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충전 행복투어]문화와 역사, 맛과 자연이 있는 홍성

테마법원

2018.09.04

유난히 무덥고 지루했던 여름도 어느덧 찾아온 가을 기운에 기세를 꺾었다. 예산, 당진, 서산과 함께 내포(內浦)의 중심 고을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홍성 땅에도 가을이 깊이 찾아들었다. 내포는 가야산의 앞뒤에 있는 열 고을을 일컫는데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충청도에서는 내포가 가장 좋은 곳이다.”라고 하였다. 서해를 끼고 있는 홍성은 어딜 가나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유적이 기다리고 있다. 가을은 저 하늘에서 먼저 찾아오는가. 한층 높아진 홍성의 파란 하늘이 눈부시다.

홍주성 천년 여행길과 홍주 성지 순례길
홍성의 역사유적은 거의 군청이 있는 읍내 주변에 흩어져 있다. 먼저 홍주성부터 둘러보기로 한다. 언제 쌓았는지 정확한 연도를 알 수 없는 이 성은 그 길이가 1,772m에 달했지만 지금은 810m만 남아 있다. 세월의 부침 앞에 이렇듯 역사의 흔적은 사라져갔다. 성내에 자리를 지키고 있던 관아 건물도 35동에 이르렀으나 현재는 조양문, 홍주아문, 안회당(동헌), 여하정만이 남아 있다. 군청 건물 뒤에 있는 안회당(安懷堂)은 흥선대원군 시절에 홍주목사 이승우 선생이 정교한 기법으로 지은 건물로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동헌이라는 이름 대신 쓰고 있는 안회당은 논어에서 유래한 말인데 ‘노인을 편히 모시고 벗을 믿음으로 사귀고 연소자를 사랑해야 한다.’는 뜻이다. 22칸의 목조 기와집은 투박하면서도 넉넉한 여유가 느껴진다.

<연못과 어우러진 여하정>

<홍주성의 동문인 조양문>

<홍주성역사관>

안회당 뒤뜰에 있는 여하정도 눈길을 끈다. 이 건물도 1896년(고종 33년) 홍주목사 이승우 선생이 건립한 육각형의 아담한 정자인데 안회당에서 집무를 본 뒤 휴식을 취하던 곳이다. 철따라 독특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군청 정면에 반듯하게 서 있는 홍주아문은 1870년, 당시 홍주목사 한응필 선생이 홍주성을 대대적으로 보수·수리하면서 홍주성의 동문인 조양문과 함께 세운 것이다. 원래 열 칸 반 규모의 내삼문과 남과 북으로 담장을 대신했던 큰 건물이 있었는데, 3·1 운동 당시 홍성의 만세사건을 진압시키기 위해 들어온 일본군이 무참히 파괴해버렸다. 홍성군청 앞에 서 있는 수령 600년이 넘는 느티나무도 볼만하고 홍주성 남문 아래에 있는 홍주성역사관에서는 홍성의 역사와 문화, 유물 등을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다.
홍성의 천년 역사를 두루 살펴볼 수 있는 ‘홍주성 천년여행길’도 걸어볼 만하다. 사이사이 대교리 석불과 오관리 당간지주도 볼 수 있고 명동상점가와 뽕뽕다리를 지나게 된다. 여행길 중간에서 만나는 홍주의사총은 1905년 일본의 강압에 의해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에 반대한 의병들이 홍주성에서 일본군들을 상대로 치열하게 싸웠지만 전력의 약세로 성은 함락되고 수백 명의 의병들이 순절했는데 이때 희생된 분들의 유해를 모신 곳이다.

독립운동의 자취를 찾아서

<한용운 생가 옆의 민족시비공원>

<김좌진 장군 생가>

홍성하면 으레 떠오르는 두 분이 있다. 만해 한용운(1879~1944) 선생과 백야 김좌진(1889~ 1930) 장군이다. 동시대에 태어나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친 두 분은 홍성의 역사를 더듬어보는 데 일조를 하고 있다. 결성면 성곡리(만해로 318번길 83)에 있는 한용운 생가를 찾아간다. 1879년 이곳에서 태어난 선생은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워 익힐 정도로 신동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생가는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초가인데 양옆으로 광과 헛간이 딸려 있고 싸리나무로 울타리를 둘렀다. 생가 좌측 뒤편에 위패와 영정을 모신 사당(만해사)이 있으며 만해(萬海)의 일생을 더듬어 볼 수 있는 만해문학체험관이 마련돼 있다. 체험관 뒤편에는 민족시비공원이 꾸며져 있어 숲길을 산책하며 큰 돌에 새겨진 시를 감상할 수 있다. 한용운은 시인으로도 큰 활약을 했는데 시집 ‘님의 침묵’은 저항문학의 효시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나이 26세 때는 강원도 백담사에 들어가 불교와 인연을 맺는가 하면 1919년 3·1운동 당시엔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분으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고 이후 일제에 대항해 ‘신간회’란 단체를 결성했는데 이 단체는 훗날 학생 의거와 전국적인 민족운동단체로 퍼져나갔다.
갈산면 행산리(백야로 546번길 12)는 백야(白冶) 김좌진 장군이 태어난 곳이다. 안채, 사랑채, 광, 마구간으로 이뤄진 생가는 아담하고 고즈넉하다. 안채는 2칸의 부엌과 아랫방, 윗방이 각 한 칸씩 있으며 대청이 딸려 있고 마당 한쪽에 우물을 두었다. 생가 뒤편에는 사당(백야사)을 두어 매년 음력 12월 25일에 제향을 올리고 있다. 평생을 항일전투에 몸 바쳤던 선생은 1920년 10월 전투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찔렀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청산리전투이다. 청산리전투는 봉오동전투와 함께 독립전쟁 사상 최대의 승리로 꼽힌다.

