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충전 행복투어]대전의 가을을 이야기하다

테마법원

2018.11.02

계절은 어느덧 늦가을, 천지사방에 드리운 형형색색의 단풍도 하루가 다르게 몰려오는 찬 기운에 시나브로 제 빛을 잃어버리는 요즘이다. 이번에 찾아갈 곳은 대전, 과학과 생태, 역사, 자연이 고르게 어우러진 매력 넘치는 도시다. 들이 넓고 커서 예부터 ‘한밭’으로 불렸으며 식수원인 대청호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어 그 윤택함을 자랑하는 곳, 대전으로 함께 떠나보자.

살아있는 역사와 자연의 숨결을 찾아서
대전 여행은 단재(丹齋) 신채호(1880~1936) 선생 생가지에서 시작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을 남긴 선생은 일제 강점기 시절, 나라를 일본에 빼앗기자 신민회 가입, 국채보상운동 등을 통해 민족의 독립 정신을 일깨웠다. 중국 상해로 건너간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정원 의원과 전원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역사학에도 조예가 깊어 한말 『대한매일신보』에 글을 싣기도 했고, 『소년』에 「국사사론」을 연재했는가 하면 국난을 극복한 최영, 이순신, 을지문덕 장군 등 민족 영웅에 관한 전기도 썼다. 1936년 여순감옥에서 옥사하기까지 우리 민족의 주체성을 알리는 데 헌신했다. 생가터에는 옛 모습을 살린 생가와 유허비 및 동상이 세워져 있다.
단재 선생 생가지에서 금산땅을 가로질러 찾아간 장태산 자연휴양림, 이국적인 경관을 간직한 대전의 허파 같은 곳이다. 1970년대부터 가꾸기 시작한 숲은 빽빽하게 자라 맑은 공기를 아낌없이 내어주고 있다. 특히 단풍이 들기 시작한 메타세쿼이아 숲은 휴양림의 산 역사다. 숲속의 집, 산림문화휴양관, 숲속 수련장, 교과서식물원, 생태연못, 암석식물원, 작은 도서관 등의 시설이 들어서 있고 인공림과 자연림에 둘러싸인 12㎞의 숲속 산책로는 피톤치드를 한껏 내뿜는다. 휴양림을 따라 작은 계곡이 있고 장태산 전망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스카이타워도 설치돼 있다.
장태산을 빠져나와 대전 시가지 쪽으로 가다 뿌리공원에 들러본다. 이곳에는 족보박물관과 함께 자신의 뿌리를 찾아볼 수 있는 224개 성씨의 유래가 기록된 조형물이 세워져 있어 자신의 성씨는 물론 다른 성씨의 역사와 시조, 유명 인물을 알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신채호 선생의 생가

장태산 자연휴양림의 메타세쿼이아숲

뿌리공원의 성씨 조형물

과거와 현대가 만나는 대전의 중심부
중구(동구 포함)는 근현대 100년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대전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지역이다. 등록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된 옛 충남도청 건물은 2012년 충남도청이 내포 신도시로 이전한 후, 일부 공간을 대전의 역사와 인물들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바로 대전근현대전시관이다. 외벽이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옛 충남도청 건물은 대전에 남아 있는 근대 관청 건물 중에서 가장 오래됐다. 내부로 들어가면 요철(凹凸) 모양으로 파내어 장식한 벽면과 곡선으로 처리한 기둥, 1930년대 유행했다는 모더니즘 양식의 건축 기법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옛)대전여중강당, (옛)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옛)대전부청사, (옛)산업은행 대전지점, (옛)조흥은행 대전지점, (옛)동양척식회사 대전지점, (옛)대전형무소 건물 등도 고색창연하다. 1919년 조선총독부가 세운 (옛)대전형무소는 안창호, 여운형, 박헌영, 김창숙 등 독립운동가와 6·25전쟁 당시 수많은 애국지사, 양민들이 수감되고 학살된 역사적인 장소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이 한창일 땐 독재정권 타도를 외친 무수한 시민들이 수감된 곳이기도 하다. 공원으로 변모한 형무소터에는 건물은 간 곳 없고 망루, 우물, 왕버들 나무만이 남아 아픈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중구 한복판인 중앙로역 주변 ‘으능정이 문화의 거리’는 서울의 명동 같은 곳이다. 세련된 차림의 젊은이들이 가득하고 유명 브랜드와 음식점, 백화점, 재래시장, 60년 전통을 자랑하는 빵집, 1960년대 한국 모더니즘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성당(대흥동), 1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다리(목척교)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 중구에서 동구로 건너가면 대전에서 가장 고지대인 대동벽화마을이 있다. 6·25전쟁 때 피난민들이 모여 만든 마을로 2000년대까지도 낙후된 마을이었으나 도심 재개발 등으로 다시 태어났다. 대동여지도와 하늘공원(전망대)의 상징인 풍차 등을 볼 수 있고 특히 일몰과 야경은 환상적이다.

