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긋는 여행]청춘발산마을_마을 어르신과 청년들의 청춘 하모니

테마법원

2019.03.06

차를 타고 광주광역시 서구 양동에 다다르면 아기자기한 색들로 채워진 특별한 마을을 만날 수 있다.
마치 색종이로 만든 마을처럼 다양한 색상으로 물든 집들이 모인 이곳은 발산마을이다. 2015년 도시재생사업을 거치면서 지금은 ‘청춘발산마을’로 더 유명한 곳. 마을 입구에 차를 세우고 그 공간 속으로 들어가 본다.

보금자리에서 달동네까지

발산마을은 1950년대에 광주천변에 사람들이 움막을 짓고 살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마을 사람들은 무등산에서 나무를 베거나 광주천의 자갈을 캐면서 생계를 이었다. 일을 마친 저녁 즈음이면 주민들은 광주천에 모여 하루의 피곤을 씻어냈다.

발산마을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 건 1970년대에 마을 인근에 방직공장이 생기면서다. 공장에서 일자리를 구하러 전국에서 여공들이 몰려들었다. 자연스레 발산마을은 여공들의 둥지가 되었다. 마을 주민들은 하숙을 치며 돈을 벌었고, 식당과 세탁소 등 다양한 상점들도 생겨나면서 조용하던 마을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출근시간이면 여공들의 웃음소리가 골목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퇴근시간에는 어김없이 집집마다 밥 짓는 냄새가 구수하게 올라왔다.

발산마을의 행복한 시절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1990년대에 방직공장이 쇠퇴하면서 여공들이 하나 둘 짐을 쌌다. 그 뒤로 마을의 ‘봄’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마을 주변으로 유스퀘어 광주 터미널, 광주역, 광주 기아 챔피언스 필드, 양동시장 등이 자리해 지리적으로 이점이 많은 공간이었음에도, 발산마을에는 오래도록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다. 사람들이 떠난 집은 헐리거나 흉물스럽게 남았고, 마을을 지킨 주민들의 주름살도 늘어갔다. 발산마을은 ‘달동네’가 되었다.

마을 입구에 마을지도를 설치해 관광객은 쉽게 여행 코스를 정할 수 있다

마을 채색 작업을 통해 골목 곳곳이 아기자기한 색으로 꾸며져 있다

청춘발산마을의 마을 텍스트 작업물

발산마을의 매력 발산, 청춘발산마을

발산마을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된 건 2015년의 일이다. 광주시, 광주 서구청, 현대자동차그룹, 사회적 기업 ‘공공미술프리즘’,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이 합심해 민관협력 재생사업을 전개했다. 다양한 디자인 작업과 청년들의 입주, 주민 생활 개선 프로그램을 통해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고 주민들의 일상에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 나가자는 데 뜻을 모았다.

도시재생사업 당시 심혈을 기울인 부분 중 하나는 마을 채색 작업이었다. ‘컬러 아트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채색 사업은 단순히 마을의 미적인 기능만을 추구한 데 그치지 않았다. 마을 고유의 이야기와 컬러를 담을 수 있도록 마을 내 모든 집들의 지붕, 창문, 화분, 난간 등의 컬러들을 조사한 다음, 이 색들을 마을 곳곳에 재배치해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게 했다. 디자인 패턴에도 신경을 썼는데, 마을의 창문과 타일, 대문 등에 적용된 기존 디자인 패턴을 재가공해 마을 곳곳에 다시 입혔다.

마을 곳곳을 수놓은 ‘마을 텍스트’도 이곳의 또 다른 볼거리다. ‘거센 바람 부는 날, 들풀처럼 몸을 낮춰봐’, ‘우린 답을 찾을 거야 늘 그랬듯이’, ‘폭풍 같은 날들로 희망이 안 보일지라도’ 같은 글귀는 마을 주민들과 지역사회 청년, 그리고 외부 공모를 통해 ‘청춘들에게 전하는 위로의 메시지’라는 주제로 작업됐다.

이렇게 작업한 마을의 컬러와 패턴, 마을 텍스트는 SNS 등을 통해 널리 퍼져 지금도 마을을 알리는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마을과 함께 성장하는 청년들의 꿈

2017년에는 예술공방, 식당, 카페 등을 운영하는 청년팀들이 입주하면서 마을이 더 풍성해졌다.

‘뽕뽕브릿지’는 예술가들이 다양한 작품을 만들고 전시할 수 있는 공공 미술 실험 공간이다. 가구 보관 창고로 쓰였다가 버려진 공간을 미술작가인 신호윤 대표가 개조해 만들었다.

