이 펼쳐졌다. ‘안동시민문화의 거리’는 당시 안동장터 자리로,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거리 중심부에는 태극기 우산과 태극기 바람개비, 태극기 꽃 등으로 꾸민 대형 태극기벽을 설치해 그날의 역사를 기념했다.

안동시민문화의 거리에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태극기로 꾸민 벽을 세웠다

임청각은 우리나라 독립운동 역사의 산실로 평가 받는다. 임청각은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로, 고성 이씨 석주 가문은 3대 동안 이상룡 선생을 비롯한 동생 이상동, 이봉희, 아들 이준형, 조카 이형국, 이운형, 이광민, 손자 이병화, 당숙 이승화까지 모두 9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했다. 앞서 소개한 1인 만세운동의 주인공 만지 이상동 선생이 바로 이상룡 선생의 동생이다. 이상룡 선생은 나라가 일본에 빼앗기자 임청각과 전답을 모두 팔고 가족과 함께 만주로 망명해 이회영 선생과 함께 신흥무관학교의 전신인 신흥학교를 건립하고 항일독립운동단체 경학사를 만드는 등 우리나라 독립에 모든 힘을 쏟았다. 이상룡 선생은 “나라를 찾기 전에는 내 유골을 고국으로 가져가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1932년 만주에서 생을 마감했다.

일본은 항일정신을 말살하고자 1940년 임청각을 관통하는 철길을 놓아 임청각의 99채 건물 중 행랑채와 부속건물을 훼손시켰다. 현재까지도 임청각은 50여 칸밖에 남아 있지 않은데, 정부와 안동시는 올해부터 2025년까지 280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임청각을 복원·정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세동에서 생긴 일

임청각 뒤편으로 오르면 마을미술프로젝트를 통해 새롭게 변신한 신세동 벽화마을 만날 수 있다.

신세동 벽화마을은 벽과 골목마다 다양한 벽화와 소품으로 꾸며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 전까지 신세동은 안동지역 원도심에서 가장 낙후한 달동네였다. 마을 주민들은 평균 연령 75세로, 기초생활 수급과 노령연금으로 생활하던 사람이 태반이었다. 마을은 2009년 마을미술프로젝트를 통해 벽화마을로 탈바꿈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관광명소로 변신했다. 관광객은 마을 벽마다 그려진 아기자기한 벽화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다양한 소품으로 꾸며진 골목을 감상했다. 관광객이 늘자, 주민들은 스스로 생활 여건을 개선하고 소득을 창출하기 시작했다. 신세동 벽화마을 주민협의체인 그림애문화마을협의회는 마을 장터를 열어 마을 주민들이 직접 만든 수공예품과 직접 재배한 농산물 및 음식 등을 판매했다. ‘할매네 점빵’도 열었다. 할매네 점빵은 마을 할머니들이 수공예품, 가죽공예, 생활 소품, 마을 기념품, 간단한 먹거리 등을 판매하는 작은 마을 상점이다. 여기서 발생한 수익금은 마을 복지에도 사용되고 있다. 벽화로 시작된 작은 변화가 마을의 풍경을 바꾸고, 마을 주민들의 삶까지 변화시킨 것이다.

헛제삿밥에 안동식혜 한 그릇

안동에 갔다면 헛제삿밥을 먹어보자. 헛제삿밥은 경상도 안동, 대구, 진주에만 있는 음식으로, 말 그대로 가짜 제삿밥이다. 헛제삿밥의 유래에는 여러 설이 있다. 춘궁기에 드러내 놓고 쌀밥을 먹기가 미안한 양반들이 가짜로 제사를 지낸 후 제사 음식을 먹은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제사를 지낼 수 없는 천민들이 한이 맺혀 제사도 지내지 않고 제삿밥을 만들어 먹은 데서 유래했다는 설, 서원에서 공부하던 유생들이 밤 늦게까지 공부를 하다가 출출해지면 허기를 달래기 위해 제사를 지낸 뒤 제사음식을 나눠먹던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안동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인 헛제삿밥

헛제삿밥을 맛볼 수 있다는 한 식당에 들러 음식을 주문하자 놋그릇에 6가지 나물과 탕국, 다시마전, 호박전, 동태전, 구운 북어 등이 어우러져 나왔다. 나물은 밥과 함께 숙성 간장에 비벼 먹는다. 고추장을 넣어 먹는 일반 비빔밥과 달리 슴슴하고 자극적이지 않다. 한번쯤 경험해봐도 좋을 맛이다.

안동식혜 역시 안동문화권에서만 전해지는 음식이다. 고춧가루를 넣어 붉은빛을 띠어 보기에도 일반 식혜와 다르다. 안동식혜는 과거 상류층 사람들이 먹던 고급 음식이었다고 한다. 1930~1940년대까지만 해도 고춧가루 등 안동식혜 재료를 구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만드는 법도 일반 식혜와 차이가 있다. 일반 식혜는 엿기름 물에 고두밥을 넣고 끓여서 만들지만 안동식혜는 상온에서 5~6시간 가량 삭혀 만든다. 안동식혜는 상온에 오래 둘 경우 상하지 않고 발효되면서 식초가 되는데, 그런 점에서 안동식혜는 우리 전통의 유산균 음료라 할 수 있다.

안동식혜는 일반 식혜와 달리 붉은 빛을 띠고 맛 역시 독특하다

이 밖에도 안동찜닭, 안동 간고등어, 안동소주 등 우리가 평소 즐겨 먹는 음식 중에는 ‘안동’이 들어가는 음식이 여럿 있다. 특히 삶은 닭에 간장 소스와 채소를 버무려 졸이는 안동찜닭은 안동구시장에 안동찜닭골목이 조성될 만큼 안동의 대표 먹거리로 성장했다. 1980년대 안동시장 상인들이 조각 낸 닭에 당면과 감자, 당근, 마늘, 붉은 고추 등을 넣어 개발한 찜닭은 1990년대 안동 대학가에서 인기를 끌면서 전국에 알려졌다. 안동에 갔다면 ‘버버리찰떡’도 먹어보자. 버버리찰떡은 떡 안에 고물을 넣는 일반 떡과 달리 고물을 찰떡 겉면에 묻혀 만드는데, 독특한 모양과 식감 덕에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전국 3대 빵집으로 알려진 맘모스베이커리의 크림치즈빵도 안동의 명물로 자리잡았다.

안동은 지루할 틈이 없는 도시이다. 들여다볼수록 깊은 우물이고, 걸을수록 넓어지는 땅처럼 사람의 눈과 발을 붙잡는다. 잘 차려진 밥상 같은 안동. 이곳을 떠날 때면 항상 몸과 마음이 든든하다.

글. 최덕철 _ 사진. 김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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