대동하늘공원에서 본 대전시가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두 인물
대동마을에서 대청호 방면 약 6㎞(15분) 거리에는 단아한 건축미를 자랑하는 동춘당(同春堂 보물 제209호)이 있다. 조선 효종 때 대사헌, 이조판서, 병조판서를 지낸 송준길(宋浚吉 1606∼1672) 선생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었다. ‘늘 봄과 같다’는 뜻의 이 건물은 구조 하나하나에서 기품이 느껴진다. 집 처마 밑에 걸린 현판은 우암(尤庵) 송시열이 썼다고 전해진다. 동춘당 옆에 들어선 고택은 송준길의 5대조 송요년(1429∼1499)이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임진왜란 이전 충청지역 살림집의 흔적을 엿볼 수 있어 문화재적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 있다.
동춘당 오른쪽 나지막한 둔덕에는 송준길의 둘째 손자인 송병하(1646~1697) 선생이 분가해 살던 옛집(송용억 가옥)이 있다. 이 집은 그 후 송병하의 아들 소대헌 송요화(1682~1764)와 그의 부인 호연재 김 씨(1681~1722)가 살았는데 나중에 ‘소대헌·호연재 고택’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호연재 김씨는 17~18세기 여류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뛰어난 한시를 많이 남겼다. 동춘당 현판을 쓴 송시열의 자취는 이곳에서 멀지 않은 가양동의 우암사적공원에 가면 더 자세하게 접할 수 있다. 조선후기 대유학자인 선생은 인생 후반기에 이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학문을 닦았다. 그는 세 살 때에 스스로 문자를 터득했고 7세에 형들의 글 읽는 소리를 듣고 이를 받아썼을 만큼 총명했다고 한다. 공원에는 송시열이 제자들을 불러들여 학문을 익혔던 남간정사(南澗精舍)를 비롯해 송시열 선생의 문집과 연보 등이 보관된 장판각, 연못을 둔 덕포루(정자), 사당(남간사), 우암자료실 등이 있다. 개울물이 졸졸 흘러 둥근 연못에 닿는 모습이 아름다운 남간정사는 중국 송대의 유학자인 주자(朱子)의 시 ‘운곡남간(雲谷南澗)’에서 따왔다고 한다.

동춘당 현판

남간정사

힐링과 휴식이 있는 산과 호수
동춘당 뒤편은 계족산(鷄足山)과 이어져 있다. 이름 그대로 산의 모양이 닭의 다리를 닮았다는 계족산은 산세가 완만하고 유순해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찾는 대전의 명산이다. 대덕구와 동구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사방으로 뻗은 능선들이 닭발 같은 형상이다.
코스는 장동산림욕장에서 시작해 능선을 한 바퀴 도는 게 일반적이다. 경부고속도로 아래, 고성 이씨 집성촌인 비래골에서 출발해 옥류각~절고개(황톳길 갈림길)~계족산성~황톳길~장동산림욕장 코스도 무난하다. 산 초입부터 뭔가 예사롭지 않다. 등산로 한쪽으로 깔린 황토 맨발길 때문이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맨발로 걷는 황톳길은 감촉이 부드럽고 상쾌하다. 몸으로 전해지는 느낌이 기분을 좋게 한다. 황토가 내뿜는 원적외선의 효능을 맛보기 위해 외국에서도 일부러 찾아오는 명소가 됐다. 산 정상 언저리에는 백제시대에 쌓은 계족산성이 있다. 산성에 서면 동쪽으로는 충북 옥천땅인 대청호가 북동쪽으로는 충북 보은땅이 아스라하다.
산행을 마치고 대청호의 푸른 물길을 따라가는 ‘대청호 오백리길’을 걸어보자. 자연을 느끼고 건강도 챙기는 명품 힐링길이다. 대전 신탄진 대청댐에서 출발해 충북 옥천과 보은, 청원을 잇는 250㎞, 전체 21개 구간으로 이뤄져 있다. 이 중 호수 경치와 오지마을을 감상하며 걷는 호반길(마을길)은 가을 낭만을 흠씬 느낄 수 있어 인기가 좋다. 대청호는 주변에 잔디공원과 자연생태관, 캠핑장, 대청댐 물문화관, 기념관, 전망대 등이 있어 가족 단위의 여행객들에게 최적의 휴식을 제공한다. 호수를 지그재그로 도는 드라이브 코스도 멋진 추억을 선사한다.
여행의 피로를 씻어줄 유성온천도 지척이다. 이곳의 온천수는 지하 50∼400m의 화강암 단층대에서 분출된다. 27~56℃ 정도의 약알칼리성 단순천으로 60여 종의 각종 성분이 함유돼 있다. 유성온천지구 한쪽에 들어선 족욕체험장도 인기다. 따끈한 온천수에 발을 담그면 피로가 사르르 풀리는 느낌을 받는다.
온천욕을 마치고 대전 6미(六味)의 하나인 도토리묵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것도 좋을 듯하다. 대전의 대표 음식인 구즉마을 도토리묵은 자연에서 얻은 무공해 웰빙 식품으로 몸속의 독소 배출을 돕고 소화 기능을 촉진하며 피가 맑아지고 열량이 낮아 다이어트 음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유성구 관평동 구즉마을에는 채묵밥·무침·묵전 등 다양한 묵 요리를 내는 10여 개의 전문 음식점이 있으며, 이 중 채묵밥은 채 썬 묵에 멸치와 다시마, 무 등을 넣은 후 끓인 국물을 붓고 김치, 김 가루, 깨 등을 올려 내놓는데 누구나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대청댐 물문화관

유성온천지구의 족욕체험장

글·사진 김초록(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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