‘표류’는 미술 작업실 겸 카페로, 미술을 전공한 오지인 대표가 40년이 넘은 가정집을 개조해 만들었다. 이곳에서 미술 작가들이 모여 작업하는 과정을 공유하기도 하고,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원데이 클래스를 진행한다. 오지인 대표는 “광주에는 다양한 문화와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은데, 학교나 학원에서 시도할 수 없는 다양한 예술활동을 여러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어 표류를 열게 됐다”라고 말했다.

또 오방협동조합은 각자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5명의 예술가가 전통공예를 기반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 예술인 집단이다. 개인 작품활동은 물론 전통공예를 체험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클래스도 열고 있다.

젊은 층이 좋아할 만한 음식점도 눈길을 끈다.

천연발효종으로 만든 다양한 빵과 와플을 비롯해 커피와 음료 등을 파는 베이커리 카페 ‘플롱’, 단맛과 쓴맛, 매운맛이 나는 삼채 뿌리로 만든 음식을 파는 ‘다경이의 식탁’, 일반적인 마카롱부터 다양한 꽃 모양을 모티브로 모양을 낸 마카롱 가게 ‘앤카롱’ 등이 대표적이다.

청춘발산마을은 청년팀들이 운영하는 상점들과 협업해 마을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웃캠프’는 청춘발산마을을 1박 2일 동안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참가자들은 이틀간 마을에 머물며 다양한 청년팀이 운영하는 원데이 클래스를 체험하고, 골목 미션 투어, 마을 주민들과 함께하는 식사 등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다.

108계단은 마을 주민들이 소통하는 교류의 장이자 관광객들이 사진 촬영 명소로 꼽힌다

마을 전망대와 함께 마련된 예술공원 '별이 뜨는 발산 전망대'에는 다양한 예술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무르익는 풍경

청춘발산마을에는 ‘108계단’이라 불리는 긴 계단이 있다. 과거에는 아랫마을과 윗마을을 연결하는 역할만 하는 계단이었지만, 지금은 계단마다 다양한 컬러를 칠하고 군데군데 청춘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담아 마을 주민과 관광객 모두 오르는 재미가 있는 공간이 됐다. 방문객들이 사진을 가장 많이 찍는 곳 중 하나도 바로 여기다. 계단과 연결되는 공터를 마을 문화행사를 개최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 행사가 있는 날이면 이곳은 목 좋은 관객석이 되기도 한다.

저녁시간 즈음 108계단을 따라 마을 정상까지 올라본다. 다양한 예술 조형물이 설치된 예술공원 '별이 뜨는 발산 전망대'와 함께 자리한 마을 전망대에 올라서자 탁 트인 시야에 가슴까지 시원해진다. 그리고 그 아래 집집마다 하나 둘 불빛이 켜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온기로 마을이 다시 데워지고 있는 것이다.

청춘발산마을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선 청년들은 이 마을이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공간이라고 입을 모은다. 도심 속 시골마을 같은 정서를 지닌 곳이 바로 이곳이라는 것. 청춘발산마을의 문화행사를 기획하고 담당하는 청년팀 ‘프랜리’의 송명은 대표는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마을 어르신들과 마주치게 되는데 친손녀처럼 안부도 물어봐 주고, 밥은 먹었느냐며 웃으며 인사해준다. 마치 외할머니를 만나는 것 같다”라고 마을의 분위기를 설명했다. 또 송명은 대표는 마을 어르신들이 폐지나 병을 주워 판 돈을 모아 마을 어린이들에게 장학금으로 전달하기도 해 주민 모두가 하나의 공동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오방협동조합 최은영 대표는 청춘발산마을이 정서적으로 안정을 주는 마을이라고 말했다. “마을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을 쉽게 만날 수 있어 정서적으로 안정감이 든다. 이러한 안정감은 공예작업을 할 때도 큰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청춘발산마을을 떠나며 한동안 잊고 있던 ‘사람 사는 냄새’에 대해 생각해봤다. 옛 것이라고 모두 좋을 리 없고, 현대적인 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각박하다 할 수 없겠지만, 사람 사는 냄새라고 하면 자연스레 옛 시절에 기억을 싣게 된다. 동네 이웃들이 마당 평상에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던 풍경과 동네 꼬마들이 골목으로 달려나가 팽이치기를 하던 풍경, 식사시간이 되면 밥 먹고 놀라며 집 앞에서 제 아이들을 부르던 엄마들의 모습. 그런 따뜻한 냄새가 청춘발산마을에서는 금세라도 피어 오를 것만 같다.

글. 최덕철 _ 사진. 김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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