내포에 우뚝 솟은 명산
가을산은 언제 찾아도 정겹다. 홍성에도 기개 넘치는 산이 있다. ‘서해의 등대산’으로 불리는 오서산(해발 791미터)은 고기잡이에 나선 어부들에게 등대 역할을 한다. 오랜 옛날부터 천수만을 지나던 고깃배들은 오서산을 바라보며 방향을 잡았다. 탁 트인 조망도 일품이다. 맑은 날엔 안면도와 천수만 일대의 여러 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정상 언저리에 일렁이는 억새풀은 가을을 알린다. 9월이면 정상을 중심으로 주능선이 아름다운 은빛 물결을 만들어내는데 특히 일출이나 일몰 때 태양에 반사되는 억새의 물결이 환상적이다.
덕산온천 방면에 솟은 용봉산(龍鳳山, 해발 374m)은 산 전체가 기묘한 바위와 봉우리로 이루어져 ‘남한의 금강산’으로 불린다. 용의 몸에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는 산 이름이 결코 어색하지 않다. 호젓함이 물씬 풍기는 용봉사를 거쳐 마애석불(보물 제355호)을 보고 장군바위(정상)까지는 1시간 10분 정도 걸린다. 마애석불 동쪽으로 보이는 병풍바위는 병풍처럼 바위가 능선을 따라 뻗은 모습이 장관이다. 용봉산은 여러 봉우리를 거느리고 있는데 악귀봉은 시원하고 장쾌하다. 악귀봉 부근에 불쑥불쑥 얼굴을 내민 물개바위, 삽살개바위 등 동물을 닮은 기암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용봉산자연휴양림에서 산행을 시작해 다시 돌아오는데 2~3시간 정도 걸린다.
용봉산 산행을 마치고 인근에 있는 고암(顧菴) 이응노(1904~1989) 생가에도 들러보자. 17세에 미술에 입문한 고암은 그림을 반대하는 아버지를 피해 마당에, 벽채에, 바위에, 나무에, 심지어 자신의 살갗에까지 나뭇가지와 자갈로 그림을 그리며 자랐다고 한다. 대나무 울타리와 초가지붕, 마당, 마루로 이뤄진 생가는 소담스럽다. 생가 옆에는 기념관이 들어섰다. 이응노 화백이 생전에 썼던 화구 등 유품과 그림을 감상할 수 있고 연중 각종 기획전과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전시관에서는 10월 6일부터 내년 5월 26일까지 <도불60주년기념, 사람의길 고암이응노, 박인경 展>이 열릴 예정이다.

맛과 멋이 있는 가을 포구
오곡백과가 익어가는 이즈음에 홍성 바다를 찾게 되면 싱싱한 각종 해산물을 맛볼 수 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마시며 드넓게 펼쳐진 천수만을 따라간다. 그렇게 얼마쯤 가다보면 서해안의 대표적인 수산물 집산지 남당항이 나온다. 요즘 이곳에는 새조개, 키조개, 왕새우, 대하, 전어, 꽃게, 광어, 우럭 등 해산물이 그득하다. 특히 제철을 맞은 자연산 대하와 전어는 단연 인기다. 포구 바로 앞은 물고기의 산란터인 천수만이다. 천수만으로 길게 뻗은 방파제, 물이 빠지면 갯벌이 끝없이 펼쳐진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대하와 전어는 11월까지 맛볼 수 있다.
남당항에서 해안을 따라 서산 쪽으로 올라가다보면 어사포구-속동전망대-궁리항이 차례로 나타난다. 어사포구와 궁리항 중간에 있는 속동전망대는 시원스레 트인 바다(천수만)를 보기에 제격이다. 전망대 옆은 해송숲이 그윽하고 개펄체험장은 아이들의 자연학습장이다. 한편, 궁리는 서해로 넘어가는 일몰이 장관인 곳이다. 천수만을 앞에 두고 건너편으로 누운 안면도로 지는데, 이때만큼은 누구나 시인이 된다. 궁리항 바로 위에 있는 조류탐사과학관은 철새들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망원경으로 천수만과 간월호에서 노니는 철새들을 관찰할 수 있다.

<광천 독배마을에 있는 토굴새우젓홍보전시관>

홍성에서도 광천은 토굴새우젓과 김이 유명하다. 광천 옹암리 독배마을의 산을 파서 새우젓을 저장하는데 연중 섭씨 14~15°c, 습도 70%에서 숙성된 새우젓은 인위적으로 발효시킨 다른 지방의 젓갈보다 맛과 향이 뛰어나다. 광천은 한때 각종 고기잡이배들이 몰려드는 서해안의 대표적인 수산물 집산지였지만 60년대부터 인근 대천항 등 해안과 가까운 항구에 그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그러다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은 독특한 젓갈 저장법을 개발하면서부터다. 마을 한쪽에 토굴새우젓을 홍보하는 전시관이 있다. 젓갈의 고장인 만큼 이를 이용한 젓갈백반은 여름내 잃었던 입맛을 되살려준다. 각종 젓갈에 몇 가지 반찬과 된장찌개, 계란찜이 함께 나온다. 현재 광천 토굴새우젓마을에는 젓갈집이 120여 개에 이르고 젓갈백반을 내놓는 식당도 여럿 있다.
광천읍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엔 식물원과 수목원을 합쳐놓은 듯한 ‘그림이 있는 정원’이 있다. 3만여 평의 대지 위에 야생식물과 나무, 온실식물원, 자연생태원, 미술관, 카페, 연꽃정원, 돌탑분수대, 암석원, 전망대, 산책로, 폭포 등이 갖추어져 있어 호젓하고 즐거운 초가을날 한때를 보내기 좋은 곳이다.

글·사진 김초록(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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