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법원]감성충전 행복투어_역사가 숨 쉬는 마포의 뒷길을 걷다

테마법원

2018.03.02

행복투어

남녘에서 올라온 봄은 서울 도심의 뒷골목에도 어김없이 스며들었다. 빌딩숲으로 들어찬 서울 마포의 중심가. 복잡한 거리를 벗어나니 한적하고 고요한 골목이 나온다. 세련미와 화려함 뒤에 감춰진 소박함이다. 같은 시간 속 다른 풍경, 도시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정구중 가옥

회화나무

공민왕 사당, 공민왕 사당 앞에 우뚝 서 있는 회화나무 두 그루

선교사묘원

개신교 선교사들이 잠들어 있는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양화진 나루터를 알리는 입석.

빌딩숲에 가려진 역사

마포 지도를 펼쳐든다. 공덕동과 맞붙어 있는 용강동 쪽에 정구중 가옥(서울시 민속문화재 제17호)이 보인다. 전통 한옥 구조의 이 집은 아쉽게도 일반 사람들에게 개방하지 않고 있지만 겉모습만으로도 세월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한옥은 안채, 사랑채, 행랑채 등으로 이뤄져 있으며 한말 용강동의 부농인 이모 씨가 무남독녀에게 주기 위해, 당시 장안에서 이름난 4대 목수한테 부탁해 지었다고 한다.

용강동에서 광흥창역(지하철 6호선)쪽으로 거슬러 오른다. 인근에 공민왕 사당(등록문화재 제231호)이 있어서다. 이 유적은 아파트와 주택들이 밀집한 곳에 깊숙이 숨어 있다. 보호수로 지정된 회화나무 두 그루와 수령 200년이 넘은 느티나무 두 그루가 역사를 증언하듯 높다랗게 서서 길손을 반긴다. 세월을 이겨낸 나무들을 보니 절로 감동이 밀려온다. 고려 충숙왕과 공원왕후 홍씨 사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공민왕(1330~1374)은 1349년 원나라 위왕의 딸인 노국대장공주(?~1365)와 부부의 연을 맺은 후 1351년 고려 31대 왕에 올랐다. 고려의 자주성을 되찾기 위해 개혁 정책을 펼친 집권 전반기와는 달리 후반기는 홍건적의 침입과 왕비 노국대장공주의 죽음, 그리고 나랏일을 승려 신돈에게 맡기면서 국정이 혼란에 빠졌던 비운의 왕으로 기록돼 있다. 현재의 사당 건물은 6·25 전쟁 때 파괴된 것을 새로 지은 것으로 전면이 두 칸인 것이 특징이다.

강변북로 바위절벽에 자리잡은 절두산 순교성지,

한강을 바라보고 있는 망원정

전망이 아름다운 한강변의 역사 유적지

여기서 길은 상수동을 지나 한강변 합정동으로 이어진다. 합정동 당산철교 옆 강변북로에는 우리 종교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성지 두 곳이 있다. 절두산 순교성지와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을 일컬음이다. 누에가 머리를 높이 든 형상이라 해서 잠두봉(蠶頭峰)으로, 조선말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참수형으로 순교한 곳이라 하여 절두산(切頭山)으로 불렸던 이곳은 겸재 정선이 그림을 남길 만큼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이곳에는 성당, 박물관, 기념관, 전시관, 공원이 한강을 바라보며 함께 있다. 옛 초가 지붕 모양을 본뜬 박물관은 첫눈에 보기에도 뛰어난 예술성과 건축미를 뽐낸다. 우뚝 솟은 절벽 위에 새집마냥 올라앉은 기념관 지붕은 옛날 선비들이 의관을 갖출 때 머리에 쓰던 갓을 빼닮았다.

절두산 순교성지 아래는 한강변 오솔길이다. 봄을 기다리는 나무들과 푸른 한강물, 청아한 새들의 지저귐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버드나무가 많아 ‘양화(楊花)’란 이름이 붙은 옛 나루터(양화진)는 안내판만 외롭게 서 있을 뿐 흔적이 묘연하다. 그 옛날 한강을 건너려면 이곳에서 나룻배를 타야 했지만 지금은 다리(양화대교)가 대신하고 있다.

절두산 순교성지 너머에 있는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은 개신교의 역사 유적지다. 선교사와 그들의 가족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십자가 모양이 있는가 하면 네모반듯한 모양, 거친 느낌의 바위 모양까지 다양하게 생긴 묘비들은 저 동유럽의 어느 묘원을 떠올리게 한다.

다음으로 갈 곳은 역시 한강을 끼고 있는 강변 정자, 망원정(望遠亭)이다. ‘신동국여지승람’에도 나오는 이 정자는 조선 세종 6년(1424년)에 효령대군(세종의 형)의 별장으로 지었다. 2개의 현판에서 정자의 변천사를 알 수 있는데 2층 누각의 안 처마 밑에는 ‘희우정’ 현판이 걸려 있고 강변북로 방향인 바깥쪽 처마 아래에는 ‘망원정’ 현판이 걸려 있다. 망원정에 오르면 한강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망원정에서 시작하는 ‘망원초록길’을 따라 강변북로 쪽으로 내려가면 망원한강공원에 닿게 된다. 산책로와 휴식 공간, 체육시설 등이 잘 갖추어져 있다.

책거리

경의선 책거리를 알리는 조형물

책이 있는 숲길과 생태 체험장으로 좋은 한강공원

트레킹에서 맞닥뜨리는 허기는 몸을 축 처지게 한다. 여기 허기를 달래기에 맞춤인 곳이 있다. 망원정에서 가까운 망원시장과 월드컵시장이다. 두 시장은 서로 맞붙어 있는데 굳이 비교하자면 망원시장이 더 활발한 편이다. 입구부터 사람들로 북적댄다. 닭강정, 수제고로케, 호떡, 순대, 손두부, 어묵, 칼국수, 떡 등 시장 안이 온통 먹거리 천국이다. 특히 닭강정과 고로케는 단연 인기다. 소문 듣고 찾아온 사람들로 연일 문전성시다. 굳이 이름난 맛집을 찾지 않아도 시장 안에서 찬거리도 장만하고 맛난 음식도 먹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한다.

망원시장에서 허기를 채웠다면 요즘 뜨고 있는 경의선 숲길과 경의선 책거리로 가보자. 홍대 입구 경의선숲길에 조성된 경의선 책거리는 말 그대로 책이 중심이 되는 거리다. 경의선 책거리를 알리는 조형물과 10여 개 출판사 부스(책방)에서 책 향기에 흠뻑 젖어볼 수 있다. 경의선 책거리를 거닐다 보면 신선한 아이디어와 마주하게 된다. 독서 중인 여자와 기타 연주를 하는 남자 조형물, 야외 객석 위 담벼락은 책이 꽂힌 책장 모양으로 꾸며놓았다. 경의선의 한 역을 실제처럼 꾸며놓은 ‘책거리역’도 색다른 풍경으로 다가온다.

또한, 난지한강공원에 가면 다양한 생태체험을 즐길 수 있다. 망원경으로 한강에 노니는 비오리와 뿔논병아리 같은 10여 종의 철새들을 두 눈으로 관찰할 수 있고 오솔길을 따라 트레킹도 즐길 수 있다. 하늘공원은 난지도 제2매립지에 들어선 초지(草地)공원으로 철따라 다양한 식물들을 볼 수 있다. 하늘공원 끄트머리에 서면 서울의 풍광이 한눈에 펼쳐진다.

글 김초록(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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